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20.01.22 [14:30]
오정호 목사, 1월 월례 발표회 설교문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7-13)!
 
오정호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목으로 발표하고 있는 오정호 목사     ©뉴스파워

 

 

오정호 목사(한복협 중앙위원, 새로남교회담임/새로남기독학교이사장)가 10일 오전 7시 서울 광화문 종교교회(담임목사 최이우)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이정익 목사) 1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다음은 설교문 전문이다.

 

한국 출신으로서 현재 미국 덴버(Denver)신학교 정성욱 교수는 21세기 지구촌 기독교의 3가지 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1. 세계선교의 완성 2. 각종 도전에 맞선 기독교 변증 3. 기독교 정체성 회복입니다. 학자로서 통찰력 있는 지적입니다. 선교나 기독교 변증은 어느 시대에나 요청되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선교와 기독교의 변증을 학문적으로 풀어내기 전에 먼저 중점을 두어야 될 사항은 기독교의 정체성 회복입니다. 정체성 회복은 모든 사역에 우선하는 기독교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시는 우리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입니다. 거룩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님께 또한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 사용된 단어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라 칭함을 받는 이유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을 상실한 교회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세속에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또한 거룩과 함께 가는 개념입니다. 거룩한데 진실이 부재하거나 진실한데 거룩을 상실함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과연 거룩을 추구하며 거룩한 삶의 실재를 가지고 있는가? 한국 교회는 진실하여 믿을 수 있는 교회인가? 진실하다는 의미는 거짓을 거부하며 불완전을 떨쳐버리고 더욱 완전하고 성숙함에 이르기를 힘쓰고 있는가?입니다.

또한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님께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권자이시지만 특별히 교회를 다스리는 주권자이십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진실로 주님의 통치를 기뻐하며 주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으로 열매 맺고 있습니까?

알렌선교사에 의해서 한국교회 선교의 문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서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맞이한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의 거룩함과 진실함 그리고 주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 여부를 시험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인본주의 절대가치를 지향하는 학문인 유교와 인간 완성을 목표로 하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범신론적인 무속종교와의 첨예한 영적 전투에서 초대 교회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하며, 충돌하며 또한 공존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의 역사가 보여주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속화의 물결은 더욱 강력하게 교회를 침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정치권력으로, 때로는 물량주의로, 때로는 성장우선주의로, 때로는 성령운동을 빙자하여 성도와 교회의 본질인 거룩함과 진실함을 유린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스스로 세속화와 입 맞추고, 힘이 부족하여 굴복당하고, 중심이 무너져 양보하며 생존에 몸부림쳐 왔습니다.

본문 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이 말씀처럼 은혜로우신 주님은 한국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으며 한국 교회는 그 열린 문의 기회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은혜의 시기를 경험하였습니다. 실로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에 정절을 지키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붙잡고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온 과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교회는 핍박의 시기에도 주님에 대한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순교의 제단에도 비장한 각오로 올랐습니다. 이러한 축복된 태도는 세계 교회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리하였듯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진리의 검을 높이 들어 그들의 망령된 본질을 간파하여 굴복시켰습니다. 한국교회 신학의 발전은 투쟁가운데서 얻은 명예로운 훈장이었습니다.

이단 사이비들의 발호를 꺾고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쾌거를 경험한 한국교회는 분명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에 주님께서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를 주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경고와 명령의 말씀도 함께 주셨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목회의 생태계가 급속도로 변하였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축복된 신앙의 전통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까? 초대교회 시절부터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예배 중심의 주일성수, 성경사랑, 온전한 십일조, 교회중심의 신앙생활,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 교회간의 경쟁을 뛰어 넘어 연합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습니까? 이미 많은 부분이 침탈당하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추억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지적하기를 오늘의 한국교회는 심각하게 본질을 상실하였기에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탄식합니다. 면류관을 빼앗긴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복음 진리의 가치를 고양할 수 없습니다. 영혼을 얻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진리 전쟁의 실패는 암흑의 시대를 맞을 뿐입니다. 이 모든 재앙의 출발은 한가지로 귀결됩니다. 곧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막은 것입니다. 귀먹은 교회, 불순종한 교회, 주님과의 소통이 단절된 교회입니다.

왜 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예외 없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반복적으로 전교회에 말씀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교회의 본분은 성령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무겁게 듣는 것입니다. 명령으로 받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령께 귀를 막은 교회는 껍데기 교회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배신하고 어떻게 선한 일을 꿈꿀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교회역사를 통하여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다수의 사람이나 건물, 그리고 역사위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건강성은 머리이신 주님과의 생명적 소통에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단절되면 죽음이요, 소통되면 생명의 역사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님보다 더 우리의 심령을 지배하는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주님의 음성은 생명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기주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 권력 / 쾌락 / 사람 / 이데올로기 로 귀결됩니다.

주님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우리 자신의 형편을 깊이 숙고하고 주님 주시는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주님께서 기대하시고 명령하시는 행위를 가지게 됩니다. 최근 한국 교회를 휩쓴 세상의 풍조의 본질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맘몬이 다스리는 교회는 가짜 교회입니다. 주님보다 부패한 인간이 권세를 부리는 교회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권력에 야합하여 곡신아세(曲信阿世)하는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한국 교회는 오직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이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일탈하여 신앙과 생활이 괴리되어 있는 신학교의 처참한 형편과 혼란에 빠진 지역교회와 교단, 혼미한 영적 현실(총장이 용역을 동원하여 감옥에 간일과 부역교수들이 결코 회개하지 않으며 소속된 총회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이사들의 이기적 집단화와 총장자리를 두고 싸움하는 현실, 심지어 동성애 문제로 교수와 교수, 학생과 학생들이 편이 갈라져 소송전을 벌이는 미션계 학교들, 가짜 이력서가 버젓이 통용되고 동일한 교단 안에서의 사사건건 갈라져서 갈등하는 현실, 장로교회가 장자교단이라 간판은 내걸지만 실제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견인하지 못하는 겉 멋들어 있는 정치 인사, 반기독교적 언론과 내통하여 한국교회의 치유보다 진영논리를 확산하는 세태,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를 대결구도로 만드는 진영논리의 깃발을 흔드는 목회자들, 젊은이들을 신앙화하기보다 이념화 시켜 교회 이탈로 나아가게 하는 자칭 깨어 있는 목회자와 교수들, 자신이 예수님의 팔로워가 되기보다 자기의 팔로워를 통하여 세 확산을 꾀하는 신종 사역자들, 기독교 간판을 걸었지만 실제로는 자기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부실 언론들, 자기 목회는 뒷전에 두고 교권을 휘둘러 교회를 분란으로 몰아가는 이들, 이권에 눈이 어두워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이들, 성경에 바탕하지 아니한 정체불명의 이론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을 혹세무민하는 신종 이론 생산자들)을 직시하는 가운데 오직 주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을 간구할 뿐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22-23)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20/01/10 [14:16]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오정호 목사] 오정호 목사, 1월 월례 발표회 설교문 오정호 2020/01/10/
[오정호 목사] 오정호 목사 "믿음의 세대 일으켜야" 김현성 2018/05/11/
[오정호 목사] 감사의 사람 사도 바울을 생각한다 오정호 2017/11/11/
[오정호 목사]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정호 2011/10/25/
[오정호 목사] "WCC 논란, 세계교회 앞에 부끄러운 일" 성상현 2010/07/16/
[오정호 목사] "광복절, 혼란 극복하고 국민통합 힘써야" 최창민 2009/08/11/
[오정호 목사] 불어오는 전쟁의 위기 앞에 오정호 2009/06/08/
[오정호 목사] “젊은 목회자, 영적 대박주의 벗어나야” 최창민 2009/02/19/
[오정호 목사] "교회, 세상과의 소통 방법에 심각한 문제" 최창민 2007/12/12/
[오정호 목사] 오정호 목사, 구원파와 법정소송서 최종 승소 김성원 2007/10/29/
뉴스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