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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0 [19:01]
[김준곤 설교] 마르지 않는 감격의 샘터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요한계시록 3:15~17 ; 7:7~38 ; 시편 103:1

▲ 김준곤 목사    ©뉴스파워



야망에 불타는 일단의 청년들이 모여 앉아 천하만사의 담론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상상과 욕망의 날개를 펴고 그들은 각기 ‘나는 무엇을 가장 가지고 싶은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최고의 야망과 꿈을 그들 나름대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대상은 돈도 되고 권력도 되고 지식도 되고 물론 애인도 포함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은 못내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 친구가 그에게 계속해서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감격하고 싶다. 이 차가운 가슴에 불이 탔으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절실한 염원 속에도 이 청년처럼 그 무엇인가를 위해 열 번 목숨을 불태워도 아쉽기만 한 열정적 감격의 대상이 곧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제는 섹스마저 죽어 버린 25시 입니다(post eveη thing generation). 미치는 길만이 자유의 길이라고 떠드는 히피의 광기도 지치고, 히틀러와 공산주의의 피조차 창백해 져 가는 현대인은 신앙의 열정도 무신앙의 용기도 없는, 긍정도 부정도 없는 실존의 제3의 허무 종족입니다. 죽음입니까, 사랑입니까, 전체입니까, 제로입니까, 차든지 덥든지 하십시오.


사도행전의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하고, 그리스도에 미치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그 열정이, 영원한 소년처럼 짊은 독수리처럼 용솟음치는 생명의 청춘이 아쉽습니다. 불이 타고 물이 끓고 홍수가 터지듯 그런 열정은 없는 것일까요 ? 열정 없이 위대한 것이 된 일이 없습니다.

1. 환희, 환희, 감격, 감격.
  그릇된 열정 이지만 공산주의의 열정 앞에 수천만의 지성이 아첨하고, 비록 광적인 것이지만 히틀러의 열정 앞에 한때 독일의 지성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창백한 것은 싫습니다. 예수는 극악한 악인은 구원할 수 있었으나 회색의 선인, 중성 인간은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인의 정신 상태가 절대적인 것에의 신앙을 상실하고 역겨운 정신 구토를 거듭하면서 목숨을 걸고 참으로 진지하게 책임지고 참여하는 정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데에도 니체처럼 불이 펄펄타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대의 니체 영혼은 알 수 없는 신을 부릅니다.

"내 생명을 약탈하는 당신
마음의 눈물마다 당신을 향해 흐르고
가슴의 불길마다 당신을 향해 타고
최후의 행복이여 최후의 고통이여"

  〈알 수 없는 신에게〉 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부르다가 그는 미칩니다. 파스칼의 회심 체험 가운데 ‘환희, 환희, 감격, 감격’이라고 표현한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그립고 사랑스런 나의 신이여…….’하고 부릅니다. 인도의 선다 씽은 신을 만나지 못하면 오늘밤 안으로 자살하겠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시 42편). 내 영혼이여, 내 속에 있는 것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1∼5)고 고백합니다. 청년들의 가슴에도 감격이 없습니다. 캐나다에서는 11세 소년이 90세 노인처럼 조로병(早老病)으로 죽었습니다. 노인들은 울릴 수가 있어도 청년들은 감동이 없습니다. 신앙이 감정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믿는 자의 가슴 속이 너무나 차갑습니다.

2. 감사할 것과 감격할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감정이란 전염되고 파동처럼 번지는 법입니다. 어느 청년이 우체국 창구에서 우표를 파는 여자의 신경질에 화가 나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친구를 불쾌하게 대했습니다. 이 불쾌감을 받은 친구는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신경 질을 부렸고, 그 부인은 식모에게 화를 바락바락 내었습니다. 다시 그 식모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서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 고등어 파는 아저씨에게 화를 냅니다. 이렇듯 계속해서 나타나는 히스테리를 생각해 봅시다. 그 결과로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는 콩나물을 사러 오는 사람에게마다 그 신경질을 퍼뜨립니다. 이 악순환은 삽시간에 온 서울 장안에 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언어와 감정생활도 전염, 확대, 파동, 악순환을 하게 마련입니다. 늘 부정 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버릇을 들이면 그런 부정적 파장을 지닌 정신 구조가 형성되고, 운명으로까지 번집니다.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 특히 하나님 앞에 감격 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창조적 신앙의 결단과 노력으로 키워야 합니다. 내가 하룻밤에 60명이 학살되는 현장에서 살아난 이후, 내 하루는 순수 은총의 시간이고 신기하고 새롭고 감격스럽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속에서 말하기를 “한 사형수가 사형 집행 5분 전에 갑자기 생각해 본다. 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내 일 분을 백 년으로 바꾸고 내 하루를 영원으로 바꿔서 살겠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1,300명이 수용되는 나환자 병원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내 피부가 나환자와 같지 않은 것이 그렇게도 신기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십 명의 소경들 모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나면서부터 소경인데, 아내도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한 번도 내 눈으로 사물을 본 일이 없습니다. 단 한 번, 일 분간이라도 좋습니다.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이 눈으로 보고, 저 하늘과 푸른 산과 꽃을 보고, 그대로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내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두 눈이 일 분간이 아니라 언제나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심장, 나의 언어, 나의 부모, 처자, 조국, 태양, 생애와 시간들, 소증한 것마다 무상으로 주신 일에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한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는 더합니다. 가난하고 병들었던 사실까지 무한히 감사한 것은 그것이 합동해서 유익함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불평을 낳고, 불만은 불만을 낳으며, 미워할수록 미움은 커집니다. 그러나 감사할수록 감격은 커집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격하는 경건은 기도나 소망이나 사랑만큼 소중한 마음 자세이며 신앙의 덕입니다.


3. 영원한 감격의 작은 샘터가 됩시다.
  주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큼 감격스러운 사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도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죽게 했습니다(요 3:16). 이것이 사실 중의 사실이고 피 묻은 하나님의 진실일진대, 내가 이렇게 창백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것이 문자대로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라면 인류의 언어는 그 의미를 죄다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어느 힌두의 소녀가 여자 선교사의 설교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듣다가 흐느껴 울었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무슨 불쾌한 일 이라도 있나?”하고 물었더니 “아니어요, 주님 이 참으로 나를 위해 그토록 고난을 당했다는 사실은 내가 차마 들을 수가 없었어요.”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선교사는 평생 들어도 범연하게만 여겼던 주의 십자가 고난에 그토록 감격하고 아파하는 힌두 소녀의 순수한 원 경험을 들으며 신앙 체험이 마비된 자신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얀 시트로 전신이 덮이고 얼굴 부분만 드러낸 환자 앞에 주치의가 섰고, 조수와 간호사와 의과 대학생들이 둘러 서 있었습니다. 주치의는 마취 주사기를 한 손에 든 채 “당신은 혀에 암이 생겨서 절단하게 됩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혀가 잘려 있을 터인데, 최후로 한마디 말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쇼크를 받은 표정이더니 차차 침착해지는 환자의 표정을 모두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만일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한 마디밖에 남지 않은 언어, 최후의 언어로 부르는 이름은 누구일 것인가?’ 목숨이 다한 후에라도 한 마디만 할 수 있는 언어의 기회를 얻어서 부르고 싶은 이름은 흔히 애인들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긴장된 순간들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환자의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떨리는 입술에서 언어가 나왔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그의 인정(人情)으로는 분명 아내나 자녀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처럼 주님에의 감사를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현대인의 실존 시간이 죽음에로의 시간이라면 크리스천의 시간은 밀월의 시간, 만나도 만나도 영원히 새롭기만 한 사랑과 감격의 시간입니다. 사도행전의 간증마다 크리스천의 것입니다. 산 샘터처럼 배에서 생수가 터지는 성령이 주시는 사랑마다 기쁨과 평화의 감격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사랑의 감격의 파동을 일으킵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영원한 감격의 작은 샘터가 됩시다. 생수는 오직 예수에게만 있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71년 2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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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1 [05:0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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