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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이만신 목사] “100년을 내다 본 안목"
이만신 목사- 중앙성결교회 원로,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09/01 [10:39]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 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고 이만신 목사   ©뉴스파워 



김준곤 목사님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하며 인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목사님 중에 가장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참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 목사님은 저와 같은 면에서 태어났는데 김준곤 목사님은 전남 신안군 지도읍 봉리에서 태어나셨고, 저는 같은 면 증동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애정이 갑니다. 김준곤 목사님이 사시던 고향에는 그 지역 공산당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6 · 25 사변 당시 같은 지역 사람들을 많이 학살했는데 특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무 죄도 없이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잡아다가 묶어서 바다에 넣곤 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아내도 죽임을 당하고 목사님만 구사일생으로 삶을 얻은 것입니다.

 

후일에 수복이 되어서 공비들을 처형하려 할 때 김 목사님이 나서서 그들을 살려 주도록 도왔는데, 그들이 예수를 믿었고 그들 중에는 장로까지 된 분도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실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사도이십니다.

 

김 목사님은 고난을 많이 받으신 분이십니다. 일제 강점기에 묻지 말라 갑자생이란 말이 있었는데 갑자생부터 일제의 징병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고생 끝에 그곳에서 도망을 쳐서 어느 목사님 댁에 숨어서 지내며 그 서재에 있는 많은 도서를 다 독파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화위복이었습니다.

 

그러나 6 · 25의 고난은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의 역경이었기에 그는 어려운 사람에 대해 긍휼히 여김과 동정심, 눈물이 있는 분입니다.

 

목사님은 지성이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물론 조선대학교 문학부와 미국의 풀러 신학교 등에서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명예 문학박사, 그리고 명예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을만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영어에도 능통하셔서 세계적인 인물들과 교제하시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CCC 회관을 지을 때도 돈 한 푼 없이 세계적인 재벌들을 찾아다니면서 모금하여 CCC 회관을 지으셨습니다. 


기도의 사람

 

그의 신앙은 기도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보다 앞세우지 말라 모든 일에 기도를 앞세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장기 금식기도, 혹은 단식기도, 절식 기도 등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몸은 늘 쇠약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훈련받은 대학생선교회 회원들도 기도훈련을 시키시는 줄 압니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기도 없이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 목사님은 영성이 강하십니다. 지성적인 분들이 영성이 약하다고 말하는 데 목사님이 주최하시는 위성 중계 집회에서 지성적인 목사님들이 강사가 되어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집회의 강사였습니다. 저와는 허물이 없어 그러시는지 ‘‘이 목사님, 어쩐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일 저녁엔 이 목사님 순서인데 지성적으로만 하시지 말고 성령의 불을 일으켜 달라고 당부하시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참으로 성령의 사람이십니다.

 

위대한 전도자

 

보통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대형집회로부터 일 대 일 전도까지 놀라운 전도자이십니다. 여의도광장에서 있었던 엑스플로'74전도 대회는 120만 명이 모였었습니다. 매일 저녁 놀라운 인파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도에 있었던 '80세계 복음화 대성회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대형집회였습니다. 그리고 춘천 성시화 집회 역시 대형집회였습니다. 그리고 위성 집회 역시 세계적인 집회였습니다. 또 개인에게 전도하는 것도, 4영리라는 작은 책자를 가지고 전도하는 것도 참으로 훌륭한 전도 방법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비전이 있는 목사님이십니다. 한국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믿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국가조찬기도회가 벌써 37회째인데 이 기도회를 통해 삼부 요인이 참석하여 복음을 듣게 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접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 그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엘리트들이 복음을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대학생선교회를 창설하셨다고 봅니다.

 

수만 명의 대학생 출신들이 CCC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 변화를 받고 김 목사님 신앙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다 대형교회를 이루고 또 교계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뿐만 아니고 장로님들 중에도 훌륭한 장로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그들이 이 나라를 주도해 나가리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 년을 내다보느냐? 그러면 화초를 심어라. 10년을 내다보느냐? 나무를 심어라. 그러나 100년을 내다보느냐? 그러면 인재를 키우라.”라고 말했다는데 김 목사님은 진설로 수많은 인재를 키워냈고 지금도 키우고 계십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한국기독교 120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랑할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요, 신앙의 사람, 그리고 티 없이 깨끗한 분이십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진실로 우리 시대의 성자이십니다.

 

이만신 목사는 1929년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에서 출생했다. 1935년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개척한 증동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서울신학대 신학과와 숭실대, 건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대원 목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1955년 신안군 압해면 중앙성결교회 전도사로 시작해, 1974년 서울 중앙성결교회에 부임한 후 26년간 담임으로 목회하다가 20003월 원로 목사로 은퇴했다. 이만신 목사는 한국 교회 대표적인 부흥사로 불린다. 1963년 삼각산에서 은혜를 체험한 그는 한국의 무디로 불리는 부흥사 이성봉 목사의 뒤를 이어 1970년대 성결교회 부흥사회를 조직해 성결 복음을 통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이만신 목사는 교단 총회장을 비롯해 유지재단 이사장, 서울신대 이사장, 해외선교위원장, 국내선교위원장, 서울 신학대학교 이사장 등 교단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 협의회 의장, 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회장, 세계 한민족복음화협의회 총재, 광복 50주년 기념 평화통일 희년 대회 총재, 대통령 통일 고문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이만신 목사는 향년 86세로 2015217일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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