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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0.01 [23:02]
[성경통독 가이드]대선지서 II: 예레미야서 3
김정권 장로의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189
 
김정권

 

 통독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신구약을 통으로 읽는 것이다. 이 메모는 신구약 1,189장을 4장씩 묶어서 298회분을 게재 할 예정이다. 매 성경 모두(冒頭)에 필요한 연대나 자료를 제시하여 성경 읽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매 장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었는데 성경 메모는 단락 별로 제시하였고 지방이나 성읍과 일부분이지만 인명은 간단한 각주로 처리하였다. 본문과 대조하여 읽기 바란다. 단락별로 필요한 경우 적용과 기도를 넣었다. 이 메모에서는 논쟁이나 비판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의 흐름, 맥락, 요의, 함의, 경우에 따라서는 내용 정리 등을 기술하였고 가능한 간단히 처리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적색으로 된 것은 모두 성경 본문의 각주(脚註)이다. 성경은 우리의 맛있는 양식이며, 성경을 읽음으로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 진다.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     © 김정권

 

  

                       예레미야서 8-11장 메모

  

<8 > 패역한 백성의 비극적 운명

 

   * 8:18-9:8은 예레미야의 애가(哀歌 슬픈 노래)이다.

 

[범죄 한 나라 유다가 받을 고난] (8:1-3)

 

  지도자들과 백성의 뼈가 해 아래 드러나서 거기서 분토(墳土)가 될 것이며 남아서 쫓겨난 백성은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낳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유다의 최후는 처참할 뿐이다.

 

[죄와 벌] (8:4-8)

 

  자연의 미물들도 올 때와 갈 때를 알고 자연의 법칙에 맞추어서 생존해간다. 그러나 유대 백성은 범죄적 행위에서 돌아서 올 줄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회개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기 때문에 그 속으로부터 부패하게 되며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완전히 부패한 백성과 지도자] (8:9-12)

 

  백성으로부터 모든 지도자까지 거짓되고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도덕적 불감증인데 이는 그에게 생명력이 상실되어서 느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죽은 자가 더운 것과 찬 것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영적 죽음은 선악의 구별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호소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하는 것이었다. 지도자들은 무사안일과 무책임한 평안을 전파하여 백성이 더 타락하게 하였다.

 

[유다 백성에게 내릴 벌] (8:13-17)

 

  심판의 임박을 다시 강조한다. 예레미야는 이미 심판이 이루어진 것같이 과거 시제를 썼으나 예언 당시는 예루살렘이 점령되기 전이다. 이는 예언의 확증을 의미한다. 8:14, 15은 백성들이 고난을 겪을 때 나타날 한탄을 예언한 것이다. 북방의 바빌로니아 즉 독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물게 할 것이다.

 

   * 8:16의 단은 이스라엘 최북단의 성읍이다. 북쪽에서 군대가 내려온다는 뜻이다.

 

[예레미야의 애가 1] (8:18-22)

 

  선지자의 번뇌; 딸 내 백성은 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인가? 선지자는 자기 백성이 돌아오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본강점기를 겪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벌은 임하고 백성은 회개하지 않아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위험한 상태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간장이 녹아나는 심정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9 >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

 

   * 8:18-9:8은 예레미야의 애가(哀歌 슬픈 노래)이다.

 

[예레미야의 애가 2] (9:1-8)

 

  유다 멸망에서 오는 선지자의 슬픔; 예레미야는 민족의 멸망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머리 전부가 눈물주머니이며, 눈은 눈물의 근원이라는 표현으로 아픈 심정을 노래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 칭한다. 백성들이 속이는 일에 익숙하여 서로 속이고 겉과 속이 달라서, 속에는 거짓과 음해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겉으로는 평안을 이야기하는 패악한 백성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녹여서 다시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는 딸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하나님의 보복] (9: 9)

 

  거짓을 행하는 백성을 하나님이 보복하시지 아니하겠는가? 예레미야는 독백처럼 말한다. 그렇다. 거짓을 행하면 비록 북쪽의 바빌로니아 군대가 내려오지 아니해도 멸망하게 된다. 거짓은 암과 같은 것이어서 사회파괴를 가져오고 그 사회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침입군을 막아 낼 수 있겠는가? 무력한 사회, 무력한 국가는 스스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의 황폐화] (9:10, 11)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 주민이 없고 짐승도 없을 것이다. 사람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파괴되어서 들짐승도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는 사람 때문에 생긴 황폐이다.

 

[하나님의 계획: 디아스포라(이산)] (9:12-16)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순종하지 아니하며 바알을 섬기는 이 백성을 벌하시고 여러 나라에 흩으실 것을 말한다. 이 백성이 바알을 섬기고 거짓을 행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떠났으니 쑥과 독한 물을 마시게 할 것이며 여러 나라에 흩어 버리시고 칼이 그 뒤를 따르게 하여 진멸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산(離散; 디아스포라)의 역사이다. 현재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지에 흩어져 살고, 세계 정치와 경제계의 지도자 그리고 지성들을 수없이 배출하였다. 그들의 고난의 역사에서 생겨난 소산들이다. 죄인들은 진멸(盡滅)되고 남은 자들의 역사이다.

 

[애곡(哀哭)과 버려진 사체들] (9:17-22)

 

  예레미야서 917, 18절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가족 외에 곡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곡을 하게하고 그들로 만가(輓歌;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한다. 국가가 멸망할 때도 이런 유의 곡할 꾼을 부르라는 예레미야의 호소이다. 백성 전체가 애곡(哀哭)하라 이른다. 전쟁에서 사체를 거두어 줄 사람이 없어서 들에 그대로 버려질 것을 그린다. 한 폭의 그림으로 이 장면을 그려 보라.

 

[여호와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公義)를 알라] (9:23, 24)

 

  인생의 지혜, 용맹을 자랑하지 말고 여호와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 참 생명을 아는 것이 참 지혜이다. 믿음의 역사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5:6). 사랑은 모든 율법을 성취시키는 키워드이다. 그 안에 정의와 공의가 있고 참 지혜가 있으며, 용맹과 부()도 있다.

 

[심령의 변화가 없는 자 즉 벌 받은 자] (9:25, 26)

 

  할례를 받지 못한 자, 할례를 받았으나 중심(심령)의 할례를 받지 않은 자 모두 하나님이 벌하신다. 할례는 이스라엘의 전승(傳承)이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으로 이방인과의 구별됨을 의미한다(17:10-14; 7:8). 그러나 마음의 할례는 없고 육체적 할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요. 심령의 변화이다. 율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심령이 새로워져서 삶의 표현으로 지켜지는 율법이 참 율법이지 외식으로 지키는 율법은 죽은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은혜로 받은 믿음 성화로 이루어진 사랑 율법의 완성(벧후1:5-7; 5:6)이란 도식(圖式)이 성립된다.


<10 > 천지의 주제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무능한 우상

 

[하나님과 우상: 도입 및 우상 숭배 경고] (10:1-5)

 

  하나님과 우상(참조 사40:18-20; 41:7; 44:9-20; 46:5-7): 우상은 인간의 고안품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고안 품 즉 목공, 금세공, 공예가가 나무나, 금은이나, 기타 물건으로 만든 것이며, 우상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물체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기에 절하고 경배하고 복을 비는 인간의 행위는 우매의 극치이다. 왜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가? 탐욕이다. 불로소득을 위해 그리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숭배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를 가증스러운 것으로 보시며 결혼한 아내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것에 비유하셨다.

 

[하나님과 우상: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 (10:6, 7)

 

  하나님과 우상(참조 사40:18-20; 41:7; 44:9-20; 46:5-7):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어찌 우상에 비교하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주를 지배하시며, 인간의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경영하시는 지혜의 영이시다. 그의 위대하심은 크고 세밀하심에 있다. 우주를 섭리하시는 분이다.

 

[우상의 무능함과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심] (10:8-11)

 

  하나님과 우상(참조 사40:18-20; 41:7; 44:9-20; 46:5-7): 우상은 나무나 은, 금으로 만든 것이며 그것들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이동할 수 있는 공예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를지배하시는 전능자, 지혜자, 초월자이시다.

 

   * 다시스(Tarshish) 스페인 남방 지중해 항구로 지부롤터 해협 근처에 있는 무역항이다.

   * 우바스(Uphaz) 자세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대의 유명한 금산지(10:9; 10:5),

     오빌과 같은 금산지(왕상9:28; 22:48; 22:24)와 같은 곳으로 본다.

 

[만물을 만드시는 이, 만군의 여호와] (10:12-16)

 

  하나님과 우상(참조 사40:18-20; 41:7; 44:9-20; 46:5-7): 여호와는 만물을 만드신 조성자이시다. 그리고 그들을 운행하시며 큰 것으로부터 세밀한 것에 이르기까지 섭리하신다. 우상은 무엇인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고안품(考案品)에 불과하다. 어찌 이에 절하며 복을 빌겠는가?

 

[백성의 탄식: 예레미야의 비가(悲歌)] (10:17-25)

 

  상처는 깊고, 장막은 무너지고, 북방으로부터 징계가 내려오는 비참한 상황에 대하여 백성은 탄식한다. 10:17, 18에서 우상 숭배자의 비극적 운명 즉 황폐화, 포로, 괴로움 등을 노래한다. 10:19-22에서 임박한 유다의 멸망을 노래한다. 10:23-25에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가 주는 교훈을 볼 수 있다. 즉 예레미야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지도자들과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림으로 세 번째 설교를 끝맺는다. 예레미야의 민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의 발로이다.

 

 

<11 > 유다와 이스라엘의 언약파기와 재난

 

[언약을 지키지 아니한 백성] (11:1-8)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주셨고 그곳에서 여호와를 순종하라 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아니했다. 여호와께서 이르신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은 유다 민족에게 내리신 언약으로 타민족과 구별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소홀히 하였다.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였으나, 이 민족은 언약을 지키지 아니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언약파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 (11:9-13)

 

  바알을 섬기는 매음 행위를 하나님은 허용하실 수 없다. 유다의 성읍의 수만큼 우상이 성행하여 선민으로서 그들은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우상 숭배는 탐욕의 소산이며 이는 사회 무력화를 가져온다. 하나님은 백성이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고 그런 사회를 유지해 나아가는 원동력은 여호와의 율례대로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법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구제 불능인 유다와 이스라엘] (11:14-17)

 

  중보기도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타락해서 재난을 피할 수 없음을 선언하시다.

 

   * 바알은 가나안의 신이다. 아세라 목상은 가나안의 여신상으로 베니게(페니키아)인들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바알 제단 옆에 세웠다고 한다(대하14:3; 3:7; 6:25, 28).

 

[예레미야를 죽이려 기도한 아나돗 사람들] (11:18-23)

 

  고향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에 반발한다. 즉 범죄에 대한 질타와 종교개혁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탈취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예레미야를 죽이려 한 것이다. 이들도 586B.C.(11:23의 벌할 해) 예루살렘 함락 때 아나돗에도 살육과 기근을 당함으로 이 예언이 이루어 졌다.

 

   * 아나돗(Anathoth) “여신 아나도(서방 샘족의 사랑과 싸움의 신)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예레미야의 고향 동리(1:1)인데 예루살렘 북서쪽 4km 지점에 위치한다.

 

 

 

 

 



*김정권 시인(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있으며 대한민국 황조근조 훈장을 수훈했다.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특수교육 관련 다수의 저작물과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 가이드: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6), 통독성경: 맛있는 1189, 행복한 298(2010-2018) CD(약 11,500페이지), 시집 『길을 모르는 사람의 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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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17 [10:1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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