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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8.08 [15:01]
“기도와 선교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합동신학교 교장 역임), 수원 옥토교회(2020.7.12) 설교
 
김명혁

기도와 선교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수원 옥토교회(2020.7.12)

딤전1:14-17

▲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뉴스파워

 

 

제가 20081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지난 126개월 동안 매 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20121021일 주일 수원 옥토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꿈과 비전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439일 주일 두 번째로 와서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71112일 세 번째로 와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8826일 주일 네 번째로 와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고, 20191222일 주일 다섯 번째로 와서 신앙 선배님들의 영성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오늘 2020712일 여섯 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저를 불러주신 최인주 목사님과 수원 옥토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을까를 최인주 목사님과 의논하다가 최인주 목사님이 요나단 에드워즈나 데이빗 브레이너드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오늘은 데이빗 브레이너드에 대한 설교를 먼저 하고 다음에는 요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와 요나단 에드워즈는 미국은 물론 세게 근세 선교와 부흥운동에 너무너무 큰 영향을 미친 귀중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너무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기도와 선교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이라는 제목으로 강의 또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교회 역사에 나타난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198465일부터 11일까지 영락교회와 뚝섬에서 세계교회 기도성회가 열렸습니다. 제임스 오르 박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운동 및 기도운동가들을 비롯한 1,200여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85개국으로부터 참여했고 국내적으로는 한경직, 박윤선, 김준곤 목사님들의 지도하에 연인원 30여 만 명이 영락교회와 뚝섬에 참여하여 강의도 듣고 함께 기도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실무를 맡으며 심부름꾼의 역할을 했습는데 기도의 사람 브레이너드란 주제로 발표까지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서부 아프리카 꼬띠 브아로 간 황익진 선교사) 제가 전에 발표한 유스티니안 벨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선교에 헌신했고 어떤 사람은 제가 전에 발표한 데이빗 브레이너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선교에 헌신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수백 명의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29세의 꽃다운 청춘에 폐결핵과 지나친 과로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기도로 숨쉬고 기도로 움직이다가 기도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1718년 미국 커네티컷주 해담이란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의 젊음을 미국 인디언들을 위해 몽땅 불태우다가 1747년 매사츄셋츠주 노스햄턴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 각성 운동을 일으킨 요나단 에드워즈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영국에 복음적 각성운동을 일으킨 요한 웨슬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윌리암 캐리,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같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가슴을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교회사가인 라토렛 박사는 브레이너드는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움직여 전도자와 선교사가 되도록 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였습니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유창한 설교였습니까? 그의 굉장한 업적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기도에 파묻힌 그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말들과 그의 삶이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유창한 설교에 의해서 가슴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목회자나 선교사의 굉장한 업적에 의해서 감동을 받지도 않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을 들을 때 우리들의 가슴이 움직입니다. 참된 부흥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흥운동이 감정주의로 변질되어 가는 현상들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부흥운동이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고, 유창하게 설교하는 사람, 굉장한 업적을 이룬 인본적전도자들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의 중요한 원인은 지나친 과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완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 자신은 죽음에 이르러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지나친 수고는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받은 최고의 훈장이었을 것입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기도를 소개하기 전에 그의 생애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해 봅니다. 첫째로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로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셋째로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경건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선교와 봉사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이제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에 기록된 그의 기도하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자기의 영적 생활을 일기로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일기를 썼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21세가 되던 1739년에 개종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한동안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금요일 아침부터 주일 저녁까지 기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기도를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 같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깊은 신음 가운데서 숲 속을 거닐고 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의 영혼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기쁨에 넘쳤는데 그는 하나님 안에 삼켜버린 듯한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이와 같은 개종의 체험 이후부터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전적으로 기도에 파묻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기도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온종일 영혼의 평안을 누리며 지냈다. 특별히 저녁 기도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놀랍도록 새로운 힘을 부어주셨다. ! 하나님과의 한 시간의 기도가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기쁨을 능가하고도 남는구나!”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24번째 생일을 맞는 1742420일에 그의 기도생활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는 이 하루를 금식과 기도로 바치기로 했다. 복음 사역을 위해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침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했다. 정오에는 영혼들을 위한 중보 기도로 나의 영혼은 쏟아져 버렸다. 밤이 맞도록 원수와 싸우는 뜨거운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만을 위해 살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소원을 이전에도 이렇게 간절히 가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를 소원하였고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몸을 온전히 불사르기를 소원하였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1742년 여름부터 카우나우믹의 인디언들에게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교만을 회개하며 기도했고 자기의 무능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너무도 나의 추악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두시는지, 사람들이 왜 나를 돌로 치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도무지 설교를 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나는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몇 사람의 인디언들이 설교를 통해 큰 비통함으로 울부짖었다.”(1742. 8. 12).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25번째 생일을 맞는 날 다음과 같은 기도의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은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하루를 작정했다. 나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켜 신령한 은혜 가운데 살고 싶어서였다. 홀로 숲 속을 거닐며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었다.”(1743.4.20). 그리고 인디언들과 함께 살던 그의 삶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나는 인간적인 처지로 볼 때 외롭게 살고 있다. 내 식사의 대부분은 삶은 옥수수나 옥수수 죽이다. 거처래야 짚 더미 속이다. 내 사역은 어렵고 매우 힘들다. 나를 온전히 위로하여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디언들은 살 땅이 없다. 지금 사는 곳도 독일인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이 강압적으로 빼앗아 버렸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날 미워하고 있다. 내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왔기 때문이다.”(1743. 5. 18).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26세 되던 17446월에는 뉴욕 장로회로부터 안수를 받고 델라웨어 폭스의 인디언들에게 파송되어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약한 몸을 이끌고 인디언들을 찾아갔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몹시 힘들었다.”(1744. 6. 24). “불쌍한 인디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의 개종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본다.”(1744. 6. 26). “불쌍한 인디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함임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고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1744. 6. 28).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날마다의 생활을 거의 기도에 파묻혀 보냈습니다. 새벽에, 저녁에, 밤에 그는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때로는 그를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어떤 때는 말을 타고 숲 속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 주님 당신께 나를 드립니다. 나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옵소서!”(1744. 7. 1). “작년에는 영광의 세계를 사모하며 이 세상을 속히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든 관심은 이방인들의 개종뿐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나는 살기를 원한다.”(1744. 7. 6).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그가 27세 되던 1745년 봄에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 졌고 그의 설교는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폐결핵은 악화되었고, 그의 온 몸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였습니다. 머리, 얼굴, 치아, 가슴, , 그리고 위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하루 중일 침대에서 지내야만 했다. 기도도 묵상도 독서도 할 수 없었다. 이 적막한 황무지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1745. 4. 30). 때로는 하나님과 끊어진 듯한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서의 자신의 삶이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스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인디언들에게 설교했을 때, 그들의 수는 65명 정도였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강한 바람같이 임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능력에 그는 놀라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세력은 강한 소나기나 홍수의 물결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모두가 커다란 슬픔에 사로 잡혔습니다. “남녀 노소를 합하여 65명 가량이 참석했다. 말씀을 전하는 동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임 위에 내리는 듯 하더니 모든 사람을 압도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놀라운 힘에 사로잡힌 듯 했다. 불어난 홍수나 휘몰아치는 격류가 무게와 압력으로 그 앞에 거치는 것들을 휩쓸어 버리는 현상에나 비유할 수 있을까?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 전에 엎드려졌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린아이들도 술주정뱅이도 모두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하며 울부짖어 기도했다. 큰 통곡이 나타난 것이었다. 오늘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날이었다.”(1745. 8. 8).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이와 같은 은혜의 소나기1년 동안 계속 되었다고 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가 28세가 되던 1746년 가을부터 그가 죽게 되는 1747년에 이르는 동안 그의 육신은 완전히 쇠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피를 토하며 온 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몇 달 동안 선교지를 떠나 노스햄톤에 있는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으로 돌아와서 그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하였고 성경을 읽었으며 일기를 썼습니다. “나는 지금 영원의 문턱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영광을 얻기 위해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천국을 사모하는 것은 모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이다. 이것만이 나의 부르짖음이요, 탄식이요, 소원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를 영원토록 기쁘시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이다.”(1747. 9. 27).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약혼녀인 요나단 에드워즈의 딸 제루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습니다. “나는 그대와 차마 이별할 수 없소.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영원을 함께 누릴 것이요. 나의 영혼은 오늘 하나님의 품에 고이 안깁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있기를 그렇게도 갈망해 왔었소. 나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싶소. !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1747. 10. 2).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기였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17471092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와 제루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넉 달 가량 지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딸 제루샤를 저 세상으로 데려가셨다. 닷새 정도의 짧은 병을 앓다가 제루샤는 18살의 나이로 2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그가 죽기까지 19주 동안 계속 그를 돌보면서 함께 지냈다. 그녀는 그를 매우 기쁜 심정으로 보살폈다.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그는 우리에게 그녀의 너무나도 진심 어린 사랑을 흡족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늘 나라에서 그녀와 만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브레이너드는 헌신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브레이너드에게 주셨던 기도의 삶을 주시기를 바란다.” 존 웨슬레는 모든 설교자들이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을 되새겨봅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기도에 파묻혔던 기도의 사람이었고 인디언 사랑에 불탔던 사랑의 사람이었으며 인디언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던 헌신과 희생의 사람이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또한 주님 사모와 천국 사모에 사로잡혔던 천국 사모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족한 우리들에게도 데이빗 브레이너드에게 주셨던 처절한 회개와 끊임 없는 기도와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조금이라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미치는 대신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는 천국 사모의 사람들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 오래 전에 기도의 사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게 하시고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부끄러운 감사를 드립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984.9.1)

 

그러면 이제부터 1984년에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에 의해서 출판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라는 제목의 책은 총신과 합신에서 공부한 저의 제자이고 강변교회에서 청 장년 부 교육을 담당했단 사역자인 윤기향 전도사가 “The Life of David Brainerd”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입니다. 제가 너무너무 귀중하게 여기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저의 제자가 번역을 해서 출판을 했는데 너무너무 귀중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책의 추천사와 요나단 에드워즈의 책의 서문과 윤기향 전도사가 쓴 역자 후기를 여기 그대로 옮깁니다. 먼저 제가 쓴 추천사를 그대로 옮깁니다.

 

책의 추천사” (김명혁 목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굉장한 일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주의 일을 감당하지도 못했다. 그는 21세에 개종을 하고 24세에 헌신을 해서 29세로 생애를 마쳤던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폐결핵을 비롯한 온갖 병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인디안 틈에서 온 몸과 심혈을 쏟아 버린 이름없는 선교사였다. 그러나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있었다.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 그가 기도로 숨 쉬었고, 기도로 움직였고, 기도로 선교하다가, 기도 가운데 숨을 거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후세에 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슴과 생애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1740년대 미국을 휩쓴 대각성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삼장에 깊은 감동을 끼쳤고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윌리암 케리와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여서 복음 사역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그의 어떤 점이 이 세기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을 움직였을까? 모든 생명을 내 걸고 하나님 앞에 헌신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29세란 나이로 하나님 앞에 간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임종시에 고백한 대로 지나친 수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건강을 완전히 희생하여 선교에 전념했다. 이는 주님 앞에 그가 받을 상급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의 생애를 살펴볼 때 우리는 몇 가지 아름다운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로, 자신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둘째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그는 완전히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로서 여러 가지 감동적인 체험을 갖고 있었다. 셋째로, 자기 몸을 선교와 봉사의 제물로 바친 자로서의 본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생애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기도생활이다. 그는 개종하기 바로 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의식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중에도 그는 힘써 기도했다.

 

그가 21세에 개종한 후 그의 기도생활은 더욱 빛났다. 그는 한 시간의 기도가운데 얻는 기쁨이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능가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24번째의 생일(1742.4.20)을 금식과 기도로 바치기로 작정할 만큼 기도의 열은 대단했다. 그는 그의 생일에 복음사역을 준비하려고 밤이 다하도록 힘써 기도했다. 그는 기도 중에 나의 보배로우신 주님을 고백하며 끝없이 감격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한때 전도의 길이 막혀 많은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그의 기도의 길만은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교만을 회개하며 기도했고, 친구와 이웃 전도자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였고, 자기에게 맡겨진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느라고 며칠이고 기도에 열중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말을 타고 가다가도 도주에 내려 기도하기도 했다.

 

“1745년 그는 영혼의 깊은 밤을 경험하게 되었다. 몸이 너무나 쇠약해졌다. 몸의 뼈마디 하나하나가 모두 무너져 내린듯했고 온몸에 온전한 곳이 없었다. 고통으로 인하여 설교도, 기도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은 하나님과 끊어진 듯한 영혼의 깊은 밤이었다. 그러나 그 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으로 이어졌다. 여기사 시작된 신앙부흥은 일년간 계속되었다. 그의 가슴은 기도로 녹아졌고 은혜의 소나기가 홍수처럼 쏟아 부어져서 완악한 인디언들의 가슴을 녹여갔다. 그의 몸도 한계를 지나고 있었다.

 

“1746년 가을부터 임종시까지 그는 요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몸은 이미 탈진해 있었다. 그는 임종의 자리에서도 기도에 맡기고 진리를 잃고 명상하라는 권면을 잊지 않았다. 그는 천국에 대한 사모심이 사도 바울만큼이나 강했다. 그러나 그가 천국을 가고 싶어하는 것은 천국의 한 모퉁이에서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1747109일 그는 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중단하지 않고 기록한 그의 일기는 이상과 같은 생애를 감명 깊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 웨슬레는 모든 설교자들이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세밀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한국의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접하고 바른 신앙,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 불후의 명작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일기가 윤기향 전도사에 의해 번역되어 한국교회에 소개된 것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한다. 윤기향 전도사가 영문을 충실히 번역했고 국문학자인 그의 남편 노하덕 집사가 한글을 아름답게 다듬어 줌으로써 이 책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바라기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의 가슴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가슴에 가득했던 기도와 헌신의 정열이 솟아 넘치기를 기원한다. 19846월 김명혁 목사

 

책의 서문” (요나단 에드워즈 목사)

 

브레이너드의 삶을 살펴 보노라면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이를 말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신앙심과 헌신의 비상한 증거를 헐뜯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천성적으로 우울과 낙담에 빠지기 일쑤였다. 모든 신앙이란 우울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체험했다고 하는 것이 우울한 것밖에 무엇이 있느냐 라고 한다. 머리를 혼란하게 하고 광신적일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너드의 기질이나 형편이 낙담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브레이너드의 헌신이 알량한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낙담하기 잘하는 성품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는 담을 쌓은 사람인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나 그는 통찰력을 지닌 인재였고 명쾌한 사고력과 정확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분별력이 뛰어 났을 뿐만 아니라 사려도 깊었다. 그리하여 그는 신학부 성적이 뛰어났고 분별력도 탁월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특히 신앙을 실천하는 면에 강점이 있다. 그는 바르고 경건한 신앙과 광신을 철두철미하게 분별했다. 어떤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고 할 때 그것이 사리에 맞고 명철한 데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것인가, 아니면 원기가 왕성한 나머지 해괴망측한 상상을 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 인간의 감정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에 속고 있고 그런 것들이 기독교에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와 해로운 영향들이 무엇인가를 분별해 내었다. 그는 이런 신앙을 신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신앙이 왕성하든, 쇠하여 가든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가장 확실하고 그럴듯한 거짓 행동이 나타날 때면 그 일의 시초일지라도 재빨리 식별했다. 사이비 광신적인 종교가 자행하는 여러 가지 일을 기술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로서는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는 것까지 분별하는 재능을 가졌다. 사이비 종교의 거짓됨과 헛됨 그리고 사이비 신앙과 참된 영적 헌신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의 분별력 있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겪은 체험과는 다른 특색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여러 가지 심정의 체험과도 구별되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 속에 많이 자리잡고 있는 우울증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는 내가 이제껏 사귀어 온 우울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이는 그의 판단력의 특유함 때문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실 우울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잘 알고 그 병세가 우울증 때문이며 우울증의 영향과 결과라고 확신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브레이너드는 단번에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서서히 성숙해갔다. 독자 여러분들이 다음에 기록된 그의 일기를 읽어가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앙 생활의 전기에 그가 지닌 우울한 심정은 영적 황폐함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의 생애 후반기에 있어서의 풍부한 심정은 우울증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일기를 쓸 때면 자신의 부한 감정이 이것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일부러 기록하고 있다. 그는 때로 우울(melancholy)과 신자의 경건한 슬픔(godly sorrow)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대화를 하곤 했다. 그리고 겸손(humiliation)과 심령의 황폐함(spiritual desertion)과의 차이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를 저지를 위험 부담은 없는지 우울이 매우 해로운 성품은 아닌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많은 견해를 주고 받았다. 그 자신의 체험한 것을 토대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고 애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돌아 보면서 그의 결함을 찾아 본다면 그가 고생하는 면에서 너무 지나쳤다는 점이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수고를 한 것에 비하여 마땅히 돌보아야 했을 건강을 돌아보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촉급한지를 알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그의 건강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과 그가 처한 형편은 너무도 고생스럽고 피곤했지만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건강 관리에 있어서 자신에게 허점이 있었음을 종국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좀더 건강을 돌보았어야 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사역을 감당하느라고 시험을 이겨낼 더욱 굳센 결심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동생에게 선교 사역을 이어 주면서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결함 이외에도 그의 전 생애를 살펴 가노라면 몇 가지는 더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결함은 그의 신앙적 활동이나 감정에 섞여 있었다. 어떤 것은 본성적인 것과 섞여 있었고 영적인 요소에도 섞여 있었다. 이는 이 세상을 살았던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도 항상 그랬던 것이었다. 본성적인 기질이 브레이너드의 신앙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일은 믿음이 깊은 다윗, 사도 베드로, 요한과 바울의 경우에서도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겸손과 참된 신자로서의 슬픔 속에 우울함이 한데 섞여 있을 것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열정과 함께 젊은이의 본성적이 정열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본성적인 여러 가지 원리는 다방면으로 은혜와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을 살다간 믿음의 선진도 과거에 그랬고 장차도 그렇겠지만 브레이너드는 누구보다 자신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누구보다 철저히 분별할 수 있었다. 생각이 깊은 독자라면 그의 은혜로운 삶이 원숙해 있었으며 그 마음의 신앙생활이 더욱 순전해지고 그의 판단력은 더욱 사리분별이 분명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수없이 타이르면서 순결하게 지켰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결함이 그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사려 깊은 모든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의 예의 그 진실함과 경건함을 실제 생활에서나 그 심중에 놀란 만큼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경건의 능력과 참으로 생명력 있는 신앙의 소유자임을 확신하게 해준다. 이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표방함이며 진실하게 살펴보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영적인 유익을 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브레이너드가 이 일기에 기록한 것이 그 자신의 사적인 필요를 따라 쓴 것이며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그의 생애의 중요한 부분만을 뽑은 것임을 알아 주기 바란다. 이 세상에서 영예를 누리고 박수갈채를 받기 위하여 쓴 것이 아니다. 그는 살아 있을 동안이나 죽은 후에 이것을 세상에 발표하겠다는 계획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임종의 상태에서 쓴 몇 가지 일들을 제외하고 그가 쓴 모든 기록들을 전혀 폐기하지 말도록 그를 힘써 설득해야만 했었다. 그는 사후에 그의 일기를 출판하겠다는 데 대하여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견디기 힘들 만큼 싫어하기도 했다. 그가 보스톤에서 임종을 앞에 두었을 때에 그는 단호하고 엄숙한 태도로 출판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그처럼 단호하고 엄격한 금지를 철회하도록 힘써 설득했다. 그러자 그의 글들이 반드시 나의 손을 거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신앙적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에 한해서만 출판을 허락하겠다고 승락했다.”

 

책의 역자 후기” (윤기향 전도사)

 

서부 영화를 곧잘 보아 온 우리들의 눈에 미국 백인들은 인디언들의 정복자요 사냥꾼 같이 보이곤 했다. 그러나 브레이너드의 일생을 읽어 가면서 또 다른 참으로 감동적인 사람과 삶을 만나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 선교사 브레이너드의 삶이었다.

 

브레이너드는 기적적인 사람도 초인적인 능력의 소유자도 아니다. 그는 백만 명을 모아 놓고 설교하고 그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많은 백인들의 희생물이 되어 이곳 저곳으로 유리되어 방황하는 인디언들을 찾아갔고, 몇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신을 불태워 예수님을 증거했다. 그는 29세란 젊은 나이로 하나님 앞에 불리워 갔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을 모두 쏟아 산 제사를 드렸다. 누구나 그의 선교 후기에 일어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읽노라면 그 능력에 감명을 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좌절과 비통함과 영혼의 아픔을 겪는가를 접하고 전도자의 본분을 알게 된다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는 독자는 그의 진실한 신앙 앞에 한없이 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안일한 신앙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우리 신앙이 얼마나 불순하며 잘못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나와 우리 한국 교회가 다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니까! 아무튼 브레이너드를 대하는 독자와 함께 그 진실한 심장을 그대로 옮겨 받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은 교회역사와 선교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사 김명혁 교수님의 이끄심 에서 나온 소산임을 밝히며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19846월 역자 윤기향

 

역자 후기의 마지막 고백에 저는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진실한 신앙 앞에 한없이 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안일한 신앙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랜 후이지만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삶과 사역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한없이 울게 되었고 저 자신의 안일한 신앙의 부끄러움을 돌아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처절한 기도와 순수한 사랑에 사로잡혀서 북한 동포들이나 모슬렘 형제들을 위해서 저의 삶을 사랑과 섬김의 제물로 드리다가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와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 존귀와 영광을 돌리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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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09 [18:0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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