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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근 전 미국 오리건주 상원의원 자서전 출간
미주 한인 이민사상 최초로 오리건주 상원과 하원 5선을 기록한 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원의원 역임
 
이동근   기사입력  2022/10/03 [13:15]

 

 

▲ 임용근 미국 오리건주 전 상원의원의 첫 자서전 표지     © 이동근

 

  “저의 성공보다 실패와 고난들을 교훈 삼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꿈과 소망과 용기를 주고 특히 후세들에게 새 비전과 도전을 주어 한인 정치인들이 더 많이 탄생하길 바랍니다.”

미주 한인 이민사상 최초로 오리건주 상원과 하원 5선을 기록한 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원의원이 처음으로 자서전을 출간했다.

한국 ‘가온미디어’ 출판사가 펴낸 284 쪽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청소부에서 미국 오리건주 상,하원 5선까지' 자서전에는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역경을 극복,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미국 정계에서도 활약한 그의 생애가 진솔하게 회고되어 있다.

‘버려진 돌’ 이라는 책 제목처럼 그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1935년 경기도 여주 시골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 별세 후 어려운 가정 속에서 공부해야 했다. 17살부터 폐결핵에 걸려 각혈을 하는 7년여 간의 투병생활로 정신 이상자로 몰리는 고통도 당했다.

가정이 어려워 고교시절에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미군들의 구두를 닦는 등 고생을 했다.

이 같은 어려움보다 더 큰 아픔이 있었다. 아버지가 6.25때 공산당으로 몰려 남한 정부에 총살당했기 때문에 빨갱이 가족이란 딱지가 붙은 것이었다.

1966년 6월 빈털터리 무일푼으로 미국에 온 후에도 초기에는 청소, 정원일, 세탁일, 페인팅 등 온갖 궂은일을 다했다.


▲ 임용근 의원이 부인 그레이스 임과 함께 상원 3선 선서를 하고 있다.     © 이동근


그러나 이같은 역경을 이기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루었으며 미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익옹호를 위해 미국 정치계에 도전했다.

50세에 오리건주 한인회장을 시작으로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총회장, 미국 한인 상공인총연합회 총회장, 미 아시안 시민권자협회 의장을 역임했다.

특히 미 정계에서는 무명이었던 1990년 일약 오리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실패했으나 "처음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출마하고 두 번째는 승리하기 위해 출마한다."는 전략이 성공, 1992년에는 미주 한인 최초로 주상원에 당선되었고 상원 3선(1992-2004),하원 2선(2005-2009)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했다.

또 1998년에는 미 한인 최초로 연방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아쉽게 패배했고 2010년 오리건 주지사에 2번째 도전했으나 성공치 못하고 정계를 떠났다.

▲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 이동근

정계 은퇴 후에도 아직까지 미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위해 계속 일하고 있는 임의원은 자신의 정치 경험을 살려서 정치계에 진출하려는 한인들에게 귀한 조언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 정치인 배출에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2007년에 설립하고 2015년까지 회장으로 봉사했는데 “더 많은 한인정치인 배출에 힘쓰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하여도 노력하는 것이 목적” 이라고 말했다.

“일선에서 직접 정치 생활을 한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처럼 2선에서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사회봉사를 하고 후배들에게 앞길을 열어주며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멘토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는 그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하늘이 끝이다." 라는 인생철학으로 항상 쉬지 않고 달려왔으며 비록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새 도전을 해왔다.

▲ 임용근 의원이 상원 의장 대행으로 상원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 이동근

 

자서전은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을 비롯해 미국 초창기 고생, 미 정계 도전의 성공과 실패, 2차례 북한 방문, 인생 좌우명, 아내의 뇌졸중 투병, 정계 은퇴 후 생활, 묘비에 새긴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어릴 적 6.25 전쟁으로 인해 빨갱이로 몰려 갑자기 끌려가고 남한 정부에 처형된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묘사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안계시고 나와 아버지가 함께 집 곳간에서 썩은 감자들을 골라 버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집으로 청년 두 사람이 찾아왔다.

경찰서 형사들이었다. 이들은 아버지에게 잠깐 가자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반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이들을 따라가셨다.

그러나 나는 걱정이 되어 “아버지”하고 소리치며 집밖으로까지 따라 나갔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 따라가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 빨리 돌아가”라고 안심시켰다.

나는 집 멀리까지 떠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가족이 있는 집 옆을 지날 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총살 처형을 당하러 가는 그 심정 어떠했을까?

끌려가면서도 집 쪽을 보며 고개를 몇 번이나 돌리고 참담하고 애통한 눈물 속에 발을 옮기셨을 것이다. 아마 죽는다는 두려움 보다는 집 쪽을 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일까 봐 몇 번이나 뒤돌아 보셨을 것이다.

▲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     © 이동근

항상 자신이 일하고 놀던 장소를 지나고 새벽에 약수를 길러가고 등산을 하던 추억 많은 아름다운 뒷산에 총살을 당하러 끌려가야 한다니- 그 아버지의 마음은 처참하게 찢어졌을 것이다.

"당시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도 지금 다시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애통함에 한이 맺힌다.-“

그러나 집안 어른인 여주 임동선 목사의 영향을 받아 성결교단의 서울신학대학 졸업과 오리건주 포틀랜드 Western Evangelical Seminary (George Fox University) 신학석사이며 인문학 박사이고 한국에서 여주군 능서면에 능서 성결교회를 개척했던 전도사였던 임의원은 “뒤돌아볼 때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사용하셔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까지 건강하고 부족함 없이 살도록 축복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특히 아내 임영희(그레이스 임)씨가 3년 6개월 전 뇌졸중(Stroke)을 당했으나 기적적으로 다시 90% 건강을 되찾고 결혼 60주년을 맞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이같은 하나님의 복은 믿음의 본이 되신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다는 그는 5형제 중 유일하게 9살부터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혼자 다녔다. 당시는 믿음보다는 교회에 가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특히 크리스마스, 부활절에는 선물도 주어 교회가 좋았다.

그러나 폐결핵에 걸려 약도 못 사 먹고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아들이 살지 않겠느냐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전도로 식구들이 모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며 “하나님은 나의 폐결핵 병을 쓰셔서 우리 가족들을 구원하셨다”고 증거했다.

또 어머니는 새벽마다 마루 뒷문 쪽문을 열고 기도하셨는데 추운 겨울 새벽에도 꼭 문을 열고 기도하셨다며 아마 문을 열어놓아야 하나님에게 막히지 않고 기도가 전달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고 회상했다.

임용근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 (2001)과 동포후원재단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수상 (2007)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자서전 ‘버려진 돌 임용근 스토리’는 현재 교보문고, 쿠팡 등에서 온라인으로 구입할 수 있다.

임용근의원 연락:senatorjohnlim@gmail.com

(시애틀 이동근 기자) 

▲ 임용근 의원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한복을 입고 사랑을 다지고 있다.     © 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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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0/03 [13:1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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