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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0.30 [10:03]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구룡마을 소망교회 주일예배 설교(20.10.4)
 
김명혁

 

성경:6:20, 119:71, 7:3, 5:4, 5:18

▲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     ©뉴스파워

 

지난 6월부터 7월, 8월, 9월, 10월 3일까지 구룡마을 40가정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서 격려를 했습니다. 마침 구룡마을 소망교회 문양금 목사님께서 설교를 부탁하셔서 오늘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셨는데
, 그 중의 하나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유익하게 보석으로 만들어 주신 사랑과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좋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6:20).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7:3).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5:18). 사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말 구유에 태어나신 다음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극치를 친히 몸에 지니고 사시다가 죽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고 매 맞음은 물론 불치의 병까지 몸에 짊어지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리스트를 길게 나열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사도 바울은 나중에는 불치의 병에 걸리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의 불치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건강하면 교만해지기 때문에 겸손 하라고 불치의 병을 사도 바울에 주신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불치의 병인 약한 것들까지 자랑하며 기뻐하게 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7-10).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후 4:12,13).

 

주기철 목사님도 손양원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장기려 박사님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사셨고,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사셨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불행으로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석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우리들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셨으므로 결국 가장 존경을 받는 목회자와 순교자가 되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셨으므로 결국 가장 존경을 받는 순교자가 되셨고 사랑의 원자탄이 되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셨으므로 결국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셨으므로 결국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는 부흥사가 되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셨으므로 결국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한국의 작은 예수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도 그렇게 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셔서 평생토록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달려가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삶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평생 이별해서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게 하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주일을 바로 지키며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8월 어느 날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북에 두고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왔습니다. 결국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별하고 평생 고아와 나그네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제가 북한을 떠난 지 2년 후에 평양 외곽의 사동 탄광에서 순교를 당하셨고, 어머니는 그 후에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평생을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을 것입니다. 저는 월남 후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아주 감사했지만 몇 년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으로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목사와 교수가 되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좋다고 하시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모님 집에서 살기는 했지만 비행기 탈 돈이 없어서 104불을 주고 미국 군함을 타고 2주 반 동안 걸려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주머니에는 단 돈 100불이 있었습니다. 저는 단 돈 100불을 가지고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방학 때는 물론 학기 중에도 온갖 아르바이트 즉 온갖 노동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저는 인쇄소 일, 화장실 청소, 건물 페인트, 주택 페인트, 정원 가꾸기, 식당 웨이터, 식당의 접시 닦기, 화학도금 공장 일, 선물 판매 상점에서 판매원의 일, 백과사전 판매, 등등 수고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여러 가지 수고의 경험은 저의 삶을 폭 넓게 그리고 포용적으로 친밀하게 만드는 귀중한 보석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12년 동안 했습니다.

 

 

제가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 날, 제가 19488월 북한을 떠난 지 17년 후인 196510월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저의 친구 한 분이 북한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해서 편지를 써서 홍콩을 통해서 북한에 보냈더니 어머니가 받아보시고 두 달 후에 저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내셨습니다. 그 편지의 사본을 저는 언제나 성경책 속에 넣고 다닙니다. 편지 원본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 했을 때 중앙정보부 즉 안기부에 빼앗겼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였는데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라는 말씀을 자주하시던 어머니였습니다. 편지 사본이 여기 있습니다. “내 아들 명혁에게 95일 네의 편지와 동시에 외로이 자라 성인이 된 내 아들 명혁이에 얼굴을 더구나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 보고 십고나. 이 내 기쁨을 지면상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명혁아! 나는 네 말 그대로 오래 오래 살어서 내 사랑하는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겟다.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디 건강하기를 축원하면서. 어머니 글 929저는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저는 한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 보석이 되었습니다. 제가 부모 없는 고아로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게 된 것도 이 세상의 수많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하는 보석의 역할 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먼저 떠나 보내는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주신 이야기를 합니다. 철원이는 19731111일 미국 예일대학이 있는 뉴 헤이븐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뇌수종 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4년 동안 머리뼈가 벌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지내다가 19771010일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습니다. 저는 만 4년 동안 철원이의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함께 체휼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장 뜨거운 기도와 사랑을 그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철원이는 아마 제가 가장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하던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철원이에게 써서 보낸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편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철원이를 무덤에 묻고 돌아와서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가 신문에 발표되었는데 저의 많은 제자들이 감동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고생과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고 이제는 주님의 품 안에서 고운 옷을 입은 동무들과 함께 주님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네가 즐겨 부르던 찬송 소리가 지금도 아빠 귀에 쟁쟁하구나.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걱정 근심 대신 재미 많도다. 예수께로 가면 기쁘리로다.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도다.’ 가사의 뜻을 되새겨 물으며 몇 십 몇 백 번을 아빠와 함께 부르던 그 찬송가의 뜻이 정말 그대로 이루어졌구나! ‘아빠, 걱정 근심이 아야 아야 이렇게 아픈 거지? 재미 많은 게 뭐야? 아프지도 않고 좋고 기쁜 거지? 아빠,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이렇게 물어봐.’ ‘그래 철원아, 누구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철원이와 같은 아이 부르셨지 뭐.’ ‘누가 부르셨나?’ ‘예수님이 부르셨지 뭐.’ ‘철원아 네 마음이 슬프나 기쁘나?’ ‘기뻐!’ ‘왜 기쁜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기쁘지!’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견디기 어려운 그 아픔 중에서도 너는 그렇게도 잘 참았고 기뻐했지! 철원아 너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아픔을 당하였단다. 머리 속 뇌수의 압력이 너무 심해져 머리뼈가 벌어질 정도의 아픔을 당하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울곤 하던 네 모습을 생각만 해도 이 아빠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만 같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아픔을 당할 때마다 아빠에게 기도해 달라고 했었지? 이 아빠는 너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되었단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죄를 뉘우치며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아빠가 너를 위해 오래오래 (때로는 종일) 기도할 때마다 너는 그렇게도 좋아했지. ‘아빠는 기도를 잘 해서 최고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렇게도 괴롭고 아픈 나날을 보내면서도 너는 한 번도 하나님이나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지! 마지막 1년 동안 시력을 잃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너는 한번도 답답하다고 불평하지 않았지! 아빠는 너의 마음속에서 천국의 평화와 기쁨을 볼 때마다 천국이 점점 더 가까워짐을 느끼곤 했단다. 네가 시력을 잃은 마지막 1년 동안 때때로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라고 말하던 뜻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을 보는 너의 눈을 가리우시고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여시었던 것을 이제야 분명히 깨닫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괴로울 때마다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너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지.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 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도 더 아프셨지!’ 네가 하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구나! 너는 예수님 앞에 설 때 그래도 조금은 떳떳함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너 위해 당한 고통의 몇 만분지 일을 너도 경험했으니 말이다. 고난의 축복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너 철원이었단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너는 커서 목사님이 되어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겠다고 늘 말하곤 했지. 네가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려보낼 수 있게 되기를 아빠가 늘 기도하던 것을 너도 잘 알지? 철원아 이제는 이 아빠가 너 대신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철원이의 몫까지 이 아빠가 다 하겠다. 아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보고 싶은 철원이 얼굴을 기쁨으로 대하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참으로 고맙다. 아빠는 너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우려고 한다. 고난의 의미와 천국의 평화를 가르치고 먼저 주님의 품으로 간 어린 아들 철원이가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여기 편히 쉰다. 주후 19731111일에 나고 주후 19771010일에 가다.” 저는 철원이 때문에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울면서 살아왔는데 그것이 저에게 보석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바꾸어주신 이야기를 네 가지로 나누어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저의 이기적이고 비판적이고 강퍅한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좋게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7:3) 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저의 강퍅한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좋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면서 울고 또 울 때 사람은 조금은 낮아지고 조금은 겸손해지고 조금은 따뜻해 지고 조금은 부드러워집니다. 많이 운 사람의 마음이 울지 못한 사람의 마음보다는 겸손하고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울면서 화해하고 또 회개하게 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이 극치로 나타난 십자가에로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 사건 때 성부 하나님은 캄캄해진 하늘로 얼굴을 그리우시고 통곡하시면서 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시면서 통곡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십자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십자가와 나라는 주제로 15번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고 성경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엄격히 말해서 고귀한 가르침도 아니고, 사랑의 윤리도 아니고, 사회정의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운명과 삶을 변화시킵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원수 맺음이 화목으로, 이기적 삶이 헌신의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나는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는 가장 비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곳이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며 동과 서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십자가 그늘 아래 있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뒤에 숨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만을 사랑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십자가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2:15) 라고 하신 말씀을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974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교육목사의 일을 몇 년 동안 했는데 그 때 제가 가르치던 후암교회의 대학 청년부에 원의숙 이라는 믿음이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쓸어졌습니다. 결핵 말기였습니다. 저는 원의숙 청년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산 결핵요양소로 달려 갔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를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우물 10여 개 이상을 파 주기도 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안과병원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아프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에 참예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오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고 있는 중국에 있는 우리 조선족 고아 학생들 150여명에게 지난 20여년 동안 사랑과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저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통해서 천국을 사모하며 바라보게 만들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어린 아들 철원이를 생각할 때마다, 순교하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천국이 그리워지고 천국이 사모됩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천국이 그리워지고 천국이 사모됩니다.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지 모릅니다. 현대교회가 현세적인 축복에 사로잡혀 있는데 부족한 저로 하여금 천국을 사모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천국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 저는 얼마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듯이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답게 사랑하시던 어머니를 붙잡고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두 손과 두 팔과 온 몸을 안겨드리면서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시는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드리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길 충성의 길 순교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품에 힘껏 안겨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을 속삭여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슬프고도 아프게 사랑하던 어린 아들 철원이를 품에 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고 속삭이는 모습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족들과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부족한 전도와 목회와 선교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섬기게 된 수 많은 성도들! 부족한 나에게 눈물과 기도와 사랑을 쏟아 바친 수 많은 성도들! 강변의 성도들을 비롯한 지구 곳 곳에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 집으로 올라와서 다시 만나게 된 수 많은 성도들을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워 하는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 (2008831일 밤). 욥이야말로 극도의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과정을 지나면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재 가운데 앉아서 회개하면서 울게 되었고, 그리고 자기를 비난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너무나 귀중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사실 성 프랜시스는 다음과 같은 귀중한 고백을 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자매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귀중한 고백을 했습니다.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이고 죽음은 나의 소원입니다.” 너무너무 귀중한 고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울면서 회개하게 만듭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짊어지신 주님의 마음에로 그리고 십자가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듭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듭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게 만들고 슬픔을 당한 자들과 함께 슬퍼하게 만듭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천국을 사모하며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특별한 축복입니다. 저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는 지난 6월부터 매달 한 번씩 구룡 마을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건 중국 사람이건 일본 사람이건 러시아 사람이건 아프리카 사람이건 아프가니스탄 사람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의 몸과 마음에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가득히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주님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과 가슴에 지니고 울면서 사랑하면서 십자가적인 보배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보석으로 만들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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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30 [11:2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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