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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9 [20:02]
유성 김준곤 목사의 영성과 설교세계
심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심상법

  
이 글은 지난 9월 28일 CCC 본부 브라잇 채플에서 열린 고 김준곤 목사 10주기 추모 학술발표회 발표 원고이다. 각주와 참고문헌 등은 뉴스파워에 게재하면서 생략했다.-뉴스파워-

▲ 김준곤 목사 10주기 추모 학술포럼에서 심상법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뉴스파워


유성
김준곤 목사의 영성과 설교세계

  

목사님이 소천하신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의 아호(雅號)처럼, 유성(流星)의 삶은 역사 속에 자신을 태운 한 줄기 빛처럼 지나갔지만 그 여운은 우리의 가슴에 오랫동안 ~하게남아있다. 우리 시대의 작가 최인호는 자신의 책, 최인호의 인생(2013)에서 은 신[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고 말하면서 인생이란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성 또한 늘 민족의 역사가운데에서자신의 사명을 마음에 각인하며 사셨다.

 

당신이 자주 말씀하셨던 것처럼, 유성은 항상 자신을 나룻배(‘한용운의 나룻배’)나 나루터의 사공처럼 복음을 실어 나르는 사람으로 말하면서 자신은 복음의 나룻배로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삶을 살고자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를 원치 않으셨다. 비록 자신이 유성(流星)처럼, 나룻배와 사공처럼 살고자하고 또 그렇게 살았지만, 제자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진한 여운을 우리가 공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얼을 이어 받기 위해서 제자의 한사람으로서 불충하게 그의 세계의 한 부분을 기록하고자 한다. 우리도 당신과 함께 유성우(流星雨)가 되어 살아보고자 이 글을 쓴다. 부디 용서를 빌며 그리운 마음을 담아 필을 든다.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는 평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다. 특히 예수 칼럼을 통한 그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변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신학교 교수이며 목사로서 필자는 제10주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유성의 남긴 삶을 반추하며 그의 영성과 설교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무엇보다도 유성의 설교세계는 그의 삶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고, 그 삶의 역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성과 신학으로 내면화되고 그것은 또한 그의 설교세계로 표출된다.

 

아래 도표가 보여주는 것처럼, 설교와 삶의 역사와 영성과 신학은 하나님(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속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운데 나선적인 모습으로 자라간다. 물론 말씀과 기도, 기도와 말씀은 유성의 영성과 사명, 그리고 그의 설교를 지탱하는 주춧돌임이 분명하다. 유성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항상 그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기도와 말씀과 함께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하심과 충만하심은 그의 신앙세계를 이끈 동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제자들에게 기도보다, [말씀보다]성령보다 앞서지 말자라고 권면하였다.

 

    개체 연결선입니다. 삶의 역사 영성과 신학

 

한 사람의 영성과 설교세계에 대한 이해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같이 하고 그의 신념(conviction) 혹은 이념(ideology)과 같이 한다. 이러한 신념과 이념을 기독교는 신앙’(영성과 신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그의 영성과 설교세계에 대한 이해는 그의 삶의 세계에 대한 이해이며 더 나아가 그의 신앙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무엇보다도 유성의 설교는 민족의 역사의 상흔(傷痕)과 가족사의 상흔(傷痕)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상흔(傷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한 마디로 역사적 상흔과 함께 가진 그의 공동체적이며 실존적 상흔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흔을 통해 더욱 승화되어 그가 평생 외친 복음이 되었고, 이러한 상흔은 그의 영성과 신학으로 육화되어 자라가 그의 비전이 되고 구호가 되었다. 그는 남도의 소리꾼처럼 이 복음을 구성지게 노래하며 외쳤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는 그리스도를 심어서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그러므로 유성의 영성과 설교세계는 그가 겪은 민족적 상흔(질곡)과 함께 그의 가족사의 상흔(질곡)과 그의 실존의 상흔(질곡)에 대한 이해 없이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그의 성경적 이해와 십자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루어 질 수가 없다. 3.1 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기념하는 올해에 유성의 10주기를 맞이하여 필자는 그의 영성과 설교세계를 역사와 민족과 결을 같이 한 암울했던 우리 시대의 예언자며 선구자로서의 유성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그가 겪었던 역사적/민족적 한과 비극과 상흔을 살펴보자.

 

1. 역사적/민족적 한과 비극과 상흔 속에 잉태된 그의 설교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하지 않았지시대를 고뇌하다 보니 시가 울려왔지.”

(박노해의 <진실> 중에서)

 

조용하면서도 항상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의 그의 생애는 이 민족의 역사와 함께 파란 만장 했으며 그의 목전에서 가족들이 순교당하고 목사님 자신도 21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의 메시지는 더욱 실감이 나고 생동력 있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김준곤 문설집 6, <은총의 승리> 엮고 나서, 577)

 

살아있는 순교자란 별명을 가진 김준곤은 1925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한국민족의 수난의 토양 속에서 젊은 날을 보내었다. 특히 어린 시절 그에게 아주머니뻘 되는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적 삶(전도와 기도와 사랑의 삶)과 순교의 삶(한 알의 밀알로서의 삶)은 유성의 신앙의 원천이고 젖줄이었으며, 전도자의 삶의 표상이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었다.일제 강점기를 수난가운데 보낸 유성의 젊은 날은 나라를 잃은 한 맺힌 삶으로 유랑(流浪) 그 자체였다. 고향 신안에서 만주로 다시 영광에서 지도(智島)로 그리고 다시 만주로 유리하면서 강제징용에서 탈출하고 다시 귀향하여 재 징용되어 탈출하여 피난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한다.

 

유성의 젊은 날은 우리 민족의 수난의 질곡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유성의 내면세계는 이러한 민족적인 수난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신비한(?) ()이 어려 있으며, 카랑카랑한 남도의 목소리는 이러한 민족적 수난과 어우러진 한 맺힌 소리꾼의 구성진 목소리였으며 슬픈 삶의 피리소리로 부르는노랫가락이었다.그의 설교는 민족의 한과 비극과 상흔과 결을 같이 하며 자라왔다. 그가 경험한 민족의 한()은 이스라엘의 한()과 어우러졌고 그것은 그의 종말론적인 메시지의 모체였으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붙들게 된 원인/동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영성(기도와 헌신)의 모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 때 유성은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도망쳐서 소만 국경지역인 관동군이 관리하는 마창이라는 화전민 마을의 김인석 목사 댁에서 1년간(9개월?) 피신을 하다가 해방을 맞게 되는데, 그 때 그곳 교회(김인석 목사 시무)에서 매일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만 주신다면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을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유성은 죽음과 얼굴을 맞대고 죽음(존재)의 영점(‘나의 25’)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모든 수난은 주님의 뜻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며 주님만을 사랑하게 되는 첫사랑의 고백이 되었다고 진술한다.유성은 자신의 이러한 영적 체험과 하나님(복음)께 대한 헌신을 조국광복의 염원을 담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1930)로 즐겨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유성이 겪었던 그 때의 영적 체험은 그의 기도의 품새가 되었고, 복음에 대한, 복음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씨앗이었다.죽음의 영점에서 부르짖었던 그의 기도와 헌신, 그리고 그가 만났던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평생 그의 영성과 신학과 헌신의 얼개였다. 그러나 젊은 유성의 ()극적 영적 체험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더욱 더 모진 시련과 수난의 시간이 유성의 삶 속에 찾아왔는데, 그것은 나라 잃은 일제의 강점보다도 더 큰 수난인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었다. 유성은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처절하게 학살되는 비극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맞이한다.

 

해방 후 남북이 갈라지고 6.25가 발생했을 때 유성은 이미 신학교를 졸업(1948)하고 법성포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고향인 신안군 지도로 피신하였고 그 때 빨치산에서 활동하던 120명의 좌익들이 신안군 지도를 완전히 장악하여 죽창과 돌로 양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광란의 섬에서 자신의 신앙의 원초(原初)였던 문준경 전도사뿐 아니라 아내와 부친이 학살을 당하였고, 자신은 학살 직전에 극적으로 탈출하여 논고랑으로 도망쳐 인근 숲에서 숨어 지내다가, 마침내 19501017일 경찰과 해병대의 상륙작전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때의 상황을 당시 신안경찰서 지도의 서장이었던 김곤근은 김준곤의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하늘은 나를 도와 비가 내렸고 땅도 나를 도와 칠흑 같은 길을 만들어 주었고 연약한 내 몸에서 힘은 어디에서 용솟음쳤던가, 그 모두가 영적인 발동에 감사하면서 산인지 밭인지 논인지 뛰다보니 불빛은 저 멀리 나를 따르고 반동 잡아라.’ 소리는 부슬비 내리는 적막을 깨며 내 귀를 물어뜯곤 하였다. [중략]물 빠진 바다는 나를 반겨 도랑을 주고 그 도랑은 구덩이를 만들어, 나를 안겨준다. 뻘은, 나를 감싸주는, 위장의 옷이 된다. 하늘은 버리지 않고, 계속 비를 내려 바다에 오는 사람들을 막아준다. 조수의 간만을 따르면서, 목은 취지 못하여도, 파래와 조개는 허기를 도와 70여 시간을 버티게 한다.”

 

결국 이러한 학살과 죽음의 현장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와 아버지는 속죄의 제물처럼 민족 앞이 바쳐졌고, 그 대신에 유성은 십자가의 용서의사랑을 가슴에 담게 되었다. 이처럼 6.25의 비극적 경험은 그의 신앙의 영점 체험의 현장이었으며,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 죽음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자신의 원수들에게 원망과 미움과 복수 대신에 십자가의 복음인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하였고,훗날 북한 동포지원사업(젖소보내기운동)까지 이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유성의 이러한 체험이 민족복음화의 소명과 비전을 태동하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 유성은 그 때의 경험과 헌신을 이렇게 서술한다.

 

저는 비탄에 잠겨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영적인 생명도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것도 제 가족을 살해한 그 공산당들에게 당신의 증인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전까지 저는 절대 헌신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저는 저의 생애의 전폭을 주님께 드렸고 한국의 민족복음화를 저의 개인적인 비전을[으로]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살아난 김준곤의 극적인 영적 체험들은 마치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이방의 사도가 된 사건(‘다메섹 사건’)과도 같았으며, 이러한 체험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은혜로우신 돌보심 가운데 기도의 영적 체험과 절대적 헌신을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죽음 가운데서 그가 경험한 이러한 민족의 한과 비극과 상흔은 그에게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전의 산실이 되었고, 그의 설교 특별히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대한 그의 설교의 얼개가 되었다.

 

19622월 삼각산 기도처에서 민족복음화를 위해 그가 드린 기도문 속에 민족에 대한 이러한 상흔이 잘 어려져 있음을 본다.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과 같이 아픈 내 조국, 이 민족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 금수강산 자연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또 다른 기도문에서는 이 상흔이 세계선교의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어머니처럼 하나밖에 없는 내 조국, 어디를 찔러도 내 몸 같이 아픈 조국, 한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소서.”

 

2. 민족적, 가족적 비극과 상흔을 통한 복음 이해와 영성을 깊게 가짐

 

역사의 비극 속에 아내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후에 사랑하는 딸(신희)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체험은 그의 신앙(영성)을 더욱 내면화시키고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결국 그의 이러한 고통과 죽음의 체험은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더욱 내면화되면서 그의 영성의 지성소가 되었다. 딸 신희의 투병을 지켜보면서 그가 드리는 기도는 절규 이상의 것이었다.

 

신희가 고통을 참는 것을 보면, 이마에 식은땀이 배고 두 발과 두 손목을 비틀고 온 몸을 비틀며 주님을 부른다. 나중에는 신희는 누워서 기도하고 나와 내 아내는 끊임없이 신희의 손목을 잡고 신음 같은 기도를 했다. 신희가 토할 때마다 나는 내 죄를 창자까지 토했고 자나 깨나, 않으나 서나 주님과 신희를 번갈아 부르며 숨 쉬듯 기도했으나, 내 생애의 가장 애절한 기도는 무참히 거절당했다.”

 

이러한 극심한 고통과 절망에서 유성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과 수락을 결심할 때와 바울의 세 번의 기도가 거절 되었을 때를 생각하며 지각에 띄어난 평강을 경험하였다고 진술한다.그리고 자신의 절박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거절은 유성에게 영원한 소망을 더 확실하게 갖게 해 주었다.

 

주님은 나의 가장 소중하고 소중한 것을 기어이 빼앗아가 버렸다. 나는 그 주님은 뺏는 손보다 다른 손에 준비한 것을 보아야 한다. 신희를 빼앗아 간 다른 손에 준비된 영원한 소망(필자 이탤릭)이 전보다 총천연색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님의 절대 사랑과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힘을 주실 것에 대한 신뢰와 신앙을 나는 다시 고백하고 다시 확인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되었다.” [중략]교환된 삶, 산제사를 드리는 삶의 비결을 우리는 소유했다. 십자가만 바라보는 절규, 주님의 절대사랑을 신뢰하고 뿌리째 송두리째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전천후 전인구원을 확신하는 이 피 묻은 고백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신 것이다.”

 

죽음 같은 고통과 절망 앞에서 유성이 얻은 소망과 확신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성령의 역사하심이었다. 그리고 딸 신희의 신앙적 삶(기도생활)과 투병을 지켜보며 그는 주님만이 대속해 주시지만(필자의 밑줄)분명 누군가의 고통과 질병과 죄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간 속죄양같이, 한 알의 밀알같이 제물이 된 것 같다.”는 깨우침을 갖는다.그리고 유성은 존재의 제로점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찬송이 터져 나오는 성령의 대송을 경험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다 내 보낸 텅 빈 병실에서 죽은 딸의 손목을 붙잡고 주님 앞에서 언어와 행동이 정지된, 존재조차 제로가 된 나는 분명 속으로 주님이 섭섭했던 것이다. 이윽고 십자가의 주님이 환상으로 나타나셨다. 빗물처럼 피 흘리고 계셨다. 성령이 부르는 것인가. 하염없이 찬송이 생수처럼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확실히 사망의 음침한 수많은 골짜기들을 지나는 동안 밤마다 울부짖었던 유성의 기도생활들은 그의 생애의 영성의 젖줄이었고, 기도 속에서 만났던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셨다. 그 때 하나님께 드렸던 헌신들과 깨우침은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전에 대한 유성의 헌신의 모판으로서 그는 이후에도 이 비전을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더 깊이 확신하게 되었다. 확실히 성경은 유성의 어두운 인생길의 등불이며 빛이었고(119:105) 민족복음화의 비전의 기초며 확신이었으며, 기도는 유성의 헌신과 확신의 불을 붙이는 기름이었다.유성은 이렇게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대망하며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생을 헌신하게 된다. 마침내 이 헌신은 C.C.C.3중 헌신(주님에의 헌신, 민족의 입체적 구원에의 헌신, 형제들에의 헌신)4대 절대(절대 신앙, 절대 헌신, 절대 훈련, 절대 행동)를 낳은 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비극적 경험을 통하여 유성의 실존은 깊은 고독과 그리움과 목마름과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고독과 그리움과 목마름은 시와 문학과 철학(특히 실존주의 철학)을 통하여 해갈하고 머물러 보려 하지만 더 깊은 고독과 그리움 속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러한 실존의 고독과 그리움과 목마름은 성경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해갈하며 머물게 된다.그는 자신의 설교에서 수많은 시인들(바이런, 셀리, 타고르, 릴케, 칼 부세, 로제티, 뮈세, 비용, 단테, 등등)을 열거하면서 이러한 고독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그 중 다음 대목은 그의 이러한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제가 한 20일 동안 릴케의 시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몇 번 읽었는데 도무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디 머물 데가 없었습니다. 한 번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가까이 왔다가는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불쌍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요! 많은 눈동자 아래 누구의 무덤도 아닌 일락이여!’ 장미를 순수한 모순이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일락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순수한 모순이 릴케의 작품입니다. 흔히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고 조용한 시간이 다가오면 릴케의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릴케의 시를 읽고 우리는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우주의 갈 곳 없는 고아처럼 그러한 자신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어 그는,

 

아무리 유명한 철학자가 결론을 내어도 그것은 다시 또 질문으로 변합니다. 그것을 또 결론을 내려도 그 결론은 또 다시 질문으로 변합니다. 이 질문을 한 만 년이나 5 만 년을 되풀이해도 뺑뺑 돌아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의 사고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결론이 없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문제가 문제로 끝나면 철학은 죽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철학의 임무는 한 없이 물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음이 그리스도께 왔을 때 기도의 형식으로 신앙 고백이 됩니다. ‘주여 당신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오 나이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중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철학과 종교와 윤리를 전부 합해서 가장 짤막하게 결론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은 최후의 초고의 결론입니다. 이것은 유일한 해답입니다. 그 밖에는 해답을 내릴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나올 길이 없습니다. 모든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이 침묵을 할 수 밖에 없는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짤막하게 하셨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가 만일 이 말씀을 들었더라면 그 앞에서 주여, 우리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했을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민족사와 가족사의 수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유성은 백문일답(白問日答)의 사람이었다. 유성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므로 유성은 자신의 책 초판(1993), 영원한 첫사랑과 생명언어의 머리말에서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과 나의 러브스토리는 만날 때마다 영원한 첫사랑이다. 그 언어들은 영이요 생명이다. 처녀성만큼 신선하고 유일하다. 천지가 변하고 천하의 부부와 인간의 부모사랑이 다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나를 향한 절대사랑만은 세상 끝까지 하늘 끝까지 인간 끝까지 타협도 양보도 안할 것이다. 나는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을 쳐다보며 하루에 열 번도 더 울며 감사하며 산다.”

 

나의 아버지는 6.25때 공산당에게 내 눈앞에서 학살되셨다. 곤봉과 죽창과 돌로 쳐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셔서 사자처럼 울부짖는 소리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의 전 존재가 자신의 의식의 피안에서 하나의 소리로 터져 나온 것이 내 이름이었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내 이름을 부르다가 심장이 터져 돌아가신 주님을 내가 맨 처음 만났을 때 다르게는 살 수 없는 내 운명이 영원 전부터 결정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과 나의 순애보는 지금이 시작일 뿐이고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주님과 나의 천로역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유성(流星)의 예수님과 첫사랑은 이렇게 고통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에서 부르짖었던 고독한 절규 중에 태어나 순애보와 동행(‘천로역정’)의 삶으로 이어졌다. 유성의 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인 저도 그 첫사랑의 길을 따라서 이렇게 찬송하며 걷고 싶다.

 

“1.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2.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3.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하신 주 능력 나를 붙드네.

(후렴)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394)

 

주님과의 첫사랑, 주님과의 순애보, 그리고 끝나지 않는 주님과의 천로역정은 유성으로 하여금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예수는 그의 유일한 신조며, 유일한 노래며, 유일한 복음이었으며 인생과 역사의 해답(백문일답)이었다. 확실히 유성은 예수(복음) 때문에 사는 사람이었고, 예수(복음)를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유성(流星)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으로 사는 것을 가장 영광스러운 갈망과 사명과 특권으로 이해하며 자신을 태워 이 빛(복음)을 드러내고 역사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노래하며 사라졌다.

 

예수 외에 인류에게 전할 다른 메시지가 남아 있을까? 예수 외에 믿을 수 있는 신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 그리스도와는 바꿀 수 없네. 한 길밖에 없네. 다르게는 살 길이 없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3. 민족의 수난역사와 이스라엘의 수난역사를 동일시하며 민족복음화의 사상적 기틀을 만듦

 

민족복음화에 대한 그의 설교의 내용에는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이스라엘의 수난사의 종말론적인 모습에 대한 이해가 있다. 유성은 남북의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을 마치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그 모습과 동일시하며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회복(37장과 욜 2)을 복음을 통한 민족 회복(민족통일과 번영)의 비전(환상)으로 이해한다. 그는 이 비전을 2의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이해하며 민족복음화운동을 통하여 이루려고 한다.

 

유성은 사랑하는 한국 민족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크고 절실한 뜻은 이 땅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 이 일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면(2장과 대하 7:14)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고, 휴전선이 터지고, 이 땅의 상처가 고쳐지고, 에스겔 37장의 역사가 나타나고 신명기 28장의 축복이 나타나 한국 주도의 세계 선교의 장이 펼쳐 질 것이라는 비전을 가진다. 유성은 이것을 복음전도에 민족의식, 혹은 민족주의에 복음 전도를 결합시킨 운동이라고 말한다.

 

특히 에스겔 37장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예언적 환상이지만 유성은 우리의 민족적 상황 속에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고 적용한다. 그는 이 말씀 속에서 민족 부활의 원리, 민족 부흥의 원리를 찾는다.

 

에스겔 37장은 이스라엘 민족사의 가장 처참한 상황에서 보여준 민족 부활과 통일에 대한 환상이다. 성경은 원리적으로 영원한 현시성(現時性)과 적용성(適用性)을 지니고 있다. 해골 떼가 성령의 군대가 되어 남북으로 분단됐던 민족이 하나님의 손에서 북이 남으로 붙어 하나가 되었다(37:19). 명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 그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우리가 명령받은 신약적 대언은 바로 복음전도다. 복음을 전하면 뼈들이 이어지고(정치부흥) 힘줄이 생기고(국방력 부흥) 가죽이 덮이고(사회·문화적 부흥) 마침내 성령운동으로 사도행전 사건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통일시키신다. 우리 민족에겐 그 밖의 다른 길이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유성은 에스겔 37장의 예언적 상황을 우리 한국 민족의 현실 속에서 적용하고자 한다., 복음운동, (회개)기도운동(2장과 대하 7:14), 그리고 성령운동을 통하여 민족복음화 운동을 전개하면,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떼의 뼈들이 이어지고 살이 생기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여서 성령의 군대가 일어났던 것과 같이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믿는다.이 점은 요엘서의 금식기도 명령(2:12-27)에 대한 유성의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성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금식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져 그 백성을 긍휼히 여겨 북편군대를 멀리 떠나게 한 것(2:20)처럼 우리도 그렇게 회개하고 금식기도하면 민족 통일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유성은 한국근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으면서 복음을 통한 민족통일과 번영을 민족복음화를 통하여 성취하고자 꿈꾼다. 복음을 통한 민족복음화운동은 유성에게 하나의 거룩한 혁명이고 개혁적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유성은 민족복음화를 통하여 민족의식을 혁명하고자 하였다.

 

4.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해

 

내가 내 인생의 순례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과장 없이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 같은 사건이었다. 내 인생은 송두리째 예수님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예수 칼럼> 서문 중에서)

 

이처럼 민족의 한과 비극과 상흔은 말씀과 기도 속에서 그의 실존에 깊이 각인되고 축적되어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승리를 깨닫게 되는 불소시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수난과 용서의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사랑이 김준곤의 설교의 젖줄이 되고 또한 그의 사랑의 실천적 행위의 힘줄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화의 비전이 되었다. 이처럼 내 가슴에 타오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불길로 이 더러워진 거리 구석구석을 태우자.”고 외치며 전한 그의 예수 사랑은 십자가의 속죄의 사랑에 기인한 것이었다.

 

내 가슴 한 복판에 십자가를 세우고

속죄에의 불타는 사랑을 담자

이 불로 하나님을 불 같이 사랑하고

이 불로 사람을 불같이 사랑하자.”

 

무엇보다도 유성에게 십자가는 사랑의 드라마의 절정이며 사랑의 심장파열의 사건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이렇게 진술한다. 예수가 하나님과 나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다가 죽은 곳, 예수가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 하나님 손을 붙잡고 사랑의 심장이 터진 곳이 십자가이다.”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서 나(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대한 그의 설교를 들어보자.

 

창자가 아프도록 사랑하십니다. 옆구리가 터지고 심장이 파열되도록 우리를 불렀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울고 바다가 끓고 천지가 외면하면서, 태양이 어두워지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부른 것은 바로 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다가 죽은 곳이 십자가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다가 심장이 터진 곳이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유성의 생애에 이러한 십자가 사랑의 자각(깨우침)은 그로 하여금 겸손과 참회의 삶(뉘우침)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설교(가르침)의 내용이 되었다. 피 묻은 십자가 밑에서 상한 심령으로 겸허하게 참회하는 삶이 주님의 십자가와 피의 참된 의미를 알고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 밖에서 진정한 죄의식과 참회는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상에 대한 그의 설교(1965530)십자가를 지는 생활(27:40)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별히 유성은 자신이 설교본문으로 택한 성경구절인 마태복음 2740(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을 예수님에 대한 조롱이면서도 유혹과 시험으로 이해하면서 창조주로서 이 땅에 오신 그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처럼 무능하게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무능해 지심으로 그 십자가에서 죄인인 우리가 당해야 할 그 큰 사망(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을 다 감당하셔야 했다고 설명한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었지만 왜 자기 자신에게만은 무능한 예수님이었습니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지의 창조자이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시는 데는 무능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는 십자가에 달려서 원수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그 큰 사망을 마지막까지 다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단절되는 그러한 사망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망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무능해지고 스스로 약해져서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기적을 행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 능력을 조금이라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수난자 예수님의 생애였던 것입니다.

 

또한 유성에게 이러한 예수님의 수난상은 곧 우리의 수난상(제자도의 수난상)이며, 예수의 상흔은 곧 제자도의 상흔이기도 하였다.

 

참으로 크리스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은 그런 수난자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되었을 때만, 그렇게 어리석고 무식하고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현대적인 순교자, 현대적인 수난자, 현대적인 좁은 길을 가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통해서만 그리스도가 바로 증거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수난의]예수님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조차도 없던 사람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꼭 있어야 될 사람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를 진 사람, 정말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 수난자의 생활을 산 사람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정의의 돈키호테가 되고 웅변과 세력을 과시해도 세상은 눈 하나 깜짝 안한다. 우리가 누구의 죄와 죽음을 대신지고 나의 죄처럼 울고 아파하며 속죄양의 상흔을 지녔는가? 상흔을 보이자.”

 

이처럼 유성에게 예수의 상흔은 제자도의 상흔, 곧 제자들이 삶에서 지녀야 할 상흔이었다(6:17,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

 

물론 유성의 십자가의 깨우침은 부활에 대한 신앙과 항상 그 결을 같이 하며 이 부활신앙은 그의 고난과 죽음의 경험들에 대하여 확실한 소망을 가져다주었으며, 십자가의 사랑(용서)의 완벽한 성취와 승리를 의미하였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입증한 사랑이다. 윌리엄 버클리의 말처럼, 확실히 부활은 진리가 거짓보다 더 강하고, 선이 악보다 더 강하며 사랑이 미움보다 더 강하고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사건이었다.특별히 부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5:8)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한 사건으로서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하심을 통해 십자가의 사랑이 거짓된 사랑, 무능한 사랑이 아님을 확신시켜주셨다. 부활은 하나님 사랑의 승리며 완결판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신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죽음 같은 수난 속에서도 승리의 찬가를 노래할 뿐만 아니라(고전 15:30-31, 55-58), 지독한 인간관계에서도 미움을 이기고 사랑의 길로 나아간다. 유성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은 사랑의 승리이며, 크리스천의 소망이고, 죽음(수난)을 이기는 생명이라고 유성은 자신이 삶을 통해 확신 있게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그러므로 유성은 예수의 부활만이 이 모든 것의 정답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분명히 죽음을 이겼습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음의 세력에 눌려 있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소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입니다.”

 

이처럼 부활에 대한 유성의 신앙은 그가 고난 중에 경험했던 신앙이며, 성경을 통해 확신하는 신앙이며, 더 나아가 복음의 핵심으로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일 뿐 아니라 민족 부활의 소망이며 비전이기도 하였다.

 

돌아보며

 

우리가 살펴본 대로, 민족의 한과 비극과 상흔 속에 잉태된 김준곤 목사의 설교는 그의 삶의 궤적과 같이 하면서 기도와 말씀 가운데 영글어져 갔다. 유성의 설교는 그의 영성과 신학의 반영이며 열매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가 겪은 민족적-가족적-실존적 상흔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유성은 확실히 상흔의 설교자이었다. 유성의 설교의 내용과 뼈대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독서생활과 기도생활은 그의 설교가 만들어지는 가마솥과 같다.

 

죽음(실존)의 제로점에서 만났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이 유성의 신앙과 삶을 극적으로 인도하였고, 유성은 이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어떤 기회(?)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유성은 6.25의 민족적 비극과 참상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으면서 반공의 이념과 함께 복음운동, 기도운동, 그리고 성령운동을 통한 민족복음화의 비전(37장과 욜 2장과 신 28장과 대하 7:14)속에 민족통일과 번영을 꿈꾼다(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비전). 그러므로 유성은 독재정권으로 억압당한 민중의 삶에 대한 의분이나 사회정의의 실현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통한 거룩한 민족혁명을 꿈꾼다.유성은 한스러운 눈빛을 가진 한 시대의 눈물의 선지자였으며,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외롭게 선 비목 같은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예수에 미치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미친 사람이었다.

 

확실히 유성의 설교는 사도들이 외친 십자가와 부활이 자신의 선포의 케리그마(Kerygma)였으며, 누구보다도 유성의 말씀과 기도의 생활은 그의 영성과 설교를 새롭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생수며 저수지며 용광로며 모판을 형성하였고, 성령은 유성의 영성의 길과 설교세계를 인도하는 인도자일 뿐 아니라 뜨겁게 타오르게 하고 넘쳐흐르게 하는 불길이며 물길이었으며, 능력과 지혜를 주는 원천이었다. 무엇보다도 유성에게 백문일답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영원한 첫사랑이며, 변치 않는 참 좋은 친구며, 그의 구주이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귀하고 좋은 것들(아내와 부친과 딸)을 그의 인생으로부터 앗아갔지만 그 대신 당신의 하나뿐인 독생자를 유성이 평생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연모하는 대상으로 주시고, 또한 그와 함께 영원한 소망을 주셨을 뿐 아니라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꿈을 주셨다.

 

흥미로운 점은 그처럼 잔혹한 민족사와 가족사를 겪었지만 유성의 메시지는 복수보다는 용서와 관용, 미움보다는 사랑을 전하며 실천하려고 애쓰고 몸부림쳤다. 때론 교회를 향한 질타에도 언제나 사랑의 감정이 스며있었다. 언제보아도 유성의 한스러운 애잔한 눈빛은 그리움과 외로움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유성은 주님과의 순애보를 통하여 그것들을 승화시켜나갔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어 갔다. 확실히 유성은 그의 인생의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진 사람(고후 4:7)이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674절로 제 10주기 추모식에서 유성이 간 세월을 돌아보며 이렇게 답송을 하고 싶다.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 주 의지하여 늘 강건하리.

온 백성 지으신 만왕이시니 그 자비 영원히 변함없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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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01 [16:1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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