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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01.20 [23:08]
감리교 감독회의, 아펜젤러 고향에서 순직120주년 기념비 제막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120주년 맞아 기념비에 헌화하고 생가방문도
 
심자득

  

136년 전 조선에 기독교 복음을 들고 간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였던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 제막식이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미국 메릴랜드주 엘리콧시티 소재)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 주최로 3(현지시간), 아펜젤러 선교사의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사우더튼에서 열렸다.

▲ 이철 감독회장이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녀 쉴라 플랫 여사와 함께 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 당당뉴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이철 감독회장과 12개 연회 감독, 충청연회, 미국 임마누엘라이디의교회,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 등이 참석하여 진행된 제막 예식에서 기감 이철 감독회장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고향교회를 방문해 순직 1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복음의 빚을 진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사님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더 큰 사명을 감당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임마누엘 라이디의교회 존 니더하우스 원로목사는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 이 교회를 다니며 입교식도 받았고, 한국 선교 중에도 고향을 방문하면 이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잊고 지낸 부끄러운 기간도 있으나 몇 해 전 선교사님의 삶이 교회에 다시 알려지고 교회가 다시 선교할 수 있는 놀라운 사건이 있다오늘 제막되는 선교사님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는 아름다운 기념비 덕분에 다음 세대는 아펜젤러의 삶과 수고를 잊지 않을 것이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아펜젤러 선교사 가족 묘지에서 진행된 기념비 제막식에선 제막과 헌화, 생가방문이 이어졌으며 참석자들은 한국 감리교회와 조선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고 순교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섬김과 희생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기념비 제작비를 부담한 충청연회 감독 유명권 목사는 미국인에게 아펜젤러는 자국이 배출한 많은 선교사 중 한 명에 불과하겠지만, 한국인에게 그는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라며우리는 아펜젤러의 많은 업적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증손녀인 쉴라 플랫 여사는 증조부인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격스럽고, 선교사님을 기억하고 기념해 준 한국 교회와 고향 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비문 초안 작성과 기념비 제작 의뢰부터 설치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한 베다니 한인연합감리교회 박대성 목사는 기념비 제막식이 한국교회에 아펜젤러의 헌신적인 삶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아펜젤러 순직 120주년 기념비 제막     © 당당뉴스

 

 

 

묘비 뒷면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이 비문은 박대성 목사가 초안을 작성하고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이덕주 목사, 아펜젤러 선교사님 고향 교회 존 니더하우스 목사, 아펜젤러 선교사님 후손 중 한 분인 쉴라 플랫 여사가 감수했다)

 

Rev. Henry Gerhard Appenzeller was born in Souderton, Pennsylvania on February 6, 1858. Along with the rest of his family, he was an active member of Immanuel Reformed Church (now known as Leidy’s Church) throughout the time he lived at home. After graduating from Drew Theological Seminary in Madison, NJ, he arrived in Korea in 1885 as the first Methodist missionary. He took the lead in saving lost souls by sharing the Gospel as an evangelist and missionary. He also had great influence on the modernization of Korea as an educator, editor, and translator. In 1902, at the age of 44, Rev. Appenzeller died in a shipwreck while traveling to a meeting of the Bible Translation Committee. He is remembered as the father of the Korean Methodist Church, and his life and teaching are a great legacy to the Korean church. The Korean Methodists dedicate this monument at his family cemetery to commemorate Rev. Appenzeller’s life and dedication.

 

November 2021

 

1858년 이곳 사우더튼에서 태어난 아펜젤러 목사는 어린시절 가족들과 함께 라이디스 교회에서 신앙을 키웠다. 1885년 뉴저지주 드류신학교를 졸업한 후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 후 전도자,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품을 가진 교육자, 편집자, 번역자로 한국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1902년 한국어 성경번역을 위해 배를 타고 가다 발생한 선박 충돌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한국 교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전히 한국 감리교 신앙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아펜젤러 목사의 위대하고 희생적이던 삶을 기리고자 한국의 감리교인들이 이곳 가족 묘지에 정성과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다.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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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08 [11:4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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