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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0 [18:01]
'평신도 성경통독 안내자' 김정권 교수
하루 4시간씩 기도와 성경통독에 집중하는 특수교육의 대가 파워인터뷰
 
김철영

경남 창녕군 고암면 상대길 16에는 ‘The K 서드에이지가 있다. 교원공제회에서 설립한 노인전문숙박시설이다. 병원 등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대가인 김정권 명예교수(대구대 특수교육과, 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4년 전 이곳으로 내려와 노후를 보내고 있는 주건 공간이자 뉴스파워에 매주 연재하고 있는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 통독 가이드를 집필하는 연구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영성 깊은 시() 창작을 위한 묵상 공간이다.

▲ 대구침산제일교회 김정권 은퇴장로가 자신이 쓴 성경통독 지침서를 소개하고 있다.     ©뉴스파워

 

 

25일 아침, 승용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해 창녕으로 향했다. 뉴스파워 독자들이 김 교수가 매주 올리는 평신도 눈높이의 성경통독들을 읽으면서 창세기부터 성경 각권을 연대와 지명, 역사적 상황까지 조명하면서 혼자서도 성경을 읽어가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의 글을 연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의 고난의 행적을 정리한 글을 올려 많은 독자들이 큰 도움이 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날씨도 흐리고 가끔은 비도 뿌린 날씨 탓에 예상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 훤칠한 키에 올해 84세의 김 교수가 숙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은 80퍼센트가 교직원 출신이라고 했다.

 

창녕이 고향(故鄕)이신가요?’

 

고향은 서울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50625일 전쟁이 났고, 그해 1224일 가족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집을 나와서 하루 종일 걸어서 노량진에서 아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튜브로 된 한강 다리를 건너서 25일 밤 9시 영등포역에 도착해서 기차 꼭대기에 타고 대구로 출발했어요. 가족, 친척 포함 20여 명 탔는데 195111일 새벽 2시에 대구역에 도착했지요. 그때는 기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해()를 넘겼지요.

▲ ‘The K 서드에이지'애서 바라본 창녕군 상대길 전경     © 뉴스파워

 

왜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셨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전쟁 폭격으로 집이 불타버렸어요. 그리고 대구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그리고 대구에서 계속 살았어요. 학교에서 대구에서 다녔고, 졸업 후 27세에 대구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평생을 대구에서 살다가 4년 전 이곳 창녕으로 내려왔지요. 그리고 교회도 1952년부터 대구침산제일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평생그 교회만 섬겼어요. 지금은 은퇴장로로 있어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할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세대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召命)과 성직(聖職)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그는 계명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어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당시에는 특수교육학과가 없던 시절이었다. 한국에는 특수교육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그는 196427세의 나이에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로 임용이 됐다. 대구대 특수교육과는 우리나라 최초로 1961년 개설됐다. 단국대나 이화여대보다 10년 먼저 개설되었다. 대구대 특수교육과는 1964년 특수교육과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김 교수도 그들을 한 해 동안 가르쳤다. 또한 사회복지학과 학생들도 그의 수업을 들었다. 그들 중에 많은 제자들이 교수가 됐다.

 

김 교수는 특수교육이라는 학문을 개척한 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대한특수교육학회장을 시작으로 1982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장과 교육부 제4차 특수학교 교육과정 개정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어 1984년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장, 1987년 교육부 제5차 특수학교 교육과정 개정위원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장과 아시아지적장애인복지연맹회장을 역임했다.

 

1994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중앙교육심의위원, 1995년 대구대학교 특수교육대학원장과 대구대학교 테크노파크 사업단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제7차 특수학교 교육과정 개정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특수교육 관련 핵심적 리더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2001년까지 특수교육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한때는 전국 교수 포함 연구원이 100여 명이 그의 밑에 있었다. 그만큼 교육부로부터 특수교육에 대한 역량을 인정 받은 것이다. 그는 2001년 대구대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까지 특수교육의 공학적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정부는 평생 특수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홍조근정훈장과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또한 장애자 인권에 기여한 공로로 장애자인권상을 수상했다.

 

▲ 침산제일교회 신앙생활의 회고와 비전을 담은 김정권 장로의 [따뜻한 영혼들에 대한 담론]     © 뉴스파워


 

특수분야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애자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셨고요.’

 

“1960년대는 장애자에 대한 사회보장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장애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저는 1992년부터 전국 15개 시도 단위로 15주 과정의 장애자 부모교육을 실시했어요. 그리고 장애자 스스로 인권운동을 하도록 도왔어요. 농아와 지적장애자들은 데모를 잘 못해요. 그래서 자기권리를 주장하도록 교육했어요. 1994년에는 국회에서 2000여 명의 장애자가 모여 대회를 열었어요.”

 

김 교수는 각 대학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장애자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애자인권상을 수상한 것이다.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개선이 많이 이루어졌지요?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도 앞 순위에 배치되고요.’

 

지금은 장애자 인권에 대한 내용이 법으로 모두 보장되어 있어요. 특수교육도 선진국 버금갈 정도로 잘 되고 있고요. 장애자학교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학생이 100명이면 교직원은 70명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제일 중요한 운동은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계몽운동이 무척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특수교육 관련 교과서 10권을 포함해 120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자도서를 개발했다. 그래서 전체 특수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인데, 교육부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가히 그를 한국의 특수교육의 대가(大家)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는 교육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교육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입니다. 그가 어떤 패러다임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저는 총체적 접근을 했어요. 생태 이론에 의해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사들이 교재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한 내용으로 대화의 흐름을 전환했다.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였고, 부모님은 감리교회에 출석하셨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할머니를 따라 천주교를 다녔어요.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는 1952년 침산제일교회(당시는 천우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 교회는 1951년에 설립됐다. 초기 멤버다. 그리고 1961년 침산제일교회 서리집사가 됐고, 1967년 안수집사가 됐다.

 

김 교수는 197033세의 나이로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1990년에는 교회 40년사 편찬위원장을 역임했고, 2000년에는 50년사 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7년 장로 은퇴를 했다.

 

▲ 특수교육의 대가이자 성경통독 안내서를 집필한 김정권 장로     ©뉴스파워

성경을 통독하시면서 정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20101, 집사람(아내)이 입원을 했어요. 3월부터는 교회에 어려움이 생겼어요. 한꺼번에 문제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아무에게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성경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창세기부터 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어요.”

 

김 교수는 창세기를 읽었다. 다 읽고 나자 건질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됐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읽어가면서부터는 간단하게 메모를 시작했다. 연말이 되자 메모한 분량이 많아졌다. 그러자 2011년부터는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포맷을 만들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메모를 하고, 포맷을 만들어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어여. 순전하게 나 자신 위해, 나를 리마인드하기 위함이었지요. 2012년 쯤에는 우리 아이들하고 메모한 것을 같이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김 교수는 성경을 읽어가면서 평신도들이 성경을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연극 무대를 예로 든다면 무대와 배우가 있어야 하고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대를 이해하고 배우도 이해하면 시나리오도 훨씬 쉽게 이해 할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무대를 모르고 성경을 읽으니까 성경 내용을 이해를 잘 못하고, 성경의 시대상황과 연대가 너무 괴리가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김 교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6대 제국과 연대를 맞춰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듭 
제일 중요한 것은 시공간 문제와 시나리오(성경 내용을)을 상황에 따라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도 성경의 독자로서 제일 어려웠던 것이 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조언을 하면 성경을 읽는 이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에게 성경을 통독한 것을 정리한 내용을 보면서 어떤 주석과 자료를 봤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성경을 볼 때 해석하는 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는 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 이 성경이 에센셜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성경을 보는 관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다는 것, 구원은 우리의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장로교 신학의 뿌리인 칼빈주의 관점에서 성경을 본다고 했다.

 

김 교수의 성경통독 정리 글에는 성경 지명에 대한 각주가 제일 많다. 그리고 연대에 대한, 지역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03월 성경 통독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장로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사모했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 발견을 했습니다. 환난이나 풍요로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고난은 고난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 교수는 만일 당시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나섰다면 더 소란했을 텐 데,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소원하면서 기도했더니 조용하고 은혜롭게 교회의 어려움이 정리되었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액션을 취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지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될 때나 잘 못될 때든지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고 계시며, 언제나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성경 통독을 해하면서 더욱 확신했다. 그런 내용을 메모장에 담았다.

 

▲ 김정권 장로가 쓴 [맛있는 1189, 행복한 298]     ©뉴스파워

성경통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 안 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십시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성경 통독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시작하지만 계속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읽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아주 쉽게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20103월부터 매일 8시간씩 의자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메모장에 정리를 했다. 지금도 하루에 4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는 평교수 몇 십 명의 일을 혼자서 할 정도로 특수교육에 전념했다.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당연히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성경 읽기와 공부 그리고 기도사역에 우선순위를 둬왔다. 벌써 9년이 됐다. 의무로 했다고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김 교수는 교수로서 오랜 세월 연구하고, 교재를 만들고, 책을 집필했던 것이 성경읽기와 정리에 유익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서지학에 대한 식견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2016맛있는 1189 행복한 298성경 통독 가이드북을 출판했다. 신구약 1189장을 하루에 4장씩 읽으면 298일만에 완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책 제목을 지었다. 또한 성경본문을 포함해서 CD로도 제작했다.

 

사실, 김 교수는 대구연합중고등학교 때 야간에는 성서신학원에 다녔다. 9학기 중에 8학기를 다녔다. 당시 전도사 목사 된 사람들 많다고 했다. 게일슨 박사와 윤철주 목사 등이 강의를 했고, 당시 뜨거운 기도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성경을 통해 진리을 알게 되고, 그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변화를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 말씀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새생명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김 교수는 시도 쓴다. 성경을 읽어가면서 받은 은혜와 감성으로 옹달샘에서 길어올린 생수와 같은 영성 깊은 시를 창작하고 있다. 2016년에는 팔순기념으로 시들 모아 길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시집을 출판했다. 그의 영혼의 맑은 영성의 시들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김정권 장로의 시집 [길을 모르는 사람의 길]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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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5 [23:3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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