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0.11.29 [00:58]
종암동의 50년 등대역할 한 종암중앙교회
1970년 11월 1일 개척해 종암동 주민들과 애환 함께 나눠
 
김철영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소재한 종암중앙교회(담임목사 조성환)가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 종암중앙교회     © 뉴스파워

 

1970111일 조경대 목사(원로목사)와 사모를 중심으로 종암동 상가 2층을 임대해 종암중앙교회를 시작한 지 만 50년이 되는 오는 111일 오후 교회설립 50주년 기념감사예배를 드린다.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성환 목사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종암동 주민이 저에게 지난 50년 동안 아름다운 종암중앙교회가 종암동을 지켜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말해 큰 격려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성환 목사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전도신학자로 널리 알려진 제임스 케네디 박사가 세운 미국 낙스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와 미국 비블리컬신학교에서 구약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던 중 2006년 귀국해 20081월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조 목사는 담임목사를 맡아 내실 있는 목회에 집중했다. 우선 예배당을 리모델링했다. 장엄한 분위기의 예배당을 밝은 분위기로 바꿨다. 대신 1200석 규모의 실내를 700석 규모로 바꾸면서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바꿨다.

 

이와 함께 지난 2013년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회 1층에 국공립어린이집과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립 돌봄센터를 유치해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의 역할을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예장개혁(개신)총회 제104회 총회장에 취임해 전국 교회를 섬겼다. 조 목사는 예배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 헌신하는 교회, 교육하는 교회를 목표로 삼고 성도들을 진리와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

▲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소재한 종암중앙교회(담임목사 조성환)가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았다.조성환 담임목사     © 뉴스파워

 

종암중앙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은 성북구와 강북구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생업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면서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교회 주변도 생필품과 먹거리를 파는 가게와 식당들이 많다.

 

조 목사는 성도들의 형편을 돌아보면서 결심했다고 한다.

 

성도들이 힘들게 돈을 벌어서 헌금하는데 그 돈으로 은행 빚을 갚는 데 사용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 리모델링도 대출을 받지 않고 가지고 있는 예산의 범위 안에서 공사를 했다.”

종암중앙교회를 설립한 조경대 원로목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분으로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서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던 이기풍 목사가 사역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어 그 후유증으로 순교한 전남 여수시 남면 우학리교회 출신이다. 조경대 원로목사는 모친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조경대 목사는 순천성서신학원과 성경 66권 주석을 쓴 이상근 박사가 가르치고 있던 대구신학교를 졸업하고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경북 군위와 순천 대대교회 등에서 목회를 하면서 큰 부흥을 이루었다.

 

이후 서울 장충동교회에 부목사 청빙을 받고 설교를 했지만 황해도 출신의 한 장로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이 종암중앙교회를 개척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교회는 개척한 지 얼마 안 되어 200여 명이 모일 정도로 성장을 했다. 조경대 원로목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의 인연도 화제였다.

 

원로목사님과 육영수 여사와 친분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 여사가 비서를 보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를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의자를 구입하라고 당시 돈으로 50만원을 주셨다고 한다.”

 

▲ 종암중앙교회 설립자 조경대 원로목사     © 뉴스파워


조경대 원로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토요일에 청와대를 방문해 육 여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했다. 불교신자였던 육 여사가 기독교 목사와 교인들을 호의적으로 대하고 후원까지 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조경대 원로목사는 서울역 앞에 가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 중에 전라도 말씨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전도해 교회로 인도했다. 매주 삼각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한다.

 

특히 1979년 예장합동 총회가 분열하면서 호남 출신과 호남이 중심이 된 예장개혁총회의 서울의 중심 교회 역할을 했다. 광주에는 광주중앙교회가 있었다면 서울에는 종암중앙교회가 있었다.

 

예장합동과 예장개혁으로 분열된 후 호남 출신의 성도들이 종암중앙교회로 모여들었다. 종암중앙교회는 한때 5,0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였다. 조 원로목사는 예장개혁 총회장과 한기총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종암중앙교회는 지난 2002년 개신대학원대학교를 설립했다. 개교회가 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조성환 목사는 20081월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안정적인 목회를 해오고 있다. 무리하게 사역을 강행하지 않고 장로들과 교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면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조 목사는 홀로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그곳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박정신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예장합동과 개혁으로 분열되기 전에 같은 조 목사의 아버지와 같은 경기노회 소속으로 가깝게 교제했던 고 박명수 목사(예장합동 증경총회장 역임)의 아들이다. 박 교수는 그를 잘 챙겨주었다. 한인학생회장도 지냈다. 매월 60만원의 생활비로 어렵게 공부했지만 박 교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박 교수는 숭실대 교수와 부총장으로 재직했으며, 몇 년 전 작고했다.

 

▲ 종암중앙교회 조성환 담임목사의 집무실 서재에는 원서들이 많다.     © 뉴스파워


개신대학원대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조성환 목사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목회자가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잘 양육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2500여 명이 모이는 미국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20대의 청년 목사가 주일예배 설교를 한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이 있었다. 한국교회도 목사가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해야 한다.”

 

조 목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더 부정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서 결국 목회자와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교회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50년 동안 종암동을 비쳐온 등대역할 해온 종암중앙교회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역민들의 목민센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20/10/28 [19:05]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종암중앙교회] 종암동의 50년 등대역할 한 종암중앙교회 김철영 2020/10/28/
[종암중앙교회] “조경대 목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김철영 2011/07/30/
[종암중앙교회] 종암중앙교회, 부당한 퇴직금 지급 논란 이인창 2008/02/20/
[종암중앙교회] 종암중앙교회, 조성환 목사 위임목사 청빙 김철영 2007/12/28/
[종암중앙교회] 검찰, 조경대 목사 '살인음모' 무혐의 처분 김철영 2007/10/17/
뉴스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