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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28 [07:22]
“민중의 곁에 선 떠돌이 목자 문동환”
고 문동환 목사 1주기 추모예배에서 기장총회장 육순종 목사 설교
 
김철영

     

문익환 목사의 동생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문동환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2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고인은 지난해 3월 9일 소천했으나, 코로나19사태로 이날 추모예배를 드린 것이다.

▲ 문익환 목사의 동생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문동환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2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 육순종 목사

  

이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 총회장 육순종 목사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 31-32, 12; 1-2)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육 목사는 설교에 앞서 고인과의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던 해 문 목사님은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인해 감옥에 계셨다.”문 목사님이 옥고를 치루시고 잠시 학교로 돌아오셨을 때 저는 군대에 있었다.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목사님은 또 미국으로 들어가시고 안 계셨다.”고 말했다.

 

이어 “1985년 다시 복직하셨을 때, 대학원에서 목사님의 수업을 한 학기 들을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육 목사는 오늘 추모예배 순서지에 목사님 이름 앞에 이런 타이틀이 붙어 있다. ‘민중의 곁에 선 떠돌이 목자 문동환!’”을 언급하면서 목사님을 잘 표현한 카피이다. 저는 거기 어디에 민족과 함께란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목사님의 선친인 문재린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고향인 함경북도 경흥을 떠나 북간도로 이주하셨다. 그리고 북간도 땅에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셨다.”그리고 문 목사님이 어머님 김신묵 권사님 태중에 있었을 때, 아버님 문재린 목사님은 3.1 운동 이후의 탄압과 검거 열풍으로 인해 감옥에 계셨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감옥에 갇힌 남편을 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의 태중에 있던 문동환 목사님 안에는 이미 민족을 위한 격동의 삶을 살아갈 DNA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더 높은 뜻을 향해 영원한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과 섭리가 목사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목사님을 떠돌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였다고 믿는다.”이 땅에서 떠돌이와 나그네의 삶의 살았던 모든 선각자들 속에 있었던, 아니 예수 안에 있었던 그 진리가 목사님을 떠돌게 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육 목사는 문 목사님의 떠도는 삶은, 방황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다.”문동환 목사님이 성서 안에서 만난 진리, 역사 속에서 만난 진리는 목사님을 안주하게 만들지 않았다. 목사님을 떠돌게 만들었고, 새로운 시도, 새로운 탐험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다.”고 했다.

 

특히 문 목사님에게 기존의 것은 언제나 낯선 것이었고, 넘어서야 할 무엇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언제나 기존의 것으로부터 자유로우셨다.”고 말했다.

▲ 문익환 목사의 동생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문동환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2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설교하는 기장총회장 육순종 목사     © 육순종 목사

  

육 목사는 그러나 문 목사님이 평생을 떠도셨지만, 떠돌지 않은 곳이 한 곳 있다. 그것은 목사님의 가정이었다.”목사님은 평생 반려, 문혜림 사모님 곁에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끝까지 머물러 계셨다.”고 말했다.

 

또한 마지막 미국에서의 10여년은 자신의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아온 아내에 대한 배려였다.”듣기로 돌아가실 무렵까지도 사모님을 어루만져 주시고, 키스하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닭살 돋는 부부셨다. 또한 224남매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셨다.”고 말했다.

 

육 목사는 목사님은 가셨지만, 목사님이 남기신 이정표는 사라지지 않는다.”특별히 코로나 19의 위기로 문명의 전환점에 선 우리에게 목사님의 발자취는 더욱 소중하다. 현대 문명이 쌓아 온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요즈음, 새로운 정의와 평화와 생명공동체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 목사님이 남기신 삶과 가르침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기로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며 설교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기장 총회장 육순종 목사의 추모예배 설교문 전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경: 요한복음 8: 31-32, 12; 1-2

 

오늘 푸르고 따뜻한 5월의 온기를 느끼며 이 자리에 서니 마치 푸르고 따뜻했던 목사님 곁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추모예배가 조금 미루어졌는데, 이것도 은혜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던 해 문 목사님은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인해 감옥에 계셨습니다. 문목사님이 옥고를 치루시고 잠시 학교로 돌아오셨을 때 저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목사님은 또 미국으로 들어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좀 엇갈린 거죠. 감사하게도 1985년 다시 복직하셨을 때, 대학원에서 목사님의 수업을 한 학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제 얼굴과 이름을 잘 매치시키시지 못하셨습니다. 어른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제 성격 탓이 컸습니다만, 목사님은 다정다감하셨지만, 저만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시지는 못하셨습니다.

 

어쨌든 저는 문 목사님의 직계 제자가 아닌 방계입니다. 제가 방계라 함은 문목사님을 존경하는 제자의 한 사람인 것은 분명히 맞지만, 목사님의 삶을 지근에서 따랐던 제자는 못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1주기 추모의 자리에 설교 부탁을 받았을 때, 더 가까운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잠시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문목사님을 존경하며 기억하는 보다 많은 분들의 입장이 저와 비슷하다 생각되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추모예배 순서지에 목사님 이름 앞에 이런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민중의 곁에 선 떠돌이 목자 문동환!” 목사님을 잘 표현한 카피입니다. 저는 거기 어디에 민족과 함께이란 말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목사님의 선친인 문재린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고향인 함경북도 경흥을 떠나 북간도로 이주하셨습니다. 그리고 북간도 땅에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목사님이 어머님 김신묵권사님 태중에 있었을 때, 아버님 문재린목사님은 3.1 운동 이후의 탄압과 검거 열풍으로 인해 감옥에 계셨다고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감옥에 갇힌 남편을 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의 태중에 있던 문동환목사님, 아마도 문목사님 안에는 이미 민족을 위한 격동의 삶을 살아갈 DNA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더 높은 뜻을 향해 영원한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과 섭리가 목사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목사님을 떠돌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였다고 믿습니다. 이 땅에서 떠돌이와 나그네의 삶의 살았던 모든 선각자들 속에 있었던, 아니 예수 안에 있었던 그 진리가 목사님을 떠돌게 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은 진리가 너희를 떠돌게 하리라해도 맥이 통합니다. 그러나 문목사님의 떠도는 삶은, 방황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이 성서 안에서 만난 진리, 역사 속에서 만난 진리는 목사님을 안주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을 떠돌게 만들었고, 새로운 시도, 새로운 탐험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습니다. 문 목사님에게 기존의 것은 언제나 낯선 것이었고, 넘어서야 할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언제나 기존의 것으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존 스토트는 그의 제자도란 책에서 제자도의 특성을 언급하면서 그 첫째 특성을 '불순응', 영어로 non-conformity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conform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변신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Form' 어떤 틀에 'Con' 맞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는 기존의 질서나 환경에 피동적으로 끌려 다니지도 않고, 살아남기 위해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있고, 물러서지 않는 뚜렷한 자기 기준이 있다고 말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때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거대한 흐름에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불순응, 일종의 떠돌이 정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 12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12:2)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영어성경에서는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라고 번역했습니다. 기존의 세속적 질서가 말하는 가치와 기준에 conform!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추지 말고, 순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순응형 인간이 아닙니다. 시류에 맞추어 살지 않고, 낡은 질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결코 우리를 기성품으로, 맞춤형 인간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한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꿈꾸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선택하는 것 등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전복시킵니다.

 

문목사님의 진리를 향한 자유의 여정은 떠돌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와 떠돎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바벨로 상징되는 기존의 낡은 질서입니다. 세상의 강자들이 이 땅에 구축하고자 하는 항구적인 억압구조입니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이고, 분단체제이며, 이 땅에서 누룩처럼 번져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악한 구조입니다. 목사님은 평생 이 바벨문명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그 바벨문명 아래 신음하며 떠돌이로 사는 민중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들이 강자들처럼 탐욕의 바벨탑을 쌓지 않고, 자신과 같은 형편의 떠돌이들과 더불어 정의와 평화가 강같이 흐르는 생명공동체를 이루도록 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북간도와 일본에서, 해방 조국에서, 미국에서, 한국에서, 감옥에서, 다시 미국에서, 그리고 고국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목사님이 떠돌이 삶을 사신 것은 예수의 진리,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하나님의 뜻이 이 땅이 이루어지기까지 자유와 해방을 향한 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조국이 여전히 분단체제 아래 놓여있는 한, 이 세계가 여전히 불의한 구조 속에서 신음하는 한, 목사님은 떠돌 수밖에 없었고 이 땅의 떠돌이들의 친구로서 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의한 세상과 바벨문명의 실체를 부단히 밝히며 이에 저항한 목사님의 몸짓은 역설적이지만, 마치 봄 햇살 같았습니다. 뭔가 밝고 따뜻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 느낌이지만, 저는 목사님의 따뜻한 목소리와 말씀의 톤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해야 합니다.’는 선언적 표현보다는 ‘~~해야 해요는 권고형 표현 쓰셨습니다. “아파해야 해요”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해요” “일어나야 해요란 표현에서 우리의 약함을 끌어안고 격려해주시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은 훌륭한 교육자였고, 참 좋은 선생님이셨습니다.

 

문목사님이 평생을 떠도셨지만, 떠돌지 않은 곳이 한 곳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가정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평생 반려, 문혜림 사모님 곁에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끝까지 머물러 계셨습니다. 마지막 미국에서의 10여년은 자신의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아온 아내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듣기로 돌아가실 무렵까지도 사모님을 어루만져 주시고, 키스하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닭살 돋는 부부셨습니다. 또한 224남매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두 따님 중 영혜 씨는 입양한 딸입니다. 목사님 돌아가시는 날 영혜씨가 미국에서 들어왔는데 임종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 집에 도착했습니다.(이 이야기는 문영미 선생의 페이스북 글을 나누는 것임을 양해 바랍니다) 그 날 돌아가신 후 도착한 영혜씨는 목사님 침대 위로 올라가 함께 누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Daddy, thank you for giving me my life.” “아빠, 내게 나의 삶을 주어서 감사해요이 고백은 이 땅을 살아간 어떤 아버지가 들었던 고백보다도 아름다운 고백이었습니다. 문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그의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진짜 남편, 진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목사님의 마지막 6년을 헌신적으로 간병한 문영미 선생님과 유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목사님 마지막 순간까지의 간병기록은 눈물겨웠습니다. 목사님의 품격 있는 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 효성을 받으신 목사님도 행복하셨고, 그런 효성을 드린 자녀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 섬김의 과정에서 문목사님의 생애와 뜻이 자녀들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또 하나의 문동환으로, 작은 그리스도로 세상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에서 목사님은 북간도의 나리꽃이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었지만, 저는 영원한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천국은 어떤 곳일까 궁금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계신 천국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나리꽃이 만발할 것 같습니다. 떠돌이의 삶이 영원한 안식으로 변한 그 곳에서 형님 문목사님과 함께, 아버님 목사님, 어머님 권사님, 또 먼저 가신 믿음의 벗들과 함께 여전히 자유를 향한 여정을 가야 하는 우리를 따뜻한 봄 햇살 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리라 믿습니다.

 

목사님은 가셨지만, 목사님이 남기신 이정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19의 위기로 문명의 전환점에 선 우리에게 목사님의 발자취는 더욱 소중합니다. 현대 문명이 쌓아 온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요즈음, 새로운 정의와 평화와 생명공동체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 목사님이 남기신 삶과 가르침을 우리의 이정표로 삼기로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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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2 [17: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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