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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12.02 [20:29]
[김준곤 설교] 민족 복음화의 절대 가능성과 민족 부활의 비전을 갖자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84세계기도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뉴스파워

에스겔 37:1~23

BC 597년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탈취하고, 유대와 이스라엘의 성읍들은 초토화되었으며, 아름다운 처녀들과 여호야김을 포함한 귀족들과 상부층 시민들은 포로가 되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포수(捕囚)의 길을 석 달 동안 걸려서 짐승처럼 끌려가서는 바벨론 그발 강가 포로 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며 예언자인 에스겔은 그 포로 중에 끼었던 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비애와 고독과 수난과 애국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존경하고 그에게 감화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는 포로촌에 사는 동안 예언자로 부름을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야김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5일에 내가 바벨론 그발 강가 포로 마을에 있는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이 이상으로 내게 보이시며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습니다.’(겔 1:1∼3의 역) 이스라엘 민족사의 바벨론 포수 생활은 영원을 두고 울어도 못다 울 치욕과 애통과 절망의 시기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슬프다 이 성이여’(애 1: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곡을 하겠다.’(렘 9:1∼1)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단장의 포수의 애가(시 137편)를 지어 자손만대에 부르게 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몬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에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여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몬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스라엘을 황폐케 한 바벨론 제국은 세계의 통치자로 엄존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분단된 남북의 비극 속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사멸해 버렸고, 그들의 가슴마다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끊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겔 37:11)고 말하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이고 말씀을 주어 보고 들은 것을 이스라엘에게 고하라(겔 40: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포로 된 민족에게 소망과 민족 부활의 비전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단된 두 나라를 통일시키고 한 마음, 새 영, 새 마음, 새 도(道)와 새 주(主)를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곧 주의 마음, 주의 영이며, 주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하였습니다(겔 37:16∼22).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그 성읍은 영원히 주께서 임재하시고 현존하시고 통치하는 곳이 될 것이라(겔 48:35)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37장의 해골 떼의 부활이라 하겠습니다. 에스겔을 성령 의 인도로 신비롭고 황홀한 상태에서 바짝 마른 해골 떼가 가득 찬 골짜기로 다니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이 입히는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대로 에스겔이 대언했더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앉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고……·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니 사방에서 생기가 불어와 사망을 당한 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이 살아나 일어나고’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는 날을 약속하십니다(겔 37:13). 이 비전은 마른 뼈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 다시 살아나는 약속으로써 세 가지 부활을 뜻합니다.

 
첫째는 영적, 인격적 중생이고, 둘째는 주님 재림 시 육체 부활이며, 셋째는 민족의 정신적, 영적 그리고 물질적 부활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뜻 깊은 시간은 현실이며 그 실효는 실존적입니다. 이 비전이 우리 민족의 현 상황에 실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비전은 불모의 신화나 상상에 불과한 것 입니다.

우리는 사실에 진실 되고 솔직하고 순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처럼 진리와 진실과 사실과 순수함을 생명처럼 여기는 종교는 없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건을 피로 증거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말한 것, 그리고 사도들이 증거 하는 역사상 최대 최고급 인격들이 죽음과 피로 증거한 최대의 증언은 그리스도를 위한 증언이었습니다.

그가 그 자신의 말대로 또는 그 증인들의 말대로 하나님 자신이며 창조주이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고 그 안에서 존립하며(골 1: 14∼17), 그가 우리의 생명의 떡이고 생수이며 빛이며, 그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그가 다시 오시어 우리를 부활시키고 기도를 들으시며 모든 것에 모든 것인 생(生)의 주(主)요, 신(神)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애매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든가 허위이든가, 100% 순도를 가지든가 공무(空無) 이든가, 내가 ‘나’든가 ‘나’가 아니든가, 내 어머니가 어머니이든가 아니든가, 유든가 무든가, 양자택일 이외의 제3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이 신앙이고, 사실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것이 미신이며, 사실을 사실대로 안 믿는 것은 불신이 됩니다. 사실보다 순수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수락하는 것보다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는 없습니다.

니체는 일찍이 말했습니다. “일요일, 저 많은 교회들의 종소리를 듣는다. 모두가 1900년 전 로마의 한 사형수 예수의 망언 때문이다. 그가 신이라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증거는 있다. 증인도 있다. 사상 어느 사건의 증언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증인들만큼 많은 피와 지성과 목숨을 바친 일이 있는가? 내 가슴 속에도 한 생명 하나의 증인을 위해 역사의 법정에 설 증거와 의지가 불타고 있다.”

 
우리는 반 미친 사람들처럼 민족 기독화 운동을 별이고 있습니다. 어느 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은 9명이 자전거를 타고 수업 시간만 끝나면 그 군내 각 면 자연 부락으로 전도를 나갑니다. 한 군을 송두리째 주께 바치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 섬은 기독화 운동이 들어가자 순식간에 복음의 천둥이 울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둑이 터져 홍수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바람이 불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들 미친놈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실을 사실로 믿는다면 미치지 않는 것 이 비정상입니다. 그 주님 이 나를 너무도 너무도 사랑하여 주님과 나와 바꿨습니다. 내 죄는 그의 것이 되고, 그의 의는 나의 의가 되고, 내가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해 그는 인간 아들이 되고, 그가 내게서 죽음을 빼앗아 가고 자기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 생명, 나의 주소는 영원히 영원히 그 주님 안에 있습니다.

 
내 조국, 내 민족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아무리 큰 믿음도 너무 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고, 바울도, 모세도 자신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짐을 받는 한이 있어도 자기 민족의 구원을 빌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전례 없는 복음의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군대에는 금년 내로 40%를 기독화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한 교사는 자기 반 아동 60명 중 59명을 결신시켰습니다. 100명 전도하면 40명은 결신합니다. 연필 한 자루, 편지 한 장을 보내면 두메 마을 한 가족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대통령도, 국회 의장도, 도지사도, 대학 총장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회를 열면 와서 아멘을 합니다. 이 복음의 황금 시기에 전도하지 않으면 영혼의 고인이 됩니다.

청년이여, 조국의 학생들이여, 비전을 가집시다. 예수 혁명을 합시다. 통일은 봄처럼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의 날이 오면 논두렁 마다 밭고랑마다 김매고 논매는 남녀의 입에서 찬송가와 기도가 메아리치게 하고, 사랑방마다 투전과 막걸리 대신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하는 원시 교회가 되게 하며, 두 남녀가 데이트를 하게 되면 주님의 이야기로 꽃피게 하고, 주님의 허락 없이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주님의 뜻을 물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의 허락 없이 만드는 상품은 없고, 운영되는 사업도 없고, 기도 없는 학교 강의도 없으며, 국가 예산의 십일조는 외국 선교비로 쓸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내 나라 코리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새 하늘, 새 땅, 새 민족이 사상 어느 곳에도 전례 없는 한 기독교 나라가 일본도 미국도 중국도 구라파의 어느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남북은 통일되고 하나님은 5대양 고기떼를 한국 해안에 몰아오고, 석유도 우라늄도 금과 은도 어디선가 하나님이 정한 시기에 터져 나게 할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에 세상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 은 한 나라를 택하여 상징적인 기독교 국가를 이룩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끝났다고 어느 성경에 기록되었습니까 ? 한국의 사도행전, 한국의 창세기를 씁시다. 그리고 그날은 그리 멀지 않아 올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열 번은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 도처에 복음의 불덩어리들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성령의 불은 도처에 타고 있습니다. 민족 복음화를 이렇게 믿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냐고, 그리고 이 비전은 너무 크냐고, 내가 아무리 주님께 묻고 물어 봐도 주님은 그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 이 이하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 이 운동을 방해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민족의 적 입니다.

타고르의 시가 기억이 납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는 등촉의 나라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기독교는 부활입니다. 영원히 날마다 새로워지는 종교입니다. 그 종점은 없습니다. 전(前) 기독교사는 서곡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무한한 새로움의 잠재적 가능성의 문이 한국에 열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도행전, 한국의 창세기, 한국의 묵시록의 페이지가 엮어지고 있습니다. 10만의 절대 헌신자가, 공산당 스파이보다도, 일본 정신 부활을 위해 할복한 일본 작가 미시마 유끼오 보다도, 높고 강한 헌신을 합시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1년 4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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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17 [07:3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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