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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제네바에서 황제처럼 군림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40년 째 사역하고 있는 김정효 목사 인터뷰
 
김철영   기사입력  2022/10/05 [13:32]

 

1983년 스위스에 첫발을 내딛고 40년 째 사역하고 있는 김정효 목사(스위스 취리히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스위스 성시화운동)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에 대한 한국교회 안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 중 칼빈이 제네바에서 황제처럼 군림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했다.

▲ 스위스 김정효 선교사     ©뉴스파워

  

사모(최옥순)의 건강 치료차 고국을 방문한 김 목사를 지난 4일 저녁 신촌의 한 청국장집에서 만나 종교개혁 500주년과 코로나19로 인한 현지 교회의 상황 등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목사는
칼빈은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망명을 온 사람이라며 칼빈은 짧은 기간 슈트라스부르그(Strasburg)에서 사역했지만 슈트라스부르그시는 그에서 서슴치 않고 시민권을 주었고 여러 가지 특권도 주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제네바에서는 칼빈이 불과 죽기 몇 년 전인 155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네바시민권을 받았다.”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이란의 호메이니처럼 군림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당시 개신교도들인 프랑스 위그노들은 스위스로 많이 이주해왔다. 그들은 시계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 왔는데 제네바시 의회가 그들에게 시민권을 주자 시민들이 집단으로 시위를 하면서 위그노들에게 적어도 10년간은 참정권 주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도시 국가 형태였던 제네바시의 위그노들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에서 칼빈은 25년간 성 피에르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제네바 시의회를 좌지우지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칼빈의 영향력은 교회업무와 신학교육에 한정되어 있었다.”칼빈이 죽기 전 제네바 시의회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 의원들을 비판했다가 그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하마터면 사형에 처해질 뻔했다.”며 칼빈이 제네바 시의회를 장악하여 공포정치를 했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칼빈의 제네바 체류당시 칼빈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처형 당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그 중 삼위일체를 부인한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09-1553)사형 언도도 칼빈의 결정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등 워낙 자기주장이 강해 스페인에서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도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언도를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칼빈은 교회에서 목회만 하던 사람이라며 그런데 제네바 시의회에서 세르베투스의 주장은 이단사설이라며 사형을 시킨 것이다. 물론 신학자인 칼빈은 시의회의 재판에 불려나가 세르베투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 제네바대학 앞에서 종교개혁 기념비     ©뉴스파워

김 목사는 하지만 막상 그에게 화형이 언도되자 칼빈은 화형이 아닌 다른 형태의 형벌이 그에게 적용되어지도록 건의를 했다.”그러나 제네바 시의회는 칼빈의 건의를 무시하고 그를 화형에 처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530년 대 칼빈이 제네바에서 목회를 할 당시 제네바 인구는 7,000명 정도였는데 1559년 칼빈이 개교한 제네바아카데미에는 1500여명의 유럽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공부를 했다고 소개했다. 오늘날 개혁신학의 본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설교집이나 설교 동영상을 보면 기독교 역사와 관련 예화와 용어들이 원본과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한다.”아마도 누군가 잘못 인용하면 계속해서 다른 목회자들도 그대로 인용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나씩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스위스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고 했다. 김 목사는 스위스는 인구 850만 명으로 26개 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고 연방수도는 베른이다. 땅은 한반도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저도 베른의 산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 스위스 김정효 선교사가 살고 있는 산동네     ©뉴스파워

김 목사는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서방 NATO와 가깝다.”“850만 인구 중 정규군이 60만 명이고, 최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다. 의무병역에 40세까지 군대를 가야 한다.”며 철저한 국가안보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취리히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김정효 목사는 "바젤은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 1509710-1564527)이 그의 미래의 사역지인 제네바로 가기전 그의 일생일대의 대역작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여 출판(15363)한 곳"이라고 말했다.

 

또한 위대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의 친구 니콜라스 코프의 파리대학장 취임연설문을 초안해주면서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이 연설문 때문에 그와 니콜라스 코프에게는 체포령이 내려지고, 그는 이곳저곳으로 피해다니다가 마침내 바젤에 도착하여 한동안 이곳에서 망명생활을 하게됐다.”이때 그는 그의 일생일대의 대역작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여 출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바젤은 위대한 종교개혁자 요한네스 외콜람파디우스(Johannes Oekolampadius, 1482-1531)를 배출한 도시라며 요한네스 외콜람파디우스는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울리히 쯔빙글리(Ulridh Zwingli, 148411-15311011)와 동시대의 인물로 쯔빙글리와 가까이 교류하면서 쯔빙글리가 취리히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취리히의 종교개혁을 단행해 나가는 동안 그 역시 바젤시의회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바젤의 종교개혁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한네스 외콜람파디우스는 쯔빙글리보다 한해 먼저 태어났지만 쯔빙글리가 카톨릭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몇주 후 그 역시 명을 달리하여 바젤교회당에 묻혔다.”고 밝혔디

 

김 목사는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바젤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면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그러나 지금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밝혔다.


김 목사는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예배 대신 온라인과 설교문을 개별적으로 보내주었다며 교인들을 대면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밝혔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직장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 목사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체코, 폴란드, 루마니아, 독일 등 전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스위스에도 난민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저도 집에 있는 생필품들을 모아서 난민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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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0/05 [13:32]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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