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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4 [19:02]
[믿음장 강해 (2)]더 나은 예배를 드리는 삶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정준모

 

 

▲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뉴스파워 정준모

   


정준모 목사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 D.Miss)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11:4)

 

성도의 삶의 우선 순위인 예배

 

성도의 삶은 예배의 삶입니다. 성도는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영광을 찬미하며 놀라운 은혜를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배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합당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은 적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담의 아들로 태어난 아벨입니다.

 

아벨이 제사를 드린 사건이 창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더 나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4장에서나 다른 어떤 성경에서도 이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인 해답을 밝히고 있지 않으나 성경 전체에서 그 사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열납 하셨는가 하는 원리에 비추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제사란 결코 상대방과 비교해서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비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가 낫다고 해보아야 그 차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근본적으로 의롭지 못한 것이 인간인데 어떻게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낫다 혹은 의롭다할 수 있겠는가? 아벨의 제사가 더 나았다는 의미는 제사 행위의 상대적인 비교로 나온 말이 아니다. 아벨의 제사가 더 나았다는 것은 절대 선이신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제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리를 따라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떤 제사 혹은 예배가 더 나은 제사가 될 수 있습니까?

 

1. 거룩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기를 제물이 무엇이었는가에 초점을 두고 해석을 했습니다. 가인은 인간의 탐욕적인 노력이 가미된 땅의 소산인 곡물을 드렸지만 아벨은 자연 초장에서 자란 양의 첫 새끼를 바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학자는 아벨이 양의 피와 기름을 바친 것은 속죄의 원리와 관계가 있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시대에 나오는 속죄 제물로 제사를(29: 13,14) 드렸기 때문에 열납하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는 제물을 드린 정성과 관련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 즉 첫 것인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바쳤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고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무슨 제물을 드렸느냐라는 제물 문제보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드렸느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담긴 제사와 제물을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수많은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짐으로 여기시고 화를 내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1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그리고 13절에서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모스 성경 전체를 통하여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제사행위를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그 영광을 높여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면 그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죄를 가진 채 그대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순종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삼상 152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순종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위한 의분을 갖고 있던 사람으로 블레셋과 싸울 때는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상 13장에 보면 왕이 된지 이년 만에 그 당시 대적이었던 블레셋의 군대를 요나단이 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이 병거 삼만, 마병 육천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사람을 이끌고 싸우려고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급해서 굴과 수풀과 바위틈에 숨고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전쟁에 나가려고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해서 자기가 임의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지 않고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습니다.

사울이 순종하기는 했지만 전적인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순종을 했더라도 남겨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은 불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행위 그 자체보다도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는가 하는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예배의 기초입니다.

 

3.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4장에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과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제물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가인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기 않았기 때문에 가인이 드린 예물을 열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반대로 아벨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셨기 때문에 아벨이 드린 예물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벨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벨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14절에서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가 믿음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벨을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열성이나 물질적 봉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의 진리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백한 세 가지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인생이 연약하여넘어져 죄를 지었을 경우라도 진실로 하나님께 나와 고백하면 용서하신다는 죄 사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전통 예배냐 열린 예배냐

 

요즈음 전통적 방식의 예배가 바람직한가? 열린 예배가 바람직한가? 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예배를 사수(?)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과감히 예배의 의식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통적 방식이냐 진보적 방법이냐, 사회자가 있느냐 없느냐, 손벽을 치느냐 안치느냐는 등의 문제가 논란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방식, 어떤 모양의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그 방식이나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방식이나 모양보다는 그 예배가 참마음과 정성으로 진리와 믿음으로 드리는 것인가 라는 면이 더 중요합니다. 전통적 방식으로 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믿음의 예배를 드린다고 볼 수 없고, 열린 예배의 방식으로 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성령님이 역사하는 예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의 고집이 곧 진리의 사수도 아니며 개방적인 방법이 곧 하나님 임재의 예배라고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전통이 인간 역사의 산물이라면 개방도 역시 인간 조류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전통과 진보의 방법론의 조화 속에서도 그 중심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지나치게 구조에 억압을 받거나 분위기에 사로 잡혀서도 안 된다. 오직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공동체의 질서를 이루면서도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부담 없이 표현하고 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가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구체적 방법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바른 예배 속에서 우리의 믿음의 진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전부가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이루면서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시간에 모여 드리는 정규적인 예배의 중요성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배에는 찬양, 기도, 말씀, 헌금 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 속에 우리의 진실한 마음과 우리의 사랑의 고백이 담겨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린 사람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온전한 순종과 완전한 헌신이었기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사는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가장 귀한 헌신의 제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부르심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한 순종의 제사였습니다.

 

 

주일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모입니다. 이 예배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리는 동시에 우리의 영적인 생명력을 공급받는 것이 바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 전후의 삶을 비교하면서 살펴봅시다. 삶으로서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예배들 드리는 우리의 마음 자세는 어떠한가? 우리의 기도와 찬양과 헌금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과 희생이 있는가? 나 자신까지도 드리는 철저한 자기 죽음과 자기 헌신이 따르고 있는가?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주님 앞에서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있는가? 진실한 믿음의 고백으로 우리의 예배가 아벨처럼 열납되는 아름다운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토의 사항 2

 

1. 성도의 삶에 있어서 예배가 그처럼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봅시다.

 

2.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 혹은 예배를 드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며 무엇을 보고 그렇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제사는 제물 문제 보다 드리는 자의 마음의 문제라고 볼 때, 우리의 예배에 임하는 마음과 자세 가운데 시정해야 할 점들을 나누어 봅시다.

 

4. 믿음으로 제사 혹은 예배를 드린다고 할 때 그 믿음이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5. 한국 교회의 예배 생활에 있어서 반성할 점은 무엇입니까?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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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7 [22: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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