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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화백 “가난과 고독 속에 내 영혼은 더 깊어졌다”
1년 전 빈집 얻어 혼자 고향인 해남으로 낙향해 두번째 겨울 보내는 박영 화백
 
김철영   기사입력  2021/12/16 [15:18]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 내 영혼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화가 박영은 시골 농투사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해 말 그는 고향인 해남으로 낙향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시골에는 빈집들이 많다. 박 화백은 해남읍내에서 7키로미터 떨어진 내사리 대나무 숲과 맞닿아 있는 폐가를 샀다.

▲ 나눔의 화가 박영 목사     ©뉴스파워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창문 하나 있는 농기구 보관 창고는 작업실 겸 작품 보관 장소로 꾸몄다. 창고 벽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경구를 라틴어로 써놓았다.

 

수십 년, 아니 100여 년 이상을 아무개 가족이 대를 이어 살았을 방 두 개를 침실과 글을 쓰고 읽는 문학공간으로 꾸몄다. 대문에는 장신구도 달아놓았다. 낡은 자전거도 소품처럼 마당 한켠에 세워놓았다. 그림과 사진들도 걸어두었다. 작은 미술관 같았다.

 

▲ 나눔의 화가 박영이 거처하는 시골집     ©뉴스파워

 

박영 화백은 이곳에서는 목사라는 타이틀도 떼어버렸다. 그 유창한 영어와 불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박귀돌. 교사였던 부친이 지어준 '귀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교인 10여 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도 그는 그림 그리는박귀돌 성도다.

 

마을 주민들과 금새 친해졌다. 옆집에 개가 새끼를 낳아 한 마리 키우라고 줬지만 며칠 만에 다시 갖다 줬다. 하루에 밥 한 끼 먹고 지내는 날이 많아 강아지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령연금 30만원에, 서울에서 보내주는 5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박 화백에게는 하루 세끼 식사는 사치와 같을 것이다. 그는 모내기철에는 모를 심었다. 요즘에는 일당 13만원을 받고 추수를 끝낸 밭에서 밭고랑을 치우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가 시골에 내려와서 취미가 생겼다.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가까운 바닷가로 문조리를 잡으러 가는 것. 많게는 삼십여 마리까지 낚았다. 다 동네 사람들에게 준다. 미끼를 물고 달아날 때 손에 전해져 오는 강렬한 끌림이 주는 그 맛에 낚시를 간다.

 

▲ 박영 화백의 아뜰리에     ©뉴스파워

 

집에 세워진 낡은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낙이다. 시골의 정취를 맛보면서 페달을 밟는다. 집 뒤편 대숲 속으로 걸어보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사실, 그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래도 수십 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흙을 밟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해남에서 몇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광주 서중과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들어가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대학 졸업 후에는 미술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체험하고 다시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했다. 10년 정도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다 내려놓고 그림을 그리는 길로 다시 돌아왔다. 진흥아트홀 관장으로도 일했다. 다른 직함도 있었다. 중앙일보 선정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화가로 서울대 김병종 교수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 글도 썼다.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박 화백는 뉴스파워에 귀촌일기라는 글을 그림과 함께 연재했다. 백노지에 펜으로 쓴 글을 아내에게 보내면컴퓨터로 입력해서 그림과 함께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날, “이번까지만 쓰고, 좀 있다가 써야 할 것 같소.”라고 했다.

 

“아내가 당신, 글 그만 써야 하겠네요. 좀 더 충전한 후에 쓰세요.”라고 했다고 했다. “영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영감을 더 불어넣은 후에 다시 쓸라요.”라고 했다.

 

▲ 박영 화백이 아뜰리에 옆 황토밭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파워

 

박 화백은 그림도 스스로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폐기하고 다시 그린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도 등장한다.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은 그림에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계실 것이라고 한다.
 

신안의 한 섬의 학교 관사에서 장티부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어린 귀돌을 업고 선교사가 세운 교회를 향해 뛰어갔던 어머니의 등을 그는 늘 그리워한다.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기도와 목숨을 건 자식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는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박영 화백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준 육신의 어머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박영 화백의 그림     ©박영


지난 2015년 뉴스파워와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땅을 그린다. 보통사람들은 어머니를 나를 낳아준 모체로 본다. 저는 그것에 더하여 근원적인 것을 생각한다. 히브리 땅이 척박한 것처럼, 어머니는 척박하다. 하지만 그 근원은 생명의 근원이다. 어머니는 땅이요, 땅은 곧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그래서 제 그림 속에는 어머니는 똑같다. 그러나 주변의 풍경은 다 다르다.”

그는 자신이 밤을 새워 그린 그림으로 많은 단체들을 도왔다. 동두천 다비다의집, 다일공동체, 아가페신학교 등 그림을 팔아 전액을 지원했다. 금액으로는 수십억 원 상당에 이른다.

 

지금은 이롬생식과 국제사랑의봉사단으로 유명해진 황성주 박사가 1990년 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랑의클리닉을 개원했는데, 부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고교 선배인 박영 화백이 그림 전시회를 열어 얻은 2억원의 수익금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사연을 그의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황 박사와 같은 사연이 많지만 박 화백 스스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래도 아들과 딸은 훌륭하게 잘 자라서 시집, 장가를 보냈다.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 고향에 내려와서 인생 3막을 시작한 박영 화백. 그는 여전히 그림을 통해 창조주를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 나눔의 화가 박영이 차려준 저녁식탁. 김치와 밥 외에는 친구가 다녀가면서 사줬다.     ©뉴스파워 자료사진

  

지난 13일 밤, 그곳을 찾았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며 밥상을 차려줬다. “가리비와 전복, 매운탕은 판사 출신 변호사인 친구가 내려왔다가 사다준 것이고, 김치는 장로님이 갖다 주신 것이오.”

 

밥을 보니 지은 지 며칠 된 것 같았다. 하루 한 끼에도 감사하며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가면서 밤에는 작업실로 꾸민 창고에서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거나, 방에서 글을 쓰면서 추위를 이겨내는 그다.

 

이곳에 내려와서 내 신앙은 더 깊어졌어요. 더 겸손해졌고요.” 성빈(聖貧), '거룩한 가난'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 나눔의 화가 박영의 작가노트     ©뉴스파워

 

그는 최근에 그린 작품 -‘어느 흐린 겨울의 기억’, ‘하늘 정원에 서다’-을 보여주면서 메모해 둔 작가노트를 직접 소리내어 읽었다.

 

인생의 작은 기억들이 모여 작품이 된다. 매순간이 아름답지만 고통스럽다. 바람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난 새벽안개 속에서 주님의 옷자락을 본다. 그건 눈부신 아침을 맞기 위해 잠시 세상 속에 발을 들여놓은, 그래서 나의 눈은 잠시 흐릿해진다. 나의 가난 속에 동참해준 이웃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박영 작가노트)

 

자발적 가난과 고독 그리고 대숲바람과 황토밭. 맑은 영혼으로 빚어내는 그의 그림 속에 녹아들 것이다.

짧은 만남 후 칠흑 같은 시골길을 빠져나왔다.

서울로 올라와서
 지인에게 부탁해 겨울 잠바 한 벌을 보내드렸다. 올 겨울도 잘 이겨내기를 바라면서.

▲ 박영 화백의 아뜰리에 뒷편 대숲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뉴스파워 자료사진

 
문득 1997-8년, 혹독한 IMF 시절을 보내면서 쓴 졸시(拙詩) 한 편을 박 화백에게 읽어 드리고 싶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방법

                                    

바람이 분다, 낙엽이 나뒹군다

가랑비가 내린다, 추워진다

나무들이 옷을 벗는다, 춥겠다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겨울 초입인데도 벌써부터 아이들은 벌벌 떨고

어른들은 긴 한 숨이다

더 어려운 시절도 잘 견뎌오지 않았는가

아랫목을 고집하지 않아도

두꺼운 옷을 끼워 입지 않아도

벗은 나무처럼 당당하게

찬바람과 살을 부대끼고

벗은 자들끼리 등을 붙이고

외로운 사람들끼리

얼굴 서로 마주할 수 있다면

오는 겨울은 추워도 겨울이 아니다

벗고 있어도 춥지가 않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한 겨울을 보내야 한다

서투른 몸짓으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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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16 [15:18]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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