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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9.18 [13:37]
“코로나19 위기에 ‘생명나무’ 선택하며 살아야”
총신대 구역학 이희성 교수, 예장합동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특강
 
김철영

 

총신대 구약학 이희성 교수가 1일 예장합동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특강에서 생명나무신학을 소개하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살아가자고 도전했다. ‘생명나무신학은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이자 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의 목회철학이다.

▲ 예장합동 제58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총신대 이희성 교수     ©뉴스파워

 


이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생명나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는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나무였다.”그러나 생명나무의 의미는 세대를 거치며 새롭게 적용되었고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준다. 성경 속의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들의 모형으로 기능한다.”고 밝혔다. 

 

이어 생명나무의 신학적 의미는 코로나 시대에 혼돈과 위기의 블랙홀에 빠진 한국 교회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의미로 적용될 수 있다.”첫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이끌어 가야 한다.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심겨 있듯이, 교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아 역사해야 한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예배와 사역이 위축되더라도 교회는 더욱더 생명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불꽃처럼 타올랐던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둘째, 코로나 시대에 예배의 위축은 역설적으로 생명력 넘치는 예배로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무엇보다 예배의 회복과 생명력을 위해 목회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예배 회복은 예배당과 부득이하게 드려지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회복이다. 목회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예배 가운데 역사하심을 위해 기도하며 코로나 시기에 성전과 예배를 사모하는 신앙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셋째, 성도들이 삶 속에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오늘날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육신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를 따라 사는 삶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생명을 위축시키고 빼앗아가는 코로나의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으로 극복이 가능하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망하며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목회자와 성도들로 교회가 세워질 때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이 땅 위에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생명나무 신학과 코로나 시대 현장 목회특강 전문.(도표와 각주는 생략했다;뉴스파워)

 

 

왕관을 쓰고 찾아온 이 시대의 불청객 코로나는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 급격한 변화들을 초래하였다. 언텍트 문화가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교회의 예배는 일부 성도들만 예배당에 남긴 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현장 예배는 위축되었고 교육, 전도, 교제, 봉사와 같은 활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코로나 시대에 침체된 목회 현장의 회복을 위해 교회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본 강의는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성경 신학 주제 가운데 하나인 생명나무 신학을 소개하고 이를 현장 목회에 적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신천지는 생명나무의 의미를 왜곡하여 성도들을 유혹하는 포교의 수단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들 교리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목회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생명나무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 성도들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현장 목회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겸비해야만 한다.

 

I. 고대 근동 문화 속에 나타나는 생명나무 이미지들

고대 근동의 신화, 서사시 또는 각종 도상학(圖像學)에서 생명 혹은 영생 추구에 대한 내용이나 이미지들이 소개된다.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문헌에 등장하는 한 남자 아다파(Adapa)가 무언가를 먹고 영생을 얻을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영생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에서는 갈가메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늙어도 젊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식물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다. 수메르 신화의 키스카나 나무(The Kiskana Tree)는 생명수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풍성하게 자라고, 치료의 힘을 가져 생명을 새롭게 하는 나무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이 고대 근동인들은 생명을 열망했고, 생명을 주는 신성한 나무는 그들에게 익숙한 주제였다.

 

 

II. 세기에 나타난 생명나무

성경에서 생명나무가 처음 소개된 본문은 창세기 29절과 창세기 322-24절이다. 이 본문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과 관련되어 소개된다(2:4-3:24). 히브리어에서 에덴이란 용어는 기쁨, 즐거움, 풍요란 의미가 있고 동산은 경작을 위해 둘러싸인 장소이다. 에덴동산은 에덴이란 지역의 동쪽에 있는 한 정원으로 창조 세계의 대리 통치자인 인간을 위한 낙원이다. 에덴에서 강이 흘러 나와 동산에 물을 공급하였고 생명과 풍성함을 넘치게 하였다(2:9-14). 또한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며 성전의 예표다. 창조주이시며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셨고 그들과 교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충만하시지만 특별히 에덴동산에 임재하셨다. 에덴동산이 기쁨과 생명의 장소인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은 성막이나 성전을 예표하는 원형적 성전(an archetypal sanctuary)이다.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의 거처였고 최초의 성전이었으며 신약의 교회를 예표하는 장소이다.

 

창세기 29절에 나타난 생명나무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2:9).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심겨져 있었다. 성경은 생명나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소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명나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름과 관련하여 성경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생명나무는 히브리어로 ~yYIx;h; #[e(에츠 하하임)이다. 직역하면 그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이다. “생명은 히브리어로 하임’(~yYIx;)이다. 생명나무 이름에 사용된 하임’(~yYIx;)은 창세기 27절에서 하나님의 생기”(~yYIx; tm;v.nI, 니쉬마트 하임)와 인간의 생령”(hY"x; vp,n<, 네페쉬 하야)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아담이 생령이 되었다. 성경저자는 생명”(하임)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아담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생명의 조성자이심을 알리며 이를 생명나무와 연결시켰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나무는 하나님께 생명의 근원이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이며 기념적인 나무이다.”아담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고 말한다.생명은 인간 자체 안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이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공급자이심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는가?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생활의 중심에 두기 위함이다. 그들은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을 섬김이 자신의 본분임을 기억해야 했다. 개혁주의 언약신학에서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통과하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이라는 언약을 의미한다.아담과 하와가 선악과가 아닌 생명나무를 선택하면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며 종국에는 생명나무가 주는 영생을 선물로 얻게 된다.

 

창세기 322-24절에 나타난 생명나무

창세기 322-24절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3:24).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우려하신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 영생을 얻는다면 이 땅은 영원한 아비귀환의 장소가 될 것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쪽에서 후회하며 생명나무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의 최대 과제는 다시 생명나무에 이르는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을 통해 다시 에덴으로 가는 길을 약속하셨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에덴의 동쪽에 있고(3:24), 성막 입구도 동쪽을 향해 있었다(27:9-19).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성전 문도 동쪽을 향해 있었다(43:1-4). 신약에서 지성소에 이르는 길은 길과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 자신이 성전이시다.

구원사적으로 보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어거스틴은 지성소로서 생명나무는 분명히 그리스도 자신이다라고 했고, 칼빈은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인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고 했다.타락한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생명나무와 선악과 사이에 선택과 관련한 신학적 내용은 신명기 31:19, 20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본문은 생명과 사망의 두 길 사이에서 생명을 선택하라고 소개하며 에덴동산의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원리로 더욱 확장시킨다. 창세기와 신명기의 생명나무의 의미는 잠언에 나타나는 생명나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III. 잠언에 나타난 생명나무

잠언에서는 생명나무가 잠언 3:18, 11:30, 13:12, 15:4에서 소개된다.

잠언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이 구절은 지혜의 유익을 생명나무 이미지로 표현한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가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실천적인 삶의 원리다(1:7, 9:10). 잠언 3:13-17에서는 지혜의 유익들을 장수, 부귀, 즐거움, 평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는 에덴의 기쁨과 평강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잠언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11:30). 이 구절은 의인의 삶의 영향력이 생명나무와 같다고 기술한다. “의인의 열매는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경건한 말과 행동의 결과를 의미한다. 의인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일깨우고 새롭게 하고 그들에게 행복한 영향력을 전한다. 지혜로운 자의 인격과 거룩한 삶은 생명나무와 같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이웃의 생명을 건져 준다.

 

잠언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13:12). 잠언 13:12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생명나무라고 소개한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소원은 의인 또는 지혜로운 자의 소원을 말하고, 생명나무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활기찬 에너지, 삶의 용기, 풍성한 삶 등을 의미한다. 의인은 자신의 소원 성취가 지체 되어 잠시 마음이 상할 수 있으나 영원히 낙담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어 상한 마음에서 생명나무의 풍성한 은혜로 역전시켜주시기 때문이다.

 

잠언 154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이 구절에서 생명나무는 치유하는 혀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온순한 혀는 이웃에게 희망, 활력, 상처 치유,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준다. 생명나무 이미지가 혀의 능력, 말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사용되고 있다. 지혜로운 자의 혀는 타락한 세상에서 영혼을 치유하고 에덴의 풍성함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잠언에 나타난 생명나무는 언약 백성들이 선택하고 따라야 할 지혜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오늘날 성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상과 정신으로 선택해야 할 생명나무이다.

 

IV.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생명나무

요한 계시록에는 생명나무가 2:7, 22:2, 22:14,19에서 소개된다.

(1) 요한 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Tw/| nikw/nti)는 운동경기나 전쟁에서 우월한 승리를 가진 자이며, 성도의 승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통하여 얻게 된다. 초대교회에서는 잘못된 이단의 가르침과 로마제국의 핍박에 대한 승리였다. 이기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얻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된다.

 

(2) 요한 계시록 22:1, 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1,2). 생명수 강은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원한 영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신실한 자들은 종말론적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가에 나아갈 수 있다(47:12).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생명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고, 열두 가지는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본질적인 풍성한 생명과 치유를 암시한다(21:12-14, 19-21).

 

(3) 요한 계시록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22:14). 성도가 두루마기를 빤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여 거룩한 삶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은 자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이들은 성에 들어가 생명나무로 상징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4) 요한 계시록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2:19).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들을 생명나무로 표현된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에서 제하여 버리신다. 예언의 말씀을 가감한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왜곡된 가르침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말씀을 제 멋대로 풀이하는 이단적 행위를 말한다(4:1-2, 12:32, 29:19-20).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삶의 기준이다. 요한 계시록의 생명나무는 주로 종말론적인 영생을 의미한다.

 

V. 생명나무 신학의 목회적 적용과 사례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는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나무였다. 그러나 생명나무의 의미는 세대를 거치며 새롭게 적용되었고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준다. 성경 속의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들의 모형으로 기능한다.

 

생명나무의 신학적 의미는 코로나 시대에 혼돈과 위기의 블랙홀에 빠진 한국 교회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의미로 적용될 수 있다.첫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이끌어 가야 한다.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심겨 있듯이, 교회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아 역사해야 한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예배와 사역이 위축되더라도 교회는 더욱더 생명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불꽃처럼 타올랐던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둘째, 코로나 시대에 예배의 위축은 역설적으로 생명력 넘치는 예배로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무엇보다 예배의 회복과 생명력을 위해 목회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예배 회복은 예배당과 부득이하게 드려지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회복이다. 목회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예배 가운데 역사하심을 위해 기도하며 코로나 시기에 성전과 예배를 사모하는 신앙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 셋째, 성도들이 삶 속에서 생명나무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오늘날 생명나무를 선택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육신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를 따라 사는 삶이다.

 

생명을 위축시키고 빼앗아가는 코로나의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망하며 생명나무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목회자와 성도들로 교회가 세워질 때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이 땅 위에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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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6/01 [18:3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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