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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6 [04:33]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
김명혁, 박병식 목사 특별대담 원고
 
김명혁

 

부족한 제가 저의 한 평생을 돌아볼 때 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들이 여러분들 분계십니다. 평양에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중학생 시절에 대구에서 만난 이성봉 목사님과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서울에서 만난 김치선 목사님과 어릴 때부터 한 평생 만난 한경직 목사님과 나중에 만난 박윤선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과 방지일 목사님 등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저의 삶에 지대한 영양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제가 12년 동안의 유학생활 후 귀국해서 총신대의 교수로 봉직하고 있던 1979년 3월 박윤선 목사님께서 총신대의 신학원장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이후 저는 총신대에서 1년 7개월 동안 그리고 합동신학교에서 7년 7개월 동안 박윤선 목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함께 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참으로 저의 삶과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으로 제가 아주 존경하고 아주 좋아하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는 언제나 박윤선 목사님과 상의를 하곤 했습니다.

박 목사님도 저를 퍽 좋아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시간에 상관 없이 저에게 전화를 거시고 그리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때로는 질문도 하셨고 때로는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 라고 하시면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박 목사님의 입장에 동조했습니다.

박 목사님이 말하지 말라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라고 말하면서 박 목사님의 입장을 교수들 앞에서 내 세우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박 목사님과의 친근한 관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받기도 했고 반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 목사님이 언제나 좋았습니다. 신앙적 감화와 인격적 감화 때문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는 소년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고 정다웠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만 아시는 분이셨고 하나님께만 붙잡혀 사신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주여, 주여” 라고 고백하시면서 주님만 의지하고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금욕주의자는 아니셨지만 다른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별세하시기 얼마 전 안만수 목사와 함께 박 목사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서울대공원에 모시고 간 일이 있었습니다. 원숭이나 호랑이를 보여드렸지만 박 목사님은 그것들에는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주여, 주여” 라고 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들이 함께 모일 때 피차 농담하는 것을 박 목사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교수 세미나를 할 때는 언제나 기도원으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철없는 합신 강사는 “합신이 기도원으로 가느냐?“ 라고 불평과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미국 유학 시절 친구 되시는 방지일 목사님에게 편지를 하시곤 했는데 외로움 가운데 강한 우정을 느끼셨던 박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셨습니다. “나는 웬일인지요 방제를 생각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주님께 대한 회개의 고백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주에게 끌리지 않고 한갓 우정이나 향정에 끌리었던 것입니다. 주를 떠나서 우정으로 주를 떠나서 향정으로, 이는 사단의 유혹이었나이다.”

첫째로 “기도에 전념하는 삶” 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님의 삶은 자연히 기도에 전념하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목사님은 기도를 생활화하신 분이셨습니다. 기도를 쉽게 하신 분이 아니라 수고스럽게 하신 분이셨습니다.

총신에 계실 때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에 사셨는데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총신에 오셔서 뒷산에 올라가 2,3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저는 한 6개 월 동안 옆에서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박 목사님을 흉내 내며 새벽에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2 개월 동안 기도하곤 했습니다.

박 목사님은 택시를 타고 가실 때나 또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에도 간간히 “주여! 주여!” 라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곤 했는데 영혼의 호흡 소리와 같이 들렸습니다. 택시 기사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1979년도 총신에 학생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박윤선 목사님은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이사회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서 이사들과 교수들의 자동차를 뒤집어엎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책임자이신 박 목사님께서 학생 대표들을 불러 타이르거나 사태 수습을 협의하는 대신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시고는 밤마다 강당에서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좀 불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박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저는 박 목사님보고 “제가 기도회를 인도할 터이니 집에 가시라” 라고 하고는 밤 기도회를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기도회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일어나서 “내가 누구의 자동차를 뒤집어엎었습니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일관의 박 목사님의 삶의 자세를 지금 돌이켜 볼 때 “바로 그것이다!” 라고 새롭게 감탄하며 저는 지금 그 길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행정이나 정치에 관심을 두기 전에 기도로 일관하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길선주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자세요 스타일이었던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저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마지막 1주일간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실 때 매일 박 목사님을 찾아가서 뵙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박 목사님께서 기도로 일관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안식년으로 (평생에 처음과 마지막으로 가진) 8개월 동안 미국 휫튼 대학교에 가서 이런 저런 활동도 하고 연구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박윤선 목사님께서 피를 토하시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져 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국에 전화를 걸었더니 박 목사님이 쓸어져서 병원으로 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 중에 “그러면 그렇지!”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즉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와서 영동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박 목사님께서 병상에 계시던 일주일 동안 박 목사님은 매일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죽고 싶다” 라고 고백하시기도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목사님을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곤 했는데 박 목사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에서 저는 박 목사님의 순수한 인성을 보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 목사님은 “소위 박 목사의 의를 제해 달라” 라고 호소하며 기도하시기도 했습니다. 박 목사님은 결국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며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둘째로 “말씀을 사랑하는 삶” 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님의 삶은 또한 평생토록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주경 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목사님은 평생을 신 구약 성경 66권의 주석 집필에 바쳤고 평생을 성경을 가르치는데 바쳤습니다.

박 목사님은 “죽었다가 깨어나 다시 한 세상을 산다고 해도 나는 목사가 되어 성경을 증거하겠노라” 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내가 평생에 힘써온 중요한 일은 신학 교육과 성경 주석 저술이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 말씀과 관련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1983년 7월 화란 암스텔담에서 열린 암스텔담 국제전도대회에 참석했는데 박윤선 목사님께서 저와 같은 의자에 앉아서 빌리 그레함 박사님의 진솔한 고백과 권면의 말씀을 듣고 계셨습니다.

빌리 그레함 박사님은 복음전파는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도 아니고 어떤 새로운 윤리의 기준도 아니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그대로 전파하는 것이 복음전파인데 복음전도는 기술이나 어떤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변화된 삶으로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로 헌신하며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권면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빌리 그레함 박사님은 잠시의 주저도 없이 첫째도 성경 말씀을 연구하라는 것이고 둘째도 성경 말씀을 연구하라는 것이고 셋째도 성경 말씀을 연구하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적고 계셨습니다.

사실 저는 평생 박 목사님의 주석을 애독하고 있는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른 주석들을 거의 찾아보지 않지만 오직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만 주로 찾아보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들을 세상의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며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곤 합니다. 그리고 설교할 때마다 자주 “박윤선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라고 토를 달곤 합니다.

박 목사님은 성경을 하나의 성경 신학적으로 체계화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먹고 말씀의 깊은 뜻을 발견하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양식이요 생명이요 기쁨이요 보화요 등이요 빛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주석과 설교에는 항상 새로운 영감과 통찰력이 나타났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 무엇임을 자신의 삶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이셨습니다.

셋째로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의 삶” 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님의 삶은 또한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의 인격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진솔하고 따뜻한 소년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고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진실이 풍기고 있었습니다.

성역 50년 기념 논총을 증정 받은 박 목사님은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 라고 진솔하게 고백을 했고 임종 전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오해하는 소위 박 목사의 의를 모두 지워달라” 라고 처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호소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종종 저의 손을 꼭 붙잡고 격려와 위로와 훈계의 말씀을 진솔하게 하시곤 했습니다. “김 목사, 마음에 기쁨을 잃으면 안돼!” “힘을 내!” “강의 준비를 더 잘해야 돼!” “주님을 바라봐!” 박윤선 목사님은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을 몸에 지닌 분이셨습니다. 훌륭한 분들 중에는 함께 있기가 편하지 않는 분들도 있는데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함께 있기가 너무 편한 분이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수제자였던 장경재 목사님이 함께 있기가 편한 분이셨고 성결교회의 정진경 목사님이 함께 있기가 편한 분이셨고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이 함께 있기가 편한 분이셨는데, 박윤선 목사님이야말로 함께 있으면서 친밀하게 대화하고 교제하기가 너무너무 편한 분이셨습니다. 온유와 겸손과 친밀함과 진솔함과 따뜻함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날 그것을 몸에 지니고 실천해 보여주신 분이 바로 박윤선 목사님이셨습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인간 관계나 교파 또는 문화적 관계에 있어서 폭 넓은 포용적인 이해와 시야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기도와 은혜를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통합측 인사들은 물론 루터파 인사들까지 교파를 초월해서 친밀하게 지내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독일 경건주의 계통의 학자 게르하르트 마이어 박사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교제하면서 매우 기뻐하고 매우 만족해 하셨고, 독일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하게 하시면서 친밀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여성 사역에 있어서도 포용적인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히셨습니다. 장신대의 주선애 교수를 초청해서 강의를 하게 하셨고 이동주 교수를 초청해서 강의와 설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개방적인 입장을 일부 교수들이 비판하자 박윤선 목사님은 매우 속 상해하셨고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결국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개혁주의적 삶을 몸소 올바로 실천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혁주의라기 보다는 근본주의 또는 극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한국 교회 안에 개혁주의 신앙이 무엇이며 개혁주의 삶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고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실천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주의 신학은 하나의 신학적인 체계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인 순수한 신앙과 삶의 원리로 나타남을 올바로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신학은 배타적인 분리주의가 아니라 긍정적인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으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 문화주의가 아니라 구제 사역과 선교 사역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 변혁주의 라는 것을 올바로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현세적인 정치 사회 문제에 치중하기 보다는 사도 바울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 붙잡히고 전적으로 기도에 붙잡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한 하나님 중심적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 더 합니다. 제가 개나리 아파트에 사시던 박윤선 목사님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일어서려고 하면 박 목사님은 의례히 저보고 “열쇠 잊지 마!” 라고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제가 박 목사님과 대화를 한 다음 거의 매 번 제가 가지고 다니는 열쇠 뭉치를 소파에 놓고 그대로 나오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박 목사님은 저보다 더 건망증이 많으셨는데 저더러 열쇠 잊지 말라 라고 매 번 당부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평생에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에 붙잡혀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신 저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을 만 나게 하시고 그 분과 함께 일하게 하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게 하시고 그 분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리고 저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합니다.

“박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박 목사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박 목사님! 제대로 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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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6 [11:5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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