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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9.18 [13:37]
광주・전남 첫 선교지 '목포 기독교근대역사관' 추진
목포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주 선교사 초청 간담회 가져
 
김철영

 

목포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주 선교사 초청 간담회가 지난 20일 오후 7시 목포제일교회당에서 목포 초기선교-복음의 능력을 주제로 진행됐다.

▲ 목포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주 선교사 초청 간담회가 지난 20일 오후 7시 목포제일교회당에서 “목포 초기선교-복음의 능력”을 주제로 진행됐다.양국주 선교사가 목포 선교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 뉴스파워

 

 목포는 광주전남에서 가장 먼저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곳이다.  또한 목포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으로 선교사역이 이루어졌다.

 

양국주 선교사는 1950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연세대 철학과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30여 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지역 구호사역을 위한 서빙더네이션을 설립해 대표로 활동하면서 서서평, 포사이드 선교사 기념재단인 서빙더피플대표로 활동하면서 미국 남장로교 호남선교사 연구활동을 해오고 있다.

 

양 선교사는 한국 기독교가 기독교의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한국사회에 과거의 선교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평양신학교를 설립한 자료와 사진을 수집하고 있는데, 사진만 6만점이 넘어 전시회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충남 금산부터 전라도 고흥까지 선교역사를 탐방해 정리하고 있다.”전라는 상민들, 낮고 천한 사람들이 기독교의 중심을 이루었다.”“1895년 동학을 중심으로 했던 무리들이 아버님이 세웠던 무리들이 원교회를 세웠다.”고 말했다.

 

또한 전라도는 소작농의 아픔 속에 기독교가 들어왔다.”“1861년부터 1865년까지 치러진 미국 버지니아에서 남북전쟁으로 장로교가 남과 북장로교회 나뉘었고, 감리교도 남과 북 감리교로 나뉘었다. 남과 북 장로교회의 정신과 전통이 다르다.”고 했다.

 

양 선교사는 “20년이 지난 후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북장로교가 언더우드 등 선교사를 먼저 파송하고 7년 후 남장로교에서 한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전라도에 온 선교사들은 장로교 신앙을 가진 스코틀랜드 쪽 신앙을 가진 선교사들이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18927명의 선교사가 오면서 전라도 선교가 시작된다.”“1894327일 레이놀드 선교사가 서울을 떠나 두 달간 전라도 일대를 탐방한다.”며 그 일기장을 공개했다.

 

또한 “1894년 목포를 방문해 이곳에 전라남도 선교본부를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1895년에 유진벨이 와서 1897년까지 나주선교를 하다가 목포로 나왔다."고 말했다.

 

양 선교사는 오웬 박사가 쓴 서신에 보면 오웬은 돈이 많았다. 버지니아 남부 끝에 그의 집이 있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땅이 1400만평이다. 담배와 목화를 재배했기 때문에기차 정거장과 가족들 교회가 있었다. 집의 터는 40만평에 16칸의 방이 있다. 문을 세 개를 지나야 안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웬의 아버지는 네 살 때 돌아가셨다. 그런 분이 우리 목포에, 한국사회에 왔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목포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주 선교사 초청 간담회가 지난 20일 오후 7시 목포제일교회당에서 “목포 초기선교-복음의 능력”을 주제로 진행됐다.양국주 선교사가 초기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 뉴스파워

 

특히 존드루라는 선교사의 재정을 다 지원했으며, 목포와 광주 선교비를 다 지원했다.”또한 목포, 광주, 군산에 목사 장로들을 초대해 자비로 10일간씩 사경회를 했다. 오웬 한 사람이 끼친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오웬은 유진벨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교회를 세웠으며, 워낙 똑똑하여 영국의 에딘버러까지 가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의과대학을 들어갔다. 존드루도 똑똑했다.”고 말했다.

 

▲ 목포제일교회     ©뉴스파워

그는 유진벨은 가족들에게 하루에도 편지를 7장 정도로 몇 통을 썼다.”제가 1700통의 편지를 갖고 있다.”고 공개했다.

 

또한 유진벨의 첫 번째 부인 로티가 아들을 낳다가 바로 죽었다. 그래서 낙심해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갔다가 2년 후 새장가를 들어 광주로 떠났다고 밝혔다.

 

양 선교사는, 1905년 오웬의 부인이 쓴 편지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 부부의 모든 고통은 유진벨 부부에 의해 비롯됐다고 쓰여 있다.”유진벨은 1915년 이기풍 목사에게 광주 금정교회를 물려줄 때까지 교회 하나만 했지만, 닥터(의사) 오웬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땅을 사서 교회를 개척하게 했다. 훌륭한 영성과 인품을 갖춘 오웬이 전라도에 온 것이 축복이라고 말했다.

 

양 선교사는 목포 양동교회의 설립연도가 1897년도로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유진벨이 쓴 편지에 1898515일에 목포에서 처음 예배를 드렸는데, 자기 집 한 칸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선교사는 한 지역에 가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했냐보다 예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전해 줬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호남 선교는 낮고 천한 기층민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 목포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주 선교사 초청 간담회가 지난 20일 오후 7시 목포제일교회당에서 “목포 초기선교-복음의 능력”을 주제로 진행됐다.     © 뉴스파워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는 충남 서천 마량진 한국최초 성경전래지기념관과 공주제일감리교회가 설립한 공주기독교박물관 등을 소개하면서 술포럼을 통한 철저한 역사적 사실 정리와 공론화 유물과 자료 수집 지역 교계의 호응 언론 홍보의 중요성 등을 설명했다. 또한 중앙에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송태후 장로(목포제일교회), 고삼수 장로(남부교회)를 비롯한 목포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포기독교교회협의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송태후 장로(목포제일)는 목포권근대기독교역사관은 생명의 역사를 복원하고 교회의 정체성 회복, 다음세대 계승의 통로, 문화관광산업 기여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 우측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목포권기독교근대역사관 건립 추진하고 있는 고삼수 장로, 송태후 장로 그리고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 뉴스파워

 

이들은 지난 429일 우리목포교회에서 제안 설명회를 열었으며, 지난 57일 에는 목회자들을 초청해 목포권근대기독교역사관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현재전남도청에 사단법인 설립을 신청한 상태다.

 

목포권근대기독교역사관은 전현 시장들의 공약이라고 밝혔다. 김종식 시장은 설명회에 참석해서 “100여 년 전 전국 6대 도시 중 하나였던 목포가 지정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특히 기독교의 선교활동은 교육, 의료, 복지, 사회혁신 운동을 주도했다.”며 기독교역사관 건립의 필요성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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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21 [22: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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