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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김의환 총장] "지성 복음화와 민족 복음화에 가장 큰 교회사적 업적을 남기신 분"
김의환 총장-칼빈대학교 총장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09/29 [14:11]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김의환 목사     ©뉴스파워


김준곤 목사님은 현존하는 한국 목사님 중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명이십니다. 그분과 접촉하면 신앙의 향기를 맡게 되고 그를 만나면 선교의 전략을 배우게 됩니다. 평생을 지성 전도와 민족 복음화의 밭을 일궈 오셨는데도 아직도 지칠 줄 모르십니다.

 

지극히 감성적이면서 굽힐 줄 모르는 의지력이 있고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독수리처럼 멀리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영적인 도전을 주었으며 그의 애절한 호소는 영혼의 금선을 울리며 저의 속사람을 흔들고도 남았습니다.

 

저는 그의 설교를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1968년 총신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새한교회를 개척하고 대학생과 청년들을 상대하여 신앙강좌를 개최하였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가 종로 5가 근처에 있을 때 대학생 전도를 겨냥하고 종로 5가에 새한교회를 개척하고 매년 2차 신앙강좌를 개최하곤 하였습니다. 대학생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강사님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 김준곤 목사님의 간증 섞인 메시지를 들으며 저와 청중이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 엑스플로 '74대회 당시 메시지 전하는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그렇게 처음 만난 뒤 저는 그를 믿음의 선배로, 영적 멘토로 받아들이고 가까이하였습니다. 1974년도 엑스플로'74행사 때도 그분은 저를 신학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동역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CCC 여름 집회의 주 강사로 두 차례나 청하여 세워 주셨습니다.

 

1975년 제 신앙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 갑자기 도미하게 될 때 김준곤 목사님께만 작별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저와 가족을 위해 드리신 간절한 그의 기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을 생각하면 그의 남다른 지도자로서 자질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그는 비저너리입니다. 숭일고등학교 교장으로서 편안한 교육자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으나 대학생 전도와 민족 복음화의 비전을 안고 한평생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헌신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박형룡 박사님이 신학 교육에 가장 크신 교회사적 업적을 남기셨다면 김준곤 목사님은 지성 복음화 및 민족 복음화에 가장 큰 교회사적 업적을 남기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LA 한인 교회 주일 강단에 빌 브라잇 국제 CCC 총재를 초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는 서슴없이 김준곤 목사라 하였습니다. 그때 저도 동감한다고 맞장구를 친 적이 있습니다.

 

둘째로 그는 상흔을 지닌 전도자이십니다. 그는 6 · 25 때 공산군에게 눈앞에서 사모님이 총살당하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출가한 딸이 먼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상처가 있었기에 그의 메시지엔 감성적인 애절함이 함께합니다.

 

이런 인생의 슬픔을 딛고 역경을 헤치며 승리한 그의 인간 승리를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칼뱅주의자입니다. 196220명의 간사를 데리고 불광동 수양관에서 밤을 새우며 회개 기도하면서 빈손 들고 출발한, 작은 대학생 운동이 오늘날 한국의 크리스천 영향력으로 발전하기까지 수없는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이끌어 오선 과정에서 때로는 전도비가 없는 거지 전도 여행도 시행했으며, 밖으로 어용이라는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상흔을 지니고 묵묵히 한평생 외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이제 그가 항상 즐겨 인용하신 성구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33:12)라고 하신 말씀대로 민족 복음화의 대업을 계속 이루어가는 여생이 되시기를 빕니다.

 

19331119일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에서 태어난 김의환 목사는 1957년 고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1963년 웨스트민스터 신대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1966년 템플대학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총신대에서 교회사를 가르쳤고, 1982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국제 신학대 학장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총신대 총장을,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칼빈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고신대학교를 거친 후 칼빈대학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템플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총장과 성복중앙교회 담임을 역임한 후, 현재 칼빈대학교 총장으로 있다. 김의환 목사는 총신대 총장과 칼빈대 총장을 역임한 후에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할 만큼 열정적인 사역을 해왔다.

 

김의환 목사는 2010510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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