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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7.24 [13:41]
[특별기고] 총신대 학내사태를 돌아보며
심상법(총신대 명예교수, 경건훈련원장, 기획실장, 일반대학원장 역임)
 
심상법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惡)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善)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마틴 루터 킹)  
 
▲ 총신대학교     ©뉴스파워
학내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2년간의 관선이사 체제도 종식되고 정이사 체제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개혁’ 혹은 ‘갱신’의 미명(美名) 하에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던’ 학내 사태를 돌아보며 우리는 어떤 역사적 교훈을 가져야 하는가? 과연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역사는 언제나 승자(勝者)의 기록’인가? 아니면 ‘올바른 역사, 진실한 역사기록은 불가능 혹은 불필요한가?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속에 진영 간 끝없이(?) 계속되는 ‘역사 지우기’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다른 ‘[나의] 적폐 지우기’와 ‘[나의] 적폐 세우기’의 진영 해석인 자신들의 권력 추구와 권력 연장의 이념(ideology)에 불과한가? ‘올바른 역사기술’, 곧 ‘성찰적 역사기술’을 통해 ‘지나온 과거’와 ‘지금의 현재’를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총신(합동)의 12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우리의 ‘고통스러운 과거’였으며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 고통하면서 지난 학내 사태(흑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며 총신 더 나아가 합동 교단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먼저 ‘개혁’ 혹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학내 사태의 화두를 돌아본다. 지나 온 몇 년 간의 학내 사태를 돌아보며 학내 사태와 함께 ‘개혁’이라고 회자된 말의 ‘지독(至毒)한’ 현실과 ‘불편(不便)한’ 진실을 반추해 본다. 학내 사태를 주도한 그들이 추구하는 ‘개혁’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과거) 체제 전복 혹은 (현재) 체제 유지와 자기 권력화와 정당화의 수단인가?   
 
1. 지독(至毒)한 현실
학내 사태를 통해 이룩한(?) 현실의 독(毒)스러움 뿐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독(毒)스러운 현실을 보고자 한다. 최근 조국 전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냉혹한 현실과 그에 따른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4.7 보궐선거의 참패로 인해 마지못해 하는 말의 유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표층적/근대적 민주주의’에서 ‘심층적/성찰적 민주주의’의 전환(필요성)을 역설한 철학자 김영민의 외침이나 “나는 백인의 압제[독재]로부터 내 백성을 구원할 뿐 아니라, 앞으로 있을 흑인의 압제[독재]로부터 내 백성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만델라의 성찰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역시도 미래를 뺏을 정도의 몹시 독한 이 현실을 보지 못한다면 이 또한 우리의 무서운 슬픔이기도 하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급변하는 시대 속에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내세운 말[진리] 속에 숨어있는 욕망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이 우리 모두의 무서운 덫이고 슬픔이다. 개혁을 내세우는/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속에 숨어 있는 이 무섭고 지독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면, 이 역시도 우리의 아픔이고 슬픔이며 퇴보이다. 개혁의 공허한 외침 속에 ‘하늘(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다. 진정 개혁의 사람이 아니다. 오만(傲慢)과 자만(잘난척)의 사람이다. 아니 자기성찰이 없는 태만(怠慢)의 사람이다. 오늘의 진보(進步)를 외치면서 자신의 퇴보(退步)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 이 냉혹하고도 지독한 현실을 모른(채 한)다면, 성화의 길을 모르든지 아니면 외면하는 사람일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롬 12:2) 속사람의 강건(경건)이 없다면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슬픔이다. 이 슬픔을 슬픔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럴 때 참된 새로움(개혁)이 찾아오고 미래가 희망적인 것이다. 이러한 슬픔에 대한 ‘탄식(groan)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고, [참된] 미래적 새 희망이 없으면 탄식도 없다’는 한 성경학자의 말이 가슴에 미어온다. 
 
‘다시 슬픔이 기쁨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독(毒)한 현실을 아는가? 자기 갱신(개혁)이 없는 갱신(개혁)은 빈 강정이요 쭉정이에 불과하다. 개혁의 외침과 눈물 속에 숨어있는 ‘자기 미화’(정당화)의 화장을 지우고 민낯으로 자신을 대면하고 하나님을 대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묵묵히 실력(연구)은 갖추지(하지) 않으면서도, 다니면서 자기는 개혁을 말하기 때문에 그 동안 불이익을 당했다, 승진에서 배제되었다고 외친다. ‘개혁’(갱신)이라는 우산에 자신을 가리고, 자기를 세탁(갱신?)하려는 이 지독한 현실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지금 야곱처럼 약속(축복)의 땅 바로 앞 ‘얍복(싸움)의 강가’(나룻가)에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두운 역사(흑역사)의 밤을 보낸다. 이 밤의 역사는 나의 어두운 역사인가? 그들의 어두운 역사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의 어두운 역사인가? 지금 총신의 이 밤의 시간이 저물녁이면 좋겠다. 캄캄한 칠흑 같은 밤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적폐의 ‘에서’를 지우기 위해 모의하며 밤을 지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야곱’(속이는 자/간사한 자)을 지우기 위한 싸움의 밤인가? ‘싸움’(압복)의 강가에서 지금 우리는 ‘싸움꾼’(야곱)으로 어떤 ‘싸움’(qba)을 하고 있는가? 흥미로운 점은 이들 단어들이 모두 ‘싸우다’(qba)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얍복(qBoy:)에서 야곱(bqo[]y:)은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한다(qba). 

 누구를 쳐(깨)부수는 싸움인가? 나의 형제 ‘에서’인가, 아니면 내 속에 있는 지독(至毒)한 그 놈 ‘야곱’인가? 이 지독한 싸움(개혁)의 밤에 주님이 야곱에게 찾아와 ‘너란 놈은 과연 어떤 놈이냐’(창 32:27, “너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처럼,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와/찾아와 ‘너는 누구냐’고, 너의 그 독한 현실(정체)을 묻는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버지를 속였던 그 때(창 27:18-19,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처럼, 우리는 장자 ‘에서’(얻고자 하는 장자권?)라고 대답할까? 아마도 지금 이 밤 싸움꾼 야곱의 머리에는 온통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온 ‘에서’ 뿐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에서를 이길/속일 것인가? 그런데 그날 밤 야곱은 철없든 그 때와는 달리 자신이 진정 “야곱(싸움꾼/속이는 자)이니이다”라고 대답한다(창 32:27). 나의 적 ‘에서’에서 나의 적 ‘야곱’으로의 전환이다. 진정한 적폐의 대상은, 진정한 개혁의 대상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에서’는 화해와 공존의 대상이지 적폐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 싸움의 장소였던 ‘압복’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브니엘’로 변하고 싸움꾼 ‘야곱’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스라엘’로 변화된다. 그리고 야곱의 인생은 이제 해가 돋는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하나님을 대면할 때에) 해가 돋았더라.”(창 32:31) 
 
총신의 긴 밤이 거두어지고/지나가고 이렇게 해가 돋는 총신이 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속이는 자’ 싸움꾼 야곱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 이스라엘의 삶을 꿈꾼다. ‘야곱’이라는 이 지독한 현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자의 미래(이스라엘)가 이러하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과거며 현재이고 미래이며 또한 총신의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이기도 하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 논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 주오.” 이것이 총신을 향한 내 노래며 기원이다.                 
   
 
2. 불편(不便)한 진실     
‘지독한 현실’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사실)’과 뒤엉켜 있다. 이 둘은 형제간이다. ‘지독한 현실’에 눈감은 자는 ‘불편한 진실’에 무지한 자이거나 우기는 자이다. 언젠가 개그 콘서트에서 한 출연자는 “내 개그는 웃기는 개그가 아니라, 우기는 개그다.”라고 했다. 뒤틀어서 개그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학내사태 역시도 ‘개혁’이 아니라 ‘개그’가 된 점이 있다. 이럴 때 ‘개혁(改革)’은 ‘개악(改惡)’이 되기도 한다. 자기 사람들은 승진이나 보직을 쉽게(?) 하면서 적폐라는 사람들의 승진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는다. 현실을 부인하고 진실을 왜곡할 뿐이다. 진실을 뒤틀면 불편한 진실이 된다. 분명 당시의 체제에 대해 외쳐야 할 소리가 있고, 개혁해야 할 점들이 있었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학교발전 혹은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은밀히 구조조종이 이루어지고 정치화되어갔다. 점점 권력화 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어느 집단이든 특히 학교공동체의 정치화는 권력화로 나아가고 이렇게 되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앞서 말한 ‘지독한 현실’이다. 이 지독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실을 왜곡하고 그 진실은 불편한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은 개혁의 대상이나 개혁의 주체에게도 똑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남이 하면 ‘적폐’이고, 자기가 하면 ‘적법’이다. 진실의 자기(합리)화이다.  
 
학내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학내사태(개혁)를 위하여 폭력을 정당화하고 세속 정치를 끌어들였다. 시위가 점점 과격화되면서 총장과 그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수업거부와 함께 입시까지도 무력화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총장결격사유로 정부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입시는 무력화되지 못했지만 정부가 개입하였고 고강도의 교육부 감사와 더불어 관선이사가 들어왔다. 법리도 없는 무리한 감사와 조치가 이루어졌다. 경우에 따라 정부(교과부)의 법령이나 규정과 반하는 내용으로 판단하고 행정조치를 내렸다. 전 체제 속에 있었던 교직원들은 30명 이상이나 무더기로 해임 혹은 정직과 같은 중징계 조치 등을 당하였다. 
 
그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신학)대학원 위원회의 결성을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이었다. 교과부도, 학내사태를 주도한 세력도 무리한 주장과 해석을 통해 이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중징계의 주요요인으로 삼았다. 지금 이 불편한 진실이 법원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해임당한 교수들이 법원으로부터 이 점이 무죄로 밝혀지고 있다. 신학대학원 위원회를 결성한 것이 총장을 비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은 신대원 입시를 무력화하려는 것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였다. 사실 필자는 그들의 합법적 시위나 데모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규정을 어긴다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특히 입시를 무력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반대하였고 이 일로 인해 신학대학원 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자기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무지막한 비난(적폐의 대상/부역자)과 린치(명예훼손의 악의적 성명서)를 당했다. 결국 입시는 진행되어졌고 2018학년 신입생은 유지되어 이들은 올 2월에 졸업하였다. 그 때 입시가 무력화되었다면 18학년도 신학생들을 역사에 없었을 것이고 학교의 재정(3년간 70-80억 정도)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신학대학원의 학사 전반을 교수회의가 아니라 신학대학원 위원회를 시행하여 운영하지 않는 것이 불법이고 이렇게 하지 않는 대학들이 교과부로부터 얼마 전 여러 대학들이 경고조치와 시정조치를 받았다. 우리 역시도 대학원위원회제도는 오래 전에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 ‘불편한 진실’은 학칙을 요리조리 변칙적으로 수정한다고 하여도 장차 더 논의되고 명백하게 시정조치 되어야 할 것이다. 
 
▲심상법 교수(총신대 명예교수)     ©뉴스파워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불편한 진실은 보다 신학적 문제로 ‘예배 시 성찬 방해 행위’ 문제와 개혁을 위한 ‘폭력의 정당화’ 문제이다. 특히 ‘예배 시 성찬 방해 행위’는 총회가 이 점을 반드시 규명해 주어야 한다. 제 개인으로는 성찬 집례자의 부도덕의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여겨지면, 개인적으로 수찬을 거부한다거나 예배당 밖에서 시위를 할 수는 있지만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예배(성찬)를 방해하는 행위는 반드시 제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심지어 대법원판례(https://m.cafe.daum.net/howillust/LGYt/3190?svc=cafeapi)마저도 인정하는 상식이다. 이 사건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일부 교수들은 그동안 개강예배 시에 자신들도 인정하고 참석하여 시행해 왔던 성찬예식을 해서는 안 되는데 했다는 논리 – 성찬시행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성찬예배 방해는 불법이 아니다 – 로 비호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총회는 반드시 신학적으로 규명하여서 교회를 질서가운데 유지하고 개혁-보수신학의 전통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혁(?)을 위한 폭력의 정당화’ 문제는 두고두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학습권을 주장하며 수업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선택권을 무력화시키고 비난하면서 학교집기들을 마음대로 옮겨 문을 봉쇄한 것은 ‘적법’이고 그 문을 부수어(?) 열고 수업하려는 행위는 ‘적폐’의 행위란다. 특히 전산실을 장악하고 거기에 신나통을 두고 점거하는(?) 행위는 교회나 신학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세상의 어떤 학내사태 관련 시위에서도 볼 수 없는 행동이다. ‘빠루’(폭력)를 비난하면서도 ‘컨테이너와 신나’(폭력)는 정당화되었다. 악인(?)을 잡기 위해서 불법적 폭력도 가능하단다. ‘김학의 사건’을 비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는 듯하다. 성경 어디에 있는 진리인가? 이 일로 그들의 개혁(혁명?)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불법적인 폭력적 행위를 거액의 교회헌금으로 지원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사태가 학교나 교회에서 일어난다면 총회 혹은 노회는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신학적 반성과 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역설적인 불편한 진실은 학내사태를 유발하게 만든 사람들의 정관개정을 반-총회적이라고 외치며 그 아래 보직을 한사람들을 면직해야 한다고 총회지시로 노회를 통해 줄기차게 겁박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총회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이 주장하는 반-총회적인 행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제 이들이 조사를 받고 제제를 받아야 하는가? 역사의 아이러니다.  
 
총신의 학내사태는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기술되고 논의돼야 할 것이다. 학내사태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학내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학교구성원의 한 사람, 특히 교수로서 커다란 회한과 아픔과 반성을 한다. 그러나 꼭 이런 방법으로 해야만 하였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학내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제공자로서, 학내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주도한 사람들로서 역사 앞에서 반성하고 또 반성하여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참 모습을 보고 내세운 기치아래 숨은 욕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다시 한 번 감긴 눈과 막힌 귀가 열리는 ‘에바다의 이적’을 간절히 소원한다. 총신의 ‘새로워진 일상’(New Normal)을 꿈꾼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시 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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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26 [17:2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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