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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7.24 [13:41]
[성경통독 가이드]복음서 II: 마가복음 3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243
 
김정권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마가복음 9-12장 메모

 

 

<9 > 변화 산과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

 

[변화 산에서 천국체험을 예고하심] (9:1)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가 있다. 이는 변화 산에서 이루어질 천국 모형을 예언하신 것이다.

 

[변화 산에서 영광] (9:2-13; 17:1-13; 9:28-36)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사건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의 종이고 엘리야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보내주시겠다고 한 선지자이다(4:5). 이 예언은 세례 요한으로 이루어졌고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비로소 깨닫는다. 변화된 모습과 하늘로 음성이 있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임을 다시 천명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한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의 제안은 초막 3개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과 천국은 그런 형상(形象)이 아니다.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심] (9:14-29; 17:14-20; 9:37-43)

 

  이 아이는 간질로 인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 보내셨다. 왜 제자들은 못하였을까? 예수님은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 하셨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다.” 바울 사도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고 하였다(고전13:3). 믿음에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힘이 있다. 곧 믿음은 사랑으로 완성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언 2] (9:30-32; 17:22, 23; 9:43-45)

 

  예수님은 두 번째 자기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었다. 제자들은 매우 근심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메시아로 알고 그가 왕이 되면 한자리하고자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절망하지 않았을까? 끝까지 그들은 예수의 돌아가심과 부활에 대하여 믿을 수 없었다. 가롯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 가롯 유다와 같은 생각을 한 제자는 더 없었을까? 기대에 차 있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돌아가심이란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천국에서 큰 사람] (9:33-37; 18:1-5; 9:46-48)

 

  제자들의 질문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들의 마음에는 높은 자리에 관한 욕망이 있었다. 제자들의 메시아 관이 아직 세속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메시아왕국에서 계층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누가 더 섬기느냐? 스스로 낮아지는가? 이런 세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를 모델로 하여 높은 자를 설명하신다.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큰 자이다. 낮은 자를 영접하면 그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연 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낳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자에게 범죄 하게 하는 것은 큰 죄이다.

 

[복음 전파자, 천국을 사모하는 자의 행위] (9:38-50; 18:6-9; 9:49, 50; 17:1, 2)

 

  믿는 자를 대적하지 않고 주의 복음을 전한다면 그를 금할 이유는 없다. 어떤 방법이든 복음이 전파되면 가하다. 2. 지체가 범죄 했다면 그 지체가 없이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이런 각오가 없으면 아니 된다. 실제로 지체를 잘라 버린다는 것보다 영적으로 죄에 대한 예리한 양심을 가질 것을 이르신 것이다. 소자 즉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한 소자야말로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이다. 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아니 된다.

 

 

<10 > 예수님의 가르치심: 이혼, 영생, 높은 자, 죽으심과 부활예언

 

  * 10장은 3차 갈릴리 전도여행을 끝내실 때부터 예루살렘 입성까지의 기록이다(9:51-19:27 병행)

 

[이혼에 대하여] (10:1-12; 19:1-12)

 

  이혼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하나님 창조의 원리는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하나가 되므로 나누어져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 보내라 했으나 이는 당시 백성들이 완악하여 그리한 것이고 음행한 연고 없이 기타 이유로 이혼할 수 없음을 예수님은 밝히신다. 바리새인의 의도는 예수를 모함하고자 함이며 당시 세대는 패역 하여 성적 타락이 심한 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불순한 계획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안수와 축복](10:13-16; 19:13-15; 18:15-17)

 

  당시 인구 계수에서 어린아이들은 제외한 상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인격체로 인정하시고 아이들에게 안수하여 주셨다. 고대사회의 어린이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우상의 제물로 아이를 드린 몰록과 같은 잔학한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들을 성인과 같은 인격체로 인정하셨다.

 

[부자 청년의 영생 문제] (10:17-31; 19:16-30; 18:18-30)

 

  재물이 많은 청년이 지킨 율법과 예수의 율법은 개념의 차이가 있다. 부자 청년은 행위의 율법이요 주님은 사랑의 율법을 말씀하신다. 부자 청년이 모든 율법을 지켰다는 개념은 주님의 개념과 다르다. 주님의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9:18; 12:31)이며 부자청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수준의 행함을 행했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행함에 앞서서 그의 심령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해 있어야 하는 것이 선행조건이다. 설사 모든 재물을 팔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해도 청년의 심령에 사랑이 없으면 그는 율법을 지켰다 할 수 없다(고전13:3).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심령이라면 그는 물질적 부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유한 자이며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다. 재물에 대한 입장인데 소유자와 관리자로 나눌 수 있다. 재물을 내 소유라 생각하는 사람이 재물이 많은 사람이다. 재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나는 관리자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어도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 재물은 주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언 3] (10:32-34; 20:17-19; 18:31-34)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길에서 그 제자들에게 자기 죽음과 부활에 관해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첫 번째 예언(16:21-23)과 두 번째 예언(9:30-32; 17:22, 23)에 이어 세 번째 예언을 열두 제자에게 이르신 것이다.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는데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올라가는 예루살렘에서 이 일이 일어날 것이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잡히실 것이며 이방인의 손 즉 로마 총독과 그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것과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세 번에 걸쳐 주신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명료한 메시아 관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만찬에서 누가 높으냐? 라는 논쟁이 있었고(22:24-30), 겟세마네 동산에서 선생은 잡혀가는데 제자들은 모두 도피한다(26:56). 왜 그들은 도망갔을까? 아직 그들은 메시아왕국을 알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받을 때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메시아왕국과 높은 자리] (10:35-45; 20:20-28)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방문하였다.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 관계라 한다. 그렇다면 살로메는 예수의 이모이고 야고보와 요한은 이종사촌이 된다. 그렇다면 메시아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았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아들들을 주의 좌우편에 앉기를 청했다. 이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사두개 인들의 메시아 관과 다를 것이 없다. 더욱이 나머지 열 제자는 살로메의 이야기로 분을 내고 시기한다. 이 역시 메시아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신다. 후에 그들은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된다. 요한은 요한복음, 요한 1, 2, 3서 그리고 계시록의 저자가 된다. 영적으로 그들은 예수의 좌우에 선 것이다.

 

[맹인 바디매오의 고침] (10:46-52; 20:29-34; 18:35-43)

 

  마태는 여리고를 떠나시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두 맹인을 고치셨다고 기록한다. 마가는 바디매오란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병자의 고침의 바탕은 그들이 믿음을 갖는 것이다.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한다. 그런 믿음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이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이다.

 

 

<11 > 성전을 청결하시는 예수님

 

[영광의 예루살렘 입성] (11:1-11; 21:1-11; 19:28-40; 12:12-19)

 

  예수님이 고난주간을 당하여 베다니와 벳바게로 내려오셨다. 베다니에서 안식일을 지키신 주님은 다음날(일요일) 벳바게에 제자들을 보내시어 어린 나귀 새끼를 끌어오게 하셨다. 그리고 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었다. 이는 스가랴에 의해 예언된 바이다(9:9). 어린 나귀 새끼는 사람을 태울 준비가 전연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나귀는 곧바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메시아를 모시고 올라간다. 그렇다. 주님은 훈련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손에 잡히면 아주 잘 쓰임을 받게 된다. 주님은 훈련되지 않은 것을 쓰시는데 순종으로 큰 역사를 이루시게 한다.

 

  * 고난주간 첫째 날(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저주](11:12-14; 21:18-22)

 

  이 단락의 내용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이 월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무화과를 저주하셨고 그 마른 것은 다음날 화요일에 확인되었다. 이 두 날에 일어난 일을 마가는 1112-14절에 저주, 20-26절에 무화과나무 잎이 마른 것을 기술하고 있다.

 

  * 고난주간 둘째 날(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11:15-19; 21:12-17; 19:45-48; 2:13-22)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첫 번째로 행하신 일은 성전 정결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성전을 정결하신 일이 있다(2:12-25). 부패의 상징인 성전에서 타락 행위는 이스라엘 전체의 타락상을 잘 보여준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권위를 모르는 바 아니나 예수야말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성전 정결을 하신 이유는 예레미야의 메시지처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7:11).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따르며 호산나를 외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가?' 라고 힐문하는 것은 예수를 참람(僭濫)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시편 기자가 예언한 것(8:2)이다. 형식화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세속화된 삶에서 메시아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 고난주간 둘째 날(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무화과나무의 마름] (11:20-26; 21:20-22)

 

  이 단락의 내용을 마가는 1112-14(월요일)에서 저주의 결과로 1120-26절에서는 무화과나무 잎이 마른 것(화요일)을 기술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행하라고 하신다. 아마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형식주의에 빠진 자들 즉 열매는 없고 껍데기만 화려한 율법주의자들을 은유했을 것이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21:23-27; 20:1-8)

 

  고난주간 제3일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의 권위를 두고 말하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의 행위가 어떤 권위에서 나오는가? 묻고 예수는 반문과 예문을 통해 설명하신다. 말장난은 항상 올무로 예수님을 잡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지혜 있는 대답은 제사장들과 장로들로 더 논쟁할 수 없도록 하였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대제사장과 장로들과의 담론이다.

 

 

<12 > 계명 중 가장 큰 계명

 

[고난 주간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 (12:1-12: 21:33-46; 20:9-19)

 

  예수님은 고난주간 제3 일인 화요일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 포도원 비유이다. 그들이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르침인 줄 알고 예수를 잡고자 했다. 주인의 종을 죽이고 쫓아 보내고 주인의 아들을 죽인 자들이 결코 포도원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고자 한다. 그들은 회개보다는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게 된다. 악은 또 다른 악을 낳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의 강화이다.

 

[카이사르(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 (12:13-17: 22:15-22; 20:20-26)

 

  여기 등장인물은 바리새인, 헤롯 당원 등이다. 이들은 예수를 올무로 잡으려고 로마에 세금(인두세) 내는 문제를 질문한다. 지금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헬라(그리스) 등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인에게 로마 지배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세금을 내라 하면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니 백성의 감정과 장로의 유전에 어긋나는 것이고, 내지 말라 하면 로마에 대항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로마 화폐를 쓰고 있으므로 실제로 그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이용하시어 카이사르(Caesar)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성전 세)은 하나님에게드리라고 답하심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셨다. 로마 화폐 중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일당에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로마 시대 화폐는 금화나 은화 등으로 만들며 황제의 상을 부조(浮彫)한다. 예수는 제정 로마 초기 카이사 상이 부조된 동전 데나리온을 가져오게 하여 명쾌하게 설명하셨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과 바리세인의 담론이다.

  * 헤롯당(Herodians) 헤롯 왕가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정치 집단은 아니나 종교적 위치를 가졌다. 예수님 가르침에 대항 할 때는 바리세파와 뜻을 같이하였다(3:6; 12:13; 22:16)

 

[부활 논쟁](12:18-27: 22:23-33; 20:27-40)

 

  사두개인들이 부활 후의 인간 관계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스라엘은 계대결혼제도(繼代結婚制度)가 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그 동생이 형수를 취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한 여인이 7형제에게 시집갔다면 부활 후의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차원(次元)이란 말이 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차원이 다르다. 천국에서 세상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 앞에 평등한 존재들이다. 참고로 사두개인은 문서로 된 율법서 외에는 믿지 않기 때문에 장로의 유전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았다. 따라서 부활을 믿지 않는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과 사두개인의 담론이다.

 

[가장 큰 계명] (12:28-34: 22:34-40; 10:25-28)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다. 이 진리는 모세의 때부터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형식주의, 율법주의 등으로 율법조항을 중심으로 지키려 하고 장로의 유전을 만들어서 생활을 얽매어 놓았다. 예수님은 사랑이 선지자와 율법의 대강령이라 이르신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과 바리세인의 담론이다.

 

 

[그리스도의 존재] (12:35-37: 22:41-46; 20;41-44)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한 논쟁을 전개하시어 바리세인들을 잠잠하게 하시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직능 즉 기름 부어 세움을 받은 왕권, 제사장 권, 선지자 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바리세인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질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각하신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했지만, 시편에서 다윗이 그를 주로 불렀으니 어찌 그 자손이 되겠는가? 반문한다. 그리스도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었으나 영적으로는 성결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의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과 바리세인의 담론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모습과 그들의 행태; 외식(外飾)] (12:38-40: 23:1-7; 20:45-47)

 

  바리새인과 서기관(율법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1. 행함이 없는 말만 하는 자들이다. 2.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끝도 움직이지 않는 자이다. 3. 남에게 보이려고 성경 구절을 옷에 붙이고 다니는 자들이다. 4. 잔치에서 윗자리에 앉는다. 5.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다. 6.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자들이다. 7.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다. 이상 7가지 일들이 실재와 일치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모두가 허구이다. 그래서 외식하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타락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惹起) 한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의 강화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12:41-44: 21:1-4)

 

  헌금은 양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헌금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는 척도이다. 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측정한다. 그 양은 그가 소유한 것에 비해 얼마를 들였는가? 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드려도 그 비율이 낮다면 조금 드린 것이고, 가난한 자가 적게 드려도 그 비율이 높으면 많이 드린 것이다. 이 과부는 가진 것의 전체를 드렸으니 많이 드린 것이다.

 

  * 고난주간 셋째 날(화요일)에 있었던 일 중 예수님의 강화이다.

  * 고드란트(kodrantes, 또는 호리라고도 함)는 로마 화폐이며 앗사리온의 1/4이다(5:26). 렙돈(lepton)은 희랍(헬라) 화폐이며 고드란트의 1/2이다(12:42; 12:59).

 

 



*김정권 시인(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있으며 대한민국 황조근조 훈장을 수훈했다.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특수교육 관련 다수의 저작물과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6), 통독성경: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0-2018) CD(약 11,500페이지), 시집 『길을 모르는 사람의 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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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2 [16: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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