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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18 [07:03]
[김준곤 설교] 성경과 과학적 종말론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베드로후서 3:8~14

▲ 김준곤 목사©뉴스파워


 

현대 대학 사회의 중추적 위치에 있는 과학에 의해 하나님은 추방되고 있습니다. 진화론적 가설 위에 선 과학적 세계에서 하나님은 그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서도 발견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과 과학은 그렇게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까? 가짜 성경학자와 가짜 과학자끼리는 충돌할 수 없습니다. 19세기의 아일랜드 추기경 아셔가 기원전 4004년에 천지 창조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그의 개인적 견해일 뿐입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 15장 마지막 부분에서 “창조주는 소수의 원종을 창조하여 생명을 부여했다”고 말했는데 진화론이 점점 체계화 되면서 진화론은 인생관, 철학, 가치관, 신학에까지 도입 되어버렸습니다.

우연과 하나님,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치는 신학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연히 만물의 과학은 그것을 규명 할 수 없습니다. 시험관의 아기도 생명 인자와 유전 인자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자연과학의 작용으로 10달은 1일로 단축시킬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연 법칙에 대한 지식은 단편적이어서 절대 완성, 총체적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 1차원에서 2차원을 볼 때 모든 것이 초자연으로 보이듯 인간이 하나님의 세계를 볼 때는 모든 것이 초자연으로 보입니다. 자연 법칙은 초자연을 인정합니다. 물론 제1 원인과 제2 원인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질서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창조 자체를 부인할 근거는 도무지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최상의 과학자가 될 수 있고 또 최상의 과학자였습니다. 기독교가 부흥하는 곳에 현대 과학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성경과 과학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있는데 전통적 견해는 성경 전체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속에 있는 진리는 역사적이든, 과학적이든, 종교적 이든 간에 어느 것 이나 틀림이 없다는 것 입니다. 예수의 부활이나 하나님의 창조에서 역사적, 과학적 진실을 부인하고 종교적 의미만을 캐어내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둘째로 자유주의적 태도는 성경을 우수한 종교 서적으로 간주하나 과학적 역사의 교과서는 아니므로 그런 것들은 믿지 말고 오직 종교적 가르침만 배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 신’역사적 사실을 말하며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예수와 아담을 연결시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는 ‘내 말은 하나님의 말’, ‘나의 일은 하나님의 일’, ‘나는 하나님’, ‘내 지식은 하나님 지식’ 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십시오. 물론 성경의 난제를 다 풀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해결의 문제는 성경뿐 아니라 과학에도 있습니다. 자연에서 초자연이 없다는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초자연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종교의 발언입니다.

누구도 과학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은 다 단편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100억 중에 하나의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광속으로 달라지면 지금의 시간도 달라집니다.

현대 물리학의 발견은 ‘불확실성의 법칙’입니다. 자연법칙엔 수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기적과 초자연은 가능합니다. 절대 불변의 법칙이 물질계에는 없습니다. 생명, 원자, 시공간, 물질, 에네르기, 인력, 자기, 4차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뭇잎의 비밀 하나 제대로 모릅니다. 그래서 현대는 신비주의가 번져 갑니다.


창조과학회가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진화론자들이 일년 동안 계속 우리의 도전을 피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때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바다가 갈라진 사건이 한국 진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영원한 신비의 문제와 지식의 불가사의 앞에서 과학자들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느끼고 지성의 겸허를 가지며 지성의 귀로가 한국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기적, 초자연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고 자연은 하나님의 왼손에 있습니다. 자연과 초자연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 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바람을 잔잔케 한 것, 병 고치는 일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무슨 기적입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슨 기적입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슨 큰 일입니까? 없는 사람도 만들어 내시지 않았습니까?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활해서 부활 종교가 생긴 것입니다. 부활도 없었는데 어떻게 부활 종교가 있겠습니까? 창조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표적 두 견해가 있습니다. ① 천지개벽설의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란 새 창조요, 재창조입니다. ② 그러나 더 성경적인 견해인 과정 단축설은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할 때 성인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병아리부터 만든 것이 아니라 닭을 만들었고 고목도 만들며, 수억 년으로 추정 되는 지층을 순간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공간, 시간, 물질은 범주에 불과한 것입니다(칸트).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우주를 축구공으로 압축할 때 온 우주가 같은 스케일로 압축되는 개념을 우리는 가집니다. 100억 년을 5분 단위로 압축해도 시간 경험은 같습니다. 시간의 길이는 사람이 만든 것일 뿐 입니다. 현재의 자연 조건에서 10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다른 조건에서 6일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과학의 증언〉이란 과학 잡지에서 피터 박사는 창세기의 창조를 13단계로 구분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현대 지질학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그것을 상식과 상상으로 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쓴 것이다.” 창세기의 시간 구조에 있어도 ‘날’은 ‘기’, ‘세대’, ‘장’ 등의 넓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것이 성경적 시간 개념이 아닙니까? 과거 100억 년 걸려 우리에게 온 별빛이 지금 눈에 보이나 이미 그 별이 없어져 버린 것도 있습니다. 고체가 단단한 것이라고 하지만 쇳덩이의 원자 사이의 공간은 우주의 별 사이만큼 큰 공간을 가집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물질은 에네르기가 되고 에네르기가 다시 물질이 된다고 하므로 물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됩니다. 물질에 대한 혁명적 개념이 현시대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낡은 시대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인간이 사는 영원한 주소가 아닙니다. 우주 여행 계획은 공중 혼인 잔치를 눈뜨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네르기가 소멸된다는 과학자들의 입으로 나오는 증언들은 신천지가 임하고 새 육체를 입는 성경의 가르침들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기브온에서 태양이 중천에 머물게 한 것은 시계 바늘이 멈춘 것과 같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도 간단합니다. 1931년 지중해에서 특수한 고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배를 뒤집고 사람을 삼켰으나 사흘 후에 다시 해변가에 사람을 토해 내었습니다.

학생들의 생각을 오염 시키는 것 중 하나는 프로이드의 심리학입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 신경, 뇌세포를 분해해도 귀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성령의 자리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현미경으로 보아도 영혼이 없고 우주에 가보아도 하나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얼마나 유치한 말들입니까?

그에 따르면 사람에겐 의식과 무의식이 있는데 무의식은 지하실의 암실 탱크와 같아서 의식 외의 비정상적인 채널을 타게 되면 원척적인 본능적 충동이 튀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 개념이란 어릴 때 우리가 아버지의 품에서 느낀 안정과 보호 감정을 투사한 것입니다. 분화구의 가스가 의식의 지하실에서 나온 것이 하나님 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성 충동이 종교로 성화된 것 입니 다. 그러므로 성 충동과 성령 충동이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머니 뱃속에 있던 경험이 유토피아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학, 학문, 문화, 심리의 이름으로 함부로 지껄이는 말들이 얼마나 우리를 많이 오염시킵니까?

성경은 절대 진리이며 절대 가치의 표준이요 진리의 척도입니다. 지성을 오염시키는 것은 악마의 전략입니다. ‘지성의 정화’(intellectual conversion)가 우리의 작업 입니다. 악마가 심은 것을 성경의 지식으로 재 프로그램화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오염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음하고 있는 현대의 질서, 저주받은 질서를 새 차원의 신천지로 변화시키실 것 입니다. 천년 왕국은 만물의 회복입니다. 새 질서와 새 차원으로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1년 11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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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30 [08:3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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