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광고
광고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파워인터뷰생활/건강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12.06 [04:02]
[파워인터뷰]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하원 5선 의원
“여주 촌놈을 쓰신 하나님의 은혜” 감사
 
이동근

 

 

 

▲ 임용근 의원이 부인 그레이스 임과함께 상원 3선 선서를 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일선에서 직접 정치 생활을 한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처럼 2선에서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사회봉사를 하고 특히 후세들에게 앞길을 열어주며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멘토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미주 한인 이민 사상 최초 오리건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후 상·하원 5선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임용근(84) 전 의원은 정치생활을 떠난 지 15년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손주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8월5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만난 임 전의원은 비록 이제는 뒤에 물러서 있고 80대 연령이지만 아직도 미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위해 여러 일들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도전을 주고 있다.

‘오리건의 돈키호테’라는 그의 별명처럼 그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하늘이 끝이다"는 등의 인생철학으로 항상 쉬지 않고 달려왔으며 비록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일반인의 예상을 깨는 새 도전을 해왔으며 성공을 이룩해 왔다.

1935년 경기도 여주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부친 별세 후 둘째 아들로서 어려운 가정을 이끌며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17살부터 폐결핵에 걸려 7년여간의 투병생활로 제때 공부도 하지 못했고 가정이 어려워 고교시절에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미군들의 구두를 닦는 등 온갖 고생을 하기도 해 여주 농업고교를 1년 늦게 졸업했다.

특히 이 같은 어려움보다 더 큰 아픔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6.25때 공산당으로 몰려 남한 정부에 총살당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빨갱이 가족이란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에 따라 일반 대학을 나와도 사회생활이 제한되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신학대학에서 종교문학을 전공했다.

▲ 임용근 의원이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또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으로 한국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1966년 6월 빈털터리 무일푼으로 미국에 와서 초기에는 청소, 정원일, 페인팅 등 온갖 궂은일을 다한 끝에 부인 임영희(그레이스 임) 씨와 함께 부동산과 건강식품(ARJ)등의 사업으로 비즈니스에도 성공했으며 조지 팍스 대학 전신인 포틀랜드 웨스턴 Evangelical Seminary에서 신학 석사, 98년에는 명예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신학교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으려 했으나 미국에는 없는 성결교단 목사 안수를 받을 수가 없어 결국 목회를 포기하고 사업의 길을 선택했는데 뒤돌아볼 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사업으로 미국의 꿈을 이룩한 후 미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익옹호를 위해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계에 도전했다.

1986년 오리건주 한인회장을 비롯하여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총회장(88- 89), 미주한인상공인총협회 총회장 (1989-1990)을 거쳤으나 미 주류사회 정계에서는 무명이었던 그가 1990년 오리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실패하자 당시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짓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출마하고 두 번 째는 승리하기 위해 출마한다"는 전략이 성공, 1992년에는 주하원도 아닌 주상원에 당선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리건주 한인 최초로 상원 3선 (1992-2004),하원 2선 (2005-2009)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1998년에는 미 한인최초로 연방 상원에 도전,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는 신기원을 이룩했으나 아쉽게 본선에서 패배했고 2010년 오리건 주지사에 2번째 도전했으나 성공치 못하고 정계를 떠났다.

“정치를 하려면 두렵지만 용기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그는 정치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것이라며 첫 상원에 당선되었을 때 법 공부한 적도 없고 의회 경험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해 걱정을 했더니 당시 아티에 주지사가 "커먼 센스로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 고 격려해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뒤돌아봤다.

임용근 전의원은 이같은 자신의 성공보다 그 동안 많았던 자신의 실패들을 교훈 삼아 지금도 어려운 처지의 많은 한인들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특히 1.5세, 2세들에게 새 비전과 도전을 주길 바라고 있다.

▲ 임용근 의원 부부가 8순 잔치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 뉴스파워이동근



“이제 80대 나이지만 아직도 건강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명을 다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의 정치 경험을 살려서 지금도 정치계에 진출하려는 한인들에게 귀한 조언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 정치인 배출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2007년에 설립하고 2015년까지 회장으로 봉사했는데 현재 후임에는 신디류 워싱턴주 하원의원이 회장으로 선정되었다.

임용근 전의원은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는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한인 정치인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정보 교환 과 활발한 소통으로 더 많은 한인정치인 배출에 힘쓰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하여도 노력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한 미국에게 감사하는 여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오리건 한국전쟁 참전 기념관리 재단’ 명예 회장을 맡아 지난 2017년 6월24일 오리건주 윌슨빌 한국전쟁 기념관에 맥아더 동상을 세웠다.

"1세들뿐만 아니라 2세,3세 그리고 후세에 까지 영원히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 맥아더 동상을 세웠다”는 그는 개인적으로 다니며 부탁한 끝에 100불부터 1만불까지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6만불 이상이 2년여 동안 모금되어 동상을 세우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며 박진용 이사장, 고 이준성 초대회장, 데니스 권 전 회장, 김병직 회장, 제이 윤, 백순향, 제니 김 등 많은 분의 헌신적 봉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6.25전쟁으로 한국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미국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고 미주 250만 동포들도 미국에 올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며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을 이끌어 공산군을 물리쳤기 때문에 오리건주 2만명 포함 미주 250만 동포들이 미국에 살 게 된 것에 미국, 미국 시민, 군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대 내외 젊은 미군 3만7000명이 한국전에서 고귀한 희생을 했으며 10만명이 부상당하고 7000명이 실종되었다며 “맥아더 동상을 통해 미국에 감사하고 참전 용사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한국전쟁을 한인 후세와 미국인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역사 교훈으로 삼기위해 동상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문덕호 시애틀 총영사를 비롯해 팀 냅 윌슨빌 시장, 경기도 여주시 원경희 시장 등이 참가했는데 뉴욕에 ‘자유의 상’이 있듯이 이제 윌슨빌에 맥아더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 동상에 이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도 세우려 했으나 반대도 많아 현재 중단되었다며 대신 트루먼 대통령 동상 건립과 2022년 완공 목표인 10만불 사업의 한국 전쟁 기념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주 한인사상 최초로 오리건주 상하원 5선 금자탑을 이룬 임용근 의원     © 뉴스파워이동근



이처럼 정계 은퇴 후에도 여러 사업들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그는 사업 추진과 모금 운동 등 여러 어려움들도 있지만 오늘날까지 건강하고 부족함 없이 살도록 축복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특히 아내 임영희(그레이스 임)씨 가 3년 6개월 전 뇌졸중(Stroke) 을 당했으나 기적적으로 이제 다시 99% 건강을 되찾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임용근 전의원은 “올해가 결혼생활 56년째인데 아내가 옆에 앉아 있는 것만 해도 큰 축복”이라며 부부 사랑을 강조했다.

“내가 잘 된 것은 그동안 아내가 잘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그는 뒤돌아보면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듯 아슬아슬하게 넘긴 세월도 있었고 산전수전 겪으면서 두 손 맞잡고 서로 손을 놓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고 나와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수고해주었다며 아내에게 고마워했다.

특히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까지는 아내의 훌륭한 믿음과 희생적인 사랑덕분이었다며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내를 천사로 보내주셔서 지금까지 건강할 수 있도록 식사 등 모든 것을 챙겨 주었고 특히 사업을 할 때나 사회봉사, 정치를 할 때도 언제나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도와주었다며 고마워했다.

어려운 스트로크에서 건강을 되찾은 임영희씨는 “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로이 태어났고 이제 보너스의 삶을 받아 살고 있다”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보호해주시는 한 새로운 삶을 보람 있고 가치 있게, 또 하나님 보시기에 '잘 한다' 하실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임용근 전의원은 이같은 하나님 축복은 믿음의 본이 되신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었다고 감사했다. 어린 임용근은 일제 강점기에는 교회를 갈수 없었기 때문에 해방된 후 5형제 중 유일하게 9살부터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혼자 다녔다. 당시는 믿음보다는 교회에 가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특히 크리스마스, 부활절에는 선물도 주어 교회가 좋았다.

그러나 폐결핵에 걸려 약도 못 사 먹고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아들이 살지 않겠느냐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임 전의원은 “나의 전도로 식구들이 모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며 “하나님은 나의 폐결핵 병을 쓰셔서 우리 가족들을 구원하셨다”고 증거했다.

또 어머니는 새벽마다 마루 뒷문 쪽문을 열고 기도하셨는데 추운 겨울 새벽에도 꼭 문을 열고 기도하셨다며 아마 문을 열어놓아야 하나님에게 막히지 않고 기도가 전달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고 회상했다.

집안 어른인 여주 임동선 목사의 영향을 받아 성결교단의 서울 성결신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신학 석사가 되었으며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여주군 능서면에 능서 성결교회를 개척했다. 당시는 조그마한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렸는데 부흥해서 미국에 올 때는 건축을 시작했고 이젠 600명 규모 큰 교회로 부흥했다.

 

지난 35년동안 미국 교회를 섬기다가 현재는 갈보리 한인 장로교회(담임 백동인 목사)를 섬기고 있는 임용근 전의원은 작은 교회에서 직책 없이 숨어 봉사하고 싶어 한다.

임용근 전의원은 오는 10월 한국에 나가 오리건주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전라남도지사를 14일 만나고, 17일에는 원주 세계 상공인 총회에도 참여하며 보훈처 등도 방문해 한국 전쟁 기념관 건립 후원도 부탁할 예정이라며 바쁜 일정을 설명했다.

미주 한인 이민 사상 최초 오리건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후 상·하원 5선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임용근 전의원은 자신의 호(여촌)처럼 “자신은 여주 촌놈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사용하셨다”고 감사하고 있다.(시애틀 이동근 기자) 

▲ 정계은퇴후 수염을 기르는 등 자유로운 모습의 임용근 전의원. 아내의 건강회복과 현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 뉴스파워이동근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9/08/12 [10:47]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임용근 장로] [파워인터뷰]임용근 전 오리건주 상‧하원 5선 의원 이동근 2019/08/12/
뉴스
광고
인기기사 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