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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2.07 [04:01]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11)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국제 개혁신학대학원 교수, D.Miss & Ph.D)
 
정준모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11)

-신앙교육서 중심으로 -

 



▲   칼빈의 성시화 운동의 요람인 "제네바 아카데미 모습"  " 성시화 는 신학과 신앙의  본질 회복 운동이다"

 

 

 

 글쓰는 목적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은 곧제네바 아카데미를 비롯한 교육개혁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최근 한국교회의 성시화 운동과 제네바 아카데미 운동에 대하여 전적 동감하며 전폭 지지를 표한다 20회를 걸처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의 교육적 측면에서 역사적 배경신학적 통찰력교육 신학적 특성과 원리 세계 성시화 운동의 방향과 제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의 성시화 운동의 신학적 기본 골격은 그의 신학교육서에 있다칼빈의 교리사상의 집약서이며교리교육의 지침서로 사용한 󰡔 1차 신앙교육서󰡕를 중심으로 그의 중심 교리가 무엇이며그 교리에 나타나 있는 그의 신학사상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해석하고자 한다아울러 그가 교육목회를 통하여 종교개혁의 결실을 거두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한 󰡔신앙교육서󰡕를 일곱 가지 영역인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지식’, ‘율법’, ‘신앙’, ‘사도신경’, ‘기도’, ‘성례’, ‘교회와 국가에 관한 교리 체계와 사상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분석 및 해석을 함으로 그가 교육하고자 하였던 교리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다필자는 칼빈신학 전공자로, “칼빈의 신앙교육서 분석과 교리 신학으로 Ph.D 학위 논문과 다수의 책과 논문이 있다.

 

F. 세례와 성찬

1. 교회의 표지로서의 성례

 

󰡔신앙교육서󰡕에서 칼빈은 교회 자체에 대해 별로 논의하지 않고 단지 교회의 몇 가지 양상들만을 다루고 있다.칼빈에게 있어 교회는 명백한 표지들을 가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이 표지들은 다른 모임들로부터 교회를 구별시키는 기능을 한다.

 

칼빈 신학의 핵심은 처음부터 말씀’, ‘신앙’, 그리고 하나님의 삼각 구조의 틀 안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말씀이다. 그러나 칼빈은 오직 말씀만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탱하고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첫째, 주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지시하신다. 둘째, 그는 성례전으로 그것을 확증하신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빛으로 조명하시고 말씀과 성례전이 우리 마음에 들어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신다고 말씀과 성례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성례들은 눈에 보이는 말씀이다고 하였던 어거스틴의 언급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선포하고 들으며 또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는 곳이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역설한다. , 그에게는 장소에 상관없이 이 두 가지 표지들이 존재하는 곳이면 그곳에는 진정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2. 칼빈의 성례관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작고 연약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의 수납을 위해서 성령의 도움 외에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 우리는 특별한 유형의 보조물을 필요로 하는데, 이 보조물이 바로 성례이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믿음이 확고해지는데 도움을 얻는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기 위한 신앙의 행함이다.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인간들에게는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고 확증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성례란 주님께서 우리의 약한 신앙을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당신의 선하신 뜻을 제시해 주고 또 증거해 주시는 외적인 표이다. 보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말하면, 성례란 외적인 표를 통해 공표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언이다.

 

성례란 외면적 표시에 의하여 확인되는 신적 은혜의 증거이며, 우리 경건의 증명이기도 하다.칼빈은 이렇게 성례를 정의하고 나서 그 의미는 어거스틴의 다음 정의와도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성례는 거룩한 것의 유형적 표시이며, 혹은 불가견적 은혜의 유형적 형식이다. 성례는 오직 신적 약속에 달려있다. 성례는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약속의 확증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믿게 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칼빈은 성례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가지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루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성례고귀한 천상의 신비그리고 믿음의 기둥으로 보았던 그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에 대한 증거라고 인정하였다.

 

성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서 성례의 의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성례의 주제며, 실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성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의 확실성을 가지며 그리스도를 제외한 성례는 아무런 약속도 없다.

 

왜냐하면 성례의 유익은 성령을 통하여 오며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참여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적인 표시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된다면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되지만,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었을 때, 성례의 가치는 부끄럽게도 파괴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외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둔다면, 우리는 성례를 오해하고 잘못 이해한 것이다. 특히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란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같은 것이며, 성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끊임없이 그의 권속들을 먹이고 그들의 기운을 회복시키는 것과 같다.

 

3. 세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세례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돕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종교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세 가지 유익을 얻는다고 칼빈은 말한다.

 

먼저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가 씻겨졌음을 보여준다.따라서 어려움 속에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들은 자신의 세례를 스스로 회상해야 한다. 또한 세례는 위로와 확신의 영원한 근원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우리의 육이 죽는 것을 상징한다.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의 삶을 걷게 된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이다.그런데 세 번째 유익은 󰡔신앙교육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한 표현이 세례에 관한 논의의 초두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세례의 이차적 목적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성도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으며, 그런 이들의 공동체는 강해질 수 없다. 따라서 세례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 사이의 교제에 소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가시적인 표시이다.

 

칼빈은 세례가 없는 곳에 구원도 없다고 하는 사상을 배척한다.그에게 있어 세례는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한 수단에 불과하다. 성령께서는 세례 없이도 구원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고, 그리스도와 성도를 연합되게 하실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라서 칼빈은 세례 받지 않고 죽은 아이는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 어거스틴의 견해를 거절하였다.

 

또한 칼빈은 󰡔신앙교육서󰡕에서 유아세례에 관하여 짧게 언급한다. “주님께서 우리와 맺으시는 언약은 세례를 통해서 인준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리고 영원한 언약의 참여자인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유아세례를 거절하였던 재세례파에 반박하려고 그는 󰡔기독교강요󰡕에서 이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한다.특히 여기서 그는 은혜 언약에 기초하여 할례와 세례를 대등하게 여겨서 둘 사이의 영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유아세례에 관해서 그는 하나님의 중생 사역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태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미래의 회개와 신앙을 위해 세례를 받는 유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워지며 적절한 시기에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유아세례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그의 선택 교리에 맞추어진다. 하지만, 유아 세례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선택 교리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4. 성찬

 

복음에 근거한 두 번째 성례는 성찬이다. 성찬은 칼빈의 신학과 목회 사역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신 떡과 포도주를 단순히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오히려, 성령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그는 성찬을 그리스도의 영과 교제하는 것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경고할 정도였다. 󰡔신앙교육서󰡕에서 칼빈은 떡과 포도주를 가시적인 표시로 보았다.

 

칼빈은 성례의 효력을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례의 본질적인 힘에 있다. 칼빈은 구체적이며 생생한 언어로 우리가 주의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취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 예수를 공급 받는다고 신중히 말하였고 또한 그것을 믿었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무한한 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사귐이 하늘 위의 삶을 동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칼빈은 멀리 떨어져있는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의 양식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로 들어온다는 것은 믿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찬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그의 살과 피에 임재하시는 것이 영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유물론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원소들을 우리에게 매개체로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그 원소들에 포함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예수께서는 성찬식에서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떨어져 있지만, 그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다. 여기서 성례에 대한 칼빈 신학의 열쇠는 다른 교리들에서처럼 성령이다.

 

성찬에 관한 칼빈의 근원적인 전제는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천국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의 몸은 루터의 생각처럼 어디에나 계실 수 없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이런 장소의 격리가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친히 양육하지 못하게 할 수 없으며, 그들은 여전히 그와 함께 영원한 교통을 즐긴다.

 

성찬에 관한 한 주석에서, 칼빈은 성찬의 집행을 통해 분리되어 있는 사물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성령의 신비스러운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우리의 생각은 원래 말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진리에 대해 우리는 놀라게 된다. 또한 우리는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고 혀로도 합당한 표현을 할 수 없다.이 하늘의 신비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친절하심의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에,우리의 합당한 태도는 성찬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함으로 인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

 

칼빈은 성찬에 관한 이해보다는 차라리 체험을 선택하였다. 이것이 칼빈의 정신이며 성찬에 대한 자세이다.또한 칼빈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성찬의 온전함을 역설한다.칼빈이 성찬식에 불신자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성찬의 효과적인 참여에서 그는 믿음에 더 큰 강조를 두었기 때문이다.

성찬의 주요 목적과 유익은 주로 그리스도와 우리의 수직적 관계에 있다. 그러나 칼빈은 성찬이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하고 특히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을 돈독히 하는 수평적 관계도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성도 상호간의 사랑과 하나 됨을 암시하며 감사의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칼빈은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은혜에 감사하고 성도들 상호간에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을 우리에게 부탁하면서 성찬에 관한 논의를 결론짓는다.또한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은 성찬을 󰡐사랑의 유대󰡑라고 부른 어거스틴의 말에 찬성하며 인용했다.이처럼 성찬은 윤리적 차원도 포함하고 있다.

 

칼빈은 성찬의 연합적인 성격을 중시하였으며,이러한 그의 상당한 확신은 성찬이 매주일 예배 때마다 기념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톨릭적 사고를 가졌던 제네바 지도자들은 이것에 반대하고 한 해에 한 번의 성찬을 주장하였다.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한 해에 네 번 집행하도록 타협하였다.

 

󰡔신앙교육서󰡕에서 칼빈은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을 통해 영생에 대한 확신을 우리의 영혼에 가져다 주셨고, 둘째로 우리 육신의 불멸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어 주셨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성찬이 주는 두 가지 유익에 대하여 말한다. 결론적으로, 칼빈의 성찬론이 독창적으로 기여한 바는 죄의 용서에 관한 한 오직 하나님만을 찾을 것이며, 구원에 참여하는 데 우리는 복음의 경청과 함께 성찬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세례와 성찬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성경적 감격이 무의미해진 한국 교회에 칼빈의 견해에 큰 도전을 받고 반성과 자성의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성시화 운동은 윤리 운동, 정치 운동, 집단 운동이 아니라, 성례전의 회복으로 진정한 성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영적 회복이 더 우선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진정한 성시화 운동의 근본이요 시작이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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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28 [03:2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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