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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16 [23:03]
[김준곤 설교] 고독과 사랑의 만남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요한복음 4:10; 15:5,9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극단적 개인주의는 자아 중심의 자율 인간을 절대화하여, 일절(一切) 타자와의 결합이 단절된 인간 모나드(Monad)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는 밀폐된 자기 구멍 속에 유기(遺棄)된 인간 사생아요, 괴물이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독병을 앓고 있습니다. 신의 품을 떠났기 때문에 존재의 주소가 없고 사회나 그 속에 있는 어느 타인의 가슴에서도 서로가 거부를 당하며 삽니다. 그는 이제 그 폐쇄된 자기 동굴 속에 더 이상 머물기엔 너무도 외롭습니다. 집단이 있지만, 그 속에는 더욱 고독한 대중이 소음과 분망성(奔忙性)으로 잠식되어 있습니다. 사교가 있지만 그 대화는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내가 누구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서로가 무연(無緣)한 노방(路傍)의 행인들이며 서로가 소외된 실존들입니다.

인간 조건과 고독
  인간은 원래 인간 사이에 존재성을 공유하는 공동 인간성(바르트의 Mitmenschicheit)을 가집니다. 그런고로 공존성, 연쇄성의 상실은 곧 인간성 상실이요, 인간 소외입니다. 유태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 존재(Ich sein), 당신 존재(Du sein), 그것 존재(Es sein)를 구별하였습니다. 나와 당신의 구조 가운데 있는 근원적 관계는 신과 인간관계라고 하였고, 하이데거는 ‘나’는 이미 우리와 당신을 전제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중 관계에서 근원 관계인 신인(神人) 관계가 수직적으로 대화를 상실하고 결국 이웃과의 대화가 수평적으로 끊어진 독립된 ‘나’는 파괴와 분열(分裂)과 모순, 갈등 가운데 격심한 고독을 겪습니다. 10대가 부모를 등지고, 문화 사회에서 남녀가 가정을 떠남도 인간이 인간 조건의 바탕인 공동성을 상실한 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단독자와 고독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이 오직 홀로 서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것, 아무도 나의 삶이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이웃의 인격과 만나기에 앞서 잃어버리고 흩어진 자기를 모아 안으로 향하여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참 내적 고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립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로스와 고독
  자기 껍질 속에 밀폐된, 고립된 나는 타아(他我)에게로의 지향성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타아는 모두 성벽을 높이 쌓고 완전 무장한 이기성의 요새(要塞)입니다. 고독은 타아가 그립습니다. 그러나 타아는 무장한 적입니다. 그래서 고독은 더욱 고독을 씹으며 고독에 잠김으로 고독을 푸는 역수(逆手)를 씁니다. 이것이 감상주의입니다. 그는 감정의 대양 앞에서, 혹은 의식이 무한으로 흐려지는 꿈길을 더듬습니다. 비수(悲愁)의 감미로운 매력에 도취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실존이 심미적 태도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하여 멍하니 허공을 향해 서 있는 공허한 고독 가운데서 자기만을 무의식으로 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고독의 깊이 같은 것은 자애심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듯 인간 에로스는 자기가 구심점이고, 모든 타존(他存)이 자기를 향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배타성과 투쟁성이 따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독이 필연의 숙명입니다. 모두 자기만을 위해 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나 에로스는 조건적이므로 조건의 가변과 함께 가버리면 고독만이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변태적 구애(求愛)와, 한편으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이기심, 그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고사(孤死)하는 인간 조건, 이런 사태 가운데 끼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고독의 극복은 무엇보다 앞서 자기중심을 파괴하여 다른 제 3의 윤리적 구심을 취해야 합니다.

고독 감각과 절대 고독
  고독이 사회 환경을 만나서 세 가지 형식의 반응을 취합니다. 첫째는 무감각형인데 환경이나 풍속, 전통에 길들여져서 거기 안주하며 아무런 모순, 갈등, 분열도 없고 고독 감각이 없는 행복한 시민입니다. 그는 그 속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이것은 희극적 비극이요, 생명 감각의 마비증입니다. 둘째는 도피형인데 사회 환경에 심한 적의와 소외를 느끼면서도 현실을 도피하여 탐미주의나 낭만적인 환상을 좇습니다. 셋째는 예언자의 고독입니다. 그는 고발하고 심판합니다. 민족과 사회 인류의 운명에 용감히 참여하고 연대 의식을 갖습니다. 그는 돌에 맞고 때로는 전체에게서 거부를 당합니다. 자고로 위대한 영혼은 참으로 고독하였습니다. 실존이 죽음 앞에서 느끼는 절대 고독, 혹은 신 앞에서 거절당하는 추방의 종국적 고독, 이것은 전 존재 영역과의 판단이요 단절이며, 아무런 연줄도 결합도 남아 있지 않는 고립입니다. 이런 절대 고립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참으로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좌절과 귀의(歸依)의 사태인 것입니다. 이런 고독 감각은 고독지옥이라든가, 구원에로의 비약이라든가 둘 중의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독과 성(性)
  성은 인간적 고독의 주요 원천입니다. 인간은 성적 존재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에 있어서의 휴머니티의 신비입니다. 성에 있어서 인간은 나의 반신(半身)을 동경하는 오뇌(懊惱)와 인간적 사귐과 결합의 극치를 경험합니다. 그것이 인간성의 이중 관계인 신인 관계와 인간관계의 유사(類似)의 신비입니다. 성(性)에의 변태적 취약은 영적인 신인의 갈증을 육체적 투사에 의해서 보복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지표이기도 합니다. 성의 결합에서 신체적 고독은 극복되지만 인간의 근원적 고독은 더욱 격렬해집니다.

만남의 장소
  고독은 사랑에의 그리움입니다. 나와 하나님과, 나의 이웃과 한 자리에서 참으로 사랑만으로 만날 수 있는 제 3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나와 너는 이기주의를 깨고 회개하여 새롭게 된 나와 너, 곧 저차(低次)의 주체(主體)와 주체가 양자를 파괴함이 없이 결합시키는 고차(高次)의 제 3장소에서 만나는데, 그 장소는 혈육이나 공감이나 집단이나 성에 있어서가 아니고 사랑이신 인격인 것입니다. 이 인격 사이에서 인간은 비로소 무장을 해제하며 토치카의 담을 헙니다. 이것이 해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간의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 가운데 은총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요 14:10), 주는 내 안에, 나는 주 안에, 주의 사랑 안에(요 15:5, 9)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시는 사랑의 완전한 순환 가운데서만 고독은 극복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2001년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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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6 [05:3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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