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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조용기 목사] 민족과 세계를 위한 사랑의 밀알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09/04 [14:45]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뉴스파워

 

우리가 사도바울과 같이 담대히 고백할 수 있는 사명자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딤후 4:7, 8).

 

김준곤 목사님은 그러한 예수님을 향한 변함없는 처음 사랑의 열정을 품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주의 종이십니다. 목사님은 주께서 주신 비전인 이 나라 이 민족의 복음화와 복음으로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직 선한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지난 9월 내한한 한국대학생선교회 간사훈련원 초대 책임자셨던 나일스 베커 목사는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로 김준곤 목사님을 꼽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 지도자들 가운데 김준곤 목사님께 사랑의 빛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1969년 국제대학생선교회 여름수련회를 통해 김준곤 목사님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후 목사님은 제 목회 사역 가운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 주셨고 저 역시 김 목사님의 열정과 헌신에 늘 존경 어린 마음을 간직해 왔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모든 목회자에게 참으로 본이 되시며 도전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복음 증거와 세계 선교를 향한 열정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청년이시며, 단호함과 카리스마로 이 시대 이 민족을 위해 늘 기도하고 예수 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21세기의 격변하는 세계사 한복판에서 한국 교회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수님의 증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언제나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예수 전하는 일 외에는 다른 살길이 없으니 예수 전도에 미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 사명과 열정에 불타서 김 목사님은 일찍이 1958CCC를 창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화 운동과 영적 부흥의 불을 세계 각국으로 번지게 하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절, 청년들의 가슴에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회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될 꿈과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만난 청년들을 통해 이 땅에 예수 혁명이 일어나기를 위해 몸부림치셨습니다. 그리하여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들고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한 자원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그 결과 1974CCC에서 개최한 한국 교회 역사상 가장 큰 집회인 엑스 플로 '74 대회는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자라는 구호대로 민족 복음화를 목표로 한 뜨거운 기도회였습니다. 당시 기도의 열기로 수많은 젊은이를 포함하여 100만 명 이상이 결신하였으며, 그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시던 김준곤 목사님의 모습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는 들어온 지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세계적인 교회 성장을 이루었지만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 교리와 신학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는 곧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늘 한국 교회가 전도와 사랑을 실천하고 화합과 일치를 이루어 민족의 복음화로 제2의 이스라엘, 예수 믿는 민족이 될 것을 염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복음의 저장탱크가 아닌 파이프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교회는 민족의 죄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회개하고 각성하여 연합하고 일치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이를 통한 민족 복음화를 부르짖지만 정작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준곤 목사님은 이 민족과 강산 위에 하나님의 복과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진정한 사랑의 밀알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위해 앞장서셨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하던 1960년대 중반에 김 목사님은 국회조찬기도회와 국가조찬기도회를 시작하셨고, 1970년 기독교방송을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하셨습니다. 1983815일에는 한국 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교단이 5일간 여의도광장 한 자리에 모여 한국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민족통일과 평화, 한국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새롭게 하려고 부르짖었습니다.

 

1986년에는 학원 복음화를 위해 저와 이영덕 교수님과 함께 제1회 전국 대학 교수 선교대회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함께하시며 회개 운동과 사랑의 실천 운동을 대학가와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를 다지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1995년에는 식량 운동을 통해 한국 교회에서 최초로 북한 동포 돕기를 시작하시며 옷과 옥수수 등을 북한지역으로 보내셨습니다. 지금도 김 목사님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맡아 북한 돕기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 이외에도 김 목사님은 기독교 동서화합운동본부와 월드컵 기독시민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최대 현안인 지역감정 해소와 계층, 여야, 노사 등 모든 영역의 갈등과 대립을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과 민족 사랑의 열정으로 모든 현실적인 사회 참여와 헌신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시며 몸을 아끼지 않으시는 목사님은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목사님은 크고 작은 일들 가운데 제 곁에서 언제나 큰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국민일보 창간 때와 지난 기독당 창당 때도 목사님은 변함없이 뜻을 함께하시며 격려하시던 일은 참으로 잊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테러의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2004920일 전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세계평화를 위한 합심 기도에서 김준곤 목사님은 십자가의 정신은 곧 화목이며 기독교인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류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니 복음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도록 함께 기도하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처럼 평생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한국 교회 부흥과 민족 복음화, 선교를 통한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시는 김준곤 목사님, 일평생 복음 증거를 위해 목회자, 대학생,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주시고 본이 되신 목사님, 민족에 대한 애끓는 사랑으로 민족의 복음회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진정한 애국자 김준곤 목사님!

 

평생을 예수 혁명을 위해 헌신하신 목사님의 정선으로 인해 한국 교회와 민족이 주님께로 쉼 없이 더 가까이 나가게 될 것을 굳게 믿고 기대합니다.

 

용기 목사는 1936년 울산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부친 조두천 씨와 모친 김복선 여사의 5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조용기 목사는 1956년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인 최자실 목사를 만났고,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서 그해 518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시초인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조용기 목사는 2008년까지 1966년부터 1978년까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총회장을 역임했다. 2008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로 추대됐다. 이후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조용기 목사는 굿피플, 사랑과 행복나눔재단, 사회복지법인 엘림복지회 등을 설립했고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 평양 조용기 전문 심장병원 건립 운동 등을 전개했다. 또 국민일보, 한세대, 순복음영산신학원, 미국 베데스다대, 국민일보, 굿티비 기독교복음방송 등을 설립했다.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국제교회 성장연구원 등을 통해 성령 운동도 주도했다.

 

조용기 목사는 2021914일 별세했다. 향년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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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04 [14:45]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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