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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29 [04:58]
“감당할 재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목회자 선교협의회(상주 인터콥 열방센터 20.11.17)
 
김명혁

   

▲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     ©뉴스파워

성경: 고전 10:13, 대하 7:12-16, 50:15, 5:3,4

 

제가 인터콥 열방센터에 여러 번 와서 설교 또는 강의를 했는데 오늘은 목회자 선교협의회 모임에 와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목회자 선교협의회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코로나 19 시대에 한국교회의 방향과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감당할 재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금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은 물론 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난과 시험은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림인식 목사님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기도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제대로 펴지 못하게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을 주셨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전적으로 공감을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게 하사기 위해서 시대에는 7번 재난과 시험을 당하게 하셨고 나중에는 70년 동안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노예 생활을 하는 극심한 재난과 시험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재난과 시험을 통해서 회개하면서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들은 재난과 시험의 유익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8:2).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3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119:67).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사실 조선교회가 일본 통치하에서 36년 동안 재난과 시험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한국교회가 19506.25 전쟁의 재난과 시험을 당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교회다운 귀중한 교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를 아주 많이 하게 되었고, “주일성수의 예배새벽기도에 전력하게 되었고, 이웃 사랑과 섬김은 물론 원수 사랑과 섬김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고, 그리고 수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을 통해서도 한국교회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철저한 회개와 철저한 주일성수의 예배새벽기도와 순수한 이웃 사랑과 섬김그리고 원수 사랑과 섬김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하시고 귀중하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과 시험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이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면서, 올바른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와 함께 위로와 평안과 감사와 기쁨을 가득하게 받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오늘 대하 7장 본문 말씀의 가르침을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하 7장 말씀을 읽습니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2-16).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첫째 교훈은 비가 내리지 않는 가눔이나 메뚜기가 토산을 먹는 재난이나 염병이 백성 가운데 유행하는 재난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들이 아니고 성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서 일어나는 재난들이라는 교훈입니다. 여기 혹 내가” “혹 메뚜기로” “혹 염병으로라는 말씀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난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둘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재난과 시험을 주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교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우리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때 교만하게 되고 이기적이게 되고 악하게 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재난과 시험을 당하면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셋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재난과 시험을 주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이 스스로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때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얼굴대신 세상의 정치 경제 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자기 생각과 자기 뜻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스스로 겸비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너무너무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하 7장 말씀이 가르치는 넷째 교훈은 하나님의 집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치신다는 교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이 있게 하려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4-16). 하나님의 집 성전에서 즉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면서 땅을 고치신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 더 하면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다섯째 교훈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 예배와 함께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신명이 10장과 이사야 1장과 58장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고어와 과부와 나그네와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10:17-19)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예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들과 특히 목회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제일 먼저 회개하면서 겸비하게 되는 것과 기도에 전력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 쏟아 부으면서 정성껏 예배드리는 일과 그리고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고 그리고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제일 먼저 우리들로부터 처절한 회개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전파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 “이때부터 예수께서 해변에 다니시며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4:17). 성자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7,48).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2:22,2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3).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

 

성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라는 말씀을 전파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통곡하고 울면서 회개와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5:7). “예수께서 심령에 통분이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시더라”(11:33-35).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19:41). 물론 예수님께서 자기 죄와 자기 불행 때문에 통곡하며 우시면서 회개와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죄와 불행 때문에, 이스라엘의 죄와 불행 때문에, 길선주 도사와 이기풍 깡패의 죄와 불행 때문에,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죄와 불행 때문에, 통곡하시고 우시면서 회개의 기도와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고 지금도 그 기도를 드리시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선한 목자 되시는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와 불행 때문에 통곡하며 우셨는데 너무너무 놀라우신 너무너무 엄청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회개하라라는 말씀이 성자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첫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고 기독교의 복음은 회개의 복음입니다. “회개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회개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회개의 삶으로 시작하고 회개의 삶으로 지속되고 회개의 삶으로 마무리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성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라는 말씀이었고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제일 먼저 전한 설교도 회개하라라는 설교였습니다(2:37,38).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지에서 전하고 가르친 것도 회개믿음의 도리였습니다(20:18,20,21). “회개없이는 천국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고 성령도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의 처절한 회개와 참회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18,19,24).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scum of the earth) 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회개를 귀중하게 여기면서 살게 되었는데 저는 신잉의 선배님들이 하신 회개의 고백들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써서 성경책에 넣고 다니면서 읽곤 합니다. 그 고백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다윗).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이사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사도 바울). “나는 망할 지이옵니다”(어거스틴). “나는 작은 벌레입니다”(프랜시스). “나는 버림 받을 죄인입니다”(루터). “나는 망할 자이옵니다”(칼빈). “나는 눈 멀고 병 들고 연약한 죄인입니다”(웨슬레),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입니다”(길선주). “나는 죄인 중의 괴수외다”(이기풍). “이 놈이 주님이 차지하여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주기철)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티끌 같은 미말의 존재입니다”(이성봉). “나는 고멜과 같은 우상숭배한 음녀입니다”(김치선) “나는 어릴 때부터 범죄를 계속한 불의하고도 불충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큰 죄인임을 깨닫고 떨면서 울었습니다”(손양원) “나는 신사 참배한 죄인입니다”(한경직).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박윤선). “제가 잘못했습니다”(김창인, 강원용, 조용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을 조금씩 변질시켜가는 설교자가 되고 있습니다”(옥한흠). “삼합리 교회에서 흘린 눈물의 바다를 본 후로 눈물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가 내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나 혼자 있을 때면 우는 때가 많습니다”(방지일).

 

빌리 그래함 박사님의 딸 앤 그래함 롯츠 목사는 재난을 당하고 있는 미국이 제일 먼저 주력할 것은 처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미국이 왜 이렇게 엉망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은 반드시 핵폭탄이나 IS의 공격, 경제적 붕괴의 형태는 아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향한 약속을 철회하고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심판이다. 구약에서 불순종하고 악행을 행하며, 부도덕하고 우상숭배를 행했던 남유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켜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 하나님은 미국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기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만약 이 나라가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며, 이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 남유다도 심판하셨는데, 왜 우리는, 미국이 그 진노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보호, 사랑을 거두어 가신다면, 정치, 경제, 군사, 기술적인 면이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해결 방법은,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감으로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돌보시기를 간청해야 한다. 교회에서 들어본 기도와 회개 기도는 형식적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가까웠다.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을 찢으며, 애통해하며 하나님을 구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아신다. 나는 자문해 본다. 내가 정말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을 구하며 간청하고 있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이 나라의 죄가 나의 죄인 것처럼 죄를 고백하고 슬피 울며 금식했는가? 나는 미국의 미래가 바로 이 물음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둘째로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성수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한 다음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권면한 말씀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예배의 제사그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 힘써야 할 첫째 일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째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성부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받으며 잘 사는데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8:1). 여기 섬긴다는 말씀은 예배의 제사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9:1).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10:3). 이와 같은 말씀을 출애굽기 4장부터 10장까지 10번이나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는데 있다기 보다는 복 받고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예배의 제사였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8)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성자 예수님께서 구약의 안식일을 완성하신 분 이시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첫 주일 이른 새벽에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함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 열 명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과 함께 성령을 부여하셨습니다. 한 주간이 지난 둘째 주일 저녁에는 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날도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날도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곧 주일이었습니다(1:10). 사도 바울은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함께 모인 성도들과 종일 밤중까지 성찬을 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20:7).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일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인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1).

 

구원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은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성수를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정성껏 드리는 일입니다. “주일성수와 예배보다 더 귀중하고 더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그리고 새벽기도의 신앙도 성자 예수님과 길선주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우리들에게 물려주신 아주 귀중한 신앙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사실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고 살기 위해서 만 11살 때인 19488월 어느 날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한으로 와서 고아와 나그네로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저의 한 평생을 너무너무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실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김치선, 이성봉, 손양원 목사님들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모두 처절한 회개와 함께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고 사시다가 죽으셨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온전한 주일성수의 신앙과 철저한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수한 순교신앙을 거의 모두 멀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저녁 예배를 포기한 교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귀중한 신앙의 유산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재난을 우리들에게 주셨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재난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온전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간절한 새벽기도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너무너무 부끄럽고 너무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주일성수의 예배와 새벽기도는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원칙적인 올바른 일인데 교회에 오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면서 자기 집에서 드리게 되었으니 너무너무 부끄럽고 너무너무 안타깝고 너무너무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셋째로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사는 착한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절한 회개와 함께 정성껏 드리는 주일성수의 예배이고 그리고 이웃과 모든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그것이 구약과 신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착하신 분이신데 우리들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사랑하고 도우면서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10:17-19). 성부 하나님께서는 학대 받는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지 않는 제사와 제물과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1:11,15,17).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와 금식은 주린 자와 벗은 자와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58:6-8).

 

성자 예수님께서도 꼭 같은 아니 좀 지나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공의의 원리대로 행동하지 말고 자비의 원리대로 행동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웃은 물론 원수들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자들을 돌아보며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영생에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38-4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3:1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너희는) 영생에 들어가리라”(25:34-36,40,46).

 

성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던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교제에 전력하면서도 가장 힘쓴 일은 이웃과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이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2:44,45).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4:32-37).

 

그 다음에 욥바에 살던 여 신자인 도르가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9:36-42).

 

그 다음에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함으로 가이사랴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10:1-5).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10:44-48).

 

그 다음 바나바의 착한 삶과 사역으로 안디옥교회가 부흥 발전한 일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4:36,37).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안디옥까지 보내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11:22,24,29,30).

 

아마 사도 바울처럼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불우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손길을 편 착한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고난의 리스트를 길게 나열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아마 사도 바울처럼 자기가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편 착한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이방인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면서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피를 흘리는 것을 기뻐하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사도 바울은 결국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사랑과 도움과 섬김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진정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다가 진정한 사랑과 섬김의 죽음을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재난과 시험은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운 경험입니다. 그러나 선하시고 귀중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난과 시험을 당하는 우리들이 힘써서 하여야 할 일은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하면서 스스로 겸비하여지는 일과 스스로 겸비해져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과 그래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 드리는일과 이웃과 불우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에 전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개겸손기도예배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삶을 살도록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의 삶이 힘든 삶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서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따라서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을 몸에 지니고 사는 삶이 결국 보석이 되고 축복이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됩니다. 사실 극심한 재난과 시험이 없었다면 다윗도 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극심한 재난과 시험이 없었다면 다니엘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사야도 세례 요한도 스데반 집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극심한 재난과 시험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주님을 너무너무 닮고 싶어했던 사람들인 사도 바울과 성 프랜시스와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권능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분들이 모두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과 죽음을 귀중한 보석으로 삼으면서 살다가 죽으셨고 불우한 이웃과 원수들에게까지 사랑과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펴시면서 살다가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우리들도 가난과 고난과 재난과 시험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우리들도 아삽처럼 다윗처럼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86:7).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2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아멘! 아멘! 아멘!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해서 하려고 합니다. 두 분께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가난과 고난의 길을 자원해서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후 5:13). 사도 바울의 몸은 예수님으로 충만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21). 우리 나라에도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으로 충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예수님에게 미쳐서 예수 천당을 외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데려온 사람입니다. 그는 한국교회가 신사에 무릎을 꿇을 때 마지막까지 일본 형사들 앞에서도 예수 천당을 외치며 회개하라고 호통을 치던 사람입니다. 그분은 이기풍, 길선주 목사님들과 함께 한국교회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최권능 목사님입니다. 이분들이 계셨기 때문이 오늘 우리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1865년에 평양에서 출생했고, 길선주 목사님은 1869년에 평남 안주에서 출생했고, 최권능 목사님은 같은 해인 1869년에 평양에서 출생했습니다. 세 분은 모두 평양에서 예수님을 믿었고 평양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나중에는 전국 방방 곳곳에 그리고 만주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김화식 목사님, 그리고 저의 부친 김관주 목사님도 평양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릅니다. 평양은 조만간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평생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한 최권능 목사님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의 본명은 최봉석입니다. 이제 최봉석 목사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최봉석 목사는 예수 천당을 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86917일 평양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7살 때부터 서당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는데 글씨를 잘 썼다고 합니다. 성격은 무척 괄괄하고 급했다고 합니다. 최봉석은 16살 때 평양 감사 민병석의 비서가 되었고 나중에는 평양 감사 아래 감찰의 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찰의 자리를 이용해서 국고금 3만량을 횡령했다는 죄로 반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나중에는 평북 삭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울분 속에서 술에 취해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삭주에는 이미 1896년에 교회가 설립되어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삭주에 백유계란 유명한 한의사가 있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최봉석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참다운 생활을 해 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주고 갔습니다. 최봉석은 복음서를 읽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삭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3살 때였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03년 그가 34살 되었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불에 맞아 죽는 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불 같은 열심이 일어나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을 솟아나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전도는 간단하고 단순했습니다. “예수 천당이라고 소리를 지른 다음 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라고 했습니다. 1905년에는 삭주교회의 집사가 되었고 후에는 영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삭주교회에서 전도와 목회 사역을 너무 열심히 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압록강 지역과 만주 지역을 다니며 예수 천당의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게 했고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1907년에는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며 벽동교회에서 조사의 일을 했습니다. 최봉석 조사는 신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보다는 기도와 전도에 열중했습니다. 공부는 겨우 하고 시간이 있는 대로 평양 거리를 돌아다니며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를 했고 밤에는 밤을 새워가며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에 시험을 볼 때는 백지를 내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여전히 답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험에는 성령님도 쩔쩔 매는구먼!” 그는 다음 날 시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또 평양 거리를 돌아다니며 예수 천당을 병력 같은 소리로 외치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달란트였습니다. 죄인들을 무너뜨리는 가장 성능이 좋은 총탄은 신학탄이 아니라 예수탄이라고 믿고 예수탄을 쏘아 댔습니다. 방앗간 앞을 지나다가 방앗간을 향해 예수 천당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망아지는 놀라서 벌떡 뛰었고 방아가 엎어져 난리가 났습니다. 주인이 최봉석 조사에게 달려 들어 야단을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예수 천당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결국 방앗간 주인은 항복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최봉석 목사는 기도로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최봉석은 1907년에 신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4년 후인 1911년에는 신학교를 졸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이 지났는데도 최봉석 조사는 계속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벽동교회의 교인들이 물어보았습니다. “조사님, 졸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봉석 조사는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1년 더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3년이나 반복되었습니다. 1913년도 졸업생 명단에 최봉석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계속해서 낙제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봉석 조사는 좀 난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인들을 볼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봉석 조사는 교무실로 들어가 교수들을 만났습니다. 3년씩이나 낙제를 한 44세가 된 노 학생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마음은 거북하고 곤란했습니다. 최봉석 조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교수님들에게 아뢸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교수님들 먼저 저와 함께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같이 부족한 죄인을 불러서 예수 믿게 하시고 또 신학교에 와서 공부하게 하시고 또 목사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공부만 잘해야 목사가 됩니까? 하나님의 종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데 저는 기도하고 전도 할레기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들이 나에게 졸업장을 주어 나도 목사 될 수 있도록 길을 열러 주옵소서. 주실 줄 믿고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간절하고 뜨겁게 기도를 했기 때문에 교수들은 모두 덩달아 아멘 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최봉석은 샘 마펫 교장에게 졸업장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교장은 안됩니다. 1년을 더 공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최봉석 조사는 교장님과 교수님들이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합니까? 조금 전에 저의 기도에 모두 아멘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어기면 어떻게 합니까?” 교장과 교수들은 할 수 없이 졸업장을 주기로 했습니다. 전무후무한 낙제의 기록을 세운 최봉석 조사가 이렇게 해서 졸업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당한 기도에는 교수들도 쩔쩔매며 졸업장을 주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런 당당함을 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공부가 제일이 아닙니다. 돈이 제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제일이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가 제일입니다. 최봉석 조사는 당당하게 기도하고 당당하게 전도하고 당당하게 공부하고 당당하게 졸업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며 당당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최봉석 목사는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최봉석 조사는 1913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8월 목사로 안수 받은 후 벽동교회에서 1년 동안 목회하다가 1914년부터 노회의 파송을 받아 만주 전도에 전념했습니다. 넓은 만주 벌판을 1020리씩 걸어 다니며 조선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12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때로는 굶기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와 돌맹이로 맞아서 쓸어지기도 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쓸어져 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은 누구신가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가곤 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때로는 올챙이를 잡아 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소 똥에 들어 있는 콩알을 꺼내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소 똥에서 익은 콩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힘이 났으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시 걸어갔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12년 동안의 만주 전도를 마치고 1926년에 평양으로 돌아와서 평양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 거리는 이제 최봉석 목사님의 예수 천당소리로 날이 밝게 되었습니다. 새벽 4시 마다 들려오는 예수 천당의 외침은 생명길을 알리는 새벽 첫 닭의 울음소리였고 나라 잃은 평양 시민들의 멍든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청량제였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길선주 목사님의 주선이 컸다고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최봉석 목사의 예수 천당소리가 멈추는 날 한국의 예루살렘인 평양이 망한다라고 말하며 최봉석 목사님을 격려하며 돌보아주었다고 합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불타는 심정으로 예수 천당을 외쳤는데 그 소리에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항복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최권능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머리 좋고 설교 잘 하는 채필근 목사가 지나가는데 최봉석 목사님이 큰 소리로 예수 천당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깜작 놀란 채필근 목사는 나 채 목사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최봉석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는 목사지만 뻘지(벙어리) 목사요.” 최봉석 목사님은 거리를 다니면서 큰 소리로 찬송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를 큰 소리로 부르며 지나갔습니다. 일본 경찰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동차가 뿡뿡 울리는 소리는 시끄럽지 않고 내가 부르는 찬송 소리는 시끄럽다는 말이요. 당신들은 교통 사고를 막기 위해서 자동차 소리를 그냥 놔두지만 나는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을 사고에서 구하기 위해 찬송 소리를 내는 것이요.”

 

최봉석 목사님은 일본의 신사 참배를 앞장 서서 반대하다가 1939년 평양 경찰서에 끌려가서 극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기절하면 물을 끼 얹고 기절하면 또 물을 끼 앉으며 고문을 했습니다. 그는 6년 동안 감옥에서 갖은 고문을 다 당했습니다. 고문을 심하게 하면 할수록 예수 사랑 하심은을 큰 소리로 불러서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찬송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감방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은 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고 그의 기도로 힘을 얻고 그의 찬송으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래서 감방이 교회와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사들이 신사참배를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고문할 때마다 최봉석 목사남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영광이요. 나는 죽기 위해서 오늘까지 당신들의 신을 경배하지 않고 살아왔소. 내가 죽으면 천당에 가오. 주님이 나의 집을 예비하고 나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오.” 하루는 형사가 몽둥이로 최 목사님을 때리니까 최 목사님은 매를 맞을 때마다 예수 천당, 예수 천당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형사가 매를 멈추고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물으니까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나를 때리면 내 몸에서 예수님 나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때때로 감방에서 금식 기도를 했는데 194431일 금식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31일부터 40일간 금식 기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사모님과 아들과 딸이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면회를 왔습니다. 그는 반갑게 가족을 맞았습니다. 보통 때는 사모님에게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하면 사모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하므로 간단히 면회를 마치곤 했는데 그날의 면회는 길어졌습니다. “내가 금식 기도 작정한 것을 알고 마귀가 맛있는 음식으로 시험하는군이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애들아, 집에 가서 날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금식기도 끝나는 410일까지 누구도 면회 오지 말고 기도해다오. 미안하다. 땅 위에서 육신을 가진 사람들인데 내가 주님께 충성하다 보니 지나치게 가정과 너희들에게 등한히 하였구나. 하하, 이것도 육신의 생각이지하더니 딸과 부인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지켜 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내가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되고 너희들도 나와 같이 저 낙원에 가서 즐거이 살게 될 때 그때 땅에서 못 받던 위로를 하늘 나라에서 받자.” 그날의 면회는 정이 넘치는 면회였습니다. 그날 가족이 가지고 온 음식은 모두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최봉석 목사님은 40일 금식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411일 병 보석으로 평양 기홀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산정현교회, 장대현교회, 서문밖교회 성도들이 기홀병원으로 몰려들어 목사님! 목사님!” 하고 부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봉석 목사님은 오히려 성도들의 손을 붙잡고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박 집사, 오집사, 왜 이러는가? 그동안 나 위해서 기도 많이 했지. 또 주기철 목사 위해서, 박관준 장로 위해서, 이기선 목사 위해서, 한상동 목사 위해서, 손양원 목사 위해서 기도 많이 했지. 모두 고마워.” 그의 주치의인 장기려 박사가 안정해야 한다고 하며 면회를 사절시키려고 했지만 장 박사, 그러지 마시요. 나를 위해 오는 형제들을 내가 기쁘게 맞이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말하며 성도들을 일일이 맞았습니다. 이렇게 병원에서 15일 동안 의사와 간호원과 가족들의 따뜻한 간호를 받으며 찾아오는 교우들을 다 만나보다가 1944425일 오후 1시에 부인과 아들과 딸과 며느리와 손자와 산정현교회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 하신다하면서 찬송가 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를 부른 다음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신 지 4일 후였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421일 최권능 목사님은 425일 순교하셨습니다. 평양의 어두운 밤 하늘을 밝게 비치던 두 개의 큰 별이 4일 간격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최봉석 목사의 생애는 예수 천당이 전부였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예수 천당의 외침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었고 신사참배에 굴복한 교역자와 신자들의 가슴에 꽂는 양심의 비수였습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지식을 애써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성능이 좋은 예수탄을 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식한 바보가 되었지만 그분 만큼 예수님을 많이 전하고 드러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 70여 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분을 가리켜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 전도의 사람, 사랑의 사람, 순교의 사람이라고 부른 일이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사도 바울처럼 예수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처럼 그 몸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을 그의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아버지이신 이기풍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천국에 가서 그분들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게 미쳐서 살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돈과 명예와 자리에 미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간젛리 바하고 소원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에게 있어서 가난과 재난과 시험은 귀중한 보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년 전인 200051일 신촌성결교회에서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강좌를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에 대한 신학적 조명이라는 제목으로 9 가지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두 번째 주제인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이라는 주제로 한 강의의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인용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6.25직후 중학생 시절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생활을 했는데 그 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너무나 귀중한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고 12번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너무나 귀중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이었습니다. 잠자는 교회를 일깨우기 위해 농어촌 교회까지 찾아가서 부흥회를 인도한 부흥사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구령의 사명 완수를 위해서 그의 온 정력 모든 시간과 물질과 심지어 가족까지 다 희생의 제물로 주님께 바쳤습니다. 순회 집회하는 부흥 목사로 불가피하게 가족을 위해서 작은 집 한 채를 준비했던 일이 있는데 얼마 안 가서 어떤 교회 건축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근근이 장만한 그 집을 선뜻 팔아 전도사의 손에 들려주고 가족은 셋방으로 옮겨 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6.25 동란 이후에는 무너진 성결교회 제단 하나하나를 다시 세우는 교회 재건 운동을 일으켰고 마지막에는 일체의 큰 집회나 외부 집회를 단절하고 매일 수 십 리씩 걸어 다니며 농어촌 교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소 구루마로 덜커덩 덜커덩 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리어카를 타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자전거 꽁무니에 타고 가다가 험한 길에 넘어져서 버드럭 거리기도 하고 어떤 데서는 잘 곳이 없어서 소 외양간에서 한 밤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때로는 1년에 82곳의 집회를 인도했고 때로는 하루에 5, 6회의 집회를 인도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영혼 사랑과 교회 사랑에 사로잡혀 복음 전파에 한 평생을 헌신하며 수고와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길을 걸어가신 이성봉 목사님의 삶과 사역은 우리들에게 감동적인 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마다 사례비를 적지 않게 받으시곤 했지만 그 사례비를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보다는 작은 교회들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사모님과 세 명의 딸들은 가난한 살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큰 부자로 살 수도 있었던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스스로 거지와 같은 청빈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이야말로 주님 사랑과 영혼 사랑에 사로 잡혀 구령과 교회부흥 사역에 헌신하시면서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사신 그리고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을 사신 너무너무 귀중하고 너무너무 보배로운 신앙의 선배님이라고 생각하며 이성봉 목사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목사님을 기립니다. 조금이라도 본 받고 싶습니다.

 

이것으로 오늘 감당할 재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 또는 강의를 마무리 합니다. 찬송가 환난과 핍박 중에도”(383, 336)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 후”(289, 610)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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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04 [15: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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