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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8 [06:01]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정준모




▲  잠시 하늘 위로 나르면서 본향 천국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1:13-16)

 

 

오늘 아침 우연히, 20101213일에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몇 회분 기획 칼럼을 부탁 받아  쓴 글이  매일춘추”에서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그 때, 필자가 쓴  글들 중 하나의 제목은 생존에 대한 애착:모천회귀성(母川回歸性)입니다. 

다음 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미국인들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시작되는 이즘,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고향을 찾는 길을 분주하고 행복하고 가슴이 설레이고 있읍니다. 필자도 시카고, 텍사스, 시애틀 등에 자녀들이 흩어져 살고 있읍니다. 지난 여름에는 전 가족이 내가 살고 있는 로키에 왔으나, 이번 추수 감사절 때에는 큰 아들이 살고 있는 텍사스 오스틴 인근 웨이코에 위치한 베일러 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읍니다.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면, 쓸쓸하게 추수 감사절 명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어가 자기 고향을 찾아아 떠나듯이,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기본 본능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다음은 매일신문사 매일 춘주에 실렸던 필자의 졸고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본능이 용솟음친다. 그리고 타향살이 인생은 고향과 죽마고우가 생각난다. 이것은 마치 자기의 본향을 찾는 물고기 연어의 본능에 비유된다.

 

연어새끼는 깊은 산 계곡이나 강 상류에서 태어난다. 연어는 사람 손가락 크기가 되면 장구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강 하류를 따라 헤엄치면서 거대한 바다에 이르게 된다. 3년 혹은 4년 동안 누빌 수 있는 모든 바다 속을 찾아다닌다. 자신의 성숙의 시기를 직감하면 자기의 고향길을 찾게 된다. 온갖 사선(死線)을 넘어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지점을 찾아 자기 어미가 그러했듯이 모래 구멍을 파 알을 낳고 죽는다. 이것을 가리켜 연어의 '모천회귀성'이라고 한다.

 

연어는 참으로 흥미로우면서 희한하다. , 그리고 어떻게 멀고 먼 바다에서 하필 자기가 태어난 그 장소로 돌아가야 하는가? 어떤 힘이 작용하였기에 고향을 찾는 연어의 행진이 그렇게도 박진감이 있을까? 수풀을 헤치고 물살을 가르고 암석을 비켜갈 수 있을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어가 바다에서 자신의 고향길을 찾는 동안은 식음을 전폐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추측건대 고향을 찾는 열망, 새끼를 낳을 부푼 꿈, 그리고 마지막 생존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어가 마지막 고향 길 문턱에 이를 때쯤 되면 자기 몸의 4배 정도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저런 힘든 여행길 가운데 검었던 피부가 붉은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고향 땅에 다다라 안도의 한숨을 내뿜고 모래 구멍을 파 알을 낳고 죽는다. 고향을 찾았기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자기를 대신할 새끼를 볼 수 있기에 기꺼이 죽는다. 그런데 수천 마리 연어 새끼 중 마지막까지 고향을 찾아올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마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고향을 떠난 그들의 현실은 거센 물살과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 내맡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남기가 힘이 들었고 고향을 찾는 여정이 더욱 험산준령과 같은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의 중심부에는 모천회귀성이 분수처럼 치솟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고향을 찾는 길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또한 인생은 자기의 영혼을 만든 창조주를 향한 영적 모천회귀성이 있다.

 

세상은 끊임없는 근심과 걱정, 거짓과 미움, 그리고 파멸과 죽음의 역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모천회귀성을 가진 인생은 현세의 물살 센 역류를 차 오르면서 생명의 장소, 안식의 마음의 고향을 찾아낼 수 있다.등의 내용으로 투고된 글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선진들

 

믿음의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를 바로 아는 자기 정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죄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땅에서의 평안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 위에서 본국인이 아닌 외국인입니다. 본향인이 아닌 나그네이다. 정착민이 아닌 순례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 나그네, 순례자임을 자각하고 살아갔다는 말입니다. 자기 정체의식을 가지지 못하여 마치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이 땅에 집착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조상들은 자신들이 천국의 상징인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외국인이요 나그네요 순례자라는 자각의식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외국인(11:13)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나라의 국적 없이 임시로 머무는 자들을 말합니다. 나그네(11:13)는 일정한 곳에 정착되지 않고 일시적으로 머물고 떠돌아다니는 자를 말합니다. 성경은 또한 외국인과 나그네를 가리켜 우거인(11:9)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외국인, 나그네, 순례자로 불리우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들은 일정한 법적 보장과 사회적 안정 보장을 받지 못하는 등 신분상 제한을 받고 삽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도는 믿음의 사람이란 이유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모욕과 경멸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 이하의 푸대접, 감금, 추방 등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파피루스 자료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크세노스(외국인 혹은 나그네)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경멸을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이 땅위에서 잠시 머무는 외국인, 나그네, 순례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벧전 211절에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912절에서 인생은 객이요 거류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 잠시 왔다가 머물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 인생임을 자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위의 삶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더 나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가리켜서 히 1110절에 하나님의 성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1116절에서는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하늘 나라 도성인 천국을 의미합니다(14:1, 21:1). 이 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천국이요 새 하늘 새 땅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두 개의 시민권과 두 곳의 고향이 있습니다. 이 땅위의 시민권과 하늘 나라 시민권, 또한 지상의 고향과 천상의 본향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땅의 시민권은 이 땅 위에서 호흡하고 있는 동안만의 것이며 이 땅의 고향도 육적인 생명이 있을 동안만의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거하게 되는 성도의 본향입니다. 이 나라는 믿음으로 얻게 된 천국 시민권 자들만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천국 백성이 성도이기에 천국 백성다운 영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320-21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신분은 그 자체로서 존귀하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의 삶은 소망이 넘치는 삶입니다.

 

이미 은혜로 획득된 시민권

 

흠정역에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느니라또한 다른 역본에는 우리는 하늘의 거류민이니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단어는 동사 있다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이나 기대가 아닙니다. “있다이미 존재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석학자 라이풋(Lightfoot)의 해석처럼 우리의 시민권은 지금도 하늘에 있다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늘의 시민이 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의 시민이 된 것이다라는 현재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생 했다. 죄용서 받았다.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등등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것은 하늘 나라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우리가 세상에 취하여 살아서는 안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수준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하늘 나라 시민으로서 우리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보다 더 나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늘의 시민인 다른 차원의 사람들임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2:4-6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이미 하늘의 처소에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앉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이미 하늘의 시민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골 1:13절에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민권 획득의 신령한 의미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두 나라 중 한 나라에 속하여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나라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혹은 사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시민권을 가졌다는 말은 세상 나라, 사탄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나,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하는 나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특권과 소망뿐만 아니라 그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권 획득의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셨다는 것은 왕 되신 하나님께 대한 나의 충성이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그들의 신은 배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본능, 자신의 정욕, 자신의 욕망, 자신의 주장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 적인 것이 그들을 지배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속에 독한 시기, 다툼, 거짓, 더러움, 악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은 무엇인가?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벽과 거짓이 없음이라고 약 317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과 생명의 법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와 기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지 결코 방종이 아닙니다. 사소한 율법에 얽매이는 수준이 아닙니다. 영광의 복음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법칙,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지혜가 하나님의 법칙이 다스리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에 잔재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경영방식과 세상의 법칙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에도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법칙과 성령의 법칙과 말씀의 법칙이 존재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답지 않은 신앙 생활과 교회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 공동체요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십니다. 교회에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원리가 지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 철학과 세상 경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의 법과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하늘 나라 백성으로 특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아뢸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 우리의 생명 되신 하나님, 우리의 치료자 되신 하나님,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조건이 부족하여도 비록 우리 모습이 누추하여도 비록 우리 가진 것 없어도 비록 우리의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케 되었습니다.

 

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 아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의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산 소망

 

이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도 영광스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지만 이 땅에 있는 동안 죄와 사탄과 악의 세력이 세차게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넘어지고 때로는 우리가 낙망하고 병이 들고 시험에 들어 한숨 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위로는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때 우리의 부족, 우리의 허물, 우리의 연약, 우리의 불완전함을 주님이 온전하게 하시고 치유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재림의 주를 기다린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막연한 대상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권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열정적으로 학수고대하며 열정적으로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는 우리의 순례 길과 나그네 생활, 외국 생활을 종식하고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정착하는 때입니다. 그 때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을 것입니다.

 

영광의 몸의 형체를 입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완전한 육체를 가지게 될 영광을 말하는데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영광을 의미합니다.

 

고전 15:51 이하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주와 함께 영광중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가지게 될 영광은 더 이상 아프거나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을 가지는 영광입니다.

 

2) 지성의 전 인격의 온전한 변화와 성숙됨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전 13:12 에서 우리가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모든 비밀이 풀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논쟁이 끝나고 모든 주장이 숨을 죽이고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3) 죄성의 육신을 벗고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영광을 의미합니다.

 

온전하게 성화 된 그 날에 우리의 지성은 더 이상 악한 생각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우리의 양심은 더 이상 죄책감이 없으며 우리의 감정은 더 이상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4) 지상의 이 땅위에서의 고난이 끝나고 천상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아더 핑크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라는 150쪽 분량의 책에서 그는 롬 8:18 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고 영광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고난은 일시적인 것이고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유한한 것과 영원한 것이 서로 비교가 될 수 없듯이 이 세상의 고난과 저 하늘의 영광은 비교가 될 수 없다. 천국에서 얻는 아무리 작은 영광일지라도 일생을 통하여 당한 아픔의 고난을 모두 치유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고생과 질병과 고난과 가난에 시달리며 보낸 날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곳에서 누릴 영광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기쁨의 강물을 한 번만 들이킨다해도 저 낙원에서 한 번만의 호흡을 들이 쉰다해도 보혈로 씻음을 받은 보좌에 둘린 성도들 가운데 한 순간만 서 있는다 해도 이 땅위에서의 모든 눈물, 모든 신음, 모든 아픔은 보상받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얼마나 영광스러운 사실입니까?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을 도무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소망의 근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가져할 자세들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는 그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나라를 위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는 자신이 먼저 희생되는 나라이지 남의 희생을 강요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겸손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교만하고 구제를 제일 외치면서 자신은 궁색한 구제와 헌금을 하고 타인의 희생은 강요하면서 자신의 희생은 없고 남의 허물을 지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자신은 변화 없으면서도 개혁을 외치거나 정작 자신의 실상에 눈이 어두운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먼저 희생, 겸손, 봉사, 양보, 용서, 헌신하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1)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18절에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향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신 믿음의 주되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위엣 것을 사모하며 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영원한 천성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1110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고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 땅위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것도 결국은 장래에 우리가 거할 처소의 터를 마련하는 행위와 같다고 성경은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딤전 617, 18절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선행으로 천국에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성도는 이 세상에 있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이 땅에서 가진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므로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존재하는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을 가지고 육을 위해 심으면 썩어진 것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성도는 주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선행의 삶을 살므로 이 땅위의 것 가지고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 나라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1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들 자신들의 시대에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게 될 내일의 때를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하며 믿음의 꿈을 가지고 비전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 곧 천국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그들은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 천국의 실상을 떠받치면서 현재 누리는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4)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중단 없는 전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115절에 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16절 말씀처럼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이 있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중단 없는 믿음의 행보를 계속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고 중단 없는 전진을 하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결코 뒤돌아보고 비전 이전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는 부르심을 받기 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주님 앞에서 결단한 삶에서 뒤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5) 형제, 자매를 교회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그네 인생길을 가는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큰 특징은 너와 나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애를 실천한 것입니다. 자기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부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악한 세력들은 교회를 와해시키려 하고 공동체를 깨뜨리려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상 왕국인 교회를 집요하게 공략합니다. 사단의 전략가운데 하나는 교회 안의 성도들끼리 서로 분쟁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인다 해도 서로 미워하고 반목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쟁하는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며 사랑 없는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10:24-25에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자들의 습관과 같이 그리하지 말고 오직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6) 항상 손님 대접하기를 전심으로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성도들이 유대인들이나 로마당국으로부터 박해를 피해 여기 저기 유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들을 잘 대접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핍박 때문에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전부라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미 구약 율법에도 나그네를 사랑하고 손님을 접대하기를 힘쓰라고 명령했고(10:18,19) 주님께서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22:39). 실제로 아브라함도 부지중에 손을 대접하여 축복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7) 고난받는 자를 항상 찾아, 섬기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의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성도들이 옥에 갇히고 때로는 원형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행히도 그 같은 화를 당하지 않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서 같은 지체의식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옥에 갇힌 것 같이 고통스러워하고 하나님께 갇힌 자들의 안녕을 위해 간구하기도 했습니다.

 

133절의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말은 자기도 학대받는 자와 같은 종류의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은즉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연약한 육신을 지닌 우리는 그 같은 육신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줄 줄 알아야 합니다.

 

8) 가정을 귀하게 거룩한 가정 생활을 해야 합니다.

 

4절의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가정의 소중함과 신성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제정하신 것으로 사람이 제 마음대로 취급할 수 없는 신성하고도 고귀한 것입니다. 침소라는 말은 혼인제도 안에서의 부부간의 잠자리를 말한다.

 

결혼제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교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혼인제도를 어지럽히는 죄악이므로 이를 철저히 금해야 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에 지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를 돌로 쳐죽이도록 규정하고 있고(20:10) 신약성경에도 간음하는 자가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고전6:9,10). 따라서 음행을 멀리하고 가정의 신성함과 순결함을 굳게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9)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빠지기 쉬운 죄가 간음이나 음행이라고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또 하나 인간이 빠지기 쉬운 죄가 있다면 물질에 대한 욕심입니다. 물질 자체는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중립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모두 돈에 의해 좌우된다면 돈은 우리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되고 나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돈을 멀리하라고 하였고(딤전6:10), 우리 주님께서도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9-21). 돈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유용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돈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삶을 좌우하시도록 성도는 항상 자기의 몸을 쳐 복종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는 우리의 삶이 돈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미 이 방법을 체득하였음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4:11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함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만족할 수 있고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주님이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 없다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자이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14절에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머물 영구한 도성은 없습니다 오직 장차 머물게 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우리가 영원토록 거하게 될 처소인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시는 중보자 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오직 그리스로 말미암은 구속의 길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며 찬양 드려야 합니다.

 

10)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한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된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사를 온전히 이루셨지만 우리가 드려야 할 유일한 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름을 증거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심과 높으심을 찬미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11) 선행과 나누어주기를 기쁨으로 힘써 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는 그 찬미의 제사와 함께 구제와 선행의 제사를 또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삶으로서의 예배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예배라는 것은 교회에서만 모여서만 드리는 것으로 알아왔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우리의 삶의 전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공적인 예배와 삶으로서의 예배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예배입니다. 그 가운데 선행과 구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미하는 삶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열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의 입술의 열매라고 한다면 선행과 나누어주는 생활은 삶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는 빛된 행실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 말씀으로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인도하는 자들이란 교회를 이끌며 성도들을 지도하는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인도하는 자를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이 말은 영적 지도자에 대해 맹종하도록 지도자들이 허세를 부리라고 준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며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그들의 사역을 즐거움으로 감당하게 하는 것이 성도들의 의무요 마땅한 자세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18절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19절에서는 더욱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429장에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 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송의 가사처럼 인생의 걸음을 주께 맡기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답게 순종의 삶을, 믿음의 사람답게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토의사항*

 

1.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2.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증거가 삶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까?

 

3. 우리가 나그네로 순례자로 살아간다고 해도 결코 서글프게 힘겹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4.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5.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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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2 [06:5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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