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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1 [07:44]
[김명혁 목사 설교] 재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성주 계정교회 설교문(2021.3.28)
 
김명혁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성경: 50:15, 고전 10:13, 5:3,4

      

저는 2008113일 제가 개척해서 28년 동안 목회하던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32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제가 2010319일 주일 성주 계정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오전에는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오후에는 감사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369일 주일 여기 두 번째로 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831일 주일 여기 세 번째로 와서 신앙생활의 기본 도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5913일 주일 여기 네 번째로 와서 주일 성수와 교회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6731일 주일 여기 다섯 번째로 와서 착함과 선행의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18122일 주일 여기 여섯 번째로 와서 천국 소망을 지닌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1020일 주일 여기 일곱 번째로 와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202089일 주일 여기 여덟 번째로 와서 주일 성수의 신앙과 나를 만드신 신앙의 선배님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1328일 주일 여기 아홉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저의 제자 윤찬열 목사님과 성주 계정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윤찬열 목사님이 지금 재난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간증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늘 재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중국과 미국과 영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은 물론 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재난과 시험은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림인식 목사님께서 지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새벽기도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제대로 펴지 못하게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을 주셨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전적으로 공감을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사 시대에는 7번 재난과 시험을 당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70년 동안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노예 생활을 하는 극심한 재난과 시험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재난과 시험을 통해서 회개하면서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재난과 시험의 유익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8: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119:67).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37:1).“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사실 조선교회가 일본 통치하에서 36년 동안 재난과 시험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한국교회가 19506.25 전쟁의 재난과 시험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를 아주 많이 하게 되었고, “주일 성수의 예배새벽 기도에 전력하게 되었고, 이웃 사랑과 섬김은 물론 원수 사랑과 섬김에 전력하게 되었고, 그리고 수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을 통해서도 한국교회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귀중하게 여기시던 처절한 회개와 철저한 주일 성수의 예배새벽 기도와 순수한 이웃 사랑과 섬김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을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이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귀중하고 올바른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와 함께 위로와 평안과 기쁨의 은혜를 가득하게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저는 주일 성수의 신앙과 새벽 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고 올바로 살기 위해서 만 11살 때인 19488월 어느 날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한으로 와서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재난을 지니고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재난이 가득한 저의 한 평생을 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9년 동안 목회 하시다가 해방 후에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하셨는데 일본 통치하에서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고 저주 감옥에 붙잡혀가시고 공산통치하에서는 공산통치에 반대한다고 자주 감옥에 붙잡혀가서 고생하시다가 1950623일 경에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제가 11살 때인 19488월 어느 날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한으로 온 다음 38선 근처에서 만난 어느 청년이 저를 기차에 태워서 해주에서 서울까지 무사히 오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천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수년 전에 서울로 와서 중구 을지로 37번지에서 살게 된 이모님 집을 찾아가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영락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까지 참석하면서 정성껏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님과 저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칭찬하시던 아버님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저는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입학하여 2년 동안 공부했는데 저는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06256.25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들은 서울을 떠나 피난민 대열에 끼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을 떠나 피난을 가는 길에 저는 인민군들이 탱크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미국 비행기 B 29가 하늘을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B 29의 폭격도 눈 앞에서 목격했습니다. 폭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길가에 쓸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쟁의 비극과 전쟁의 재난을 직접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고 얼마 후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가난과 고난과 재난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셋방 하나를 얻고 작은 한 방에서 5명이 함께 사는 불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불편의 삶은 저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중한 도움이 되고 보석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재난을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많은데 간단하게 줄여서 고백하려고 합니다.  

 

저는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힘들게 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새벽 기도는 거의 빠지지 않았고 주일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정성껏 드렸고 봉사와 전도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셋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잠그지도 않고 교회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는 방법을 알아내었습니다. 결국 저는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고 교회에 가서 마음껏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처음에는 대구 제일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때 대구에는 SB(Sister/Brother) 즉 누나와 동생을 맺는 것이 유행했는데 대구제일교회에 다니던 누나뻘 되는 주명숙이라는 고등학생이 나하고 누나와 동생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를 귀엽게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주명숙 누나는 그 때 제가 다니던 영남중학교 교장인 주덕근 교장 선생님의 딸이었습니다. 저는 누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누나는 저를 누나 집에 데려가서 음식도 해 주고 선물도 주고 제 손수건도 빨아주었습니다. 그 때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사랑과 위로와 격려와 칭찬의 손길을 편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은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을 만난 일이었고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너무나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은 일이었습니다. 그 때 이성봉 목사님이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빠지지 않고 거의 매번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은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부흥회가 월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개학 때는 새벽과 저녁 집회만 참석했지만 방학 때는 오전 집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은혜를 사모했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 새벽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오전과 저녁 집회 때는 은혜 사모성결헌신재림신앙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천로역정 강의는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고 은혜로웠습니다. 때때로 세상 만사 살피니 참 헛 되구나...” 허사가를 부르시곤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고 감동이 충만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앞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듣곤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성경 아무데를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면 저는 성경을 찾지도 않고 즉시 암송해서 읽곤 했습니다.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는 말씀들을 제가 거의 다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수 기도를 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12번은 안수기도를 받은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축복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 회개를 힘쓰면서 살게 되었고, “은혜 사모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 은혜 사모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서울로 돌아와서 서울고등학교화 서울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을 여전히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어려움을 몸에 지니고 살았는데 창동교회와 대창교회에 다니면서 김치선 목사님 밑에서 보다 철저한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새벽 기도은혜 사모전도의 영적 유산을 계속해서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야이셨고 회개 운동과 기도 운동과 부흥 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새벽 기도회를 빠지지 않았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와 기도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게 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찬송을 부르시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셨고 그리고 28천 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그때 중구 회현동에서 살았는데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이상 더 성경을 보며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아침 밥을 먹고 30여분 동안 걸어서 서울 고등학교를 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때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라는 찬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저는 피 흘려 사신 교회라는 가사에 깊은 감동을 받고 너무 고마워서 울고 또 울었고 늘 사랑합니다라는 가사에 늘 사랑하지 못하는 잘못을 뉘우치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옆의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 있어?” 라고 물었지만 저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매년 년 초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했는데 저는 빠지지 않고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존경하며 사랑했고 김치선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 많이 쏟아 받았습니다. 한번은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건축하는데 교인들이 모두 산 아래에서 큰 돌을 열 두 개씩 산 위로 메어 나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귀찮게 생각하고 듣지 않았지만 저는 제 몫으로 큰 돌 열두 개를 나른 다음, 저의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고 그리고 저의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김치선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날랐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순종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2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2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도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어서 주일날 들판에서 예배 드리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학교의 교실 서너 개를 빌려서 학생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 3때는 공부에 전념하여야 하는데 저는 고 3때 전도와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저에게는 여전히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합격하여 역사를 전공하며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열심히 전도와 목회를 계속 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하면서 한양제일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작한 초라한 천막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제일 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대학생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랑과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의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모하는 마음과 듣는 귀와 순종할 수 있는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저와 같이 개척목회 사역을 하던 안흥규 라는 학생은 나중에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할 때 함께 목회 사역을 했고 강변교회의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재난을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많은데 두 가지 이야기만 더 하려고 합니다. 제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1년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그때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재난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 돈이 없어서 비행기 대신 단돈 104불을 내고 미국군함을 타고 갔고 주머니에는 단돈 100불을 가지고 가서 12년 동안의 삶을 살았는데 한국의 사람들로부터 1불의 도움도 받지 않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유학생활을 넉넉하게 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물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마음에 슬픔과 아픔을 지니기도 했는데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인 1964년 가을 제가 북한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받아보시고 어머니가 저에게 피 맺힌 사랑의 절규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셔서 저는 그 편지를 받아서 들고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히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아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29저는 지금도 어머니의 편지를 성경책 속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읽곤 합니다.

 

저는 미국의 동부 중부 서부의 신학교들에서 공부를 했는데 대부분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동안에는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 즉 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아르바이트가 힘든 일이 사실이었지만 힘든 노동의 경험도 모두 저에게는 필요하고 귀중하고 복된 경험이 되었습니다. 제가 종사한 아르바이트의 종류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건물 청소, 화장실 청소, 접시 닦기, 식당 웨이터, 인쇄소 일, 건물 페인트, 정원 가꾸기, 화학도금공장의 일,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판매, 선물 판매 상점에서 판매원의 일, 학교 도서관의 일, 동물병원의 일. 공부의 경험들은 물론 힘든 아르바이트의 경험들도 저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는 필요한 경험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재난을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많은데 한 가지 이야기만 더 하려고 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 성수를 저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원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4년 귀국 후 3년 뒤에 박정희 정부의 주일성수 방해 정책을 비판하면서 주일 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강조하다가 군사 정부의 미음을 사서 197711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늦게까지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과 협박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아주 일찍 저의 집 앞에 아주 좋은 자동차가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부드럽게 다가와서 회사에 가서 자문 받을 일이 있는데 잠시 회사로 가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가서 설교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가기가 어렵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잠시뿐이면 된다고 하면서 꼭 가서 자문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본래 듣기를 잘 하는데 그러면 잠시 가겠다고 하면서 자동차에 탔습니다. 결국 저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다음 날 새벽까지 극심한 심문과 협박을 받는 재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심문하던 두 사림이 잠깐 쉴 때 제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글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여기서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설교 준비는 무슨 설교준비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나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당신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다음 주일 교회에 와서 내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새벽 두 시쯤 되어서 잠을 자라고 했습니다. 지하의 방이었는데 창문도 없고 책상 하나만 있었고 이불도 없었습니다. 저는 책상에 들어 누어서 아침까지 잠을 아주 잘 잤습니다. 아침에 저를 깨우더니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올 때는 좋은 차에 태워주어서 여기 왔는데 갈 때도 좋은 차에 태워주어야 집에 가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저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아주 좋은 차를 세우게 하고 저를 집에까지 데려다 드리라고 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집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주 즐겁고 유익한 붙잡혀가서 심문을 당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심문하면서 화를 내던 한 사람은 그 후 10년 동안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를 걸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을 하곤 했고 제가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10년 동안 제가 돈도 받지 않고 자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재난을 당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경험이 유익하게 되듯이 재난을 당하는 경험도 결국에는 유익한 것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예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들과 특히 목회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제일 먼저 회개하면서 겸비하게 되는 것과 기도에 전력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 쏟아 부으면서 하나님의 집에서정성껏 예배드리는 일과 그리고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제일 먼저 우리들로부터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전파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둘째로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 성수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셋째로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착하신 분이신데 우리들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고 도우면서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10:17-19).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재난과 시험은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난과 시험을 당하는 우리들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은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지는 일과 스스로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과 그래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일과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전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겸손기도예배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삶을 살도록 다짐하고 또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의 삶이 힘든 삶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 결국 보석이 되고 축복이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됩니다. 사실 극심한 재난과 시험이 없었다면 다윗도 욥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니엘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사야도 세례 요한도 스데반 집사도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주님을 너무너무 닮고 싶어했던 사람들인 성 프랜시스와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권능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분들이 모두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과 죽음을 귀중한 보석으로 삼으면서 살다가 죽으셨고 불우한 이웃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시면서 살다가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도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우리들도 아삽처럼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86:7).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2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아멘! 아멘! 아멘! 찬송가 환난과 핍박 중에도”(383)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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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25 [13: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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