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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12 [10:01]
불임을 극복한 믿음【히11장 믿음장 강해 (6)】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정준모

 

 

 

▲    믿음의 선진처럼, 믿음의 정상을 향하여, 믿음의 산에 오르자, 아브라함과 사람처럼  © 뉴스파워 정준모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1:11-12)

 

 

사라는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의 아내로 열국의 어미가 된 자입니다. 사라가 처음부터 믿음이 완전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189-15절에 따르면 아직 자식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라가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아들을 낳게 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라는 자신의 형편을 생각할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속으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뜻으로 비웃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녀의 비웃음을 꾸지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라는 자신의 형편을 생각할 때 믿기가 어려웠기에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믿음이 이처럼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그에게 은혜를 주시므로 믿음을 좇는 후사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을 소유했다고 증거 하지 않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연약하고 부족한 믿음으로 출발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성숙시켜 결과적으로 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성취하게 되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불신, 의심, 연약 그리고 부족 투성이였던 그녀를 은혜로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로 삼으시고 열국의 어미로 세우신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라는 기록이 있읍니다. 헬라 원어 성경에는 단산하였으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나이 지나갔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라 자신도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였다가 후에 그것을 믿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참조 창18:12-15).

 

12절에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한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볼 때 아브라함 나이 99, 사라 나이 89세는 생물학적 조건으로 보아 죽은 자와 방불한 나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그들을 통하여 수많은 자녀들이 번성되었음을 성경은 지금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사람의 조건과 환경의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죽은 자까지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바라보고 그 분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여러 정황에서 때로는 죽은 자와 같은 상황에 처하고 난공불락의 위기에 처하게 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고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렇다면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랑하고자 하면 하나님을 자랑함이 마땅하지 않는가? 그들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는 죽은 자와 똑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손들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혈통과 가문은 자랑거리가 못된다. 자랑하려면 자신의 혈통을 사용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 자신의 가문을 빛내주시고 사용하시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생이 처한 출신, 형편, 상태 등 어떤 조건에 상관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자기의 가문을 자랑하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성향들이 있습니다. 자랑하려면 주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하고 칭찬하려면 제 삼자가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시키시고 할례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데, 그 언약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어 아들을 낳게 하시고 민족의 열왕이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존귀한 아비라는 아브람의 이름에서 열국의 아비라는 아브라함이란 이름으로 또한 여주인이라는 뜻의 사래의 이름을 열국의 어미라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바꾸어진 이름과 그들의 자손으로 나실 특별한 왕에 대한 약속은 엄청나고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것은 바로 만 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가문의 출발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가문의 영적 아비와 어미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만 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킨 가문으로 사용될 열국의 아비와 어미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며 신약의 성도들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 곧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 1717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던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과 의심의 웃음이 될 수도 있고 기쁨과 환희의 웃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칼빈은 이 부분을 전혀 기대하지 못하였던 뜻밖의 소식을 접하여 듣고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기뻐서 웃었다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 856절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서 웃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롬 419절에서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 1810절에서 아브라함 집에 방문하여 대접을 받고 있던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네 아내 사라에게 기한이 되면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성경 구절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하고 사라는 불신과 의심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하시며 책망의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때 사라는 두려워 자신이 비웃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웃지 않았다고 얼버무리고 맙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아니다 네가 웃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조건과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자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을 열국의 아비와 어미로 삼으시고 그들 자손 중에 만 왕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케하심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요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다른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조상도 인간적인 조건이 좋았다거나 그들의 믿음이 처음부터 완벽하고 성숙되었던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열심이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나가셨습니다.

 

41722절에도 이 내용에 대한 바울의 기록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또한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한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 바울은 롬 417절에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택하여 세우신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417절에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자를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또한 롬 421절에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줄을 확신하였다는 등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째, 420절과 21절에 약속이란 말을 볼 때,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넷째, 423절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을 볼 때,믿는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잘 알 때 비로소 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길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 아브라함은 롬 418절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419절 말씀처럼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1112절에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이 자식을 낳기에는 죽은 자와 방불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조건으로 볼 때, 무능하고 무력한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롬 418절에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족장들의 믿음의 대상은 약속하신 하나님이시며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믿는 자는 사라처럼 믿음의 대상과 근거가 분명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아무 것이나 되는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믿음은 맹목적인 미신이나 신비적 도취나 특이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419절 말씀처럼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을 볼 때, 약해지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100, 90세 된 자신들을 볼 때는 믿음이 약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 속에 탄식하며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자를 있는 자로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넷째, 족장의 믿음은 롬 420절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라는 말씀을 볼 때, 의심치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의심은 내적 투쟁”, “심적 갈등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과 자신의 현실, 하나님의 약속과 자신의 조건 사이에 벌어지는 심적 투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롬 420절에 “...믿음이 견고해졌다라는 말씀을 볼 때, 족장들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 믿음이었습니다. 족장들의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뿌리를 내려 흔들리지 않고 정착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믿음이 약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욱 강해지고 견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편과 조건이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 믿음 생활하기 참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의 은혜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족장의 믿음은 롬 420절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족장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믿음으로 견디어내고 극복하고 힘을 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라의 경우 죽은 자와 방불하여 자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해져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얻게 됩니다.

 

21장에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 기록이 나옵니다. 성경은 창 215절에 아브라함이 그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고 더욱 강조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창 216절에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는 말씀과 8절에 아이가 자라 이삭이 젖을 떼는 날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배설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기쁨일 뿐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자식을 낳게 하신 하나님의 성호를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결과가 주어졌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의 사람은 일꾼이 되지만 불신의 사람은 말꾼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일수록 교회는 떨거나 움츠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더욱 선한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한숨 쉬면서 자기 헌신과 희생도 없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도 바라보지 않고 의심과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그런 자를 사용하시지 않고 복을 주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음으로 바라고 죽은 자 같은 절망의 상황에도 믿음으로 일어서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 약해지지 않는 믿음, 의심 없는 믿음, 영광 돌리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토의사항*

 

1. 하나님께서 사라를 열국의 어미로 삼으신 것이 사라의 탁월함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그 무엇이었습니까?

 

2.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고서도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런 경우를 만났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3.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아이를 낳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라가 웃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4.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오늘 이 시대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영역은 어디일까요?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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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5 [23:5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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