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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8 [11:02]
[김준곤 설교]가난한 마음을 위하여(마5:3)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84세계기도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뉴스파워


가장 고독했던 생애


여기 한 두메 마을 가난한 농군의 딸의 몸에서 태어났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양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그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양아버지 목공소의 조수 노릇을 했고 나머지 3년간은 순회 전도자였습니다. 책 한 권 쓴 일도 없고 어느 직장을 가진 일도 없었습니다. 처자도, 집도 없었습니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거처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에 다닌 일은 물론 없고 그 흔한 정치나 경제, 예술, 철학 같은 것을 직접 그 입으로 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소속이 없기 때문에 어디서도 신분증을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난 곳에서 200마일 밖으로 나간 일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악해 본 일이 없었으나 세론(世論)은 그에게 불리해져서 소수의 벗들도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가 한 일이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람을 지극히 사랑한 죄밖에 없건만 그의 원수들은 마침내 그를 미워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 좌우에는 두 강도가 같이 처형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천국으로 따라가겠다고 구원의 손을 뻗쳤습니다. 그를 처형하는 병정들은 그가 죽어 가고 있는 동안 그의 유일한 소유였던 두루마기를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친구의 호의로 빈 무덤에 장사지냈으나 하나님은 그를 사흘 만에 살려 내었고 죽음은 그때부터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죽은 지 약 2천 년의 긴 세월이 오고 가는 동안 그는 마침내 인류의 마음에 유일한 빛이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진실 되고 경건한 마음들이 그를 향해 눈물을 바쳤고, 가장 청순한 심장의 불길마다 그를 향해 타고 있는 것입니다. 멀지 않아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고 모든 이슬이 그 앞에 고백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고!

가난한 사람들과 예수

그는 나사렛 마을에서 이스라엘의 가난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를 따르고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귀머거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마 15:5),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 창녀와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이들이 많았습니다(고전 1:26~29).

그가 아는 친구 가운데 어느 부자의 문전에서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몸의 헌데를 개가 핥는 ‘나사로’ 라는 거지가 죽어서 천국에 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가 엽전 한 닢 연보하는 광경을 그림처럼 그렸습니다.

창고에 먹을 것을 가득히 채우고 ‘내 영혼아! 평안할지어다.’라고 한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명혼을 취하면 그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I2:19)고 반문했습니다.

부(富) 자체를 정죄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와 자기 소유에 포만한 마음의 태도를 꾸짖었습니다. ‘화있을진저 부요한 자여, 화있을진저 배부른 자여, 화있을진저 웃는 자여, 화있을진저 칭찬받는 자여’(눅 6:24~25).

그는 스스로 중심에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자신의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계 3:17). 이것이 무지(無知)에 대한 무지(無知)요, 어리석은 부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자율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덕성과 신앙에 배부른 부자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눈에는 낡고 때 묻은 의복이요, 생명 없는 위장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됨을 자량하고 그가 들은 지식이나 예술, 혹은 교양이나 인도심 같은 의상들로 성장(盛裝)한 현대 휴머니즘이 자기의 가련하고 벌거벗은 것올 모르면 어리석은 부자의 낙인을 면치 못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정의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입니다(눅 12:21). 그에게는 영원한 신(神)에 대한 목마름과 배고픔이 없습니다. 영적 빈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종교적 성덕(聖德)과 부(富)와 지위는 그에겐 만족스러운 것이어서 자랑스럽게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함에 그는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소유와 비대한 자신으로 확 차 있어서 심령의 가난함이 불가피하였습니다.

이 소유, 즉 그가
목숨을 걸고 사는 것들 때문에 참 생명인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 그것이 곧 우상이요, 거짓 신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리스도가 뜻하시는 부자란 재산 소유량의 다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에 대한 마음의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 억만의 재산, 그리고 천하의 권세를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신(神) 앞에 겸허한 인간으로 홀로 서서 그런 것들이 자기 목숨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이와 반해서 몇 푼어치 안 되는 돈이나 지위나 지식에 목숨을 걸고 안달하는 이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어린 아이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뜻이 서로 통합니다.

어린이는 자기 것은 빈곤하나 아버지와의 관계와 신뢰에 있어서만은 부요합니다. 가난이란 불행의 대명사 같은 말인데 그것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면 축복의 유일한 재산이 됩니다. 그것은 고독이요, 그리움이요, 목마름이요, 그리고 기도로 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창녀의 이야기(죄 많은 여인)
 
밤마다 으슥한 골목에서 낚아 온 손님들에게 육체를 내어던지면 그때부터 그녀는 한 뭉치의 고기 덩어리가 됩니다. 어두컴컴한 움막의 아침이 오면 사나이는 가고, 창녀는 침대에 누운 채 허허한 눈매로 천정을 향하여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기가 무서웠습니다. 가을바람에 몰려가는 휴지장처럼 쓰레기통에 나풀거리는 그의 인생은 될 대로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 가난한 마음, 상하고 찢긴 인생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동안 그녀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둠을 틈타서 필사적으로 군중을 헤치고 주 앞에 엎드렸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그의 발을 적시었습니다. 그 눈물은 그녀의 쓰라린 과거와 참회와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 기자 누가는 이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 앞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 7:36). 그리스도는 이 죄 많은 여인의 가난한 마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의 강도
 
가야바를 대표한 종교와, 빌라도를 대표한 정치와, 그리고 군중과 온 세계가 한 소리로 그리스도를 없애라고 외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거부와 초롱만이 그의 잔이었을 때 그는 ‘목마르다’고 외쳤습니다.

그 격심한 고통의 순간에 오직 한 사람, 그를 대접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옆에 달련 강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서 나를 기억하소서.’ 이는 한 인간이 목숨의 종점에서 죽음의 절벽에 이르렀을 때 자기를 알아주는 오직 하나의 품에 뛰어드는 어린이 같이 가난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그 마음은 그대로 천국이 저의 것이었습니다.

세리의 이야기

세리는 제 민족의 고혈을 빨아 원수인 로마 제국에 세금을 모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개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렸습니다. 그 마음은 비었고, 상하고 깨어져 있었습니다. 거룩한 열망은 기도가 되어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며 성전에 가서 엎드리게 하였습니다. 주는 그의 마음에 들어가 그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나를 찾는 주님을 위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말끔히 치워 빈 마음, 가난한 내 집에 그런대로 주를 모십시다. 구태여 선행을 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대로 모십시다.

탐욕이란 우리가 모두 섬기는 악질 우상입니다. 차라리 무소유자가 되어 신(神)과 영원한 태양을 소유했던 저 앗시시의 프랜시스가 되기로 결심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하여 아낌없는 존경을 바치고 싶습니다.

*이 글은  <CCC편지> 1964년 8월 31일자에 실렸던 글이고  1977년 8월 21일 주일 채플에 했던 김준곤 목사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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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08 [07:2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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