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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9.30 [00:02]
[김준곤 설교] 이 파국(破局)을 이길 재생의 에너지는 사랑이다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 1984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84세계기도대성회에서 김준곤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뉴스파워

이사야 1:6, 고린도전서 13:3

우리는 참회해야 합니다.
  머리털부터 발바닥까지 성한 곳이 없다는 선지자 이사야의 진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대로 누구를 탓할 때가 아닙니다. 개인과 역사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하시옵소서.”

병자에 대하여 과장된 진단도 해가 되거니와 가볍게만 치료하려는 의사는 더욱더 죄악적 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이 비관과 절망을 덜어 주려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이 있습니다. 내일 종말이 와도 오늘 나무를 심읍시다. 지나치게 공포에 과민하지 맙시다.”라고 위로했으나 겨레는 그것을 믿을만한 기력마저 없는 것만 같습니다.

 
힌두교도인 인도의 네루 수상의 서거가 보도되자 세계는 경건한 애도를 표했고, 그의 장례식에는 인도 국회 상하의원이 통곡하고 거리의 거지들도 우리들은 이제 고아가 되었다고 아버지를 여윈 설움에 잠겼습니다.

이토록 인류의 가슴에 깊은 인격적 감화를 남기고 간 사람은 그리스도의 산상보훈을 실천해 보려는 간디와 함께 힌두교도였지 불행하게도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누구 한 사람 죽어서 전 국민은 커녕 그가 살고 간 한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엄숙한 양심적 공감을 남기고 간 사람이 있을까요. 슬픈 일이지만 솔직이 우리는 스스로를 비판하고 참회와 기도로 주님의 은총과 우리를 믿어 주었던 겨레 앞에 사죄를 빌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자아비판에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의 선지자도, 등불도, 소금도 아닙니다. 선의의 이교도와 총명한 비기독교도는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싸우고 미워할까’하고 걱정합니다. 역사의 심판자인 기독교도는 이제 역사의 심판대에서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이교도들 눈에는 ‘저들이야말로 세상을 뒤집어엎을 사람들이다. 우리는 미워하는데 저들은 서로 사랑하는구나. 서로 나누어 먹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구나’(행 4:35)라고 보였는데 현대 교회는 이 사실과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교도의 눈에 비친 현대 기독교는 어떤 모습입니까? ‘잘 사귀면 구제품 타고, 미국과 통하며, 비 공산 단체, 천당 가는 종교, 이 박사와 미군정 덕에 세도 부리고 무엇 하나 손해 입으려 하지 않는 처세에 능했던 말 잘하는 기독교’ 입니다.

세속적 흥미에 끌림이 더 많았으나, 행위나 성격을 개조하는 신생의 기대 같은 것은 거리가 멉니다. 교회도 회원이 되어 주는 것이 고마워 회개와 영적, 도덕적, 신생 같은 것은 묻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닙니다. 죄는 회개와 사죄를 위해서 말해야 하고 수술은 치료를 위해서만 해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해방 후 20년간 기독교 청년이 되었고, 지금은 목사인 자신의 책임을 먼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참회하고 용서하여야 합니다. 용서는 서로 잘못했다는 피차의 참회에서 비롯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나 심판의 시간은 우리의 의무를 위하여 연장되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건전하고 초조하지 않은 걸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한 손에는 신생의 복음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우리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소자를 위하여 냉수 한 잔을 들고 가야합니다.

굶주려 죽는 군중을 두고 기도만 하느냐고 비판할지 모르나 우리들의 참된 기도가 거절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루 최소한 30분의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인색한 마음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보다 빵이 먼저 필요하다고 상식 인간이 외칩니다. 그러나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저것도 있어야 하나 먼저는 인간이 하나님과 근원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역사를 창조합시다. 그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와 같은 수평적인 면과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며 그의 축복 없이는 우리의 하는 일이 허사’라는 수직적인 면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고로 건전한 인간이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대신(對神) 관계와 수평적인 대인(對人) 관계가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구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이웃을 돕는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은 로마 제국이나 바리새인당에 반대 노선을 펴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엣세네파나 개혁 운동에 가담한 일도 없습니다. 성전 세를 바치고 율법의 일점 일획도 폐함이 없는 보수적인 동시에 혁명의 개념을 혁명한 영원한 진보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이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 것이 아닌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지만 소금이나 누룩처럼 번지고 작용하는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는 오늘 세상과 함께 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묻어 거름이 되게 하고 자체를 녹혀 부패를 막으며 생명을 주는 혈액이어야 합니다.


청교(淸敎)운동을 일으킵시다.
  먼저 우리는 토색한 것을 갚아주며 불화한 사람과는 화목하는 자신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만이 생명의 깊은 곳에 확신을 가지며 만지며 생명의 체온을 전합니다. 기독교의 생신(生新)한 운동은 모두 생활 운동에서 출발합니다.

3세기 초에 교회가 세속화하자 수도사적 생활을 흠모하는 이들이 노동과 성빈, 명상과 기도, 사랑과 봉사 생활을 일으켜 영적 기력을 회복하였고, 17세기 후반에 독일에는 신, 구 양파의 30년 종교 전쟁에 지쳐 생명력을 잃고 강단은 종교 대중이 이해도 못하는 흥미도 생명도 없는 진리의 잔해만 남았을 때 교회 전쟁 신생 운동을 표방하는 경건주의 청교 운동이 일상생활의 한 호흡, 한 호흡을 통하여 시민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하였고, 영국의 웨슬레 운동이 민중의 마음속 깊이 복음을 전해주고 석탄, 식량, 의류를 모아 빈민 도움으로 유혈 혁명과 누란의 위기에서 구원하였던 것도 전감(前鑑)이 됩니다.


사랑은 재생의 최대 에네르기입니다.
  우리가 병든 곳이 경제나 정치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인간 자체의 도덕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의 파산이 먼저 문제시 되어야 합니다. 이런 질병은 사랑의 싸맴과 치유 능력이 없이 정의의 메스만으로는 오히려 유해합니다.

마침내는 싸움으로 자멸할 운명을 지닌 역사의 벽 앞에서 우리가 일으킬 남은 기적은 사랑의 기적이며, 현재의 파국을 극복할 유일의 재생의 에네르기가 그리스도의 사랑뿐임을 강조하면서 우리들의 과제가 사량을 중대시키고 부흥시킬 임무에 있다는 것과 이름 없는 이웃 하나 하나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각자가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서 거름이 되는 데 있다는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허락된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마지막일는지 모르는 종말적 시점에서 순교자의 결의로 이웃을 사랑함에 순(殉) 합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양 사랑의 제물이 됩시다. 이것이 우리가 바치는 순교입니다.

우리가 그 번영을 보지 못해도 좋습니다.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과,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곤고한 중에도 소망을 가지며,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도록 우리가 과학과 문화와 부강을 남겨 주지 못할지라도 이것을 남겨 줄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바친 기도와 사랑의 순교적 제사가 얼마나 보람된 것이겠습니까?

인도 민족에게 간디가 바친 기도와 죽음이 있었듯이 한국의 재생을 위하여 이 시점에서 부름 받은 우리의 사명은 죽어서 거름이 되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64년 6월  8일 발행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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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5 [07:3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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