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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7.24 [13:41]
[김준곤 목사 논단] 인식의 문제와 특별계시(1)
51인 신앙동지회 제8호 <불기둥>(1952년 3월 22일) 기고문
 
김준곤

51인 신앙동지회는 정통을 사랑하는 신학생 중심의 모임으로 이들은 1948년 제34회 총회에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한다. 총회는 조선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조사하여 조선신학교의 직영을 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51인 신앙동지회가 남산 장로회신학교 개교시 편입학 하여 1개월 만인 1948년 7월 9일에 졸업을 했다. 이 51인 신앙동지회가 <불기둥>을 1947년 12월 9일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제8호 <불기둥>(1952년 3월 22일)에 김준곤 목사(1951년 목사안수 받음)의 "인식의 문제와 특별계시(Ⅰ)"의 글이 게재되었다. 이를 정리하여 게재한다.(
뉴스파워 주)

▲ 왼쪽 사진은 김준곤 전도사 가족(인정진 사모, 은희) 1948년 7월 9일 졸업식 기념     ©뉴스파워

 

 

현대 사상의 특색은 회의와 비판과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의 인민들은 사물의 사고에 있어서 소박한 지각과 관념에 나타난 사상들을 의심 없이 실제의 사실로 받았으나 인지가 발달하고 과학적 분석에 의한 비판적인 태도가 점고함에 따라 진리와 신의 인식문제에 있어서도 객관적 실체의 탐구로부터 지식의 주체인 인간심리와 이성과 감각을 추구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인간이성을 진리인식의 척도로 제시하여 그 극도의 치중으로 불란서 혁명은 이성의 여신을 성당의 하나님이 대치하였고 혹자들은 만질수 있고 볼 수 있는 감각의 대상으로서의 신의 제시를 요구하여 지각이란 무기를 가지고 자기의 경험의 성곽안에 틀어 박혀서 초자연적 계시종교인 기독교에 향해서 공격하여 왈 너희가 종교를 신앙하도록 만들려거든 먼저 자연과학이 사실의 증명함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정확명백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미신의 맹종자가 되지 않겠노라고 호언한다.

 

회의주의는 신학과 모든 지식의 가능을 부정하여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이어서 절대의 세계는 불가지이며 인간은 여하한 사물에 대해서든지 하등의 긍정도 부정도 할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이니 (흄의 인성론) 따라서 무엇에나 확실한 판정을 하는 일을 거부한다. 도덕적 선악에 대해서도 인간의 자연생래의 결점 장점 환경과 유전이 낳아준 성벽에서 기인된 행동들에 대해서 부도덕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물론자는 인간의식을 존재의 기초로 하여 존재는 의식의 산물이고 의식의 소멸과 함께 모든 것은 허공으로 돌아가고 급격히 소산한다고 하여 신의 존재까지도 인간의식이 그 존재성의 부여자로 자처하며 신은 의식의 산물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초자연적 계시에 의해서 성립되는 성경의 권위와 계시종교인 기독교의 진리의 인식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으니 이는 다 자율적인 인지의 치중과 감각의 치중한데 기인하고 둘째로는 극도의 회의주의에서 오는 반항이니 우리는 철학사상에 나타난 인식론을 고찰하여 계시종교의 타당성과 종교지식의 가능성과 계시와 이성과의 관계를 밝혀야 할 것이다.

 

1. 인식론과 실제론

 

인식론은 실제에 관한 지식의 타당성과 실제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론적 연구인 인식 그 자체를 반성비판하는 것이다.

 

지식이 타당한가하는 인식상의 문제와 무엇이 실제인가?하는 형이상학의 문제와는 직접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상 인식론은 신의 실제 문제와 종교진리의 계시문제에 관련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실제의 본질에 관한 견해는 직접 실제문제에 영향을 주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상 실제론은 인식론에 선행 하였던 것이다.

 

2. 실제에 관한 피할 수 없는 기본관념

 

1. (, ego)

 

우리는 자아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200여개의 골격의 구성과 500여 근육이 부착하고 중량 150()도에 6척단구에 56부와 사지백체에 수백억의 세포가 라고 할 수 있으나 나의 존재는 여하히 세밀한 생리학적 물리화학의 지식을 응용하여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견의 ” 나는 나다』『나는 무엇을 하고져 한다나는 무엇을 해야한다.』『나에게』『나를... 하는 만물과 구별되는 ”. 타와 절대로 별개의 존재인 자아의 존재를 우리는 부정하지 못한다.

 

데칼트는 역사와 오관으로부터 얻는 지식은 오전, 오류를 면할 수 없다고 하여 의심할뿐더러 수학상의 공리 같은 것도 혹시 악마가 나를 기만하여 이와같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것까지 의심하였다. 이와같이 모든 것을 의심하여 배제한 후 남아 있는 것으로 발견된 것은 내가 의심한다는 것 이것만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상 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존재라는 결론을 얻었다.

 

만일 이와같이 생각하는 것까지 혹시 악마의 기만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하면 이 기만되는 자가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고로 자아의 존재는 확실하다. 이것이 유명한 데칼트 철학의 명제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데칼트는 자아의 존재를 증명한 후에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2. (, metter)

 

의식을 가진 자아는 나 자신을 의식할 뿐아니라 나이외의 물질세계를 의식한다. 눈으로 보는 것 손에 만지우는 것을 감지하며 귀는 소리를 듣고 아의 주위에 광대무변의 자연의 영역이 있다. 과학은 즉 이 자연물질계의 연구인 것이다.

 

자연물질계는 신뢰할만하고 연구될만한 법칙과 질서를 가지고 변화하고 움직이며 생성되는 무엇이며 결코 맹목혼돈의 것이 아니니 과거나 현재 미래를 통하여 태양은 동에서 뜨고 반드시 물은 고지에서 저지로 향해서 하류하고 무거운 것은 낙하한다는 법칙이 의심할 수 없으니 이것이 과학과 지식성립의 조건이 된다. 이 물질과 법칙의 존재는 자아를 의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존재의 기본관념이다.

 

3. ()

 

자아와 물의 존재를 승인한 것으로서 존재의 전부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의식과 관념 가운데는 완전, 절대, 영원, 무한의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신신념이 있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 관념이며 선험적인 직관적 관념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자로서 이성이 부여되어 있다. 이 이성의 눈으로 관찰할 때에 순수개무에서 이 삼라만상의 현상세계가 발출한다함은 모든 불합리 중 가장 불합리한 것이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는데 이 물질세계와 질서가 법칙과 의장과 목적의 세계가 공무에서 출산되고 무가 유를 발생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의 존재는 무엇에서 기인된 것이고 시작한 때가 있다. 그리고 는 지각과 사고추리의 힘을 가진 심적존재자이니 의 존재의 원인 존재의 원천은 반드시 완전한 인격적 심적 존재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나니 데칼트는 신 존재의 확실한 것을 삼각형의 내각의 화()2직각과 비등하다는 수학적인 공리와 같이 자명확실한 것이라고 증명했다.

 

이상은 존-록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삼중 지식인바 아의식은 인격과 도덕 자유 영생 등의 관념을 낳고 물질지식은 과학을 낳고 신의 자연계시를 자아로 하여금 탐지케 하며 신지식은 종교, 신앙, 진선미의 세계를 탐지케 하였다.

 

3. 존재아 지식의 일원론적 시도

 

우리는 유일신을 믿는 일원론이지만 현실적 존재의 단일원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일부 극단의 일원론자는 아, , 신 삼자중 어느 하나만으로서 전 존재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그릇된 대표는 유물론과 범신론, 유아론 등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1. 유물론적 해석

 

철학사상 최초의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는 우주는 원자와 허공으로 성립되어 모든 존재를 원자 일원화로 설명하고 그 원자가 운동하는 데는 그 운동의 원인 또는 주동자로서 어떤 목적적 의장적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운동의 힘으로 전연 자연적 필연적 기계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원자는 운동이란 속성이 있어 이 원자의 힘으로 인식현상, 도덕현상, 정신작용, 심작용, 이성적 사유작용까지도 해석하려고 하였다.

 

홉브스는 지,,의의 심적과정이라도 이 물건의 운동에 환원할 수 있는 것이며 뇌수의 기능에 다름없다고 했다. 감각은 외물의 운동에 대한 감관의 반작용이며 심작용은 창조적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전연 수동적인 현상이다.

 

욕구한다든가 자유의사한다든가 하는 능동적 작용도 육체의 외부로부터 물질이 운동하여 올때 내부의 물질적 조건에 기하여 내부로부터 외부에 향하는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며 물질적 조건에 기하여 내부로부터 외부에 향하는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며 물질적 대상이 없는 의식이란 것은 아무 내용없는 공허한 것임으로 의식의 내용은 외적물로서 형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명제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라는 변증법적 모사론을 제창하였다. 즉 우리의 감각 내지 인식이란 것은 외계와 독립하여 있는 대상, 물체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생긴다는 경험론이 성립되었다. 모든 지식의 재료는 물질이며 그 지식의 경험의 기구는 감각이라 하였다. 그는 선험적인 생득관념을 부정하고 심리는 백지와 같이 수동적이요 아무런 창조적 작용이 없다고 한다. 즉 심리는 밀납처럼 인상되는 대로 그 모양과 내용이 변하는 것이요 무슨 동적자아가 있어서 관념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난점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거울이나 수화기와 같은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이 비교, 종합, 판단, 분합, 반성하는 기능적 활동을 가지고 외래의 인상에 대해서 심리가 무엇을 부가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물질세계에서 기원하지 dskg는 고등한 영적 신의식과 도덕적 지상명령(칸트가 말한 양심)이 있으니 지식의 시원을 물계 이상에 두어야 한다.

 

창작과 자유의욕은 피동적 지식이 아니고 능동적 자아인출적인 것이니 이것을 여하히 답변하는가

의식은 뇌수의 산물인가

 

유물론자는 두뇌의식설을 주장하여 정신작용은 항상 물질로 된 신경세포가 있는데서만 출현한다고 한다. 즉 의식은 우리의 육체중에도 다만 두뇌 중에서만 일어난다. 두뇌는 물질적 신경세포의 집합체이다. 이 물질적 기관에서 일어난 현상은 물질적 현상 혹은 그 영향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간이 소화에 필요한 액체를 산출하는 것처럼 두뇌는 의식을 분비한다. 비교해부학에 의하면 생리적 발달과 구조적 발달은 상호병진하는 것을 알지니 이는 두뇌와 지혜는 동물 진화에 있어서 서로 밀접히 관계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런고로 인의 두뇌가 중량이 많고 발달하였기 때문에 동물보다 우월하며 코끼리는 사람의 두뇌보다 크나 그 자체 체중에 비하면 사람의 두뇌보다 심히 작은 것이다.

 

그런고로 인류 문화의 발달은 뇌수 발달과 정비례할 것이다.이러한 두뇌와 정신과의 관계는 병리학적 고찰로서 더 명백해진다. 두뇌의 어떠한 일국부를 파손시키면 그 국부에 속한 감각과 운동은 불가능하여 진다. 뇌수는 수다한 구역으로 분동되어 심지어 일수지를 움직이는 것까지라도 일정한 육체적 국부가 있어 독립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영혼이라는 정신적 개체가 두뇌 안에 EK로 있을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있을 곳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는 난점이 있다.

 

톰손 교수는 뇌의 회백질이 많은 것이 반드시 위인이 아니라 오히려 회백질의 분량이 적은 자 중에 위인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인간의 육체의 모든 물질은 심장의 고동에 관한 () 작용에 의해서 7년만에는 전 육체의 구성분자가 갱신 된다는데 우리의 기억은 70년 전 심령의 죄악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가. 만일 육체 구성물질인 뇌수의 물질분자가 다 갱신 ㅤㄷㅚㅆ다면 그것이 포함된 심적 기억도 소멸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물적선(재화)은 이를 분배하면 분배 할수록 감소하는데 심적선(사랑, 기쁨, 지혜)은 타인과 분유하면 할수록 증식한다. 이것은 심적 기능에는 묵적 기능의 유추에 의해서 설명할 수 없는 특질이 있기 때문이다.

 

유물론자가 지력을 물질현상에 불과하다고 하면 유물론 자체의 근거를 위태케 한다. 지력이 물적이라고 하면 유물관을 짜낸 지식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니 지식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점에서 이미 정신작용의 존재를 시인한 것이다.

 

인간의 개체적인 영은 뇌수란 기계를 통해서 그 의식이 발현하는 것 뿐이다. 영혼의 의식적 발현을 위해서 뇌수는 필요하나 그것은 반드시 영원적 관계가 아니고 일정한 기간, 육신을 사용하는 기간에 한한다. 그것은 마치 태아가 자궁에 대한 관계 혹은 번데기와 고치()와의 관계, 전신수와 전신기와의 관계에 흡사하다. 악기가 파괴되어도 음악가의 음악은 없어진 것이 아닌 것 같이 뇌수는 없어져도 그 의식적 개체는 존속한다.

 

2. 자아를 존재와 지식의 근원으로 하는 설

 

18세기 영국 철학자 버크리는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여 산, , 초목 같은 경험의 대상은 실체가 아니고 지각의 내용 즉 관념 뿐이라고 하며 그의 유명한 명제 존재란 지각된다는 것이다를 말했다.

 

물질의 특성을 제1 2 특성으로 구별하면 제1 특성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 둘 이상의 물질이 동시에 동일 장소에 놓일 수 없는 것 분할 할수 있는 것, 2 특성은 질을 의미하는 것인데 음향 () 한난 경중, 연경등 제 성질이다.

 

그런데 이 성질의 제2 특성은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만 의식한다. 오관이 없으면 무색, 무향, 무음, 무미, 차도 덥도 않고 액체도 아니요 고체도 아니고 기체도 아니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성질은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공허만 남고 물질이란 의식적 생명의 존재 이상도 이하도 존재하지 않고 의식세계의 퇴각과 함께 소멸하는 것이다. 의식이 발달하면 물질이 창조되고 오관이 예민하면 물질세계가 확대된다. 그런고로 지식과 존재의 근원은 주관적 의식 뿐이고 객관적 존재를 부정한다. 이는 유아론적 일원철학이다.

그러나 이는 난관이 많다.

 

자아가 소멸한 후 타인의 의식에 물질의 의식이 있으니 자의식의 소멸과 함께 소멸된 존재라 할 수 없다.

자아를 유일존재로 하려면 자아는 무소불능자여야 할텐데 여의치 못한 장애가 있는 것은 타존재가 있는 것을 긍정해야 할 것이다.

 

심리가 있기 전에도 세상은 있었다.

심리 밖에 아무것도 없다면 심리는 아무것도 알 것이 없을 것이다.

 

3.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일원설

 

범신론의 왕 스피노자는 신을 능산적 자연, 세계를 소산적 자연이라고 하여 자연과 신의 차별을 철폐했다. 신은 절대 본질이고 모든 유한물은 그 방식 혹은 속성이다. 절대본질은 하나인데 그는 그 자신을 필연적으로 또는 완전하게 그 속성에게서 표현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신과 물질은 이 신의 속성이다. 이 우주는 변화도 없고 목적도 없고 자유행동이란 없다. 모두가 존재의 필연에 의해서 최선가능한 존재이다.

이상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요령인데

 

이는 우주내에 존재한 고악을 변상적인 무엇으로 보지 않고 필연타당한 것으로 보았다.

전체가 신이고 부분도 완전한 신이면 자아와 신은 본질상 동질이니 기도니 종교니 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신이 완전함 같이 모든 사물, 인간은 완전할 것이니 선인과 악인은 일반이며 개선의 필요도 진화의 여지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0은 당연한 것으로 되고 만다.

이는 신인의 인격성을 파괴하여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책임관념과 선택의 힘, 행동의 능력을 부정한다.

인간은 전능전지한 절대완전한 자와 동질일 것이니 계시나 지식의 부여를 바랄 필요가 없고 전지의 가능성을 가진 자이다.

 

4. 지식의 근원

 

1.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이상에 우리는 존재에 대한 3기본관념을 중심하여 그중 1관념으로하여금 전존재와 지식의 근원을 설명하려는 유물론적 해석과 유아론적 해석과 범신론적 해석을 검토하였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본체론적 해석에 의하여 기독교는 만유의 창조주로서의 유일신을 신앙하는 일원론에 입각하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연(물질과 법칙)과 인간 (의식)과 신의 3존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의 출처는 궁극적으로는 유일신으로부터 부여되었으나 직접적으로는 물질세계와 인간심리와 신에게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물은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면 그것을 재료로하여 인간심리는 그것을 판단 종합 비교 분합해서 관념을 만든다. 또는 신이 직접적으로 인간심리에 특별한 영적사실을 특수한 방법으로 계시할 때에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된다. 인간심의는 선천적으로 신이 부여한 사고의 형식이나 범주에 의해서 자연환경과 접촉하는 중에 능동적인 지산을 창조한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지식의 근원은 그것이 자연에서 왔거나 자기심리에서 왔거나 신에게서 직접계시된 것일 것이다. 즉 간접적으로는 신이 지식의 근원이요 직접적으로는 심의와 사물(자연)을 통해서 온 것이다.

 

여기에서 오인은 자연과 자기심의에서 직접 기인한 지식을 일반지식, 신으로부터 직접 인간에게 계시한 지식을 특수지식이라 칭하고 일반지식은 신이 자연, 역사, 양심 등을 통해서 인간심의에 계시하는 일반계시요, 신이 직접 영적 구원을 위하여 초자연적 방법으로 특수사건을 통해서 계시하되 그 계시를 해석할 특별힘의(성령에 의한 중생)를 부여하시는 사실을 특별계시라고 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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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6 [10:1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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