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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3.02 [17:24]
[성경통독 가이드]복음서 I: 마태복음 4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237
 
김정권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마태복음 13-16장 메모

 

 

   3. 3 부 예수님의 설교 - 천국의 비유(13:1-53)

 

<13 > 천국의 비유.; 씨앗, 겨자씨와 누룩, 가라지, 세 가지 비유

 

  * 13장은 제3 설교이다. 이는 천국 비유 강화이다.
1.
땅에 떨어진 씨 비유(13:3-9) 2. 가라지 비유(13:24-30), 3. 겨자씨 비유(13:31, 32), 4. 누룩 비유(13:33), 5. 감추어진 보화 비유(413:4), 6. 진주 비유(13:45, 46), 7. 그물 비유(13:47-50)로 구성된다.

 다음 천국 비유의 소재(素材)는 농경 생활이 3, 상업이 2, 고기잡이와 일반가사가 각 1씩 이다.

 일곱 가지 비유 사이에 비유를 든 이유를 2번 밝혔고(13:10-17; 34, 35),

 씨 뿌리는 자에 대한 해설(13:18-23),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설(13:36-43), 도입(13:1, 2),

결론(13:51, 52)으로 13장이 구성되어있다.

 

 

[천국 비유 1; 땅에 떨어진 네 가지 씨 비유] (13:1-9; 4:1-9; 8:4-8)

 

  마태복음 131, 2절은 13장의 도입 부분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 배 위에서 가르치셨으니까 군중과 격리된 상황에서 가르치셨음을 알 수 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천국 입성의 첫 단계이다. 13:3-9은 씨 뿌리는 자 즉 예수님 또는 앞으로 제자들이 씨 뿌리는 자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요 농업인 보리와 밀을 상상한 비유일 것이다. 손으로 씨를 뿌리는 경우 길가나, 돌 짝 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부는 대체로 옥토에 씨를 뿌렸을 것이다. 씨는 한가지인데 떨어진 곳에 따라서 죽든지 결실의 양이 달라진다. 이는 복음을 받는 심령의 상태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 1] (13:10-17)

 

  예수께서 비유로 설명하시게 된 이유를 말씀하신다. 백성이 어리석어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우매하니까 비유로 가르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듣고,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5:21; 28:26, 27)에게 비유는 안성맞춤이다.

 

[천국 비유 1: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에 대한 설명] (13:18-23)

 

  1.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악한 자가 빼앗아간 경우, 2. 돌밭에 뿌려진 자도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어려움이 오면 포기하는 경우, 3. 가시 떨기나무에 뿌려진 씨는 세상 재물과 염려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이다. 4. 좋은 땅에 뿌려진 씨란 말씀을 깨닫는 자이다. 말씀을 명쾌하게 알고 깨닫는 것이야말로 결실을 보는 첩경이다.

 

[천국 비유 2; 가라지 비유] (13:24-30)

 

  원하지 않는 가라지가 곡식 사이에 자라났다. 가라지를 뽑아낼 때는 추수할 때 알곡과 같이한다. 즉 마지막 심판 때 가라지를 심판하신다. 미리 뽑으려 하다가 알곡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추수 때 가라지는 불에 태워버린다. 즉 불의 심판이 있다.

 

[천국 비유 34; 겨자씨와 누룩 비유] (13:31-33)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상당히 유사성을 갖고 있다.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만 커져서 큰 나무를 이루고 새와 곤충과 벌레 들이 깃들고 먹고 쉬고 물을 공급한다. 천국의 확산은 이렇게 작게 시작되어도 광대한 것으로 확산해 간다. 유사한 사례로 누룩은 확장하는 기능이 있다. 성경에서 누룩은 양면적 성격으로 설명되고 있다. 악의 팽창을 설명하기도 하나 이 단락에서는 천국의 확산을 누룩의 팽창과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 2] (13:34, 35)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 1에서는 우매한 백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셨음을 설명하신다. 두 번째 이유는 1. 구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다(78:2). 2. 창세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나타내기 위함이다(1:4).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비유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나 이 천국을 설명하실 때는 모두 비유로 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는 이 두 가지로 이해하면 되겠다.

 

[천국 설명 2에 대한 해설; 가라지 비유의 설명] (13:36-43)

 

  이 시나리오의 상황 설정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예수, 밭은 세상,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마귀, 추수 때는 최후의 심판의 날, 추수 꾼은 천사이다. 좋은 씨는 천국으로, 가라지는 불에 태워 버린다.

 

[천국 설명 5-7; 5. 감추어진 보화, 6. 진주 장사, 7. 바다의 그물] (13:44-50)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면 그 밭을 사지 않겠는가? 우선 보화를 보화로 알아야 한다. 보화로 알 수 없다면 그에게 보화가 될 수 없다. 천국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무엇과도 버꿀 수 없는 값어치가 인정될 때 그것을 살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진주 비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할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주고도 그것을 살 수 있다. 일곱 번째 비유는 그물에 고기를 분류하는 비유이다. 좋은 것 즉 의인은 천국으로, 악인은 버려 진다.

 

[깨달음과 전도] (13:51-53)

 

  예수님은 너희가 이 천국 비유를 통하여 깨달았는가? 묻고 계시다. 그 제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깨달은 자들은 나아가서 천국을 전할 책임이 있다.

 

 

   4. 4 부 기사: 예수와 세상 지도자들의 대립(13:54-17:27)

                  설교: 하늘나라 시민의 생활(18:1-19:2)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시는 예수님] (13:54-58)

 

  옛날부터 고향에서 대접받는 선지자는 없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또 그 가족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 상황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 나사렛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복음도, 이적과 기사도, 가르침도 받을 수 없게 된다.

 

 

<14 > 요한의 죽음과 예수님 이적을 행하심

 

[세례 요한의 죽음] (14:1-12)

 

  헤롯 대왕이 죽으면서(4B.C.) 로마 황제에 청원하여 그가 통치하던 나라를 3분하여 그의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마리아, 예루살렘, 이두매를 포함한 남쪽 땅은 맏아들인 헤롯 아켈라오(4B.C.-6A.D.), 그 북쪽인 갈릴리 지방은 둘째 아들 헤롯 안티파스(4B.C.-39A.D.), 갈릴리 북동 지방인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은 셋째 아들 헤롯 빌립(4B.C.-33A.D.)에게 주어 분할 통치하였다. 이 단락에 나오는 헤롯은 둘째인 헤롯 아티파스 이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맞이했고 세례 요한은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여 옥에 구금되어 있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 요한을 살해한 사건이다.

 

  * 14:1의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안디바)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가 임명한 왕이다.

 

 

[오천 명을 먹이심] (14:13-21; 6:30-44; 9:12-17; 6:1-14)

 

  이 단락의 내용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교 파송한 사건(9:35-11:1)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휴식과 재교육을 수행하시기 위해 벳새다 광야로 나아가신 것 같다. 예수가 이르시는 곳에 무리는 항상 따랐다. 이날도 5천 명이나 모였고 광야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예수께서 5천 명을 오병이어(五餠二魚)로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셨다. 이에 대한 영적 해석은 무척 다양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한 이적으로 보기보다는 앞으로 이루어질 천국 생활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 벳새다(Beth-saida) “고기잡이의 집이란 뜻으로 갈릴리바다 북쪽 1.6km 지점의 요단 동편이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1:44; 12:21)이며 오병이어의 이적을 하신 곳(9:10-17)이다. 예수님이 이적을 많이 행하셨으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아서 책망을 들은 성읍이다(11:21).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14:22-33)

 

  벳새다에서 5천명을 먹이신 후 기도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바다건너로 먼저 보내셨다. 예수님은 초자연적으로 물위로 걸어 오셨고 베드로 역시 물위로 걷기를 청하였다. 베드로가 바다를 걸었으나 곧 물에 빠져서 예수의 구원을 요청하였다. ? 베드로는 물위를 걸을 수 있었으며, ? 물에 빠졌을까? 믿음으로 걸었는데 바람, 노도, 어둠이 그의 믿음을 무너지게 하였다. 그에게 엄습해온 두려움은 믿음을 깨지게 하고 바다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게 했다. 주님은 그에게 믿음이 적은자라고 힐책하셨다.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의 치유] (14:34-36)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의 평원지대이다. 벌써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있어서 서로 연락하여 모든 병자를 데리고 나아왔다. 그들은 예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병을 고쳤다.

 

  * 게네사렛(Gennesaret) 갈릴리바다 서북쪽의 비옥한 평원이며 구약에서는  긴네렛’(왕상15:20)으로 썼으며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의 거점 지역이었다(14:34; 6:54). 예수님은 갈릴리바다 북쪽의 요단 강 동쪽에서 서쪽으로 배를 타시고 이동하셨다.

 

 

<15 > 장로들의 전통과 그 허구성 그리고 진정으로 깨끗한 것

 

[장로들의 전통] (15:1-10)

 

  손 씻지 아니하고 먹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으로 유익하게 하시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고 그 기저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음식 먹을 때 손을 씻지 아니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왔다. 이들이 시비하는 문제는 장로의 전승이다. 모세의 십계명은 그들이 생활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포로 후에 이 내용을 상세하게 나누어 규범을 만들었고, 지금 그들의 비판은 이 장로의 전승을 왜 어겼느냐? 라는 것이다. 십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는데 전승에서는 부모에게 할 것을 하나님에게 함으로 부모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고르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다. 장로의 전승은 율법에 우선 할 수 없다. 예수님의 반론의 요지이다.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예수의 설명] (15:11-20)

 

  지금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적으로 취급받고 계신다. 예수님 공생애 3년 차인 지금 그들은 예수의 존재를 의식하고 적대적 관계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다.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더럽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 그들은 진리를 모른다. 인간이 만든 율법을 진리로 알고 있다. 예수님은 이들을 맹인이라 하셨다. 그들이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모두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방인 가나안 여자의 믿음] (15:21-28; 24-30)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연안의 성읍이다. 이스라엘 땅이 아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셨다. 그녀가 스스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하셨고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게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요 하다. 고백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 두로(Tyre)와 시돈(Sidon)은 지중해 동안(東岸)의 페니키아 지역의 무역항 들이다.

 

[많은 사람을 고치시다.] (15:29-31; 7:31-8:1을 참조하라)

 

  지중해 연안 성읍 두로와 시돈의 전도를 마치시고 갈릴리 지방으로 귀환하셨다. 이 지방은 갈릴리 호수에 접한 이방 땅 데가볼리 지방이다(7:31). 이 단락은 특히 신체손상으로 생활에서 장애를 갖게 된 지체부자유인, 농아인, 맹인 등 장애인을 고쳐 주신 기사이다.

 

  * 데가볼리(Decapolis) 갈릴리바다 동남쪽으로 전개된 넓은 지역을 이른다. 데가볼리의 뜻이 (10) 성읍(城邑)” 이다. 즉 여러 성읍을 포함한 지역임을 말한다.

 

[사천 명을 먹이심] (15:32-39; 8:1-9)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주님의 기사(14:15-21)와 이 단락에서 4천 명을 먹이신 기사는 모두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사랑의 표현이다. 어린이와 아이를 제외한 4천 명을 먹이셨다. 그러나 제자와 백성들은 이런 이적이 메시아 왕국에 연관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자들까지도 현세적 세속적 왕국이 메시아가 이룰 왕국으로 생각했다. 메시아 관의 차이는 오순절 성령역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게 된다.

 

  * 마가단(Magadan) 갈릴리바다 북단 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며 현재는 엘메지델(el-Mejidel)추정되며 마가복음에서는 달마누다로 기록하고 있다(15:39; 8:10).

 

 

<16 >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고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 (16:1-4; 8:10-1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께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했다. 이 표적은 무엇이었을까? 메시아왕국에 대한 표적이었을 것이다. 세속적 권력으로 제국을 제압하고 이스라엘이 세계정부의 통치자가 되는 그런 표적일 것이다. 이것이 메시아 관의 차이이다. 그들이 갈구하고 있는 천국 즉 메시아 왕국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 줄 것이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3일 만에 부활이라는 구원사역이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이다. 이 길이 메시아왕국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거짓 메시지 경계] (16:5-12;8:14-21)

 

  바리새인은 율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율법의 본래 정신을 망각한 형식화된 율법주의자들이다. 죽은 나무와 같다. 사두개인은 육신의 부활과 사후심판,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오심', '메시아 소망'등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철저한 정치적, 물질적 실리주의자들로 이들의 관심은 오직 현재의 그들이 당면하고 있던 문제 해결이었다. 누룩 즉 그들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금욕적 율법주의자와 현실적 세속주의자 모두를 경계하라 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16:13-20; 8:27-30; 9:18-21)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였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기름 부음으로 위임되는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어 Χριστός, 발음은 Christós에서 온 말로 70인 역에서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옮기는 데 처음 사용되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여, 그리스도가 예수님 이름의 일부분이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고백으로 베드로는 주 앞에 칭찬을 듣고 그 터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받는다. 가톨릭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베드로가 천국 열쇄를 가진 존귀한 자로 존중한다.

 

  *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 요단강의 수원지인 헤르몬산 기슭에 아름다운 성읍으로 갈릴리바다 북쪽으로 40km 지점에 위치한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곳이다(16:13; 8:27-30). 구약시대에는 바알갓(11:17 12:7), 바알 헤르몬(3:3; 대상5:23)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언 1] (16:21-28; 8:31-38; 9:22-27)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이르시었다. 이에 베드로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예수를 말렸다. 왜 베드로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믿었을까? 가야바의 뜰에서 그는 왜 3번 예수를 부인했을까? 베드로의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에게 메시아 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했다. 그도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이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메시아와의 관계를 세상 적으로 가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높으냐? 이에 대한 논쟁이 마지막 만찬까지 이어진 것이다. 3년을 따라다닌 제자들, 그들은 누구였는가? 아직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소명에 접근해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두 도망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는 기다려야 했다.

 



*김정권 시인(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있으며 대한민국 황조근조 훈장을 수훈했다.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특수교육 관련 다수의 저작물과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6), 통독성경: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0-2018) CD(약 11,500페이지), 시집 『길을 모르는 사람의 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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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01 [11:1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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