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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26 [06:22]
"순교자 문준경은 효부(孝婦)였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으로 알려진 것은 백정희 전도사의 증언에만 의존했기 때문"
 
김철영

 

 

▲ 그녀의 순교의 삶을 통해 수많은 목회자들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민성, 이봉성 목사님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강경구

  

낙도의 순교자문준경 전도사(1891.2.2.-1950. 10.5)를 다룬 책들에는 남편에게 버림 받은 비련의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 문준경 전도사     

 

문준경 전도사의 삶과 사역을 자료와 증언을 통해 새롭게 정리한 정근태 문준경의 방계 4대손인 정원영 목사(서울 은평구 제일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문준경이 살았던 집 바로 뒷집에서 살았고, 문 전도사로부터 복음을 받았던 성장금 할머니를 만나 증언을 들은 결과 정근택과 문준경은 사이가 좋았다. 다만 자녀가 없는 관계로 둘째 부인을 얻었으나 이것도 대를 끊을 수 없다는 문준경의 권유로 이루어졌다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 목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을 역임한 이만신 목사의 자필증언도 공개했다.

 

아버지는 문준경 전도사님을 숙모님이라고 불렀고, 어머님은 문준경 전도사님을 이모님이라고 불렀고, 저는 전도분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증동리교회는 문준경 전도사의 큰 시숙 정영범 씨 사랑방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문준경 할머니가 남편과 동거하지 않은 것은 애를 못나서 동거하지 않았고, 호적상으로는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인으로 알려졌을까? 그것은 문 전도사의 수양딸 같았던 백정희 전도사의 증언을 토대로 한 섬마을의 순교자라는 책이 출판되면서다. 그 책은 순교자 문준경에 대해 다룬 최초의 책이다.

 

정원영 목사는 백정희 전도사는 문준경 전도사와 1940년에서 1950년 순교 직전까지만 함께 생활했다. 그래서 문준경의 초기 결혼생활을 완전히 알고 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문준경은 이미 신앙 안에서 결별한 상황이었고 또한 자녀도 없었다. 젊은 날의 그리움은 한이 맺힌 과거의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방꼐 4대손 정원영 목사(제일성결교회)     ©뉴스파워

 

정 목사는 결혼 초기의 정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백정희의 입장으로는 부지불식간에 퇴박당한 것으로 각인되어 실제와 다른 증언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 목사는 특히 문준경과 백정희의 만남은 문 전도사가 임자교회를 거쳐 증동리교회로 부임하여 4년째 시무하던 중에 만났다. 백정희는 신안군 암태도 도창교회에서 전도사로 1년 봉사하다가 다시 고향 논산에 가 있었다.”문준경은 백정희를 찾아가 홀로된 처지의 외로운 사람끼리 모녀처럼 살며 농사도 짓고 주의 일을 하자고 설득하여, 1941320일에 증동리로 함께 입도하게 된다.”이후 백정희는 문 전도사와 약 106개월 간 같이 생활했고, 6.25동란의 여파로 195010월 순교까지 동거했던 유일한 증언자라고 밝혔다.

▲ 성결교단 최초 여성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가 최초로 개척한 임자진리교회 / 사진 돌봄여행사 여행일지에서     ©뉴스파워

  

정 목사는 백정희 전도사의 증언이 없었다면 섬마을의 순교자, 순교자 문준경은 없었을 것이라며 백 전도사가 문준경을 결혼 초야부터 소외당한 여인으로 증언한 것은 아마도 둘의 삶이 너무도 닮은꼴이어서 자신의 삶의 모습이 문준경에게 투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백 전도사가 문 전도사의 과거사를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버리고 깊은 연구도 없이 기록을 남긴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며 정근택과 문준경의 결혼 생활에 대한 잘못 알려진 내용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신혼 초 남편의 사랑을 받은 여성이 가문의 후손을 잇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떠난 이야기가 사실로 드러났다.”문준경은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인이 아니라 정 씨 집에 효성 있는 며느리이자 시아버지의 3년 상(喪)을 지킨 효부이며, 인화력과 덕성을 지닌 양반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방계 4대손인 정원영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일교회     © 뉴스파워

 

정 목사는 정 씨의 둘째 부인의 큰 딸의 이름 문심은 문준경의 심성을 곱게 여긴 큰 시숙이 지은 이름으로, 문준경의 성과 착한 마음을 합하여 문심으로 지었다고 한다.”문준경은 큰 딸을 친딸처럼 사랑한 고운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지금도 호적에는 정 씨의 둘째 부인이 낳은 34녀가 문준경의 자녀로 등재되어 있다.”며 남편으로부터 첫날밤에 소박맞은 비련의 여인으로 묘사된 문준경 전도사에 대한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만신 목사(한기총 명예회장)©뉴스파워


기성 총회장과 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고 이만신 목사는 기성 총회 잡지 <활천> 2014년 3얼호에 "문준경 전도사를 그리워하며"라는 기고문을 통해 "문준경 문준경 전도사와 나는 아주 특별한 관계이다. 우리 할머니가 문준경 전도사의 손위 시누이가 되고, 어머니는 문 전도사의 언니의 딸이니, 아주 가까이 지내며 우리 집에 드나드셨다."며 "또한 신앙적 입장에서 보아도 최초의 (증동리교회) 주일학생이다. 그분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큰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문준경 전도사의 신혼 초 이야기가 잘못 증언된 부분이 있었기에, 나는 소박당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곤 했다."며 "잘못된 부분은 연구자들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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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6 [12:2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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