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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2.01 [09:09]
생의 의지가 약해지거든 그곳으로...
보리피리 불며 황톳길 걸어 다다른 애양원
 
김철영

매화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하얀 목련, 자주 빛 목련꽃으로, 들녘은 쑥쑥 자란 푸른 보리밭과 순백(純白)의 하얀 배꽃으로 남도의 산야(山野)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개천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 강렬함마저 느끼게 하는 남도 해변에서 불어오는 갯내음 섞인 보드라운 봄바람에 마음까지 촉촉하게 젖어들었습니다.

마음이 적적하고, 지칠 때면 어김없이 찾곤 했던 사랑의 동산 애양원(愛養園)을 다시 찾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전함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리움'입니다. 언제나 맑은 소녀같은 음성과 미소로 반겨주시던 '그분'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을 한 무더기 이끌고 허름한 양철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서 와요, 어서 와요!" 반기시며, 손수 키우던 토종닭을 잡고, 집 뒤란 텃밭에 심겨진 싱싱한 야채를 뜯어 상을 차려 주시던 이순임 할머니, 그 분의 사랑의 흔적만을 더듬을 뿐 뵐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럴 줄 알면서도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두해 전 늦가을에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실 때도 미리 죽음을 예감하시고는 전 재산이었던 텃밭을 판 돈 300만원을 대학생들을 위해 기부하셨고, 학생들을 불러 집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감들을 다 따가도록 하셨고, 병원에 입원하신 후 그 다음날 새벽 하늘나라로 옮겨가셨습니다. 자식이라고는 출가한 딸 한 명이었지만, 그분의 사랑을 받았던 수많은 아들, 딸들이 빈소를 다녀갔습니다.

소녀 같은 얼굴로 고이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본 후, 할머니가 사셨던 그 집을 찾았을 때, 그분이 남기고 간 것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나무의 서너 개의 홍시와 토종닭 세 마리, 고양이 5마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두어 평 남짓 되는 방에는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부지런 살고 있는 아들, 딸들의 사진과 안부편지가 벽면에 붙여져 있었습니다.

참 아름답고 단정한 삶을 살다 가신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특별한 분이셨구나 라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정말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1970년 초,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애양원으로 오셨습니다. 애양원은 소록도와 함께 음성나환자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한 촌입니다.

문둥이 아픈 울음을 안으로 안으로 삼키며 고독한 생을 노래하며 살다간 파랑새의 시인 한하운 님은'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붙인 '전라도 길'이라는 시에서 슬프고, 처절한 고통의 삶을 지닌 나환자들의 여정을 이렇게 고백했지요.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全羅道) 길"

가시덤불 동산이었던 그곳은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나병을 치료하는 재활병원이 생기면서, 이웃들과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생을 한탄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버렸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명령을 따라 낯선 이방의 땅에 와서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신들을 치료하려고 애를 쓴 그 낯선 이방인 의료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감동을 받고, 그들도 신앙을 갖게 되면서, 그 자신들을 사랑하게 되고, 생의 의지를 되살려냈던 기적의 동산이라고 해서 '애양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일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눈도 잘 안보이고, 입도 비뚤어지고, 손가락, 발가락도 성하지 않은 그분들이 성서를 달달 암송하는 것을 보면서 그곳을 찾은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힘과 생의 의지를 강하게 심어줬습니다.

또한 그곳은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반대해서 옥고를 치루셨고, 여순반란사건 때는 좌익학생들에 의해 두 아들을 잃었지만 아들들을 죽인 학생들을 양자(養子)로 삼았던 '20세기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님이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다 6·25 때 공산당의 총에 맞아 순교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속에 찌들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찾아와서 맑은 샘물 같은 영성을 회복하고 가기도 합니다.

건강하셨던 이순임 할머니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 오셔서 돼지와 닭을 키우며, 작은 텃밭을 가꿔 삶을 이어가시면서, 할머니는 이곳을 찾아오는 대학생들을 위해 사랑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셨습니다. 학생들이 며칠씩 지낼 때는 싫은 내색 한번 안 하시고 식사를 챙겨주셨습니다. 그분은 배운 것도 별로 없지만, 두 세시간을 말씀하셔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청순한 소녀 같은 감성과 언어로 젊은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할머니가 안 계셔서 허전했습니다. 그냥 보면 불쌍한 분처럼 생각되는 그 할머니의 삶은 참으로 훌륭한 삶이었습니다. 불쌍한 시골 할머니처럼 비춰졌을지 몰라도 그분의 사랑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사랑의 불을 지피는 일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사랑을 하고,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분들이 말없이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나갈 것입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이에 나는 어느새 혼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아니, 나 또한 그들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나도, 이순임 할머니처럼 많은 이들에게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위대함은 평범한 속에 감춰져 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누구든지 생의 의지가 약해지고, 마음이 답답하거든 그곳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갯바람 불어오는 남도 해변/ 애양원 동산에 가면/먹구름 짙게 드리운 세상에/봄처녀 설레는 가슴으로 사시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를 만난다/허름한 양철집 뒷편 텃밭 일구며/새벽녘 닭울음 소리에 놀라/통곡하며 도망치듯 달려온 이들의/어머니가 되어 위로하시며/…."(시 '이순임 권사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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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15 [22:0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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