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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3.30 [21:04]
[교회사 이야기]병사에게 뺨을 맞은 교황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보니파시우스(BonifatiusⅧ,1294-1303)
 
한평우

  병사에게 뺨을 맞은 교황 보니파시우스(BonifatiusⅧ,1294-1303)

▲ 병사에게 뺨을 맞은 교황 보니파시우스(BonifatiusⅧ,1294-1303)     © 한평우 목사

 

사람은 수치를 당하게 될 때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한신은 동네 건달들이 우리를 죽이고 가든지 아니면 우리의 바짓가랑이로 지나가라고 했을 때 그 수치를 묵묵히 견디어 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보통 사람은 그럴 수 없다.

고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지난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을 검찰에서 호출하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던 자리에서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인 감옥에 갇힐 수 있다는 수치스러움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중세기 교황은 두 개의 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 하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교회를 다스리라는 검과 또 하나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검이라고 스스로 해석하였다.

고로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특정인을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영적 권위와 황제에게 기름을 부어 통치권을 행사하게 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메로빙조 왕국에서 실제적 권력을 잡게 된 피핀을 교황 보니파시우스가 왕으로 기름을 부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후 왕들은 영적 권위 앞에 엎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드물게는 세속의 무력을 의지하여 교황을 갈아치우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허수아비 교황을 세운 황제들도 많았다. 교황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베드로의 대리자라는 의식이 신앙으로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황제들은 조심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황제들은 교황을 무자비하게 대하곤 하였다.

▲ 지하감옥     © 한평우 목사

 

 

그런데 역사에서 교황이 무장에게 뺨을 맞았던 경우도 있었다. 바티칸이 공격을 받을 때 지하통로로 연결된 산타젤라 성으로 피신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거기까지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황이 자신의 별장이 있는 아나니에 있을 때 불란서의 황제가 보낸 무장이 작은 마을 아나니를 정복하고 그를 체포하였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교황의 뺨을 후려쳤다수치스러운 사건이었기에 자세한 기록은 생략하였

지만 예수님을 조롱하여 머리를 쳤던 병사들처럼(15;18-19), 저들은 교황을 함부로 대했다.

 

황제에게 뺨을 맞았다 해도 견딜 수 없었을 텐데 하물며 일개 왕이 보낸 무리에게 뺨을 맞았으니 그 수치스러움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수도사의 길을 걸었고 추기경들의 선거를 통해 가톨릭 최고의 수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 교황이 체포되어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뺨을 맞아야 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 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예수님은 소명을 이루기 위해 구타를 당하셔야 했지만 교황 보니파시우스는 불란서의 필립 왕과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가 보낸 무리들에게 구타를 당하였으니 말이다.

자신보다 훨씬 젊은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받으며 뺨을 맞았으니 눈을 감는 순간까지 받은 수치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르고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에서도 상대방에게 극심한 수치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상대방에게 당한 수치스러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뺨을 맞은 교황은 전임 교황 첼레스티노 5세를 압력을 통해 물러나게 했고 자신의 대관식에 따라오도록 명했다. 위험인물이라고 여긴 전임 교황을 로마에서 한참 떨어진 휴모네 성(Castello di Fumone)에 감금시켜 버려 거기서 죽게 했다. 자신을 학대하는 후임 교황을 향해  당신은 여우처럼 세상에 등장해서 사자처럼 군림하고 개처럼 죽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교황 보니파시우스는 로마대학을 창설하였고, 교회법을 성문화 했고 바티칸 도서관을 재건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1300년에 희년을 선포하여 로마를 찾는 자들에게 관대한 용서를 베풀겠다고 하여 20만 명이 로마를 찾게 했다. 순례자 중에는 신곡을 쓴 단테도 있었다. 그는 거만했고, 야망이 대단했고, 세속적이었고 영적인 면은 한참 부족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불란서의 필립 왕과 사이가 나빴다. 즉 영국과 백년전쟁의 전조가 되었던 때,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재정적 모금을 위해 불란서 내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여하는 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당시 교황청의 큰 수입원은 불란서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로마의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콜론나 가문을 원수로 만들어 버렸고, 콜론나는 교황의 위협을 피하여 불란서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런 중에 프란치스코의 사상을 따르는 프라티 첼리파는 교황의 부와 거만함을 싫어했다. 또한 교황이 만든 무수한 자신을 위한 동상과 동성애 행위에 대한 소문들이 교황을 신뢰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여론에 힘을 얻은 불란서의 필립왕은 눈에 가시 같은 교황을 잡아오도록 각료인 기욤에게 군사 1600명을 주어 보냈다.

저들은 로마에서 멀지 않은 별장 아나니에 머물던 교황을 체포하여 망신을 주고 물러났지만 나이 많은 교황은 그 충격이 너무나 커서 한 달도 못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용광로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제 8원에 넣었다. 그는 오직 목표만 위해 달려갔고 주변을 돌아보고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지 못할 때 자신도 불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남긴 교황이었다. 세상 끝날 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지만 재위 기간은 겨우 9년 동안이었다. 자신이 9년 만에 세상을 떠날 것을 알았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삶도 언젠가는 끝나게 됨을 명심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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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9 [20: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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