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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23 [21:01]
새벽기도회, 사경회와 함께 시작됐다
이은선 교수(안양대, 교회사), 김명혁 목사와 대담 원고 전문.
 
이은선

     

새벽기도 신앙의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19일 오전 10, 강변교회에서 특별대담이 진행됐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합동신학교 교장 역임)와 이은선 교수(안양대 신학과)가 출연해 새벽기도 신앙의 역사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발표문이다.

▲ 안양대 신학과 이은선 교수     © 뉴스파워

 

                                 

I.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독특한 신앙생활의 모습 가운데 하나가 새벽기도회이다. 한국교회에서 새벽기도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면서 시작되어 한국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도 아마도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체 교회가 새벽기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에는 한국교회에서 새벽기도회가 과거보다는 점차로 퇴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한국교회의 새벽교회 신앙의 영성을 회복해야 하겠다. 오늘은 새벽기도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이 새벽기도와 관련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로 초대부터 중세, 종교개혁사를 통해 새벽기도가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한국교회에서 새벽기도는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본 후에 오늘날에 적합한 새벽기도의 영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II. 구약성경의 새벽기도 영성

 

1. 구약성경에서 새벽기도에 대한 기록들은 시편에서 여러 구절들이 등장하고 있다.

o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46:5)

o 내 영혼아 깰 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8)

o 비파야 수금아 깰 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08:2)

o 시편119145-149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솔로몬도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새벽에/שחר)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이러한 구약의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응답을 기다리며 새벽에 기도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구약의 새벽기도 사례

1) 아브라함의 새벽 기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을 제단에 바치고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모리아 산 출발하였다.(22:3)

2) 야곱의 새벽 기도

야곱은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기도한 후에 새벽에 날이 밝기 전에 천사와 씨름하며 간구함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변화의 축복을 받았다.(32:26-28)

3) 모세의 새벽 기도

모세는 아말렉 족속과 전쟁 할 때에 산꼭대기에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했고(17:11),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이 있게 했으며(14:15), 또한 모세는 새벽에 기도하여 홍해 물이 다시 흘러 애굽 군대를 멸망시킨 기적을 일으켰다.(14:27)

4) 다윗의 새벽 기도

다윗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했고(57:8) 새벽부터 찬송하였다(119:147).

 

3. 구약에는 이와 함께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구약에 최대 일곱 번 기도하였고 대표적으로 오전 9시 아침기도, 12시 점심기도, 3시 오후기도 등의 기도가 행해졌다.

 

III. 신약시대 새벽기도

1. 예수님의 새벽기도

주님의 하루하루는 식사할 겨를도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이었다. 주님은 그 바쁜 일상 중에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으셨다. 그러기 위해 새벽을 이용하셨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2. 구약의 시간을 정한 기도의 전통은 사도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던 시간은 제3시 기도시간이다. 215절에 때가 제 삼시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31절에 보면 제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고, 103절에 보면 고넬료가 제9시 기도시간에 환상 중의 주의 사자를 만났고, 109절에 베드로는 12시 기도 시간에 기도한다.

3. 베드로의 새벽 기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가시자 공회 마당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다가, 새벽에 닭이 세 번 울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하였다(22:55-62). 베드로는 새벽에 회개 기도로 통곡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한 결과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1:13-14).

이러한 기록들로 볼 때, 구약과 신약에서 새벽기도가 매일 제도적으로 시행된 것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필요할 때 했던 것으로 보인다.

 

IV. 초대교회의 새벽기도

1. 112년경 소아시아지방의 비두니아 총독이 소 플리니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특정한 날에 새벽예배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은 단지 특정한 날을 정해놓고 해뜨기 전에 함께 모여 모임을 가진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찬양하는 곡조 없는 찬송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의 그룹을 결집시켰습니다. 이는 어떤 범죄 행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절도나 강도 그리고 간통을 하지 말 것을 그리고 약속을 지키고 맡겨진 재화가 요구될 때 거절하지 말고 내어줄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임 후 그들은 일단 헤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평범한 식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재차 모이는 것이 그들의 관례입니다.

 

2. 2세기에 기록된 디다케에서는 하루에 세 번 주기도문을 암송하라고 지시하였다.

중세에서는 이러한 기도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성무일도로 발전하였다.

 

V. 중세의 성무일도

성무일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리는 의식을 말한다. 이러한 성무일도는 수도사들에게는 의무였지만 일반 성도들에게는 권장사항이었다. 중세의 성무일도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였다. 독서기도, 아침기도,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저녁기도, 끝기도까지 하루에 모두 7번 기도한다. 이것은 보통 기도문을 읽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독서기도와 아침기도가 오늘날의 새벽기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VI. 종교개혁자들의 새벽기도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성무일도를 개정하여 사용하면서 일부는 폐지하였다. 루터와 부처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는 실시하였는데, 아침기도는 새벽기도에 해당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대표적인 새벽의 사람이었다. 루터는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다.’

칼빈도 겨울에는 아침 7, 여름에는 6시에 새벽기도회, 혹은 아침기도회를 하였다. 그는 격주로 이 시간에 설교를 하였고, 회중들은 그 후에 기도하였다.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기도했다. 그리고 겨울에 춥다고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이라고 책망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경변으로 새벽기도가 건강에 나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지만 새벽기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오히려 뇌신경이 회복되고 건강해졌다.’고 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도 새벽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VII.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의 시작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복음이 수용된 초기부터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 이르면 전교회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이말테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새벽기도는 백홍준이 1880년대에 개인적으로 매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892년 동계 신학반 학생들이 새벽기도를 했으며, 장대현교회에서 마펫과 한석직은 1983-96년 사이에 매일 아침 일찍 같이 기도했다. 옥성득에 따르면 강진교회에서 사경회를 하는 가운데 새벽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1. 강진교회의 새벽기도의 시작

18982월 강진교회에서 31명의 한국인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겨울 사경회가 열렸을 때.(Lee)목사와 휘트모어(Whittemore)목사를 초빙했는데, 이들의 보고서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열심은 놀랍다. 이 사경회에서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아침 해가 올라오기 훨씬 전에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하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렸다. 같은 찬송들을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들을 수 있다. 모든 비용은 본토인 그리스도인들이 부담했는데, 선교사들의 한국인 수행자들의 식비까지 부담했다.

 

일주일 간 사경회를 하면서 수안 강진 교인들은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지고 찬양, 기도, 성경공부를 했다. 이것이 한국 교회사에서 사경회에서 기록된 최초의 새벽기도회였다. 한국인들이 개척한 교회에서 한국인들이 주체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지역의 사경회에서 비슷한 새벽기도회가 간헐적으로 열렸다.

2. 19012월 번하이즐 선교사는 황해도에서 열린 사경회들을 인도했다. “밤에 많은 성도들이 예배당 안에서 잠을 잤다. 거의 매일 아침 4시경에 우리는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저녁에도 동일한 과정이 계속되어 밤 10까지 계속되었다.” 이 보고서에서도 보듯이 사경회에서 한국 교인들은 선교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새벽 4시에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3. 새벽기도회는 19031231일부터 2주일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개최된 사경회에서 정식 순서로 포함되었다. 미국 북 장로회 평양 선교지부의 보고서를 보자.

사경회의 통상 순서는 어느 집에서 잠을 자든지 참석자는 모두 숙소에서 새벽기도와 찬양 예배를 드린다. 아침을 먹은 후 30분간 경건회로 모이고 이어 오전 성경공부를 한다. 오후에는 성경공부 한 시간, 찬송 배우기 한 시간, 그리고 오후에는 믿지 않는 가정을 방문해서 전도하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저녁에는 모두 한곳에 모여 토론을 하거나 전도 집회를 연다.” 이때 610명의 교인들이 참석했는데 이 사경회에서 기도와 찬양의 새벽 예배는 기도의 필요를 느낀 참석자들을 위해 공식 순서로 마련되었다. 개인과 교회와 민족을 위한 새벽기도회는 평양 장대현 교회 사경회에서 이후 정식 순서로 운영되었다. 교인들이 새벽기도회를 하였다는 기록은 1904년 북장로회 평양선교부 보고에서도 나온다. , 그해 연초에 평양에서 거행된 겨울 사경회 때 참석자들이 묶고 있는 집마다 동틀 무렵 기도와 찬양”(Sun-rise prayer and song service)을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고 보고하였다.

4. 이화학당의 새벽 기도

초창기 새벽기도회는 교회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만들어 진행하였다. 학생들이 주도했던 새벽기도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보고는 19049월에 열렸던 이화학당 부흥회와 관련된 선교 보고에 나온다. 1903년 여름 원산에서 시작된 감리교의 부흥 운동은 1904~5년 송도(개성)와 서울로 확산되었다. 19049월 서울 정동감리교회에서 부흥 집회가 열릴 때 먼저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학생들을 위한 특별 부흥회를 개최했다. 19049, 이화학교개학을 맞아 배재학당과 연합으로 원산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하디(R.A.Hardie)가 인도하는 학생 부흥회를 열렸다.

이제 서울교회에셔 제일 감사함은 부흥회를 잘 직힘이니 하목사께서 정동감리교 예배당에 부흥회를 열고 한보름 동안을 하로 세 번식 전도하였다. 한주일 동안이나 회개하난 문제를 가지고 열심으로 젼도하시매 여러 형졔자매들이 성신의 책망하심을 밧아 일쳬 회개하고 죄를 자복한 후 사유하심을 받았으며 또 한주일동안에는 성신의 책망하심을 가지고 열심히 젼도하시매 죄사유함을 엇은 모든형제자매들이 성신의츙만하심을 엇엇스니 이후로 성신의 열매가 만히 맷기를 바라나니다.

그런데 이 부흥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화학당 학생들은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회개기도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은혜를 받았다. 1905년 프라이 선교사의 선교보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부흥회가 열리기 2주전부터 매일 세 차례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주에 저는 페인(J.O.Paine)선생과 함께 저녁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학생들이 매일 밤이 깊도록 사죄의 기도를 드리고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이른 아침(intheearlymorning)에 문빗장을 열어 몰래 예배실로 들어가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그들에게 언제 어떻게 죄 사함을 받았는가?고 물었더니 학생들 대부분은 아침 예배실에서 기도하는 중에 사죄의 확신을 얻었노라고대답했습니다. 부흥회의 그와 같은 분위기는 1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새벽기도회는 선교사나 교사들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1912년 프라이의 선교보고에도 나온다. 그는 1911년 말 이화학당에서 열린 오기선 목사 부흥회 때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도 모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밤늦게 까지 기도하고 또 이른 아침에 모여 기도하는지 전해 들었습니다.한 학생이 자기 죄 짐을 벗고 자유함을 얻으면 그 학생은 도움이 필요한 다른 학생들을 위해 정성을 다합니다. 학교 건물 이곳저곳에서 길을 찾기 위해 성경을 펴 읽는 학생, 열심히 중보 기도하는 학생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낮 시간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불신자 가정 출신인데 처음에는 괴로워하며 기도하다가 주님의 은총을 받고 확신을 얻고는 거듭났음을 간증합니다. 예정했던 부흥회가 끝났는데도 많은 학생들이 이른 아침 기도회를 갖고 있으며, 낮동안에도 조용한 구석에서 혼자 기도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5. 이화학당에서 1909년 가을에 조직된 공주회(King'sDaughters)는 전교생을 회원으로 하

는 유일한 단체였다. 학생들은 공주회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에 새로운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받았고 나아가서 기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매주 새벽에 모임을 갖고 기도하였다. 또한 1910년대에 전교생들이 선교를 위한 선교회를 조직하고 이 조직에서도 선교를 위한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이와같이 이화학당에서 진행된 새벽기도회는 학생들이 나라와 민족의 위기 가운데 신앙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선교활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새벽기도를 하고 있었다.

6. 지역교회의 새벽기도회

새벽기도 운동은 평양 장대현 교회(1893년 설립)에서 1905년 가을부터 길선주 장로의 새벽기도에서 활성화 되었다. 그는 새벽기도에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걱정하며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기 시작했고 같은 교회 장로인 박치록이 이에 동참하였다. 날이 갈수록 여러 교인들이 호응하여 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얼마 후에는 300~500명의 교인들이 새벽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길선주장로는 교회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매일 수백의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당회에 정식허가 요청을 하였으며 장대현 교회 당회 허락 하에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새벽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이요, 개인적인 신앙 훈련의 한 방법으로 시작된 개인적인 기도 시간이었지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에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새벽기도 운동은 확산되었다.

분명한 것은 새벽기도는 부흥회 또는 사경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 이유는 부흥운동은 성서 연구와 기도에 대한 당시 교인들의 밑바탕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여러 가지 원인 중에 하나로 선교사의 기도모임으로 시작한 원산의 부흥운동과 길선주에 의해서 시작된 평양 지역의 부흥운동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에서도 사경회, 새벽기도회, 전도를 통한 복음 전파가 함께 이루어졌다. 새벽기도가 열정적으로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성경 공부도 한 몫을 하였다.

이와 같이 새벽기도를 통하여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교인들이 자원하여 기도회에 참여하였으며, 새벽기도운동 역시 이들의 뜨거운 기도의 열정에 힘입어 계속해서 확산된 것이다. 새벽기도가 교회의 간섭이나 목회자 혹은 선교사들의 강요에 의한 기도 운동이었다면 이렇게 뜨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이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기도 운동은 성령의 체험을 하고 거듭난 중생 한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에 주님 앞에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되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국가와 목회자들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한없는 눈물로서 뜨겁게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1907년 대 부흥 운동의 열기를 타고 새벽기도회는 전국 교회로 확산되어, 전국 방방곡곡의 열심 있는 교회들은 새벽마다 기도회를 열게 되었는데, 이때의 일들에 긔도의 효력이라는 제목으로그리스도회보에 보도되고 있다.

평안남도 강셔읍내 예수교당내에셔 젼월 1일브터 7일까지 새벽긔도회를 열고 남녀 교인 백여명이 밋지 아니하는 동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구함으로 새로 믿기로 정하고 나온쟈가 백여명이라더라.

1913년 그리스도인 회보에 새벽기도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녀름 동안에 고열을 당여 모든 들이 육신도 로곤뿐더러 도 또해타모양이 잇더니 824일 브터 29일까지 1쥬일동안 새벽마다 4시반으로 5시 반까지 긔도회로 모히대 그 수효남산현 교당에 160, 리간동교회에 25, 구동교회에 30인 리문동교회에 20, 242인이 새벽 죵쇼리를 듯고 깁히든 잠을 며 또 해타을 떨쳐 열심히 긔도, 은혜를 만히 밧엇스며 이 긔도의 효과로 죄를 자복, 샹 셩경보고 긔도기로 작뎡과 쉬지안코 개인 젼도기로 작뎡한 사람과 새벽긔도 기로 작뎡한 자와 30삭동안 인각힌 담배를 거졀한 사람이 만오니 이는 다 이 긔도의 효력으로 된줄 아니다.

 

7. 부흥회를 통한 새벽기도운동

한국의 새벽기도회는 한국 교회의 정규 집회 형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초기 부흥운동 기간이었다. 이와 같은 특징적인 신앙양태는 강화 교인들의 마리산부흥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리산 부흥회는 강화도 교인들이 매년 음력 510일부터 보름간 장봉도 옹암교회에서 시작하여 강화 본도의 여러 교회를 순회하고 마지막 날에는 마리산에 올라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마치는 일종의 순회 부흥회였다. 이 부흥회는 1914년에 시작되어 1960년대까지 계속되면서 토착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정규집회 형태로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마리산 부흥회가 시작된 계기는 바로 새벽기도회에 있었던 것이였다.1914년 부흥회 과정을 기록한마리산부흥회 일긔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1914510일에 장봉 옹암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어 십오일에 페회되었는데 그 부흥된 사실은 여좌함 부흥원인은 새벽긔도의 효력이오 새벽긔도 원인은 번()교회내 김속장 순셔씨가 강화 하도 두곡교회 뎡윤화씨의 부탁으로 즉시 나려와 자긔 집 식구로 더불어 시작하여스며 그후 몃 날이 못되여셔 렴슌일교감끠셔 강화 홍텬교회 뎐병규씨의 새벽긔도 하라는 부탁으로 되고 그후 차차로 리양긔 리양운 리원션 쟝동식 렴현슈 졔댁이 열심히 긔도함

그리고 새벽기도회는 전국적인 부흥 운동 속에서 성령체험으로 중생과 성결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적 신앙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새벽기도는 중요한 부흥운동의 확산 가운데 진행되어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중요한 신앙양태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있어서 부흥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길선주 장로는 9년 동안 선도에 심취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기도에 열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905년부터 장대현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고, 1909년에 장대현 교회에서 신앙이 식어가자 홀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 후 교인들에게 알려지면서 교인들도 동참하여 교회의 새벽기도회로 발전하였다. 교인들에게 알려져 20여명이 참여하게 되었고 그러자 목사는 새벽 430분에 종을 칠 것이니 원하는 사람들은 참여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기도회가 시작된 후에 600-700명이 모여 기도하고 나가서 전도하였는데, 7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러한 새벽기도회는 특별새벽 기도회로 진행되었다.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는 새벽 430분에 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시작되어 일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었다. 특히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는 한국교회에 새벽기도를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개교회에서 시행되던 새벽기도회는 1910년부터 1930년대까지 교회전체가 시행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 기록들을 살펴보면, 필요한 경우에 개인들이 새벽기도회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교회들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새벽기도회들은 대부분이 일주일이나 10일간을 정해 놓고 하는 기도회였다. 이러한 새벽기도회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시행에서부터 생겨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건을 위해, 전도를 위해, 신유를 비롯한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런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일새벽기도회가 시행되었다. 성결교회에서는 1939년에 교단에서 매일새벽기도회를 하기로 결정하였고, 각 교단의 공식 결정을 찾기는 어렵지만 개별교회들에서 매일새벽기도회를 하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다가 이것이 매일새벽기도회로 발전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새벽기도회는 해방 이후에도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해방 이후의 새벽기도회도 주로 개인적인 경건과 문제해결, 교회건축과 전도 등을 기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506.25전쟁 이후에는 새벽기도가 전쟁과 국가의 존망의 위기 속에서 진행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윤은석은 이러한 새벽기도의 내용의 변화는 기도의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변화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6.25전쟁 이후의 새벽기도회는 전국교회에서 시행되었다. 특히 1960년대 중반부터는 민족복음화를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기도하는 가운데 1970년대의 민족복음화대성회가 여의도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8. 현대에 요구되는 새벽기도 영성

그런데 최근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한국교회의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면서 점차로 새벽기도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심지어는 개혁신앙을 내세우면서 새벽기도회를 비판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교회가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던 새벽기도회의 전통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겠다. 혹자는 새벽기도회가 새벽예불에서 나왔다든지 샤머니즘에서 나왔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기도회가 자신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새벽기도회가 이러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된다. 지금까지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예배가 샤머니즘의 성격을 이어받아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친 것이요, 한국교회가 기도를 잘못 해 온 것이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부흥할 때 사경회와 새벽기도회가 연결되어 발전한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새벽기도회를 그 날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을 중심으로 공적인 기도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해결하기 위한 사적 기도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과 기도가 교회가 성장하는 가장 근본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도들은 사도행전 6장에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겠다고 말한다. 바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말씀에 근거한 새벽기도회를 통해 성장하여 왔다. 앞으로 이러한 새벽기도회를 다시 활성화시켜 한국교회가 건강한 성장과 부흥을 이루도록 해야 하겠다. 산업사회이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포기하면, 그들이 저녁에는 기도할 수 있는가? 아니 한국사회가 52시간 근무제도가 시행되면서 오히려 새벽기도를 하기에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새벽기도의 가장 핵심은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토대로 오늘 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기도의 훈련의 장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새벽은 하나님과 성도들이 교제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 교제가 말씀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신다(15:7). 더 바람직하다면 한국교회가 해결이 절실한 시대적인 문제들을 기도제목들로 정해서 교단별로,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가 기도한다면 그러한 연합기도는 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한국교회가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출산의 문제, 세대와 사회계층간의 갈등문제, 남북한의 통일문제, 한일갈등의 해결, 세계적인 선교사명의 감당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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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9 [11:0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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