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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1 [07:44]
[김준곤 설교] 현대인의 실존적 심연과 예수의 노크소리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성경: 시편 130:1~8

▲ 1980년 8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10만 선교사 헌신서약을 이끌     ©뉴스파워

1.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대는 ‘노아의 시대’와 같이 위기의식과 종말 의식으로 가득 찬 시대이며 무신성과 죄악이 관영한 때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지니 도덕적, 정신적, 영적으로 어두워지며 타락과 부패가 범람합니다. 현대는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병으로 볼 때는 잠복기와 자각기를 지나 회복이냐, 죽음이냐를 결정하는 그 정점, 위기의 정점에서 최후의 위기의식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우주의 드라마는 하나님과 악마와 사람의 드라마입니다. 그 종장의 막이 멀지 않아 내리려고 합니다. 나라마다 터전이 흔들리고 별들이 떨어지며 나라를 새롭게 하려고 구국대책을 세우나 불투명합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은 세상 끝까지 갈 듯합니다. 세상은 깨끗해지거나 좋아지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의 유토피아는 그 막을 내리고 그 한계 앞에서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철학은 절망 철학이 됩니다. 사단은 무신론자입니까?

오히려 그는 가장 종교적인 것을 모르도록 혼미하게 합니다. 세상의 종말 의식 가운데 가짜 메시야가 등장하는 것은 참된 메시야의 출현을 위한 준비 단계입니다.

일본의 창가학회와 모택동은 지상의 모든 것을 다 다스리려고 몸부림치며 기독교를 표절하여 입체 종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예수의 인류 통치에 대한 효시적 사건들입니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람의 본성 가운데 심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은 죄악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 타락의 특징 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더러워지고 미련해져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방임 합니다. 그들은 짐승처럼 악마처럼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해 버린 자에게 우리는 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현대 교육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대화 관계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이것 이상 근본적인 것이 없습니다. 창조과학회는 ‘민족 개조론’과 ‘민족혁명’의 차원에서 교과서를 고치고자 합니다.

인간의 타락은 지성, 도덕, 영혼의 삼중 암흑을 가져왔습니다. 인간은 그 자연적인 도덕성과 종교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하나님 창조의 능력을 알 수 있으나 이 세상은 자기 지식으로 구원받는 방법과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인격을 알 수도 없고 특별하고 개인적인 관계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특별한 지식은 특별한 관계를 통하여야만 얻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빛입니다.


2. 무신론의 형태
① 독단적 이론적 무신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적인 신앙처럼 믿는 것입니다.

② 회의적 무신론은 불가지론으로 하나님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증명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③ 실천적 무신론은 개념적, 이론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 따위는 생각지도 않습니다.

④ 전투적 살신적 무신론은 하나님 이 없어야 자기 혁명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부정합니다.


⑤ 종교적 무신론은 간접적 무신론이요 허심론으로써 불교가 이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격적 신이 없습니다. 법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 가지 철학적 견해들도 인격적 하나님을 회색화 시켜 버립니다. 진화론, 이신론, 휴머니즘과 같은 종교적 무신론은 보기에는 설득력도 있어 보이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인간을 풍선 같이 키워 우주의 주인공이란 착각을 갖게 합니다.

⑥ 비판적 무신론은 순수 이성으로 신 존재를 증명 할 수 없으나 신 존재를 요청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래야만 도덕율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⑦ 실존적 무신론은 악성입니다. 신은 신이고, 나는 나입니다. 있으려면 있고 없으려면 없어라 하는 것입니다. 마구 신을 무시해 버립니다.

왜 세상엔 이렇게 모순이 많습니까? 왜 잔인합니까? 왜 죽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여기에 어딘가 열정이 있고, 신음 소리 같이 영혼의 고뇌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절대 자유를 위해 살신적인 동기 속에서 미칠 만큼 신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습니다.

니체는 무신 의식이 아니라 부재 의식적 광증을 가졌습니다. 신앙의 존재 의식이 있던 자리에서 생기는 부재 의식이 실연당한 것처럼 나타납니다. 이것은 신의 실재를 잡지 못하고 개념만 살아 있는 그 시대를 대변하며 발광하는 것입니다.


3. 예수는 하나님을 아는 빛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으나 자연 계시로 알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특별 계시를 통해 알리셨습니다.

예수는 성경의 주제요 특별 계시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우주와 자신을 알게 됩니다. 예수의 빛으로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성과 역사와 모성애로는 잡힐 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그 실재를 예수님 자신이 친히 말씀 자체가 되셔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에게서 듣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새로 태어나는 태요, 대화를 여는 매체요, 화해자요, 사랑의 기교입니다. 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하는 분이 성령이요 그 교과서가 성경입니다. 이 특별 매체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예수는 남녀노소나, 유무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납득할 수 있는 책을 쓴 분이요, 모든 것을 다 빠짐없이 짧게 농축한 분이요, 그 책에 가르친 모범대로 산 분이요, 그의 말씀대로 살아 변화된 삶을 가진 많은 제자를 가진 분입니다. 누구도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성현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예수가 나타나 모든 인류를 초청합니다.


4. 예수의 인생은 기초입니다.
  두 개의 인생 집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반석 위의 집입니다. 인간의 터는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질서 가운데서 예수로 말미암아, 그를 위해, 그 안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기초는 예수 안에서 세워져야 합니다.

5. 예수의 교훈은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모든 세대에 들려주는 교훈입니다. 어디서 진리를, 생명을, 길을, 빛을, 행복을, 사랑을, 참 평안을 찾을 것입니까? 예수는 하나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없이는 암흑뿐입니다. 이것 외에 들려줄 메시지가 없습니다.

6. 피조물의 신음 소리, 근대인의 실존 속에 비친 그리스도
  삶을 알려면 죽음의 빛을, 천국에는 지옥을, 선인에게 악인을 비추어야 합니다. 초감각을 지닌 문인과 시인의 언어 속에서 하나님 없는 그 진실하고 민감하고 심각하고 처절한 고백들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 절망의 우주 공간 속에서 전율하며 지옥의 몸서리를 치게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에서 인간과 세계를 초월하여 빛을 찾는 실존의 무신 체험을 보며 예수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악의 꽃이 피는 속에서 권태와 고독과 지옥 같은 현대를 묘사합니다. 거지 옷에 이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

악마가 조종하는 신앙을 상실한 세계로 맞서 순간마다 이성과 악마 사이에 서서 권총 자살을 하느냐 혹은 십자가를 붙드느냐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까뮈의 이방인도 자아를 상실하고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져 내일의 희망을 잃은 꿈속의 망령이 살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지성의 상징인 캠퍼스는 하나님 없는 무신성을 자랑합니다. 일본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한국의 학원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증거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영화'를 통해 모든 대학생들에게 완전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줍시다. 신비 중의 신비인 사랑은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어떤 인물’입니다. 사랑은 ‘그 분’입니다. 아버지요, 주요, 부모입니다. 그것은 추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밖에 전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나를 만드신 목적도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을 위해 열정을 가집시다. 그 이상의 행복을 안겨 줄 것이 없습니다.

예수 이상의 참된 진리, 참된 가치는 없습니다. 그 밖의 것은 없는 것입니다. 비교 종교, 철학 사상, 정신세계의 맨 밑바닥을 다 뒤져도 예수 외엔 길도 진리도 생명도 없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헌신과 열정을 가집시다. 열정을 가지고 예수를 전하는 운동을 일으킵시다. 전 민족에 흩어져서 적은 열매를 키우면서 민족의 가치관을 예수를 믿는 데에 두도록 합시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1년 7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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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8 [07:1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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