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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2.23 [16:02]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처절한 회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 명예회장) 파워 인터뷰
 
김철영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장과 강변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김명혁 원로목사는 보수와 진보 교계를 아우르는 목회자이자 신학자다. 신학적으로는 가장 보수적(개혁적)인 교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박종화 목사 등 가장 진보적인 교단에 소속한 목회자들과 친분이 깊다.

 

또한 불교, 천주교, 천교도, 원불교 지도자들과도 남북의 평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앞장섰다. 평생 신학교 교수와 목회자로 살아온 만큼 지난 2008년 강변교회 은퇴 후에는 전국의 작은 교회를 찾아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주일예배 설교를 인도해 왔다. 그리고 청소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고, 중국 연변조선족 동포 학생들을 돕는 일도 계속해왔다.

 

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새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한국 사회와 교회는 전혀 새로움이 없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광화문 정치투쟁집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가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사시던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는 데 그리고 죄인의식을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세속화와 인간화와 부귀영화로 치닫게 되었고 의인의식을 지니고 모두를 비판하면서 정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홍정길 목사, 이영훈 목사, 소강석 목사, 손봉호 장로 등에 대한 색깔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는 일부 기독교인 유튜버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라며 저는 위의 분들을 공산주의자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고 고난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아주 귀중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공산주의 정치이념에 동조하는 분들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기독교 목회자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적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것보다는 긍휼을 지니고 애정 어린 비판과 권면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이 세상에 비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온전한 왕이나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사실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비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온전한 신학자나 목회자나 선교사도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정 어린 비판과 권면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는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     ©뉴스파워

 목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근황이 궁금합니다.

 

저는 죄와 허물밖에 없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20081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 후 지난 12년 동안 매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몇 달에 한번 씩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사랑과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건강과 영력과 재정 등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그리고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과 연변 조선족 학생들을 돕는 일과 모슬렘 사람들을 조금씩 돕는 일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송교도소에 일곱 번 가서 죄수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고 신앙의 선배님들이 부족한 저에게 물려주신 귀중한 복음신앙의 유산들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직전 회장으로 지난 10일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셨지요? 선언문 작성에도 관여를 하셨는데요. 한복협에서 시국선언문 발표는 이례적인 것 같습니다.

 

시국선언문 발표는 이례적이었지만 한복협이 그 동안 주일성수의 자유” “목회자 윤리신천 강령” “북한에 생명의 쌀 보내기등 성명서 발표는 많이 했습니다. 저는 이번 선언문 발표를 제안하지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거의 완성된 선언문을 읽으면서 내용에 거의 공감을 하기는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로 충만하게 하라!”는 주장은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정치적인 올바른 이념과 올바른 실현을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은 지적도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일인 독재를 시도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관하여 작심하고 고언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 발전 과정과 국민 전체의 화합을 깊이 생각하여 적폐 청산과 남북의 화해 증진에서 지혜로운 접근과 포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는 한복협의 선언문은 사회 정치적인 문제 이전에 사분 오열로 치닫고 있는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교회의 순수하고 올바른 회개와 복음신앙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이 최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념 갈등이 너무 심각합니다. 특히 교회 내부에서도 극 보수가 보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가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사시던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는 데 그리고 죄인의식을 지니고 모두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세속화와 인간화와 부귀영화로 치닫게 되었고 의인의식을 지니고 모두를 비판하면서 정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경의 사사기 시대와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교회가 40여 년 또는 70여 년 동안 교회다운 순수하고 온유 겸손한 신앙을 지니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실현한 때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채찍이 가해지곤 했고 그래서 교회가 회개하고 순수하고 온유 겸손한 신앙을 되찾곤 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는 일곱 번, 로마시대에는 열 번 박해가 주어졌습니다. 인간들은 고난이 필수적인 별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12:6).

지금 한국교회가 분열과 갈등과 대결을 극복하고 서로 끌어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일제 36년의 재난이나 6.25의 재난과 같은 재난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홍정길 목사님, 이영훈 목사님, 소강석 목사님, 손봉호 장로님 등도 공산주의자로 매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의 분들을 공산주의자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고 고난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아주 귀중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공산주의 정치이념에 동조하는 분들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는 악독이 하늘에까지 상달한 니느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성부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기더러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반항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시려고 하시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성부 하나님을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아니하였나이까”(4:1,2).

분노하고 반항하는 요나를 향해서 하신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반공 반북을 부르짖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4:9-11).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인용합니다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5:43-45).

 

 목사님은 자유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11세 때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오셨지요? 부친은 공산당에 의해 북한에서 순교를 당하셨고요.

 

저는 유아 및 유년 시절에 평안북도 신의주와 평안남도 평양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 신의주 제이교회의 부목사님으로 나중에는 담임 목사님으로 9년 동안 목회하셨고 나중에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를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일제 시대와 공산주의 시대에 자주 감옥에 투옥되어 감옥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는 신의주와 평양에서 아버지의 목회의 삶과 감옥의 삶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바로 믿고 목회생활을 바로 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옥에 가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이 아닌 삶으로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신앙의 유산을 제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체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결국 저는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를 바로 드리면서 살기 위해 11살 때인 19488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북에 남겨 두고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는데 제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월남한지 2년 후인 1950625일 전후에 저의 아버지는 순교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저의 월남과 아버지의 순교는 저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귀중한 보석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뛰어넘은 사건은 그후 저의 평생의 삶의 성격과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 없이” “모험적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삶이 저의 삶의 모습이 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보수로 치우치지 않고 남북 화해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실 저는 월남 후 오랫동안 반일 반북 반공 반모슬렘 반타종교적인 입장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차츰 저의 입장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영향과 예일대학교의 펠리칸 교수님의 영향과 영국의 존 스토트 박사님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존 스토트 박사님의 강의를 직접 여러 번 들으면서 균형과 약함과 섬김의 귀중성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분이 자주 강조하시던 “Dynamic unity holding both extremes” 양극을 붙잡는 역동적인 통일성이란 말은 저에게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가장 귀중한 성경의 가르침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화해와 평화와 통일또는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또는 강의를 36번이나 했는데 그 설교 또는 강의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입니다. 성경의 목표이며 역사의 완성 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하나되는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 만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전에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133:1, 148:3,9,10,13).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서로서로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십니다.

화해와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날마다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기를 소원합니다.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혹시 제가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순교자들이 흘린 피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화해의 도구들로, 평화의 도구들로, 통일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라고 했는데 니느웨와 로마처럼 긍휼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기독교 목회자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적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무차별적인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것보다는 긍휼을 지니고 애정 어린 비판과 권면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비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온전한 왕이나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을 비롯해서 비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온전한 신학자나 목회자나 선교사도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정 어린 비판과 권면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는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의인의식을 지닌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처럼 착각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저주 받아 마땅한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를 드리셨고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로마에까지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제물들이 되게까지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23:11).

부활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배신자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므로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까지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게까지 하셨습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7,18).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해빙무드에서 경색 국면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북미 지도자들에게 조언하신다면요?

 

너무 국가 중심적인 정치적 이념에 사로잡혀서 대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온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선과 착함을 지니고 대화를 하도록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자유와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고 추구하면서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힘을 합한 3.1 정신이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하고 그리고 귀중한 신앙을 지니고 귀중한 삶을 사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11장에서는 믿음으로사신 신앙의 선배들을 아주 길게 나열했고 12장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권면을 합니다. 물론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면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몸에 지니고 사신 복음신앙 다섯 가지를 지적하곤 합니다
. 그래서 저는 신앙오도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삶이란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일 처음에 전파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이었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도 회개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신앙생활의 입문이고 과정이고 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개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처절하게 한 사람이 다윗과 사도 바울이었고 그 뒤를 이어 어거스틴과 길선주 이기풍 이성봉 김치선 한경직 박윤선 목사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처절한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삶이란 몸과 마음과 생명을 정성껏 드리는 예배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제일 먼저 우선적으로 하여야 할 일이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 죄인들로 하여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눈물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다 쏟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삶이란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용서자비사랑을 지니고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섬김봉사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도움의 손길을 펴는 섬김봉사의 삶이 바로 주님 자신을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라고 강조하면서 천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4-36).

사도 바울도 섬김봉사가 없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삶이란 근심 걱정 불평 불만 염려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평안기쁨감사를 그리고 모험심담력을 지니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14:2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15:1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벧전 5:7).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41:10).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오도의 삶이란 땅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기쁘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팔 복을 말씀하시면서 첫째 복과 여덟 번 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복이었고 팔 복의 결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2).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늘을 바라보시면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14:1,2).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17:1). 사도 바울의 마음과 눈은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고후 5:1-3). 사도 요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4:1).

 

성자 예수님께서 지니시고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지니셨던 귀중한 다섯 가지 신앙을 몸에 지니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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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4 [11:2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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