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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8 [19:34]
“부부 모두 육신 고난 극복 주님께 감사”
시애틀 방경모 장로 부부, 귀한 믿음의 본
 
이동근

 

  

▲ 두다리를 절단하고도 휠체어로 빠지지 않고 교회 예배를 드리는 방경모 장로와 황선자 권사     © 뉴스파워 이동근

 

 

린우드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를 섬기고 있는 방경모(71)장로와 황선자 권사 부부는 육신적, 물질적으로 모두 큰 고통을 겪었으나 오히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찬양하고 있어 귀한 부부 사랑과 믿음의 본이 되고 있다.

특히 남편 방경모 장로는 당뇨로 두 다리를 절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일주에 3번이나 투석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병원에 자주 입원 하는 등 투병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부인 황권사는 이처럼 장애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남편을 간호하고 운전해서 교회와 병원에 가는 등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가운데 3년전 자신도 유방암으로 힘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시는 90대 시어머니마저 쓰러져 두분의 병간호와 수발을 해야 하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같은 고통을 믿음으로 이기고 이제는 교회 예배뿐만 아니라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열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방장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는 말씀이 마음에 항상 새겨져 있다“며 ”지금 살아온 71년을 뒤돌아보면하나님이 저를 위해 항상 선하게 예비해 두신 길이 있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길에서 자꾸 빗나가 다른 길로 가고 특히 세상길로 빠지니 하나님이 놔두었다가 때렸다가를 여러 번 반복 하신 것 같다”며 막판에도 못 깨달으니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셨는데 미국에서도 못 깨달으니 또 때리고 때리셔서 결국 그 길로 가게 되었고 이제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두 손 들고 눈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다.

▲ 다리를 절단하기전 방경모 장로 부부     © 뉴스파워이동근



남들은 죽는다고 걱정을 할 정도로 정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기적처럼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었다는 그는 분야별로 안 만나 본 의사가 없고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기적처럼 건강이 좋아졌다.

당뇨와 신장문제로 보이지 않던 두 눈도 8번이나 수술을 한 끝에 다시보이기 시작했다. 혈관이 막혀 스탠트를 넣었으나 1년 후에다시 악화되어 8년 전에는 바이패스 큰 수술을 해야 했다.

14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일주일에 월,수,금 3번 투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당뇨로 4년 전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다음해에는 오른쪽 다리마져 절단해야 하는 몸과 마음과 영이 쓰러지는 듯한 극심한 아픔을 겪고 현재는 두 발 대신 휠체어에 의지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처럼 육신적으로는 힘들어도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것을 느낀다는 그는 투석을 한 처음 10년은 교회를 다녀도 몸이 힘들어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하고 졸기만 했다며 비록 몸은 살아있어도 영적으로 죽은 몸이었다고 뒤돌아봤다.

그러나 6년 전 현재 섬기는 뉴비전 교회에서 예배드리게 된 이후부터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예배의 회복이 있었다며 하나님을 안 만났으면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모두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교회에서는 매 주일마다 구원의 감격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로 예배를 드린다. 교회 찬양과 기도와 설교 말씀이 기다려진다는 그는 그래서 매일 하루의 첫 시작을 예배로 시작할 수 있는 기쁨 속에 새벽예배는 물론 저녁 예배까지 드리는데 긴 시간의 투석을 마치고 저녁식사도 못한 채 예배에 참석하면 몸이 피곤해 눈이 감겨질 때도 있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다지며 견디니 말씀에 새 힘을 얻으며 더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다리 절단 후 장로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눈물로 기도할 때 “교회를 위해서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시로 드리는 기도 가운데 주님과 교제하고 있다.

▲ 방경모 장로 임직식 때     © 뉴스파워 이동근


특별히 새벽예배 후에도 마지막 까지 남아 깊은 기도를 드리는가 하면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레마로 역사하시는 은혜의 체험으로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고 통독하고 있는데 심지어 투석할 때도 성경말씀을 듣고 있다.

읽는 성경은 서울에 사는 황선화 처제의 믿지 않는 남편 백상현이 선물로 보내온 것으로 이제는 투석하면서도 찬송가와 성경 읽기를 계속 틀어놓고 들으니 심령에 평안이 찾아오고 시력이 안 좋아 성경은 못 읽지만 듣기 성경을 통해 성경을 벌써 10독 했다고 한다.

한편 남편 투병을 돕는 황 권사도 3년전 유방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고 키모 16번, 방사능 치료를 32번이나 받아 머리가 다 빠지는 등 큰 고통의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항암치료를 받던 중에 연세에 비해 강건하셨던 90대 시어머니가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셔서 한 발걸음도 거동을 못하게 되어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의 모든 것을 수발해야 했다.

그녀는 투병으로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며 열심히 기도하니 고통 속에서도 마음은 시온의 대로를 걸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선하고 인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웠던 암치료를 끝내고 다시 건강을 허락받고 보니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 것을 체험하고 말씀을 의지한대로, 부르짖어 간구한대로 나타내시는 놀라운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다시 체험했다고 말했다.

방경모 장로는 암투병 가운데서도 자신을 간호했으며 지금도 온갖 시중을 불평하지 않고 다 들어주는 아내에게 늘 감사하고 있으며 특히 부부가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하박국 선지자가 고백한 그 감사와 함께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들 부부가 이처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세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방 장로는 대전에서 태어나 학교를 그곳에서 다녔다. 집안은 외할머니가 일찍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아 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다. 이를 보고 믿지 않는 할아버지는 예수교를 믿고 교회에 남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핍박했다. 결국 예수를 믿고 아들도 못 낳는다는 핑계로 어느 날 할머니를 친정에 가라고 쫒아낸 후 강제 이혼을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핍박에도 굽히지 않고 오히려 평양 성경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전도사로 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란 어머니도 어릴 적부터 믿음이 좋은 기독교 집안에서 학교 교사로 교회 주일학교 반사로 믿음생활을 했다. 결혼 후 믿음의 가정에서 방장로는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지 1년 안되어서 찾아온 약한 소아마비 증세로 인한 걸음걸이 때문에 사춘기에 문제가 되었다.

다른 학생들로 부터 놀림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누가 웃는 소리만 들려도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알고 예민해져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그대로 지나갈 수 없었다. 그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은 좋지 않았다.

교회는 어머니 등살에 미루고 미뤄 고교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면 성경책을빵집에 맡겨놓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고 했다. 세례도 믿음의 고백없이 어머니 등살에받았고 신앙생활은 여자 친구 만나러 교회에 다녔다.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는 완전히 세상 유혹에 푹 빠져들었다. 놀기 좋아해 대전 황태자라고 소문이 났고 친구들도 돈 많은 집안 아이들과만 어울려 쾌락을 일삼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졸업도 못하게 되어 대전에 내려와 생활해야 했던 그를 세상은 그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현재의 부인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 깡패와 쌈꾼으로 소문이 나 여자 집에서는 적극 반대했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으나 아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안이어서 결혼 후에 맨 날 산이고 강이고 어디서나 귀신에게 빌고 다니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당굿을 하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는 일마다 안 되었 다. 사업이 잘 안되어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고 아내도 옷가게를 했는데 한때는 입금하기도 힘들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던 옷들도 주인을 잃고 가게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 병상에서 방경모 장로를 황선자 권사가 간호하고 있다.     © 뉴스파워 이동근


마침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막내 처제가 미국으로 오라고 초청해 미국에 이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속을 했는데 서류마다 뭐가 걸려 잘 진행되지 않았다. 미국 처제는 수색에 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교인 증명과 추천서를 해오면 수속에 도움 될 수 있다며 가보라고 했다.

그동안 세상에 빠져 가보지 않았던 교회를 몇 십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물론 아내는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수색 교회 목사님은 한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교회 옥상에 십자가를 달다가 고압선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해 다 죽게 되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팔 하나만 잃었다.

목사님에게 염치없지만 솔직하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교인 확인증을 써줄 터이니 교회를 앞으로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2년동안 천호동에서 수색까지 먼 거리를 오가며 교회를 다녔다. 차를 가지고 운전하면 한 시간, 버스는 두 시간 이상을 갈아타면서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놀랍게도 교회를 다니는 동안 사업이 불처럼 일어났다. 장사하는 것마다 잘 되었고 공장도 다시 잘 가동되어 집도 장만했다. 열심히 생업에 충실하며 하나님이 새롭게 허락하신 물질도 교회 헌물에 인색하지 않았는데 믿음생활 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을 믿게 되었다. 그의 가정이 하나님을 믿고 축복 받은 것을보고 무당을 믿던 처갓집 식구들이 모두 전도되는 놀랄만한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민 수속도 잘되어 1989년에 시애틀에 오게 되었다. 한인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처음 이민 온 남들처럼 새벽 청소도 하고 나중엔 장로님 회사 페인트 일도 1년간 했다.

그 후에 기적처럼 알라스카의 큰 규모의 식당을 인수하게 되었다. 아내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친절하게 손님들에게 대해 키친 마마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5000불- 6000불까지 오를 정도로 당시 영업이 잘 되었다. 배를 타는 유동인구가 많아 최고 9000불까지 매상이 오르는 날이 많아져 너무 피곤해 돈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92년부터 거의 10년 동안 알라스카에서 제일 큰 식당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어 그곳에 빌딩 투자까지 하며 부부가 한 마음 되어 섬기는 교회에 청지기 역할을 기쁨으로 감당해 나갔다. 이 기간 1995년 알라스카 장로교회에서 장로 임직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에 식당 인수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초기에는 장로 임직을 받았을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으나 사업이 너무 잘되자 돈 버는데 바쁜 나머지 때때로 주일을 범하게 되었고 어느새 주님과 멀어져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술도 파는 등 다시 세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방경모 장로 가족     © 뉴스파워이동근



더욱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지나친 욕심으로 갑자기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파산 신청까지 하고 다시 시애틀로돌아왔다.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것도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처럼 몇 차례 고비 때마다 하나님이 치시고 또 회개하면 다시 축복 주시던 하나님은 아직도 그가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자 더 크게 치셨다.

2005년 어느 날 아침 한쪽 눈이 안보였다. 3일 후에는 또 다른 눈마저 안보였다. 신장 때문에 눈이 나빠진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투석을 할 수 있도록 목 부근에 구멍 뚫는 수술을 하고 투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투석을 하고 있으며 당뇨로 두 다리까지 잃게 되었다.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살던 부족한 저를 끝까지 사랑해주셔서 수많은 고비와 육신의 질병을 이기도록 지금까지 에벤에셀의 하나님 되어 인도해 주셨다”는 방경모 장로는 ”이제 육신은 나약한 가운데 있으나나이 들어 뒤늦게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듬어 주시고 능력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다시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또한 “아내는 제가 이제는 믿음에 굳게 서서 요동함 없는 영적인 사람으로 많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내 황선자 권사도 옛날 무당 집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되었고 이제는 걷지를 못하는 저를 위해 운전을 해주면서 저를 위해 새벽예배부터 교회 모든 활동에 같이 참여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사로 변화 되었다”고 했다.

숱한 고난을 통과하고 난 후 이제는 온전한 믿음의 꽃을, 생명의 꽃을, 구원의 꽃을 피워 나가며 복음에 합당한 남은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 원하는 방장로 부부는 마침 암 진단을 받은, 믿지 않는 지인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며 과일 바구니를 챙기고 찾아간다. (시애틀 이동근 기자, nhne7000@gmail.com)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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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5 [07:4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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