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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9.22 [06:02]
성령님의 보증을 받은 성도의 삶
정준모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의 신학적 사색 칼럼
 
정준모

 

 

▲  영적 깊은 바다에서 충만하라    © 뉴스 파워 정준모

  

서론) 요즈음 한국 사회는 타인의 보증을 잘못 서 주어 엄청난 재산상 피해와 정신적 패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부자간, 친척 간, 동료가 어쩔 수 없는 인정이나 관계 때문에 보증을 섰다가 패가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인간이 인간의 보증을 선다는 인간 세계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인침을 받은 택한 백성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다. 고린도후서 12122절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고린도 후서 55절에는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령의 인침과 보증의 의미는 무엇인가? 누가 성도를 보증해 주시는가? 성도들은 과연 어떤 보증을 받는 것인가? 누가 보증을 받을 수 있는가? 성령님의 보증을 받은 자의 삶은 어떻해야 하는가? 보증자 되신 성령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는가?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성령의 인침과 보증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령의 인침은 성령님 즉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자라는 표식이다.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하는 자라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가 함께 하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가 뒤따르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성령의 보증이란 이러한 인침을 받은 자에 대한 구속의 날 까지 성령께서 책임을 져 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침은 성령의 보증의 근거가 되고, 뒤집어 말하면 성령의 보증이 성령의 인침의 결과라는 말이다. 성령의 인치심은 과거 내지 현재적 사실이라면 성령의 보증은 하나님 앞에서의 미래적 사실에 대한 보장이다.

 

우리가 예전에 양복점에 가서 옷감을 고르고 몸의 치수를 재고 선금을 얼마만큼 지불한다. 그러면 영수증에는 중간에 마름질한 옷을 대충 꿰매서 입어 보는 날짜를 적고 선금과 잔금의 액수가 기록되며, 그 날 선택한 양복이 바로 이런 계통이라는 뜻으로 양복지 일부를 잘라 붙인다. 바로 이 양복지 중 일부를 잘라 붙인 영수증이 최종적으로 입고 다니게 될 양복에 대한 보증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현재적 인치심은 바로 미래에 이루어질 성도들의 구원에 대한 성령님의 보증이 되신다는 말이다. 성령의 보증을 이미 받은 성도들이기에 구원과 축복과 상급과 부활이 확실한 것이다.

 

2. 누가 성도들을 보증하시는가?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도들에게 인을 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미래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 성도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실하고도 든든한 보증이다.

우리가 토지를 매입할 경우에 거래가 성사되면 그 땅을 앞으로 완전하게 소유하게 된다는 보증으로 그 땅에서 가장 좋은 흙을 떠 주었다던 옛 선진들의 거래가 의미가 있다. 또한 어떤 작농 중에 있는 밭을 살 경우에도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 밭에 있는 제일 좋은 곡식이나 열매의 일부를 보증으로 주었다.

 

이와같이 현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또한 미래에 우리가 누리고 받을 영광과 축복에 대한 보증과 증거가 되신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안에 있다는 것만큼 보장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보증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영원불변 하신 분이시다. 영원토록 그 신실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 계셔서 대대로 통치하신다. 그런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시다.

 

3. 성도들은 어떤 보증을 받는가?

 

1) 영원한 구원을 보증으로 받는다.

 

히브리서 59절에 보면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님을 통한 인침을 받고 새생명을 얻은 성도는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얻는다(살후1:89). 눈물과 고통에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21:34) 영원한 지옥불 속에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20:6). 악한 마귀에서부터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20:10).

 

2)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는 보증을 받는다.

 

로마서 8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받지만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후사가 될 것을 보증하신다.

 

3) 썩지 않을 부활의 보증을 받는다.

 

성령은 주를 믿는 사람은 주님처럼 썩지 않을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을 보증해 주신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라고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신다.

 

4) 영원한 안식처를 보증 받는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집, 하나님이 지으신 집에 거하는 보증을 얻는다. 고린도 후서 515절에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나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우리를 흙집이라고 한다면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은 대리석 집이 될 만큼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이 놀랍고도 영원한 천국 집에 거하는 보증으로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님을 부어 주셨다.

 

요한 계시록 2117절에 보면 성도는 그들의 영원한 기업으로 천국을 얻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천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집이요 영원히 새로운 집이요 영광의 집이다. 또 주님과 함께 사는 집이며 거기 에서는 오직 기쁨과 감사만이 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집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절대 사망이 없고 밤이 없으며 애통이 없는 집이다. 예루살렘 성과 같이 빛나고 수정같이 맑으며 금으로 된 성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장식되고 성의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되어 있다.

 

좌우에 생명수 강이 흐르고 그 강의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달마다 열두가지 실과를 맺는다. 생명과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성이다. 눈물, 애통, 죽음이 없고 죄와 악과 고통, 그리고 어둠이 없다. 태양 빛 대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추는 영원한 낮의 세계로 성도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님이 보증해 주신다.

 

5) 영광스런 상급을 보증 받는다.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 그것은 주를 위해 이 땅위에서 수고한 자에게 보상되는 면류관과 영광이다. 의의 면류관이 있다(딤후4:78). 영광의 면류관이 있다(벧전5:4) 생명의 면류관이 있다(2:10) 영광의 상급이 있다(고전15:4041).

 

3. 누가 하나님의 보증을 받을 수 있나?

 

1)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는 사람이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그 인침을 받은 자가 보증을 받는다(1:13)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을 받을 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말씀을 전하는 일과 그 말씀을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말씀은 살아 있다. 말씀에는 중생케 하는 힘이 있다. 말씀이 성령님과 함께 역사 하시기 때문이다. 말씀이 바로 살리는 도구이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말씀을 들을 때 역사가 일어나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

 

2) 복음을 믿는 자가 바로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그 인침을 받은 자가 바로 보증을 받는다(1:13).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끝나지 않고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을 믿을 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을 믿으면 말씀은 살아서 역사 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절에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거듭날 것이다. 거듭나는 역사는 바로 말씀과 성령으로 되어지기 때문이다(3: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바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요 또한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인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 즉,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는 그 증거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로 부르게 된다. 로마서 815~16 절에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라고 밝히고 있다.

 

4. 보증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령님은 어떤 사람도 또한 그 무엇에 의해서도 결코 자신을 받기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는 불신자들에게 구원을 받도록 강요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으신다. 또한 신자들에게도 굳이 성화되도록 강요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성도가 죄를 범할 때 성령님은 크게 슬퍼하신다. 성도가 죄를 지을 때 그는 역사하지 않으시며 괴로워하신다. 성도들이 성령님을 오해하고 잘못 대하거나 상처를 주고 그 앞에서 교만하며 세상과 타협할 때, 그의 감동하심을 거부할 때 그는 깊은 근심을 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자신들의 생각대로 스스로의 고집대로 제 감정대로 나아갈 때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슬퍼하신다. 우리가 성령님을 거절할 때도 그는 우리를 너무나 돕고 싶어하신다. 동행하기를 원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에베소서 430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적, 도덕적 수준과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존전에 설 때까지 우리를 보호하시는 은혜의 보혜사 이시다.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의 내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야 할 성령님의 목표를 거부한다면,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높이고 주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을 거절한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시고 견인하시는 역사는 일시적으로 중지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성령님은 영광의 영이시다(벧전1:14). 그러므로 우리가 높아지려고 교만하고 우리가 영광을 받으려고 한다면 성령님은 근심하게 되신다.

성령님은 생명의 영이시다(8:2).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연약해지고 영적인 성장이 중지되고 옛성품에 따라 살 때 성령님은 슬퍼하신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14:17), 그러므로 어떤 거짓, 사기, 비판은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령은 믿음의 영이시다(고후4:13). 그러므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은혜의 영이시다(10:29). 그러므로 냉랭하고, 비참하고, 인색하고, 용서치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성결의 영이시다(1:4). 그러므로 불결하고, 음란하고, 비열한 것은 성령님을 근심케 만드는 것이다. 죄로부터 분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로의 회귀를 원하신다.

성령님은 지혜의 영이시다(11:2, 28:3) 그러므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은 자들과 동행하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을 성경은 매우 구체적으로 에베소서 4장에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새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로 인치심을 받고 영광과 구속과 부활을 보장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옛 구습을 쫓고 육신의 소욕대로 산다면 우리 안에 내주 하시고 우리를 살리시고 인치시고 보증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근심케 하고 괴롭혀 드리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의 긴 여정 속에서 그처럼 수없이 범죄 했지만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고 그의 성막을 옮기지도 않으셨다. 그렇다 지금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므로 성령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교제하지 않으시고 교통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령님을 슬프게 해드리면 우리는 기쁨이 사라지고 삶에 생기가 없어지며 슬픔과 어두움과 무기력과 무의미가 우리를 압도하게 된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 자유를 죄를 짓는데 사용한다면 성령님은 매우 마음 아파하시고 그 분이 주신 자유의 의미를 가치 없이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성령 안에서 주신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옛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과 양심과 사탄으로부터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가 오히려 죄, 죽음, 옛 속박, 사탄을 위한 자유가 된다면 이 얼마나 주님의 구속 사역에 배치되는 일이 될 것인가? 어떤 자라도 계속적으로 범죄하며 산다면 그것은 그가 영적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결과를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몸의 죽은 행실을 죽이게 된다면 영적인 생명을 다시 회복할 것이다.

 

5. 보증자 되신 성령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는가?

 

첫째,우리가 범죄로 성령님을 근심케 해 드릴 때, 지체 말고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고요히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토설하면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인애가 풍성하신 주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고 회복의 기쁨을 주실 것이다.

 

성령님을 다시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은 오직 한가지 길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길이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죄를 자백하라, 회개하라는 설교를 제일 싫어한다. 목회자들도 그런 설교에 부담을 느끼는 성도들을 의식한 나머지 거짓 축복과 평안만을 빌기를 좋아한다. 그리되면 주님은 매우 슬퍼하시고 마귀는 너무나 좋아할 것이다. 실지로 우리 한국 교회 내부적인 상황이 그런 사실들을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많이 빌어 온 우리들의 평안은 지금 다 어디로 갔나? 쌓을 곳이 없도록 내려진 축복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때이다. 그것도 너무나 시급히 행해져야 할 과제들이다. 좌우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회복의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성령님과의 원활한 교제를 이루고 성령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자백하는 길밖에 없다. 자백을 힘들어하는 것은 그만큼 죄의 수렁에 깊이 빠져 있다는 증거이다. 자백을 싫어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교만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치 않는 다면 그는 그만큼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때 다 무신론자가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죄 가운데서는 자기 자신만을 신앙하기 때문일 것이다.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결국 영적 싸움이기에 용이한 일이 아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더욱 힘들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라. 우리는 죄를 고백하지 않고 숨기려 할 때 결코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28:13).

 

둘째,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철저히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혹여시 연약해서 범죄할 경우는 성령께서 탄식하시며 근심하시고 계신다. 이 때, 범죄한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대충 회개하거나 적당히 회개하거나 미루어서는 안된다. 죄는 하나님과 단절, 자신과의 단절, 이웃과의 단절, 물질과의 단절을 가져 온다. 죄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막아버린다. 아름답게 자라던 꽃나무에 비치는 햋볕은 차단하면 서서히 말라 죽는다. 죄는 하나님과의 은혜의 빛을 차단한다. 영혼의 시들어지고 만다.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생명의 빛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보증을 받은 성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은 철저히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한다.

 

셋째,하나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요한일서 17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한다. 용서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자백하면 그 순간 성령님은 더 이상 근심하지 않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사하여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막혔던 관계가 회복되어 지고 새로운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된다.

 

넷째,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들이고 성령님과 교제가 회복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최선의 방책은 계속해서 성령님의 충만과 지배를 받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성령님께 자신을 맡긴다는 구체적 의미가 무엇일까? 디모데전서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의 영적 삶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영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4:16). 쉽게 표현하자면 영적인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 영적 양식을 계속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518절의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이 골로새서 3장에서는 말씀이 지배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정기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올바른 비결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뭇상하며 그 말씀을 자신의 삶 가운데 적용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제 성도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지라도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매일 매 순간 마다 우리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 드리자.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 때 우리 속에 성령님의 역사는 더욱 활발해지고, 바로 그 때 우리의 삶은 힘과 기쁨이 넘치며 소망을 가지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성도는 안정과 확신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리고 참다운 내적 안식과 위로와 평화와 감격이 넘치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성도가 죄를 범하게 될 때 사랑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근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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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5 [12:1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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