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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1.17 [10:02]
하나님을 갈망하는 애틋함(시84:1-12)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설교
 
정준모

 

 

▲  성도는 천국본행을 찾는 영적 실향민들입니다    © 뉴스 파워 정준모

 

 

정준모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Ph.D)

 

최근 로마 제국 멸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읍니다. 역사는 과거 사건을 통하여 현재를 투영하며 미래를 예건하는 혜안을 얻게 됩니다. 역사의 수많은 이야기와 사실은 오늘의 정치 세계와 인간 세상 그리고 교계의 현실과 미래를 전망할 있게 해 줍니다.

 

특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청문회 과정과 그 동안의 언론을 보면서 수많은 생각들로 흑암이 교차합니다. 부족한 나로서 한 줄의 글을 쓰고 싶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너, 나와 (대한민국) 조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혹시나 나비효과라도? 그러나 시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좀 더 시간과 때를 그리고 조국과 대한민국 조국, 그리고 대한민국 조국과 조국 교회를 바라보고, 수평을 바라보는 눈을 수직으로 바로 보며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시편 84편은 성전 순례 시입니다.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한 무명의 시인의 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애뜻하게 사모하는 마음을 성전을 두고 비유적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이 누구인지 무엇은 하는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살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0절을 참고 해볼 때, 이 사람은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언약의 땅인 고향 땅을 떠나 이방 땅에서 상당한 기간을 보낸 사람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나라에 살면서 약소국가인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그가 보내는 이방 나라에서의 타향살이는 너무나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선민 백성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였던 생활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것입니다. 얼마 후면 추석 명절로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실향민처럼 말입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주의 장막”, “주의 궁정”, “주의 집등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과 그 성전에 나타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성전은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의 신령교제를 의미합니다. 또한 신약적 의미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천상 성전을 사모하는 심정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시인은 바로 천상 성전을 사모하며 이 세상을 순례하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나라를 사모는 오늘의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천로역정에 대한 어떤 목사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살아가는 영성이 나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금 진정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갈망이 결국 망해 버린 로마제국사에 나타난 세속적인지? 목사로서 갈망, 야망, 열정이 진정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성인지 자문할 때, 1에서 10으로 나누어 볼 때, 과연 7정도 되는가? 소위 말해서 C학점이 되는가? 자문자답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저자의 고귀한 하나님 사모 영성과 그 갈망, 그 애뜻한 열망과 소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주의 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

 

1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만군의 여호와는 만군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복합명칭입니다. 그 뜻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절대적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란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이스라엘에 신실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기 때문에 너무나 귀하고 사랑하고 사모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그처럼 사랑스러운 것은 위대하고 장엄하고 화려한 성전 건축물이 아니라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궁정은 성전의 뜰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 뜰을 밟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떨리고 너무나 흥분이 된 나머지 그의 얼굴과 마음이 쇠약할 정도로 사모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처소인 궁정을 얼마나 사모하는 가를 보여 줍니다.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는 것은 단순히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자체가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임재를 만나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 나누고 그 분이 주실 영적 축복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마음과 육체는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부르짖나이다기뻐 외치는 것소리 높여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성전에 계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뜻을 다하여 전인격적으로 기뻐 외치며 찬양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참으로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전 인격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기뻐 외치며, 소리 높여 찬양하고 부르짖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궁정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영혼이 쇠약할 정도였습니다. 영혼과 육체가 여호와의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상상병에 걸리는 것과 같이 쇠약할 정도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주의 궁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전 인격, 전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앙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주님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주일날 우리가 주님 만나는 예배 시간을 우리가 얼마나 기다고 얼마나 기대하고 얼마나 준비하며 얼마나 헌신하기를 작정하고 주님 앞에 나왔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제단에 참새가 어디쯤인가 집을 짓고, 제비가 새끼들을 양육할 새끼의 보금자리를 제단 곁 어딘가에 틀었던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비록 피조물이지만 이들이 주의 성전에 둥지를 틀고 평온스럽게 사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고 생각되었습니다. 시인은 외롭고 고달픈 타향생활, 이방생활을 하면서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하나님의 궁전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객지 생활과 성전 건물 한 곳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는 참새와 제비가 비록 미물이지만 부럽기만 했던 것입니다. 바로 삶의 자리에 있던 시인이 마침내 애타게 기다리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기회가 생겨, 꿈인지 생시하면서 너무나 그 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 세상에 살면서 그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이방신을 섬기지 않고 그 마음속에는 항상 1, 2절 말씀처럼 만군의 여호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이스라엘 신앙 고백처럼,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성전을 상사병이 걸려 몸이 쇠약해 질 정도로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심령 때문에 영혼의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처럼 만나 뵙고, 하나님과 가까이 거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찬 시인은 참새와 제비가 부러웠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언제나 그곳을 드나들면서 하나님을 뵙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 살면서 세상의 것에만 몰두해서 사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마음 빼앗기고 미련을 두지 않고 항상 하나님 만나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러움은 참새와 제비에게서 그치지 않습니다. 4절에 보면 단수 명사가 복수 명사로 바뀌게 됩니다. “복되도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들이여,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인은 이스라엘에 살면서 마음만 먹으로 언제나 자유롭게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예배드릴 수 있는 형제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고 그 분의 놀라운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부러웠습니다. 자신의 모국어로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며 부러웠했습니다. 하나의 문화를 가지고 같은 정서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형제 자매들이 교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시인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 공동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시인은 성전을 향한 열망이 개인 것으로 머물지 않고 공동체에로 그 지평을 넓혀졌습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한 언약 공동체, 신령한 가족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형제와 자매들을 보고 싶은 상사병도 함께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체를 향한 애뜻한 마음이 빠진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형제 연합하여 동거하며 함께 사랑하며 교제하며 하나님께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두 세 사람이 모인 작은 교회, 소그룹 모임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북한 땅, 지하교회에 있는 닫힌 교회 성도들, 지금도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사는 진정한 성도들, 외국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와 다른 민족 속에 사는 성도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가 없는 곳에 살아가는 성도들의 제일 안타까운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공동체 속에서 한 주되신 주님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예배드리고 형제 자매들과 따뜻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해외에 출타 중인 성도, 군입대 중인 성도, 타지에 오래 머문 성도, 병원에 장기간 입원 중 성도들이 제일 안타까워하며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은혜받고 자신이 섬기고 자신이 눈물과 땀과 물질과 기도를 바쳤던 교회일 것입니다. 그들이 정든 교회에 돌아와 함께 성도들과 찬송하며 기도하며 예배를 드릴 때, 그 감격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 속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를 사모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진심으로 섬기며 형제 자매의 아름다운 사랑을 고백하고 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다 만날 수 없고 교제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공동체, 셀 모임 속에서 우리는 만남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며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꽃 피워야 합니다.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는 일차적으로 성정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성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모든 자를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과 영적인 신령한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늘 마음에 성전에 거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 공동체에 거하시고 몸된 교회에 거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 품에 거하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고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 장막의 문지기로 거하는 것을 더 기뻐할 정도였습니다. 10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떠난 어떤 좋은 위치 보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문지기가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2.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의 복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형제들과 만남을 열망하는 시인의 마음에 대로가 열렸습니다. 성전을 향하는 그의 마음속에 고속도로가 활짝 뚫렸습니다.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성전, 하나님의 백성을 만날 수 있는 성전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활짝 열려졌습니다.

 

6절에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에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통과해야하는 전혀 물이 없는 메마른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메마른 골짜기를 지나 갈 때에 물이 있는 작은 웅덩이가 샘처럼 있고, 파종할 수 있도록 적당한 비를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찾는 순례자들이 눈물의 골짜기 즉 메마른 골짜기를 통행할 때에도 그곳에 샘물이 있는 놀라운 상황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찾는 성도에게는 메마른 이 세상,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의 샘물을 보장해준다는 말씀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임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위로부터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광활한 사막이 변하여 푸른 풀이 돋아나듯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뚫린 자를 바라보시고 지켜보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비록 눈물 골짜기 같은 인생 길 지나갈 때에도 주의 성전 주의 백성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땅 아래로부터 분수가 터지게 합니다.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게 합니다. 하늘로부터 단비가 내리게 합니다.

 

7절 저희는 새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니리이다.

 

힘을 얻고 더 얻어 라는 말은 힘으로부터 힘에로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성도에게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는 순례자들이 어렵고 힘든 여행길이지만 마침내 기나긴 순례 여정을 끝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 당도하여 하나님께 경배드리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순례자의 길에 메마른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고 예루살렘에 이르는 긴 여행 중에 여러 가지 위험과 위협과 위기가 노출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자, 곧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는 그들의 여행길도 아무런 장애물이나 위협이 없이 대로를 달리는 것처럼 안전하게 하나님 앞에 다달을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약함 중에도 강함을 경험하며, 실패 속에서도 승리를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고백처럼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리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갔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것입니다(40:28-31)

 

순례자의 진정한 힘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승리의 근원적 힘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비롯됩니다.

 

여호와를 사모하며 그의 명하신 길을 걷는 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어려운 일을 순간 만난다고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새 힘으로 기력을 잃지 않고 계속적으로 전진함으로 결국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된다는 종말론적 의미도 내포 되어 있습니다.

 

3.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의 신앙 고백

 

8절에 성전에 도착한 시인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이 시인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불렀습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 번이나 달리 부르면서 그 이름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강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주권, 절대 전능자 하나님임을 뜻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 야곱에게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언약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힘들고 어렵고 힘든 순례길은 무사히 마치고 그렇게 사모하던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후 하나님께 대한 그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절대 전능자 하나님이시기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또한 절대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야곱의 하나님의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인생 여정 길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필요할 떄는 만군의 하나나님 여호와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신실하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야곱의 하나님을 부릅시다.

 

9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시인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보호자가 되심을 강조하기 위하여 뱅패이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주의 기름을 부은 자는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순례길을 따라 성전에 올라온 시인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위협하는 원수들의 칼날과 화살의 공격 속에서도 철통같이 지켜 보호하시는 방패와 같은 분이시므로 이 세상 순례를 살아가면서 절대로 약해지거나 두려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얼굴을 살펴보옵소서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은혜를 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주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자로, 하나님께서 저들의 삶의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얼굴을 특별히 살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제 순례길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 도달한 시인은 행복감이 넘쳤습니다. 그는 만연의 미소를 머금은 채 외칩니다. 비록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듯 고생고생한 순례길이지만 열망하고 사모하던 성전에 무사히 도착한 그에게는 여행길 고통과 아픔은 감쪽같이 살아지고 기쁨과 감격과 만족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의 행복감을 봅니다. 공동체의 형제 자매를 만난 기쁨을 봅니다.

 

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이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궁정과 다른 곳, 한 날과 천날, 악인의 장막과 하나님의 문지기라는 다양한 대조를 통하여 하나님 전에 거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시인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전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 천날 보다 낫다는 그 의미를 새겨보아야 합니다.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어떤 영광과 풍요보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더 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제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그의 아름다운 신앙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11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그는 자신의 순례길에 구체적으로 걸음 걸음을 인도하시고 도우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은총과 영화를 주실 해요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은 해요 방패가 되십니까?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호의 베푸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여 순례길을 걸어오면서 절대 신앙으로 절대 각오로 순례길을 마친 자가 바로 정직히 행한 자입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 “하나님 성전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공동체에 헌신하는 자” “말씀대로 살아가는자들입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호의 베푸십니다. 좋은 것은 아끼지 아니하고 허락하실 것입니다.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거친 순례길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뵌 시인은 결국,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화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그네 순례자 길을 걸어가는 결국 시온의 대로 열리고, 메른 땅에 샘물을 주시며, 이른 비를 때 따라 내리시며, 하나님이 영광의 해를 비추시며, 원수의 창과 화살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시며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실 것입니다.

 

결론) 머지않아 조국 대한민국 금수강산에 붉은 빛 단풍 소식이 들릴 쯤 이면 이곳 로키산맥 아스펜 노랑 단풍이 최고의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늦은 가을비가 내리면 그렇게 아름답게 물든 설악산 내장산의 조국 땅 단풍과 로키산맥의 아스펜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힘겹게 생명을 지키려 겨울 바람에 싸워 이기려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찬바람에 나붓거릴 겁니다. 우리 인생도 지금은 천년만년 사는 것 같지만 내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지 않고 주님의 나라를 앙모하는 성도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생과 죽음은 하나의 길이며 그 길은 맞닿은 길입니다. 생과 죽음의 종착역을 하나님 나라, 영생의 나라 본향 천국입니다. 영적 실향민이 사모하는 본향입니다. 그 길은 믿음의 항로이며 십자가의 보혈로 닦은 길입니다. 그리고 부활로 완성되는 길, 그 도착점은 우리 구주를 만나는 곳입니다. 그 때, 시편 84편의 순례의 시도 마감될 것입니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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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8 [04:5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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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목사] [신학사색] 종교다원주의 비판 정준모 2019/11/07/
[정준모 목사] 진정한 찬양과 감사(엡1:3-15) 정준모 2019/11/06/
[정준모 목사] 도전받아야할 아브라함의 믿음 정준모 2019/11/05/
[정준모 목사] 온 땅이여 감사하라(시100:1~5) 정준모 2019/11/05/
[정준모 목사]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12) 정준모 2019/11/04/
[정준모 목사] 【感謝 詩】 겨울나무의 감사 정준모 2019/11/04/
[정준모 목사] 오히려 은혜인 가시(고후12:7-10) 정준모 2019/11/02/
[정준모 목사] [환자를 위한 기도문】 정준모 2019/11/01/
[정준모 목사] 이유를 깨닫고 여호와께 감사하라 정준모 2019/10/31/
[정준모 목사] 【감사 詩】 잃어버림의 감사 정준모 2019/10/30/
[정준모 목사] [詩]오직 한마디 “감사드립니다” 정준모 2019/10/30/
[정준모 목사] 심판을 철저히 준비한 노아 정준모 2019/10/30/
[정준모 목사] 질병의 고난을 당할 때(구약 편) 정준모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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