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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5.24 [05:03]
“정암 박윤선은 포용력이 있으셨다"
김명혁 목사와 박병식 목사 특별대담...“목회자요 신학자였다”
 
김현성

    

개혁주의신학을 바탕으로 신구약 성경 66권의 주석을 집필했고, 평생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목회를 겸했던 정암 박윤선 목사의 신앙과 영성을 배우는 특별대담이 진행됐다.

▲ 김명혁 목사(좌)와 박병식 목사(우)     ©뉴스파워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에서 열린 특별대담은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의 사회로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장 역임, 강변교회 원로)와 박병식 목사(송파제일교회 원로)가 정암의 신앙과 영성을 소개했다

 

박병식 목사는 박 윤선은 19343월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부산에서 일본 고베로 가서 기선 지지부마루 호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였다. 17일간의 항해 동안 그는 요한 계시록을 암송했다. 그 암송한 말씀이 그의 기도가 되었다. 그의 평생을 지속해 온 말씀 기도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샌프랜시스코에 도착할 때까지 요한 계시록 18장까지 암송했으며, 그 곳에서 필라델피아 까지 한 주간을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 그는 계속 요한 계시록을 암송하면서 말씀 기도를 했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정암은 고려신학교 교수를 거쳐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총신대학교에서 신학 강의에 전념했다.”그가 남긴 공헌은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국의 어려움 속에서 겪는 학내 소요로 박윤선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다가 총신대를 떠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학내 소요로 학교를 떠난 일부 교수들과 수백 명의 학생들의 간청으로 박윤선은 합동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88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나가기까지 자신의 남은 삶을 다 바치는 헌신을 했다.”고 추모했다.

 

정암은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성경 주석가였다.”고 밝힌 박 목사는 그의 성경 주석은 일생에 걸친 그의 사명이었다. ”고 말했다.

 

정암은 총회 표준 성경 주석에 참여하여 1938년 고린도후서 주석을 발간했다. 1943년에는 만주 안산에서 요한계시록 주석을 탈고했다. 이 주석 사역은 그의 일생 동안 계속되었다.

 

박 목사는 그는 계시 의존 사색을 고수하면서 오직 성경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성경을 주석했다.”때로는 자신이 해답을 얻지 못하는 성경 구절 앞에서는 몇 시간씩 기도함으로그 해답을 찾기도 했다. 마침내 1979년에 성경 66권 주석이 완성되어 출판되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또 박윤선은 목회자였다. ”며 그의 목회 여정을 소개했다.

▲ 박병식 목사     ©뉴스파워

 

 

정암은 기도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는 정암은 평양 숭실 전문대 시절에는 방지일, 김진홍 등과 같이 조기 기도대를 조직하여 모란봉에 올라가 계속 기도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그는 힘을 다해 기도했다. 그의 간절함과 통곡하는 기도가 학교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그는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그는 평생 산에 올라가 밤을 새어 기도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특히 그가 세상을 떠난 19885월 강원도에서 교역자 수련회가 있었다. 수련회의 강사는 박윤선이었다. 이미 그의 간은 거의 녹아있는 처지였다. ”러나 그는 온 힘을 기우려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그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기도하기를 쉬지 아니했다. 병원에서 운명하기 직전까지 그는 기도하기를 소원했다.”고 밝혔다.

 

김명혁 목사는 제가 12년 동안의 유학생활 후 귀국해서 총신대의 교수로 봉직하고 있던 19793월 박윤선 목사님께서 총신대의 신학원장으로 부임하셨다.”그 이후 저는 총신대에서 17개월 동안 그리고 합동신학교에서 77개월 동안 박윤선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함께 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와 축복이었다. ”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시간에 상관 없이 저에게 전화를 거시고 그리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때로는 질문도 하셨고 때로는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라고 하시면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박 목사님의 입장에 동조했다.“며 일화를 밝혔다.

 

김 목사는 또 박윤선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는 소년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고 정다웠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만 아시는 분이셨고 하나님께만 붙잡혀 사신 분이셨다. ”며 언제나 주여, 주여라고 고백하시면서 주님만 의지하고 사시는 분이셨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총신에 계실 때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에 사셨는데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총신에 오셔서 뒷산에 올라가 2,3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저는 한 6개 월 동안 옆에서 목격한 일이 있었다.”저는 그때 박 목사님을 흉내 내며 새벽에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2 개월 동안 기도하곤 했다. 박 목사님은 택시를 타고 가실 때나 또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에도 간간히 주여! 주여!’ 라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곤 했는데 영혼의 호흡 소리와 같이 들렸다. 택시 기사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며 정암의 삶 자체가 기도였음을 증언했다.

 

특히 “1979년도 총신에 학생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박윤선 목사님은 기도로 일관하셨다. 학생들이 이사회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서 이사들과 교수들의 자동차를 뒤집어엎기까지 했다.”그런데 학교의 책임자이신 박 목사님께서 학생 대표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사태 수습을 협의하는 대신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시고는 밤마다 강당에서 기도회를 인도하셨다. 저는 처음에는 좀 불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밤이 깊어지자 저는 박 목사님보고 제가 기도회를 인도할 터이니 집에 가시라라고 하고는 밤 기도회를 인도하곤 했다.”고 말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기도회를 시작한 후 며칠이 지나서 기도회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저마다 일어나서 내가 누구의 자동차를 뒤집어엎었습니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저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마지막 1주일간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실 때 매일 박 목사님을 찾아가서 뵙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박 목사님께서 기도로 일관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박윤선 목사는 말씀을 사랑하는 삶이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정암의 삶은 또한 평생토록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주경 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은 평생을 신 구약 성경 66권의 주석 집필에 바쳤고 평생을 성경을 가르치는데 바쳤다.”정암은 죽었다가 깨어나 다시 한 세상을 산다고 해도 나는 목사가 되어 성경을 증거하겠노라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내가 평생에 힘써온 중요한 일은 신학 교육과 성경 주석 저술이었다라고 말씀했다.”고 증언했다.

 

김 목사는 정암에 대해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의 삶이었다.”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님의 삶은 또한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의 인격으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진솔하고 따뜻한 소년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고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진실이 풍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 목사는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인간 관계나 교파 또는 문화적 관계에 있어서 폭 넓은 포용적인 이해와 시야를 가지고 계셨다.”기도와 은혜를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통합측 인사들은 물론 루터파 인사들까지 교파를 초월해서 친밀하게 지내셨다. 독일 경건주의 계통의 학자 게르하르트 마이어 박사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교제하면서 매우 기뻐하고 매우 만족해 하셨고, 독일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하게 하시면서 친밀하게 지내셨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 사역에 있어서도 포용적인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다.”며 장신대의 주선애 교수를 초청해서 강의를 하게 했고 이동주 교수를 초청해서 강의와 설교를 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개방적인 입장을 일부 교수들이 비판하자 박윤선 목사님은 매우 속 상해하셨고 매우 안타까워하셨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 교회 안에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이며 개혁주의 삶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고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실천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한다.”칼빈주의 신학은 하나의 신학적인 체계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인 순수한 신앙과 삶의 원리로 나타남을 올바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또한 "칼빈주의 신학은 배타적인 분리주의가 아니라 긍정적인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으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 문화주의가 아니라 구제 사역과 선교 사역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 변혁주의 라는 것을 올바로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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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6 [14:2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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