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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20 [14:02]
[김준곤 목사 설교] 부활의 현실성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디모데후서 2:11
역사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 김준곤 목사 흑백사진     ©뉴스파워



  나사렛 예수그리스도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주일 새벽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원시 기독교의 신앙이었고 설교의 중심이며 곧 복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복음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복음은 누구의 환상이나 고대의 신화나 어떤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피 묻은 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때를 세밀히 알고 있고 또한 목숨을 바쳐 그것을 증언해 준 가장 진실하고 소박했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흔히 생각하는 미신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그리스의 역사가요 지리학자인 스트라보와 푸루타크, 그리고 유대인 역사가 조세퍼스가 사실성(事實性)을 존중시하는 바야흐로 역사 안에 눈뜨던 시대였습니다.

사상(史上)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논의되었고 그에 대한 책은 종교 개혁 이후 구라파의 언어만으로도 6만 종이 넘습니다.  그의 죽음의 기록은 로마의 사가(史家)들이 줄리어스 시저의 죽음을 기록한 것 전부를 합한 것보다 20배나 자상하고 길다고 합니다. 


그가 생존했었다는 사실과,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 그것이 기독교의 출발이요 기초입니다. 그의 사활문제는그리스도가 말한 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세계의 도서관이란 도서관에서 1만 권의 전기를 다 찾아보아도 그 누구도 자기 생전에 자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약속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입에서만 이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두려워서 무덤을 봉인하고 로마 정규군을 시켜 무덤을 감시 했습니다.

또한 제자들도 주님이 살아날 것을 기대하지 못했고, 그러기에 실의와 슬픔에 잠겼으며 살아났다는 보도를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유태인의 증오였고, 그가 살아났다는 확실한 증거의 첫째는 유태인이 그 사체(死體)를 제시하지 못함이요,

둘째는 제자들의 순교적 중언이요 도덕적 영적인 변화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망 진단과 부활의 증명서에는 원수들이 사인(Sign)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살아나지 않았고, 그들의 증언도 착각이나 허위였다면 최대의 난센스가 최고의 선과 진실을 낳았다는 결론을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실이었습니다. 역사 중의 역사요, 사실 중의 사실이요, 사실 중에서도 근원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책은 그를 기준으로 AD와 BC로 나둡니다. 이 사건은 철학이나 예술이나 단순한 종교와 동열(同列)에서 취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대의 전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제자들이 갑자기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소생하였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 안에서 40일을 지나는 가운데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의 영이 그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낡은 아담의 죽음 권에서 그리스도 안의 생명권으로 중심과 궤도를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차원이요 새로운 종의 기원입니다. 제 2의 생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미움은 사랑으로, 절망은 명안과 소망으로, 나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아무 데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전환이요 변화였습니다. 무(無)에서 무로, 죽음에서 죽음에로의 삶은, 삶에서 삶에로의 영원한 신인(新人)이 되었습니다.

이 부활 체험은 연쇄적으로 로마 천지에 번져 갔습니다. 그 중에는 저 로마서를 쓴 예리한 지성과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 바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보라 옛 것은 지나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후 5:7)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오래 되지 않아 그들은 사랑으로 세상을 뒤집어엎었습니다. 이 부활의 파동은 쉴 사이 없이 지금도 보이지 않는 누룩처럼 신자들의 내부에 번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과 미움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도 일찍이 없었거니와 그만큼 미움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생전에 예언하기를, 사후에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가 요구한 사랑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부모나 형제나 처자보다 더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대개는 죽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인정입니다. 스탈린이나 히틀러같이 생전에 미움 받던 사람도 일단 죽으면 측은해 지고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다릅니다. 많은 제국들과 반기독자들은 그를 제1의 적으로 삼고, 내가 죽느냐 네가 죽느냐의 결전을 지금도 도처에서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살아서 그들의 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늙은 문인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가는 딸을 보내며 이렇게 독백하였습니다.

“저 2천 년 전 로마의 형장에서 사라진 예수가 나의 집 품에서 위로를 주었던 나의 딸을 빼앗아 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진실 되고 순결한 중심을 바쳐 뜨겁게 그를 사랑하는가? 이 부적(不適)의 사랑은 과연 죽었는가? 그리고 단순한 사랑인가? 사람의 마음과 사랑올 약탈하는 자여, 과연  그대는 살아 있구나.”

또한 나폴레옹도 “나사렛 사람아, 그대가 이겼노라.”고 고백했는데 이것이 로마의 폭군이 죽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활은 현실적인 힘이요 창조입니다.
  그리스도가 살아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거의 역사에 그치고 내게 현실적인 힘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낱 헛된 신화나 환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인간이 예외 없이 죽음으로 향하고, 죄와 분열과 불안과 모순과 어두움과 미움의 현실 속에 살수밖에 없는, 그 누구도 피할 수도 없고 처리할 수도 없는, 과거의 원인을 숙명으로 가지고 있음을 시인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새로워지는 힘입니다. 무에서 유를, 죽음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입니다. 그는 시대와 함께 낡아지거나 피곤해 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는 신인(新人)이고 소년이며 처녀성을 지닌 젊은 독수리입니다.

모든 삶의 방식과 권위들이 몰락한 폐허에서 오히려 싱싱하게 꽃피는 부활입니다. 그의 힘은 한도에 도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는 언제나 소경이 눈뜨고 귀머거리는 들으며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이가 깨끗해지며 죽은 자는 살아나는 치료하는 힘, 극복하는 능력과 재생의 에네르기입니다. 개인과 사회의 생의 전면에 작용하는 유일한 창조력입니다.

우리 민족이 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덴마크나 미국이나 현대의 독일이나 그 어떤 나라에서도 실험해 보지 못한 이상 국가를 만들 수 있는 민족 부활의 에네르기 원(源)은 여기에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작은 밀알이요 모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100배나 만 배로 결실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땅 속 어두운 곳에서 썩어야 하는, 주께서 심은 작은 밀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속에 수많은 바울과 어거스틴과 링컨과 뭇 성좌(星座)를 수태케 하기 위하여 우리를 도우십니다. 결국 우리는 살을 찢고 아이를 출산할 모태의 소명을 지녔습니다. 번영과 꽃과 열매를 보지 못하는 땅 속에서 씨앗은 작고 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모태의 약함이요 초라함입니다.

우리의 보람과 영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주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시기만을 비는 순종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된 임무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겟세마네의 결단과 골고다의 죽음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살지 말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합시다.

우리들의 무대는 여기이고 우리들의 시대는 지금부터입니다. 이제 겨우 출발입니다. 부활의 찬란한 새벽은 동트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환희는 십자가를 거쳐서 왔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65년 5월 25일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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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6 [04: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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