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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8 [02:02]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그레이스 선교교회 5월 1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명혁

 

 

성경: 시편  51:10-13

 

▲ 말씀을 전하는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제가 2008720일 주일부터 202029일 주일까지 12년 동안 그레이스 선교교회에 와서 30번 설교를 했는데 이렇게 많이 와서 설교한 교회는 그레이스 선교교회밖에 없습니다. 오늘 2020510일 주일 31번째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황은혜 목사님과 이종헌 장로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황은혜 목사님과 상의를 했는데 부족한 저의 목회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삶이 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간증설교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설교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아주 긴 간증설교를 하기 전에 오늘이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의 어버이들과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부족한 죄인인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심부름꾼으로 만드신 분은 긍휼과 용사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섬김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저를 너무너무 순수하게 사랑하시며 격려하신 저의 어머니 류춘택 사모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저에게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의 신앙을 심어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명목 선생님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 시절에는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에 12번 참석하면서 회개와 기도와 은혜 사모의 가르침을 받고 12번 안수 기도를 해주신 이성봉 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한국의 예레미아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시던 손양원 목사님과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이신 한경직 목사님과 기도와 말씀과 따뜻함의 신학자 박윤선 목사님과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 정진경 목사님과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섬김의 목회자 방지일 목사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런 분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고마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아주 긴 간증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10 여 년 동안 매일 여러 번 암송하는 성경 말씀들이 20 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편 51편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51:10-13). 여기 다윗이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신 것처럼 부족한 저의 기도와 소원도 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셨고 저를 붙들어주셨고 불신자들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치게 하셨고 그래서 많은 불신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제가 서울고등학교 3학년 학생일 때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전도하면서 개척 목회를 했는데 많은 학생들과 어른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주일성수의 신앙을 지니고 하나님께 바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8월 평양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서 남쪽으로 온 다음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중학생 때는 6.25 전쟁 피난 시절 대구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시던 이성봉 목사님의 가르침과 기도를 받으면서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는 서울에서 한국의 예레미아 라고 불리시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과 기도생활과 전도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고 3때 토요일과 주일에 왕십리에 나가서 노방전도와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매일 새벽마다 우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그리고 이만 팔천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알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저는 왕십리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 토요일과 주일에 왕십리에 나가서 노방전도와 개척목회를 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교의 학생이 되어서도 개척목회를 계속했습니다. 처음에는 들판에서 후에는 학교 교실을 빌려서 나중에는 천막을 치고 한양 제일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목회를 했는데 어린이들 60여명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초라한 천막교회였는데 어느 아기 엄마 교인이 우리 한양 제일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에요라는 말을 했고 어느 여자 교인은 제가 주일 예배 후 교회 근처에 나가서 전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전도하는 선생님이 천사 같아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를 통해서 아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100여명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왕십리 들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래서 저와 함께 목회 사역을 하게 된 안흥규 라는 학생은 나중에 강변교회를 세우는데 동역자가 되었고 강변교회의 장로와 건축위원회의 위원장이 되기도 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두 번째로, 충청북도 괴산군 옥현리에 살던 반기독교적인 청년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1962년에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마치고 1974년 가을에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지도하며 교육목사로 목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목회 초년생이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목회 사역에 임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즉 안성원, 김동화, 박선규, 최성호, 이 진, 양용태, 한옥희, 탁정희 등 젊은이들이 목사 또는 선교사로 헌신해서 목회와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선규는 내가 노방전도 하다가 길 거리에서 만난 청년인데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목회와 선교를 아주 잘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제가 후암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사역할 때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합니다. 1976년 여름 대학생들을 데리고 충청북도 괴산군 옥현리에 가서 하기 성경학교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동네의 청년들 20여명이 교회 근처에 와서 유행가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예정에 없던 전도의 대화를 마을의 청년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 밤 동네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설교를 들은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청년 하나가 또 앞으로 나오더니 자기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청년 하나는 자기는 청주에서 잘 알려진 불량배인데 자기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날 밤, 15-16명의 청년들이 하나 하나 앞으로 나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거의 한 시간 동안 반복해서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 때 목사도 아니었고 선생과 박사였는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통해서 크신 은혜를 베푸셨다고 생각합니다.

 

토요일, 그들과의 이별은 눈물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들과의 서신 왕래는 그후 수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그 편지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김 박사님 읽어주세요. 나에게는 그 기간이 인생 중에 가장 은혜스러웠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바입니다. 박사님이 설교와 기도하실 적에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사님을 언제 뵈올 지 몰라도 꼭 한번 뵙고 싶은 것이 제 소원이라면 소원이겠습니다. 또 저희들을 잊지 않으시고 공부할 성경교재를 보내 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87일 박궁래 드림.” “그간 선생님, 안녕하세요? 떠나는 7일날 보천서 우리는 너무나 섭섭했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배운 것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왜 그렇게 떨리는지 몰라요. 그런데 끝날 때는 말도 잘 나오고 떨리지도 않았어요. 정말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가 봐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어요.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그때서야 똑똑하게 알았어요. 선생님, 가을에 꼭 한번 오세요. 지금부터 부탁입니다. 정말 꼭 오세요. 811일 박정옥 씀.” “죄책감에 눈시울을 적셔야 하는 나의 마음 .... ‘주여 이 몸을 용서해 주소서하며 나의 발길은 교회로 향한다. 그 동안 인생의 줄달음에 주어도 보고, 당겨도 보고, 후회도 하며, 울어도 보고 .... 먼젓번 부탁과 동일하게 녹음 테이프 2개를 보내니 녹음해서 보내주세요. 19768월 김재옥 서사실 괴산 옥현리의 청년들과의 교제와 만남은 10여 년 이상 계속되었는데 그들과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들과 만남도 이어졌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는지 모릅니다.

 

세 번째로, 불교 신자 한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후암교회에서의 5년 동안 교육목회의 사역을 한 다음 영안교회에서 8개월동안 개척목회의 사역을 했습니다. 한 가정이 건물을 마련하고 5,6명의 신자들로 시작한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제가 8개월 동안 목회하는 동안 거의 100여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선희 라는 사람은 예수님도 교회도 모르던 사람인데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목회와 신학교의 교수의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안교회에서의 목회 목회사역을 마친 다음 강변교회를 시작하기 전 몇 달 동안 성경공부를 지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공부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50대 후반의 여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아주 단정하고 깔끔한 분인데 기독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조춘국이란 분이었는데 평생 불교를 믿으며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척추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일로 인한 분노가 그녀에게 불면증과 더불어 척추암을 가져온 듯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고 사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칼로 찔러 죽이고 싶어하던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차츰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어느 날 자기 딸에게 해를 끼친 일로 인해 그렇게도 죽이고 싶어하던 그 원수 같은 친구를 결혼식장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그녀가 척추 암에 걸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친구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목격한 그들의 친구들이 긴장에 쌓여 두 사람을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원수 같은 친구에게 다가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친구의 손을 붙잡고 자기는 그 친구를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 뱉은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그녀가 척추암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던 중 그녀의 몸 속에서 검은 것들 이십여 개가 나온 후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기쁨에 못 이겨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뛰어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 대부분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암에 걸려 고통을 당하던 보사부 차관을 지낸 분도 그녀와 저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하고 평안을 누렸고 후에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척추암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때로는 자리에 드러눕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녀를 방문하고 그녀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녀는 그렇게도 극심하게 그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곤 했습니다. 조춘국씨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아픈 것이 다 없어져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그저 신기하다고만 했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체험하고 전도의 사명을 다한 후 가족들과 몇몇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그녀는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녀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준 담임목사인 제가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의 장면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회장 보살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했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여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려대학을 졸업한 분으로 생각과 주견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얼마 후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어 학습과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전영신이란 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평생 불교를 독실히 믿어온 보살이었습니다. 보통 보살도 아니고 회장 보살이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전국 여전도회 회장쯤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 회장 보살은 자기 딸이 예수를 믿은 지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는데도 진리를 깨닫는 정도가 자기보다도 빠른 것을 감지하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회장 보살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회장 보살은 박달안이란 분이었는데 저는 불교를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는 말을 했습니다. “회장 보살님은 아주 훌륭하세요.” 평생 진리를 추구하시며 인격을 쌓으신 그분의 삶이 아주 귀중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도 진리가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불교의 진리보다 더 크고 더 완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진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우리들에게 참 평안과 기쁨을 주는 진리라고 설명했습니다. 회장 보살 박달안씨는 저의 말을 경청하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과 친밀한 대화를 거의 육 개월간 계속했습니다. 한번은 그분이 길을 걷다가 넘어져 다리를 삐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그분을 자주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분은 육 개월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찰들에 연락하여 자기의 이름을 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학습을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믿은 후 전에 누리지 못하던 평안을 누리며 만사를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전도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후에 집사가 되어 교회를 충실히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먼저 교회의 권사가 되었고 자기도 나중에는 명예 권사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산 간증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가를 새롭게 경험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불행에 빠져있던 부산에서 살던 한 여자가 고마움과 감사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차를 타고 가면서 때로는 MBC 방송 여성시대의 프로그램을 듣곤 헸습니다. 19949월 어느 날 편지 사연을 듣고 저는 마음에 슬픔을 느꼈습니다. 남편이 청송 교도소로 떠난 후 혼자서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무나 어렵게 그리고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애달픈 이야기는 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며칠 후 MBC “여성시대담당자 앞으로 그 여자에게 보내는 격려의 편지와 격려금 얼마를 보냈습니다. 그 후 그 여자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저는 또다시 격려의 편지와 격려금 얼마를 보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망과 어두움 가운데서 외롭게 살아가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편지가 오가며 그 여자는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하나님을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 박희선 씨가 아주 여러 번 써서 보낸 긴 편지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서신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사님의 이름으로 글을 적어봅니다. 얼굴도 모르는 김명혁 목사님께 먼저 감사의 맘을 전하면서 난필을 드립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정성이 담긴 사연과 금전에 대하여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현명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처음이라 무슨 말부터 이어 나가야 하는지 생각도 나지 아니하고 또 한편 부끄러운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단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나의 맘을 적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터질 듯한 마음을 글로써 억제하려고 한번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지금 자기 자신도 모르고 온 천하에 부끄러운 일을 공개한 것 같아 또 한번 죄를 범한 듯 마음이 아파 옴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못난 이 몸을 이해하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께 이렇게 글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명혁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목사님의 정성을 생각해서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을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목사님의 앞날에 밝은 태양이 항상 같이하시길 빌고 바라겠습니다. 그럼 내내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19941015일 부산에서 박희선 올림.”

 

두 번째 서신입니다. “쾌청한 가을 하늘을 우러러 아름다움을 느끼고 보다 더 진실을 담은 삶에 한번 더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용히 목사님께 안부를 전합니다. 김명혁 목사님! 보내주신 책과 글 반갑게 받아보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교회는 가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어요. 항상 우리에게 하늘은 공평하고, 언제나 터질 듯한 가슴을 억제하고 싶을 때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지요. 그때 저 높은 하늘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보고 계실까 하는 회의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먼 훗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현 생활이 차디찬 암흑의 세계 같아서 본의 아니게 하늘과 땅에게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목사님, 여기 못난 이 사람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어쩌다 하루 아침에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요. 앞으로의 길도 어떻게 헤쳐나가야 현명한 삶이 될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면서 인내하는 맘으로 열심히 살아가리라 한번 더 다짐해 봅니다. 목사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19941027일 희선 올림.”

 

세 번째 서신입니다. “북쪽으로부터 눈 소식과 함께 겨울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옴을 느끼면서 목사님의 건강과 안부를 여쭈어 봅니다.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여기 한 사람은 목사님의 사랑에 힘입어 오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바쁘신 목사님께 이렇게 글을 드리는 이유는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금전을 고귀한 곳에서 필요로 하여 이렇게 목사님께 알려드립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의 큰 아이의 공납금을 내었습니다. 목사님, 한번 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늘을 위에 두고 땅을 딛고 살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에 대한 내용은 알 수가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정성으로 보내주신 책을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생소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저는 너무나 암흑의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도 느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두 팔을 힘껏 벌리고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또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하늘과 땅에게도 죄를 지은 죄인이 겁도 없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르고 있다는 것도 많이 모자라는 생각 같습니다.

 

목사님, 지금 저의 마음은 무어라고 표현을 해야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보내주신 책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마음을 비워야’, ‘열린 마음’, ‘우리는 모두 경주자’,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등등 이렇게 좋은 글들이 저의 마음에 전해왔어도 아직 세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군요. 또 어떻게 살아야 신뢰할 수 있는 모두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까 하는 회의도 항상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 모두를 잊으려고 아무 일이나 열심히 해 보았건만 때로는 그 무엇인가 무거운 짐이 되어 나의 가슴을 터지게 할 때를 느낍니다. 목사님, 저는 그 무엇으로 무거운 짐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의 날개를 가지고 날개 짓을 할 수 있는지요? 아마 이 소망도 헛된 꿈에 불과하겠지요? 목사님, 두서 없는 글을 적고 보니 저의 마음은 좀 후련하지만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 좁은 마음을 이해하시리라 믿어봅니다. 목사님, 여기 부족한 사람을 이해하시고 언제나 밝은 웃음과 건강을 두 손 모아 빌어드립니다. 그럼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19941122일 박희선 올림.”

 

네 번째 서신입니다. “차디찬 겨울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랑을 주신 김명혁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리면서 조용히 글을 전합니다. 목사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목사님의 크신 사랑, 가슴으로 간직하고 오직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아이들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친구, 동료도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고, 아니 제가 등을 돌렸다는 표현이 적합하겠지요. 상상도 하지 못한 삶이 뒤바뀌다 보니 아는 이 모두에게 부끄러워 참회하는 마음 자세로 아무도 모르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인연으로 목사님께 편지를 할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마 목사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운 마음과 아픈 마음을 따스하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축복에도 감사함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데 현실에 대한 도움이 너무나 크다보니 눈물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목사님, 감사함과 더불어 한없이 고마움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 정성으로 보내주신 사랑, 달콤한 사탕보다 진함을 느끼고 앞으로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목사님에게 따뜻한 조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고액의 금액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목사님께 전합니다. 목사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목사님의 도움을 청하겠사오니 부디 저보다 못한 자에게 더 큰 사랑 베푸시길 부탁드립니다. 김명혁 목사님, 따스한 마음 영원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 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1994127일 목사님을 사랑하는 자매 박희선 올림.”

 

박희선씨와의 서신 왕래는 2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아니, 편지는 주로 박희선씨가 저에게 써서 보낸 독백의 사연들이었습니다. 결국 박희선씨는 제가 소개한 부산 개금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개금교회는 제가 좋아하는 제자 박성호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입니다.

 

00번째 서신입니다. “존경하옵는 목사님 전상서! 오곡 백과 아름답게 익어 가는 이 좋은 가을에 사랑하는 목사님과 주위 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겠죠? 우리도 항상 염려 덕택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에도 다녀왔습니다. 박성호 목사님의 뜻 있는 말씀마다 새겨들으며 멀리 계시는 김명혁 목사님도 생각하곤 한답니다. 지금 이 시간에 김명혁 목사님도 인자하신 얼굴로 많은 신도들 앞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또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리라 감히 짐작이 갑니다. 저는 어느 누구와 대화는 하지 않아도 목사님과는 혼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마음대로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두서 없는 글을 띄울 데 있어 감사하고 기쁜 글이 아니라도 읽어 주신 이가 계시기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두 아들 착하게 자라주니 감사하고 이렇게 하나 하나 감사한 마음에 부족한 삶을 행복이라 느끼며 살아갑니다. 목사님 내내 건강하십시오. 1996929일 부산에서 박희선 드림.”

 

00번째 서신입니다. “존경하옵는 목사님께. ... 지난 주 만남을 위하여 지지난 주부터 얼마나 설레임 속에 기쁨으로 지내오다가 그 날이 다가오니 아침부터 기분이 어린 아이들이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딱이란 단어처럼 마음은 그러하였습니다. 부산 새중앙 교회에 2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여 사랑하는 목사님을 이곳 저곳을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뵐 수가 없었습니다. 30분 정도 기다림 속에도 지루함이 없이 임직예배 순서지를 받고 두 가지 기쁨이란 주제와 김명혁 목사님의 함자를 보고 또 보고, 단상에 등장하실 때부터 목사님을 보고 손을 들어 소리도 치고 싶을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목사님의 설교 때도 한눈 한번 팔지 아니하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뵙는다는 기쁨 속에서도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눈물은 보이지 않으리라, 환한 웃음은 아닐지라도 조용한 미소로 만나서 헤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달려갔는데 기어이 목사님은 저를 울리게 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을 뵙는 순간, 손을 잡고 기도하는 순간, 목사님과 마주 앉아 식사하던 순간, 떠나실 때 살짝 포옹해 주심은 어디에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목사님을 보내는 저의 마음은 아팠지만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리라 마음속으로 믿고 마음은 공항까지 따라 갔다 배웅하고 왔습니다. 무사히 목적지까지 잘 도착하도록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사랑의 편지를 조심스럽게 개봉해보니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글들과 격려금이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저는 바쁘신 와중에 저를 잠시나마 만나주심에 감사하고 좋은 글로 신앙 생활에 더욱더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한데 항상 격려금도 꼭꼭 챙겨 주시니 너무 너무 감사함과 동시에 죄송합니다.

 

목사님의 사랑이 담긴 소중한 것을 어디에다 보람있게 장식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남 호경이가 언제부터 공부하기 위해 카셋트를 사 달라고 하였는데 대답만 해 놓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라 하는 말을 몇 번을 반복했던가? 순간 뇌리를 스쳐 가는 아이디어에 호경아 목사님께서 이렇게 큰 사랑을 주셨는데, 이 돈으로 네가 필요한 카셋트를 사 줄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크신 은혜 받고 열심히 공부하여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하면 안되겠니 하고 물어 보았더니 큰 소리로 라고 했습니다. 하나 하나 차근차근 인도를 해야 하는데 아들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했구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두서 없는 글을 적고 보니 할 이야기는 많은데 정작 목사님이 바라는 얘기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리라는 자세는 마음속에 심어 놓고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목사님의 생각에 어긋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작은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어린양들을 위해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6119일 부산에서 박희선 올림.”

 

00번째 서신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안녕하세요. 촉촉이 대지를 적시며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봄꽃 향기 속에 목사님 몸 건강히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 사랑하는 목사님 생각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아이들과 작은 사랑 확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성호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 다녀갔습니다. 여러 번 오신다는 말씀에 너무나 초라한 저의 모습을 보여 드리기 싫어서 미루어 왔는데 며칠 전에 사모님과 같이 오셨어요. 저는 두 분이 오시면 조용히 죄인임을 고백하고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건만 말씀드리는 도중에 왜 그다지 눈물은 나는지요. 이젠 정말로 눈물은 없을 것 같은데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난 주 박 목사님께서 거액의 돈을 주셨어요. 이십 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아무도 모르게 주셨어요. 너무나 죄송함과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목사님 저도 앞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그날이 다가 올까요? 진정 그날을 위해 열심히 하나님 말씀 전해 듣겠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199742일 부산에서 박희선 올림.”

 

00번째 서신입니다. “존경하옵는 목사님. 산에는 아름다운 단풍들이 손짓을 하는 가을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지금 저는 말로서 표현 못할 만큼 목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렇게 못난 저를 용기와 희망과 웃음을 주신 사랑하는 목사님 진정으로 큰 소리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목사님의 인연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330일 학습을 마치고 지난 주일 1019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따르지는 못하지만 항상 죄사함 속에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길 주장합니다. 개금교회 박성호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으며 김명혁 목사님을 제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서 목사님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모두들 축하를 해 주셨고 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목사님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마냥 즐겁고 기뻐서 자랑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가사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일요일 밤에 편지를 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글을 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벌써 목사님 전에 도착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인자하신 그 모습이 저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부족함과 두서 없는 글 이해하시면서 저의 기쁨을 충분히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목사님, 주일이 기다려지며 목사님 말씀 받자올 때 진정으로 편안함을 얻는 것은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으로 믿습니다. 여전도회 교인들을 따라 전도도 해 보았습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이것이 교인이 되는 지름 길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더욱 더 확실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작은 기도 드리고 소리 높여 찬송 부를 때 마음이 가벼움을 받습니다. 이 보다 더 행복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때론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참으며 조용히 살아갑니다. 목사님 제가 전화를 올려 목사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럼 다음 사연 때까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길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 목사님 안녕히 계십시오. 19971020일 부산에서 박희선 올림.”

 

00번째 서신입니다. “목사님 전 상서! 대망의 99년이 밝았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그간 안녕하십니까? 고난 속에 피는 꽃 고통 속에 행복이란 말대로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자임을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못 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 얻고 건강이 있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작은 사랑에 큰 감동과 남에게 웃음 줄 수 있는 능력 주심에 감사하고 너무나 하나님 앞에 감사할 일 너무나 많아서 참으로 좋아요. 목사님의 크신 사랑, 착하게 자라 주는 아이들의 고마운 사랑, 이렇게 세상에 사랑이 넘치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건강하십시요. 1999. 1. 7 희선 드림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서신들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귀중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섯 번째로, 불행에 빠져있던 부천에서 살던 박범순씨와 그의 두 딸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1998년 봄 KBS가 방영한 내 사랑 내 가족프로에 출연한 박범순씨와 그의 두 딸의 삶의 드라마를 보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불행하고 가난한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도 진실하고 선하고 밝게 살아온 부녀간의 이야기는 무질서하게 되는대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큰 도전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산 드라마였습니다. 중동에 가서 4년간 힘을 다해 일하고 집 한 채를 마련할만한 돈을 벌어왔지만 아내는 집을 떠나고 5살 짜리, 7살 짜리 두 딸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는 이를 악물고 과일 가게를 하면서 두 딸을 키웠습니다. 재혼할 것을 권유 받기도 했지만 두 딸을 위해서 재혼을 포기했습니다. 과일 가게와 납품하는 일을 계속했지만 사업하는데 재주가 없어서인지 계속해서 가난과 아픔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아빠는 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9번이나 받아 바람에 날아갈 정도로 몸이 허약해 졌지만 딸들을 위해서는 살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질병과 싸우면서 살아왔습니다.

 

두 딸은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서도 아빠의 진실과 사랑의 가르침을 받으며 밝고 선하게 살아왔습니다. 두 딸은 학교에서는 모범생들이었습니다. 체육청소년부장관, 문화체육부장관, 도지사, 문화원장, 교육장, 경찰청장, 학교장으로부터 모범청소년 표창장, 대상, 효행상, 장원상, 표창장 등을 독차지했고 거의 매년 두 딸은 학급에서 반장의 일을 도맡아왔습니다. 1998년 초 은영이는 지원한 세 대학에 모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지불하지 못해 모두 포기하고 부천의 한 전문 야간 대학에 입학하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영이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밝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행복은 화려한 장미꽃에서도 발견하지만 길거리에 보잘것없이 핀 들국화에서도 발견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혜영이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데 학급에서는 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충청도 사람인 박범순씨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박범순씨를 만나보고 싶어서 그분을 만났을 때 저는 그 분의 모습에서 선함과 진실함을 발견하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박범순씨를 격려하고 책 한 권과 약간의 격려금을 책 속에 넣어서 드렸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그 분이 국민일보 기자에게 전했는데 결국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는 세상 : “책갈피에 담긴 사랑의 성금부천 중동 신도시에 사는 박 모씨(51)는 책갈피 속에 든 50만원에 목이 메었다. “액수가 문제 아닙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란 점이 중요하죠박씨는 혼자서 두 딸을 키우며 살아 온 실직 가장이다. 이번에 큰 딸이 한남대 법대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못 시키고 야간 전문대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얼마 전 겪은 작은 온정은 그에게 삶의 투지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얼마 전 KBS 텔레비전에 출연했어요. ‘나의 사랑 나의 가족이란 프로그램이었죠. 전 있는 그대로 우리 세 부녀의 사는 모습을 담담하게 소개했습니다. 혼자된 사연하며 외판영업마저 IMF로 어렵게 된 사정 등등을 별 뜻 없이 얘기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였어요방송출연 이후 걸려온 것들 중 가장 믿음이 가는 전화 한 통화였다. 상대가 목회자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서울 청담동 강변교회 김명혁 목사님이란 분이었어요. 만나자는 거였죠. ‘부담 없이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받고 싶다고 했어요. 다음 날인가 교회에 들렀습니다교회라곤 다녀본 적이 없는 박씨였지만 위로도 받을 겸 간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고 했다. “60정도 되신 분이었어요. 그분도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후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더군요. 제 팔을 잡고 기도도 해주셨어요. 따뜻한 격려와 함께 설교집을 한 권 주시더군요. ‘꼭 딸 아이에게 전해 달라시면서요. ”무심코 책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온 박씨는 포장을 뜯다 말고 놀랐다. 책갈피 속에 든 현금봉투.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행여 상대가 자존심이라도 상처라도 입을까 내색치 않고 세심히 배려한 그 태도가 더욱 박씨를 울렸다. 돌려 드릴까도 생각했으나 도리가 아닌 듯 싶었다. 대신에 이런 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등불 같은 존재인 것 같아 꼭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 믿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게 보답하는 길인 것도 같았다. 실제로 합신대 교수이기도 한 김 목사는 박씨뿐만 아니라 고통 당하는 이웃에게 남몰래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경만. (국민일보 다시보는 세상코너, 1998. 3. 10.)

 

박범순씨와 그의 두 딸은 교회라고는 평생에 한번도 가 본 일이 없었습니다. 박범순씨는 청담동 강변교회에 한번 왔고, 은영이와 함께 인천 천성교회(제가 설교하던 주일 저녁 예배에)에 한번 갔고, 은영이와 함께 도곡동 강변교회 입당 예배에 한번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8510일 은영이 혜영이와 함께 도곡동 강변교회에 왔습니다. 혜영이는 평생에 교회에 처음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예배 후 점심을 먹고 제가 인도하는 새 가족반 성경공부에 세 부녀가 참여했습니다. 다른 11명과 함께 세 부녀는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성경공부에 임한 것이었습니다. 혜영이도 대답을 잘 했습니다. 성경 공부를 마친 다음 세 부녀는 제 방에서 두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 박범순씨는 많은 생각과 주저 끝에 마음을 열고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14년 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목사님에게 털어놓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그저 듣고 또 들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만나고 서로 알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혜영이는 그 때 제가 읽으라고 준 글들을 읽었는데,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되게 감동적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가 서로 만나게 하시며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박범순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혜영이가 받고는 너무나 반가워했습니다. 박범순씨는 주일 오후 목사님 방에서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묻어 두었던 것들을 다 털어놓은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모른다는 말을 또 하고 또 했습니다.

 

결국 524일 박범순씨와 두 딸은 강변교회에 참석하고 모두 기쁜 마음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 후부터 세 사람은 매 주일부천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전철을 타고 와서 강변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의 첫 걸음을 기쁜 마음으로 내 디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박범순씨 세 부녀가 강변교회에 출석한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세 사람은 그 동안 주일 예배와 새 가족 성경공부 반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저녁 예배와 심령부흥사경회등 특별 집회에도 충실히 참석했습니다.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두 시간이나 걸리는 부천에서 도곡동 강변교회에 충실히 참석한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이었습니다. 세 부녀는 19981129일 주일 신앙을 고백하고 모두 함께 학습을 받았습니다. 저는 학습이나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강변교회와 나또는 예수님과 나라는 제목의 글을 쓰게 합니다. 세 사람이 쓴 글을 여기 인용합니다.

 

존경하옵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부끄러운 나와 두 딸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 드립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알게 되고 강변교회를 알게 되고 목사님을 알게 되고 전도사님을 알게 되고 장로님을 알게 되고 권사님을 알게 되고 집사님을 알게 되고 성도님을 알게 되고 신앙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나는 토요일 날이면 어린 유년 시절로 돌아갑니다. 내일 주일날이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한 주간 동안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부끄러운 나와 두 딸과 시내 버스를 타고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예배 드리러 오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부녀간에 교회 오는 시간 살아가는 이야기 교회에 대한 이야기 새 신자간에 대한 이야기 성경공부 하는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나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씻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박범순 드림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하루의 일과가 어떠하였는지 반성합니다. 나보다 못한 이들을 도와주었는지, 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였는지, 혹시라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맨 나중에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라고 해서 많은 시간을 쓰는 것도 아니요, 앞에다 많은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요, 제 기도는 언제나 짧고 간단합니다. 오늘 하루를 제가 무사히 끝 마칠 수 있도록 저와 함께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 저는 죄인이라는 회개의 기도, 저에게 늘 용기와 담대함을 달라는 요청의 기도, 사랑하는 우리 가족 또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는 정말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을 위한 기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등 내용은 짧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내 진실의 외침을 예수님 앞에 나즈막한 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저의 마음에 언제나 평안함과 여유로움을 가져다 주십니다.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뒤 늦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마음속 평안함과 나도 어렵지만 다른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박은영 씀

 

지상에서 가장 좋은 교회, 강변교회. 생전 처음 교회라는 데를 와봤다. 그 이름은 강변교회.” 그리고 강변교회를 다닌 지 반년이 지났다. 그리 오래 다닌 건 아니지만 그 동안 나의 생활도 어딘지 모르게 달라진 것 같다. 강변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훌륭하신 김명혁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면서 나의 생활은 항상 즐겁고 기쁘고 의욕에 차 있다. 토요일만 되면 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 하는 간절한 생각까지 들게 된다. 솔직히 난 교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단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일마다 가는 곳이라는 것밖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강변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건 강변교회는 교회가 아닌 무슨 집 같았다. 그 만큼 너무 편안했다. 신도들, 장로님들, 목사님 등 너무나 자상하시고 따뜻하시고 잘해 주신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그리 굳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속도 상한다. 1998년 올해, 나에게 다가온 행운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무엇보다 하나님이라는 좋으신 분을 만나 뵙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세상 그 많은 교회 중에서도 특히 강변교회라는 아주 좋은 교회에서 좋으신 김명혁 목사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믿음도 모자라고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부족한 면도 많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나 또한 훌륭한 하나님의 딸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바램이다. 19981127일 새 가족반 박혜영

 

세 사람은 강변교회를 좋아하며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앙이 차츰 자라갔습니다. 감사와 기쁨도 더해갔습니다. 혜영이는 19991월 마지막 주일 날 성적표를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반장으로 있는 자기 반(2)에서 일등을 했고 전교에서는 2등을 했다는 기록의 성적표였습니다. 기특하고 착해서 그 다음 주일 저는 은영이와 혜영이에게 축하하는 뜻으로 작은 녹음기를 하나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혜영이는 다음과 같은 감사의 편지를 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께. 목사님! 한 주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목사님의 염려 덕분에 즐겁고 평안한 한 주였습니다. 목사님! 제가 지지난 주에 성적표를 목사님께 보여 드렸지요.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목사님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성적표를 드렸는데 뜻밖의 목사님의 선물에 저는 너무나 감격하고 기뻤답니다. 항상 언니와 저를 친 딸 이상으로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께 저도 무언가를 보답해 드리고 싶어 저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정, 그래서 목사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예쁘게 보시고 좋은 결과를 주신 것 같아요. 목사님!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나중에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 성적표를 보시고 기뻐하시던 목사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네요.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뵙기를 바라며 저 혜영이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목사님! 앞으로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목사님 사랑해요. 1999. 1. 13 혜영 올림저는 박범순씨와 은영이와 혜영이를 아주 좋아했는데 은영이 결혼식 주례를 제가 했습니다.

 

일곱 번째로, 강변교회를 통해서 삶이 새롭게 변화된 또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합니다. 박종서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하나님도 싫어하고 교회도 싫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강변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새 신자 반에 참석하면서 믿음이 생기게 되었고 2002331일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해옥 집사는 너무 기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18년 만에 남편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목사님이 세례를 주실 때 눈물이 복받쳐 올랐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은혜 받은 증거라고 말해주었어요. 만일 그 자리에 조금만 더 계속 있었다면 울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부럽다고 했습니다, 나도 다시 세례 받으면서 그런 감동을 받고 싶다고요. 남편은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아왔고, 저의 신앙생활도 많은 제약이 따라 다녔답니다. 낮 예배만 겨우 다닐 수 있었지요. 교회라면 머리를 흔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강변교회에 잘 다니게 되었습니다. 강변교회에 와서도 세례니 뭐니 나에게 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 가족반 성도들을 통해서 교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교인은 말이 많고 아집이 많다고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거든요. 새 가족반 성경공부를 하면서 정말 변화되었습니다. 설교에 감동을 받은 것을 잘 적었다가 회사에 나가 직원회의에 그대로 전합니다. ‘종교를 가지라, 교회에 나가보라하면서 이제는 정말 전도자가 되었어요. 저는 예전에 하나님, 남편을 저는 못 바꿉니다. 정말 내 힘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하나님께서 해 주세요이렇게 엎드렸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18년 만에 놀랍게 변화시켜 주셨어요. 지금 저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합니다. 강변교회와 성도님들 그리고 목사님을 만난 것을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요. 제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목사님 강변교회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후 박종서씨는 교회에서는 집사로 남전도회 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했고 그가 회장으로 있는 회사에서는 변화된 삶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보고 회사와 회사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따라서 강변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박종서씨를 통해 강변교회에 나와서 교인으로 등록한 가정이 여섯 가정이나 됩니다. 늘 얼굴에 웃음을 지니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은퇴한 다음에 박종서 집사 부부가 저의 사무실을 가끔 찾아서 저와 저의 아내를 만나곤 했습니다. 9년 동안 들으며 익숙해진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박종서 집사는 예수님을 만나므로 그의 삶과 운명이 새롭게 변화된 아름답고 보배로운 성도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삶입니다. 전도는 변화된 사람의 삶의 모습과 간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여뎗 번째로, 한국복음우의협의회가 지난 20 여년 동안 편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주님께로 돌아온 그래서 삶이 완전히 변화된 중국 연변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이 너무 많은데, 저들이 저에게 보내온 감동적인 편지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상 관계로 소개해 드리지 못합니다.

 

오늘 너무 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사람인 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너무너무 크고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너무 많이 베풀어주셔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고 살던 이런 저런 많은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게 하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변화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앞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고 불행하게 살던 이런 저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변화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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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9 [10:0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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