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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신복윤 목사] 형님 같은 김준곤 목사
신복윤 목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뉴스파워   기사입력  2022/07/12 [10:08]

한국CCC 62년의 역사는 고 김준곤 목사(1925.3.28-2009.9.29)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958년 한국CCC 설립하고 대학생선교를 못자리판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김준곤 목사의 팔순을 기념해 지난 2005년에 제자, 지인, 국내외 동역자 110여 명으로부터 글을 받아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 라는 기념문집을 만들었다. 기념문집에 원고를 주셨던 분들 중 여러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역사적인 글들을 뉴스파워에 다시 올린다. (편집자 주)

▲ 김준곤 목사 1주기 예배에사 추모사를 전하는 신복윤 목사(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뉴스파워 

 

김준곤 목사님과의 우정의 시작은 조선신학교(현 한선대학교) 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50년 가까운, 그야말로 친구치고는 꽤 오래된 친구입니다. 같은 방은 아니었지만 기숙사에서 같이 자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신학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 둘은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겠다는 거룩하면서도 웅대한 꿈을 갖게 된 것도 같습니다. 물론 전도자의 길은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길이지만, 때로는 힘들고 험난하고, 때로는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하는 고난의 여정이라는 인식도 같이 하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였으며, 학과 수행 능력도 뛰어나 늘 우등생의 서열에 끼여 있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신학교 졸업 후 목회의 길에 들어섰고, 한때는 잠시 중·고등학교의 교목과 교장의 중책을 맡아 일하시다가 미국 유학을 거쳐 오늘까지 수십 년 동안 CCC 운동의 선구자로 다른 이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에게는 복음에 대한 정열과 캠퍼스 선교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캠퍼스는 복음의 황금어장이었으며, 내일의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캠퍼스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꿈은 들어 맞았고 또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구원받았고, 그가 길러낸 목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교사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수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캠퍼스 사역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젊은 지성들이 성경을 맛보고 그들의 인생관이 변화되는 엄청난 결실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목사님은 민족의 미래를 캠퍼스에서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김 목사님과 저는 신학교를 입학해 만나면서 즉시 가까워지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의 따뜻하고 사색적인 모습에 끌린 것 같습니다. 김 목사님은 저보다 연상이었지만 저를 신 형이라 불렀고, 저도 김 목사님을 김 형이라 불렀습니다. 김 목사님은 저를 동생처럼 위해 주었고, 저 또한 김 목사님을 형님처럼 따랐습니다.

 

지금은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김 목사님은 가끔 저를 전화로 찾아줍니다. “아직 살아 있어?”하면 저는 “좀 더 살 겁니다.” 하고 우정을 나누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친구입니다. 남을 존중하고 남의 어려움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돕는 일에 솔선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분입니다.

김 목사님은 지금도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계속 젖염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제가 김 목사님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분’ 이라고 칭한다면, 김 목사님은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 친구 이야기

 

우리에게는 윤광섭이라는 훌륭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학교 졸업 후 군목으로 섬기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격 때문에 우리는 그를 봄바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신자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며 인간의 진실함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와 형제처럼 지내고 늘 행동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친구들은 우리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별명을 붙여주기까지 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윤광섭 목사를 잊지 못하고, 그 부드러운 ‘봄바람’ 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금식기도 후유증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 목사님과 저는 선학생의 첫 열심에 아무런 경험도 없이 금식기도에 덤벼들었습니다. 금식기도는 잘 끝마쳤는데 음식 관리의 후속 조치가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몸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경험자들의 지도를 받아 기도 중에는 어떻게 하며 끝난 후에는 음식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혼쭐이 날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식기도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거나, 호기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식음을 전폐하고 매달리고 씨름하는 행위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그 후에도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금식기도를 많이 하신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금식기도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과의 우정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는 신앙노선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선학교 2학년 2학기 때 불행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구약을 가르치시던 김재준 교수 사건이었는데, 그는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교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오류가 많은 책이라고 가르치며,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50여 명의 학생이 김재준 교수의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을 반대하고 자퇴했는데, 이것은 후일 한국 장로 교회를 뒤집어 놓은 일대 사건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과 저도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자퇴하였습니다. 그 후 한국 장로교 안에는 성경관에 관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마침내는 김재준교수를 추종하는 분들이 이탈하여 한국 기독교장로회라는 간판을 걸고 교단을 따로 세우는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한국 장로 교회는 분열을 계속하여 고려파가 생기고, 1959년에는 장로 교단의 거대 분열이 일어나 합동파와 통합파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합동파 장로 교단 안에는 교권주의자들의 횡포 속에 4분 5열의 수치스럽고도 뼈아픈 분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김 목사님과 저는 계속 뜻을 같이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같은 신앙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것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믿음의 길을 같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 신복윤 박사는 1926년 평남 순천군에서 태어나 조선신학교를 거쳐 1948년 장로회신학교 제1회로 졸업했다. 이어 연세대 신대원(Th.M.)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광주신학교 교수를 시작으로 관동대, 칼빈신학교, 총신대 신대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김희보 학장의 모세오경의 문서설 논쟁과 교권 싸움으로 1979년 9월 총회에서 예장합동 총회가 분열되자 박윤선, 김명혁 박사 등과 함께 나와 합동신학교를 설립를 했다. 교수와 교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과 명예총장으로 평생을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또한 내수동교회와 남포교회 원로목사를 지냈다.

 

고 신복윤 박사는 특히 조선신학교 재학 중 송창근, 김재준 교수 등이 자유주의신학을 가르친다며 51인 신앙동지회 멤버로 이후 부산 고려신학교를 거쳐 서울 남산에 복구한 장로회신학교 제1회로 졸업했다. 당시 51인 신앙동지회 멤버로는 정규오 목사, 김준곤 목사, 박장환 박사, 조동진 목사, 한완석 목사 등 한국 보수신앙을 지킨 분들이다.

 

고 신복윤 박사는 특히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유성 김준곤 목사와 절친한 사이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준곤 목사와 함께 전남 신안으로 내려가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사택에서 수개월간 생활하기도 했다. 신복윤 박사와의 인연으로 김준곤 목사는 합동신학교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14일 향년 91세 일기로 하나님의 영원한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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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12 [10:08]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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