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0.23 [21:01]
[현장 탐방]사도 바울이 걸은 마지막 길
시애틀 이동근 장로(전 중앙일보 시애틀 편집국장)칼럼
 
이동근

 

▲ 사도 바울 순교 교회와 바울이 마지막 걸었던 로마 도로. 길을 보존하기 위해 줄로 막아져 있다.     © 이동근

 

   

 

그날 로마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날도 이처럼 비가 왔을까? 사도 바울의 참수터를 찾아가는 나의 마음에도 애통하고 안타까운 비가 내렸다.

지난 9월 꿈에 그리던 서유럽을 여행사 투어로 다녀왔다. 영국, 파리, 스위스, 이태리 일정 12일 동안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날 로마 일정에는 비가 내렸다.

이날은 마침 주일이어서 아내와 나는 호텔방에서 찬양과 말씀 묵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로마 관광을 떠났다. 첫 방문지가 사도바울이 순교한 참수터였다.

사도행전 등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공회 앞에서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한 후 58년경 체포되어 가이샤라에 호송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바울의 가슴에는 주님께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이르신 것처럼 로마 선교 열정이 있었고.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하며 로마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요청했다. (행 25:11)

이로인해 사도 바울은 바다의 풍랑으로 배가 깨어져 멜리데 섬으로 구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AD 61년경 로마에 도착했다. 그리고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으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운데 군사가 그를 지키고 있었지만 방문자를 만나고 복음을 전파하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수감생활을 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행 28:16)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이 기간 바울은 4개의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썼으며 63년경에는 잠시 석방되어 성도들을 둘러보기 위해 소아시아로 갔다.

▲ 사도 바울이 참수 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 조각     © 이동근

 

그러나 AD 64년 7월 19일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에게 방화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기로 했다. 이로인해 당시 기독교의 지도자 바울은 제 1순위로 소아시아에서 체포되어 왔다.

갑자기 체포된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어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 근처에 있는 마메르티(mamertimum) 감옥에 갇혔는데 베드로 역시 이곳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남아있는 이 감옥은 훨씬 악조건 환경이었고 죄수들은 혹독한 구금 생활을 보내야 했다.

우리 일행은 직접 이 감옥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바라보며 설명을 들었다.

바울도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한 것을 알고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 전서와 후서를 써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며 자기의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리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로니라.”(딤후4:6-8)

결국 사도바울은 반기독교 세력의 심장부인 로마에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의 몸을 순교의 제물로 드린 것이다.

그 당시는 성 안을 신성시하였기에 성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는데 바울의 목이 참수되었을 때 떨어진 목이 세 번 튀었고, 그 튀어 오른 자리마다 샘이 터졌기 때문에 그곳에는 뜨레 포타네 (Tre Pontana) 세 분수 교회가 세워져 있다.

또 그의 무덤은 성 밖에 있는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 또는 성 바오로 대성당 (St. Paul’s outside-the-walls)에 묻혀있는데 로마 베드로 성당에 이어 가장 큰 기념 성당이라고 한다.

그날 우리 일행들은 관광버스에서 내려 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의 비 같은 가랑비를 맞으며 참수터로 향했다. 먼저 놀랜 것은 그동안 유럽 관광지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행객들과 관광버스들이 몰려있었는데 이곳에는 우리 일행 외에 다른 10여명 정도만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참수 교회가 있는 수도원 입구는 Via Acque Salvie 길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만 서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양옆으로 가로수가 서있는 조그만 시골길 같은 조용한 길을 걸어가니 입구에 하얀 대리석 조각으로 한 인물이 크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사도바울을 먼저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이 조각상은 바울이 아니고 수도사인 St. Benedict 였다. 조각상 밑에는 이곳은 평화와 기도의 장소라고 경고하고 있다.

▲ 바울이 참수당한 후 목이 3번 튀긴 곳에 샘이 터지는 그림     © 이동근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수도원은 정말 들어오자마자 적막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주었다. Acque Salvie 길을 따라 더 들어가니 정식 수도원 입구인 Arch of Charlemagne 아치 문이 서 있었다.

이 아치는 샤를마뉴 서로마 제국 황제 기념 수도원 아치이고 수도원 안에는 바울 참수 교회를 포함 3개 건물이 있었다. 마침 아치 입구 길바닥에 젊은 집시 여성이 빈 깡통을 들고 구걸하고 있었는데 다른 관광지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어서 동정심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수도원 3개의 건물 중 왼편은 베르나르도 클레르보의 수도원이고 오른편은 ‘천국의 계단 교회’로 불리는 Church of Santa Maria Scala Coeli 교회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황제의 목욕탕을 건축한 후 건축에 참가했던 1만여명의 그리스도 군인들과 노예들이 죽임을 당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수도원 3개 건물 중 가장 작은 이 교회는 1138년 성인 베르나르도 클레르보가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를 드리다가 천사가 수많은 영혼들을 계단을 통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려가는 형상을 보았다고 하여 이런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교회 지하로 내려가니 16세기에 지은 San Zenone과 순교한 군인들을 위한 제단이 있었다. 특히 이 제단 벽에는 두 개의 작은 창문이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왼쪽은 Dia 여신을 위한 작은 이교도 제단을 볼 수 있고 오른쪽은 전통적으로 사도 바울이 참수되기 전에 죄수로서 수감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San Zeno와 순교 군인들 그리고 수감된 사도 바울의 프레스코화가 있었으나 이제는 바울 그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곳이 바울이 수감되어 옥중 서신을 썼던 감옥이라고 까지 잘못 알고 있으나 수도원 웹사이트 설명에서도 이곳은 바울이 참수 전 대기하던 곳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앞에서 설명한 마메르티(mamertimum) 감옥 입구에는 분명히 바울과 베드로가 수감되어 있던 곳이라고 입구에 새겨져 있다.

참수를 앞두고 바울이 대기했던 곳이라면 바울이 마지막 기도하던 곳일 것이다. 바울은 이때 어떤 기도를 하였을까?

▲ 입구조차 초라한 수도원 입구     © 이동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14:8)

죽으나 사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 원하며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기쁘게 고대하던 바울을 생각하면서 나도 감히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원했다.

드디어 두 번째 교회를 지나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세 번째로 맨 끝에 바울 순교교회 (Church of the martyrdom of St. Paul)가 나왔다. 이곳이 바로 AD 67년 6월 29 일 바울이 참수 당한 곳이다.

특히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하고 역사적이며 영적인 장소인 바울 순교 교회에 들어가기 직전 도로 10미터 정도는 옛 로마 도로로 보존되어 밟지 못하게 줄로 막아져 있어 우리는 옆으로 피해 가야 했다.

이 도로를 보며 당시 사도 바울이 사형수의 몸으로 이 로마 도로를 마지막으로 걸어서 사형장에 끌려갔다고 생각하니 정말 참담한 심정으로 걸었다.

▲ 바울 참수 교회 내부. 왼쪽 아래 철망으로 가려져 있는 곳에 참수 돌기둥이 있다. 그 왼쪽 옆으로 머리가 튀어 샘이 솟아난 기념 제단이 3개가 있다.     © 이동근



순교 교회당에 들어가니 오른쪽 벽에는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죽는 그림과 대리석 부조가 있고 왼쪽 벽에는 바울의 목이 베이는 장면이 생생히 조각되어 있었다. 또 바울의 목이 떨어진 후 3번 튄 곳에서 물이 터지는 그림도 있었다.

베드로는 이방인이어서 훨씬 고통스럽고 잔인한 십자가형을 당했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여서 그래도 쉽게 죽는 참수형을 당했다.

특히 부조 조각에서는 두 손이 뒤로 결박당하고 무릎이 꿇린 채 돌기둥 위에 바울의 목이 올려져 칼로 참수 되는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어 정말 끔찍했다.

교회 안은 한쪽으로 참수 돌기둥이 쇠창살로 둘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3개의 샘터 기념 제단이 정렬되어 있는데 서로 같은 거리이나 바닥 높이가 조금 다르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 샘물이 나온 샘터 기념 제단에는 잘라진 바울 머리 조각도 있었다.

수도원 설명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로 3개의 샘이 터진 것은 고고학적인 발견과 여러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또 출처가 미상이지만 신빙성 있는 보고서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참수 당시 눈이 가려졌고 양 무릎이 땅에 꿇렸으며 목이 참수 돌기둥 위에 올려진 후 참수되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큰 소리로 3번 히브리어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그의 목과 머리에서 우유 같은 액체가 터져 나와 사형집행인 옷과 땅을 적셨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교회 안에 있는 예배당 좌석에서 기도시간을 갖는 바람에 좀 늦게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우리 곁에 있던 외국인 2명과 우리들에게 직원이 쇠창살을 열어주어 무시무시한 참수 돌기둥을 직접 보고 어루만질 수 있었다. 정말 바울의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사람 키보다 적은 돌기둥을 자세히 보니 한쪽이 마모가 돼 있었다. 그 이유는 수많은 기독교도들을 죽일 때 목을 그 돌기둥에 얹고 큰 칼이나 도끼로 내려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울 사형 묘사 조각에서도 망나니의 칼이 조금 밖에 없었는데 큰 칼이 부러져 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 바울이 참수당한 돌기둥, 한쪽이 많이 마모되어 있다.     © 이동근



아내 이은배 전도사와 나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그 장면 앞에서 다시한번 사도 바울의 목 베임이 헛되지 않도록, 그 피가 이 땅에서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작은 바울이 되어 오직 믿음 안에서만 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왕성하고 견고하게 세워 나가기를 소원해 보았다.

정말 끔찍하고도 안타깝게 바울은 참수되었지만 그 흘린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뿌려진 바울의 피의 복음으로 인하여 로마 제국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고 바울을 참수했던 로마제국이었으나 그후 전 세계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기독교 문화가 꽃 피우게 되었으며 특히 이방인인 우리들까지 그 귀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닌가!

2000년 전에 세워진 로마라는 제국은 막상 돌아보니 그동안 알고 있었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로마 한 셋집 가택연금과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에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당시엔 겨자씨처럼 작았지만 이제 로마를 통해 기독교가 전 세계로 전파되고 확장되는 하나님의 뜻이 바울의 순교로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바울의 그 피의 복음은 2000년 이라는 시간을 지나 대륙과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까지 접해진 것처럼 사도행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대와 중세기에 세계를 호령하였던 유럽을 돌아보면서 영국 박물관, 프랑스 루블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 에펠 탑, 개선문, 바티칸, 베드로성당,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 그림 등 화려한 성당이나 미술, 조각 작품들과 르네상스 발상지 피렌체, 물의 도시 베니스와 폼페이 그리고 카프리 섬보다도 나는 바울의 초라한 참수터에서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렸고 더 큰 감동과 도전이 밀려와 그곳에서 복음 열정으로 펄펄 뛰던 바울의 심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고 큰 축복이었다.

▲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 이동근



로마에서 사도 바울 순교 교회를 돌아보면서 사도바울이 유라굴라 광풍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여 복음을 외친 로마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 생전에 가야할 로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야할 로마는 어디인가? 그곳은 지난해 내가 단기 선교로 다녀왔던 멀리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지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의 로마가 있다.

특히 이번 여행 일행들 중에는 믿지 않거나 교회를 다니다 중단 한 분들이 많아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여행객들이 사도 바울 참수터를 방문하고 고귀한 사도바울의 순교를 통해 구세주인 예수님을 믿기 바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바울 순교 교회를 떠나니 바로 앞에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로마 도로가 다시 펼쳐졌다. 그 길을 걸으면서 언제가 우리에게도 가야할 마지막 길이 있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 마지막 길을 걸어 예수님 앞에 섰을 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하고 예수님으로 부터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한다.

다시한번 내가 좋아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묵상해본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동근: 뉴스파워 시애틀 본부장. 시애틀 뉴비전 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 땅’ 발행인 저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비,눈,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 일본 아사히 신문 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 사진전 입선,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 1위. 미국 개인 사진전 개최.

이메일:nhne7000@gmail.com

 

 

▲ 바울의 목이 튕겨서 샘이 터진 곳에 세워진 기념 재단. 중앙에 바울 머리 조각이 있다.     © 이동근
▲ 천국 계단 교회 지하에 있는 기념 제단. 철망 창문 뒤는 바울이 수감된 감옥이 아니고 사형자에 끌려간 바울이 대기하며 마지막 기도를 했던 곳이다.     © 이동근
▲ 수도원 입구 아치 문 아래 젊은 집시여성이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하고 있다.     © 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10/04 [06:32]  최종편집: ⓒ newspower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