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1.20 [19:02]
[칼럼]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으며
유럽목회연구원장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37년 목회 후 금년 3월 은퇴)
 
한평우

 

 

고국의 방문길에 19세기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찬란한 역사를 가진 서울에 있는 몇 교회를 돌아보았다.

▲ 유럽목회연구원 원장 한평우 목사     ©뉴스파워



일찍이 초창기 개신교회를 선도했던 교회들이요, 민족 지도자들을 배태한 산실이었다. 그랬기에 교회의 영향력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100년을 훌쩍 넘긴 현재 역사적 교회로서의 면면을 보면 초라한 모습이다.

 

한국 교회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온 세계에 엄청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이처럼 발전을 이룬 나라는 그 유래가 없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무척 염려스러운 상황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각 교단의 보고에 의하면 교인수의 급격한 하락과 더불어 헌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전도가 되지 않고, 선교사역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걱정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교회의 위상도 많이 실추되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회의 분쟁, 그리고 공론화되는 재정문제와 성적인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뉴스화 된다는 것 자체가 교회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하고 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교회의 문제를 공론화 시켜 사람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 주려고 예리하게 공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공격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고 스스로 거룩함으로 무장하는 데 힘을 다해야 한다 싶다.

 

마르틴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것인 어느 날 갑자기 시행한 사건이 아니다. 그 이전에 진리를 위해 일어났던 수많은 선배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12세기에 일어난 불란서의 왈도와 클레르보 베르나르도(찬송85,145,262,작사함), 영국의 위클립프, 체코의 요한 훗스, 이태리의 사보나롤라 같은 탁월한 영적 리더들이 목숨을 걸고 진리 운동을 펼쳤다. 그들 대부분은 순교의 제물이 되어야 했다. 기라성 같은 영적 선배들이 진리를 위해 흘린 피의 결과로 개혁자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의 목숨을 건 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온 세계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었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개혁자들로 인해 노동이 하나님의 소명으로 해석되어 수많은 장인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자본주의가 생성되었고 경제에 풍요로움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 풍요로 인해 물질이 주는 편리함에 안주하게 되었다. 천국을 위한 희생보다는 오늘의 편안함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게 되었다.

더 나아가 물질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

 

막스뵈베는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고 결론짓기를, 물질의 풍요가 교회를 타락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일례로 클레르보 베르나도가 수도원 운동을 시작할 때, 당시 가장 유명했던 클레르보 수도원이 부패했다고 무리를 이끌고 작고 볼품없는 시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난과 노동, 기도를 모토로 하여 수도원을 이끌었다. 그 때 영적으로 충만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지원자들이 줄을 이었고 풍성한 기부금이 들어왔다. 그처럼 유명하고 힘 있는 수도원이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영적으로는 쇠약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말이다. 그리고 끌레르보 베르나르도가 죽자 더 이상 세상을 영적으로 리더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역시 이런 현상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종교 개혁 502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영적 회복을 위해서는 결단이 요구된다. 그것은 옛날 가난했던 시절처럼, 잡고 있는 물질을 내려놓고 가난으로 돌아가고, 진정 천국을 앙망할 수 있어야 한다.

 

풍요로운 교회는 더 이상 부를 창출하려 하기보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 교회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구라파의 화려한 교회들이 우리의 거울이다. 사람들이 외면한 앙상한 모습,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처럼 여겨진다. 우리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만다.

 

설교도 위로가 아니라 말씀에 의한 매서운(?) 설교로 돌아가야 한다. 죄를 책망하고 정직을 도모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질타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60년 밖에 안 된 아직 복음이 따끈따끈하던 시절,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은 칭찬보다 책망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종을 준다.

 

우리는 거듭났다 해도 끊임없이 더러움으로 유혹하는 본성의 질료가 버티고 있는 존재다.

고로 개혁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영적으로 잠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순간 개혁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10/31 [09:57]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한평우 목사] [교회사 이야기]어거스틴(6)-세례준비 한평우 2019/11/01/
[한평우 목사] [칼럼]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으며 한평우 2019/10/31/
[한평우 목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기도입니다" 김철영 2019/10/30/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칼럼]어거스틴(5)-회심 한평우 2019/10/27/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칼럼] 어거스틴(4)-밀란에서 한평우 2019/10/16/
[한평우 목사] 어거스틴(3)-밀란으로 가는 길 한평우 2019/10/07/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 어거스틴(2) 한평우 2019/10/05/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 어거스틴(1) 한평우 2019/09/24/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 지도자 한평우 2019/09/18/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빈자리 한평우 2019/09/12/
[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로마 한평우 2019/09/06/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알레마니족 한평우 2019/08/29/
[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힘 한평우 2019/08/20/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교회사 이야기] 핍박 한평우 2019/04/24/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칼럼]10년 간의 속죄권 한평우 2019/04/24/
[한평우 목사] [로마 한평우 목사 칼럼]준비 못한 목사 한평우 2019/04/19/
[한평우 목사] [한평우의 로마에서 쓰는 이야기] 사랑 한평우 2019/04/01/
[한평우 목사] [한평우의 로마에서 쓰는 이야기] 손수건 한평우 2019/03/30/
[한평우 목사] 집정관님, 눈치 좀 보시지그랬어요!!! 한평우 2018/10/24/
[한평우 목사] 칠흑 같은 캄캄함은 새벽을 부른다 한평우 2018/09/22/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